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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규 칼럼] 형평 경영학…되어가는 창업, 리더십, 그리고 함께함의 이야기

우리는 창업이나 경영을 종종 어떤 결과에 도달한 상태로 생각하곤 합니다. 회사를 성공시켜 돈을 많이 벌거나,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이끄는 모습처럼요. 그러나 실제의 창업과 경영은 고정된 목표 지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입니다. 회사를 세우는 일은 마치 길을 걷는 것과 비슷합니다. 중요한 것은 끝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걷느냐, 누구와 함께 걷느냐입니다. 이런 철학을 '되어감의 철학(Philosophy of Becoming)'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태적인 성공보다, 유동적인 실천과 변화, 관계 맺음의 과정에 주목합니다. 단어를 바꾸면 생각도 바뀝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리더십(leadership)' 같은 단어들은 마치 독자적으로 도달한 성취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을 관계성을 가진 동명사형으로 바꿔 보면, 새로운 감각이 열립니다. • Co-entrepreneuring: 함께 창업해 가는 중 • Co-leading: 리더십을 함께 형성해 가는 중 • Mutualizing: 상호 역량을 공유하며 힘을 키워가는 중 • Co-shaping: 함께 만들어가고 조율해가는 중 이처럼 '되어감'은 고립된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적 경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네트워킹입니다. 되어감 속의 네트워킹 되어감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협업, 교류를 통해 '함께 되어가는 것'입니다. 즉, 되어감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적입니다. 한 사람의 성장은 주변과의 연결 속에서 가능하며, 조직의 발전도 개인들의 역동적 네트워킹 위에서 이뤄집니다. 네트워킹이란 기술적 연결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돌봄과 배려, 피드백과 공동의 조율이 일어나는 '포도줄기'와 같은 살아 있는 관계망입니다. 형평, 네트워크의 윤리 이러한 관계망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단순한 균등(distribution)이 아니라, 형평(equity)의 감각이 필요합니다. 형평이란 각자의 처지에 맞게 도와주고, 함께 설 수 있도록 배려하는 감각입니다. 예를 들어, 키가 다른 아이들이 야구 경기를 보려 할 때, 키 큰 아이는 상자가 없어도 되고, 키 작은 아이는 두 개의 상자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형평입니다. '형평경영'이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시키는 경영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과 역량을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경영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고정된 원칙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유동적으로 조정되어야 하는 네트워크 윤리입니다. 김장하 선생의 형평경영: 관계망의 따뜻한 실천 진주의 작은 한약방을 운영하며, 평생 형평의 철학을 실천했던 김장하 선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적 활동가가 아니었지만, 형평운동의 정신을 자신의 방식으로 구현해온 시민 경영자였습니다. 가장 주목할 점은, 그가 돕는 방식이 단발성 시혜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네트워크적 돌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헌법재판관 문형배입니다. 문 재판관은 고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김장하 선생님의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법관이 되었고, 다른 7명의 헌법재판관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는 귀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누구든 배움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자 했고, 그 네트워크는 문형배와 같은 인물을 통해 깊고 멀리 확장되어 갔습니다. 이는 형평의 철학이 단지 이론적 가치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네트워크적 실천임을 잘 보여줍니다. 형평의 경영학,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형평의 경영학은 다음 세가지 질문이 핵심입니다. 아래 질문은 가치성찰, 공동실천, 감성소통이라는 키워드와 통합니다. • 우리는 어떤 가치와 실천을 축적하며, 어떤 정체성을 공동으로 형성해가고 있는가? • 우리는 어떤 상호작용의 구조 속에서 공동의 역량을 형성하고 있는가? • 우리는 네트워크 내 다양한 관점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율 가능한 감수성을 갖추고 있는가? 경영은 숫자와 전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철학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가는 질문이며, 네트워크 속에서 실천되는 형평의 이야기입니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세상은 특출난 위인이나 영웅이 혼자만의 힘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하고 상식적인 보통사람의 연대와 형평된 돌봄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김장하 선생님과 같은 형평경영 창업자의 보다 많은 표상을 기대합니다.

2025.04.07 16:56이정규

[이정규 칼럼] AI 디지털교과서의 미래를 기원한다

디지털 교육 혁신은 기술 발전과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지식 체계의 변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베이컨의 나무형 계층구조에서 시작하여, 달랑베르의 미로와 세계전도의 형태를 거쳐 현대에는 관계철학자들이 제시하는 리좀(Rhizome) 구조로 변화해왔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이러한 비선형적 학습 체계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학생들의 학습 방식이 다양해지고, 맞춤형 교육의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기존의 종이 교과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학습 도구가 요구되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디지털교과서 원형 개발이 이루어졌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시범 개발 단계를 거쳤다. 2018년 이후 디지털교과서의 본격적인 도입이 논의되면서, 마침내 2025년 3월 4일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은 AI 디지털교과서 플랫폼을 공식적으로 오픈했다. 이 시스템은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는 혁신적인 도구로서, 학생 개개인의 학습 수준을 고려한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공교육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AI 디지털교과서 플랫폼,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AI 디지털교과서는 개별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분석하여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플랫폼은 학습 진단, AI 기반 추천 학습 경로, 대시보드 제공, AI 튜터 및 보조교사 기능 등을 포함하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기 주도적 학습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교사들은 학생 개별 성취도를 분석하여 맞춤형 지도를 수행할 수 있으며, 학부모 역시 자녀의 학습 이력을 보다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교육의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기억→이해→적용→분석→종합→평가'의 기존 학습 사이클에서 '기억→이해→적용→분석→평가→창조'로 발전하는 새로운 창조학습 패러다임과도 연결된다. 불룸(Benjamin S. Bloom)이 제시한 이 변화는 AI 디지털교과서를 통한 창의적 학습과 맞닿아 있다. AI 디지털교과서의 도전 과제 그러나 AI 디지털교과서의 도입과 운영에는 여러 도전 과제가 존재한다. 먼저, 디지털 격차 문제가 우려된다. 가정별 인터넷 환경과 디지털 기기 보급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동등한 학습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또한, 데이터 프라이버시 및 보안 문제도 중요하다.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가 방대한 양으로 축적되는 만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철저한 대책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교사의 역할 변화가 필수적이다. AI 시스템이 보조 역할을 한다고 해도, 교사의 수업 설계 능력과 데이터 활용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AI 디지털교과서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책적 대응과 개선 방향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첫째, 디지털 인프라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태블릿 지원, 원격 교육 환경 개선 등이 병행되어야 하며, 공공 와이파이망을 확대하여 디지털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데이터 보호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AI 기반 맞춤형 학습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강력한 데이터 보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AI 디지털교과서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단순히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교사들이 AI 디지털교과서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습 중심의 연수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AI 기반 학습 데이터 분석 방법, 맞춤형 수업 설계 기법 등을 교육하여 교사들이 변화하는 교육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AI 디지털교과서가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맞춤형 학습 경험을 제공하여 학습 격차를 줄이고, 학습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특히,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에게는 보충 학습을, 빠른 학습자에게는 심화 학습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교사들은 데이터를 활용한 정밀한 학습 설계를 할 수 있어 개별 맞춤 교육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변화는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협력하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미래 사회에서 요구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 데이터 활용 역량, 디지털 리터러시를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래를 향한 기대 이탈리아의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는 “교사의 가장 큰 성공은 '아이들이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학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자기주도 학습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AI 디지털교과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교육 시장과의 연계 가능성, 다국어 지원을 통한 해외 교육 확장, 그리고 풍부한 학습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교육의 강화까지. AI 디지털교과서는 교육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물론, 기술적 도전과 정책적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결국 학생들에게 가장 최적화된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나 교육의 미래는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기술을 통해 더욱 인간적인 교육을 실현하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교사의 역할이 더욱 빛을 발한다. 이는 국제 사회가 강조하는 '지속가능발전교육'(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과도 맞닿아 있다. 학생들에게 '지속가능발전교육'이란 환경, 사회, 경제적 요소를 균형 있게 이해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이는 AI 디지털교과서의 맞춤형 학습만으로는 온전히 구현될 수 없는 가치다. 따라서 미래 교육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AI 디지털교과서가 혁신의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그 가치를 완성하는 것은 바로 교사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을 실현하는 중요한 길잡이로서 교사의 역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AI 디지털교과서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진정한 교육 혁신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교육이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뜻깊은 전환점을 맞이하길 기대한다.

2025.03.06 10:17이정규

[이정규 칼럼] IT 거버넌스와 비상계엄 사태, 그리고 역사의 교훈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와 이른바 '친위 쿠데타' 사태는 정치적 파장을 넘어서 사회적, 도덕적 그리고 법적 관점을 포괄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 사태를 바라보며, 청년시절에 접했던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떠올랐다. 당시 전범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 수석검사 로버트 잭슨은 "명령은 범죄적 행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으며, 이런 변명을 용인한다면 문명사회는 붕괴할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이에 판사는 과반의 피고인에게 교수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이 역사적 사례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특히 IT 기술의 거버넌스라는 현대적 관점에서, 우리는 이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권력과 거버넌스: 기술을 통한 통제의 명암 IT 기술은 현대 사회의 중심적 도구로 자리 잡으며, 권력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은 효율적이고 공정한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악용될 경우 권력을 집중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독일 나치 정권의 사례는 거버넌스 시스템이 윤리적 기반 위에 구축되지 않을 때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나치의 지도자들은 법과 기술을 악용해 시민을 감시하고 탄압했다. 현재 IT 기술의 오용 가능성 역시 이와 유사하다. 데이터의 중앙집중화, 개인정보의 남용, 디지털 독재 등의 문제는 권력이 기술을 통해 악화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쿠데타와 IT: 디지털 환경에서의 권력 찬탈 친위 쿠데타 같은 사건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데이터 조작, 디지털 여론 조작, 심지어는 군사 시스템의 사이버 통제가 권력 찬탈의 도구가 될 수 있다. IT 전문가로서 우리는 이러한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IT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생각에 쉽게 속는다. 하지만 IT기술은 설계와 운영 과정에서 윤리적 판단에 따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IT기술 거버넌스는 단순한 관리 체계를 넘어, 이러한 윤리적 판단을 통합한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뉘른베르크 재판의 교훈: 책임을 묻는 윤리적 기준 뉘른베르크 재판은 책임 소재를 묻는 윤리적 기준을 제시했다. 나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법원은 그들에게 개인의 도덕적 선택과 책임을 물었다.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 IT기술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IT 분야에서도 "시스템이 원래부터 그렇게 설계되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아야 한다. IT개발자, 시스템 운영자, IT정책 결정자 모두가 정보기술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윤리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기업이나 정부가 정보기술을 활용해 권력을 남용한다면, 이에 대한 설명책임을 IT기술 설계자에게 묻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상의 교훈을 기반으로 IT 전문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래의 세가지로 제시해 본다. 첫째, 투명한 IT 거버넌스 체계 구축: 정보기술 활용의 윤리적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둘째, 책임 있는 정보기술의 설계: IT기술 개발 과정에서 윤리적 기준과 공공선을 우선시하는 사회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셋째,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와 대응: 디지털 환경에서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감시와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과 권력, 그리고 인간의 선택 우리나라의 친위 쿠데타는 IT 거버넌스 측면에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는 정보기술이 단순한 도구로 머무르지 않고,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뉘른베르크 재판의 교훈을 되새기며, 우리는 정보기술이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술을 포함한 “어떠한 가치도 사람 앞에 세우면 폭력”이 된다. 폭력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IT 전문가로서 우리 각자는 윤리적 책임을 다하고 기술의 올바른 사용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2025.01.13 13:18이정규

[이정규 칼럼] 미시조직과 네트워크 경영

중국의 잭 웰치, 스티브 잡스로 일컬어지는 '장 루이민(張瑞敏)' 하이얼(Haier) 그룹 前 회장. 원래의 회사 이름은 '칭다오 냉장고'였지만, 1991년 "당신이 바다"라는 발음과 유사한 '하이얼'로 회사명을 정한다. 도가(道家) 친화적인 회장의 생각을 반영하였다고 한다. 장 루이민은 1994년 전 직원에게 "하이얼은 바다"라는 사내 메시지를 통해 혁신의 돛을 올린다. 그는 2011년 파나소닉 산하의 산요 가전을 인수했고, 2016년 GE가전을 인수하여, 세계적인 가전 업체가 되었다. 어떤 학자는 하이얼의 전략적 재정렬을 다섯단계로 설명한다. 품질경영과 브랜딩(1984~1991), 다양성 추구(1991~1998), 국제화(1998~2008), 오픈 이노베이션(2009~2015), 마이크로 엔터프라이즈와 네트워킹(2016~현재). 대기업 환경에서 작동이 가능할지 의문인 4천여개의 소형 스타트업 '미시조직'을 재정렬하기까지 장 루이민 회장은 물경 3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장 회장은 전통적인 피라미드 계층구조의 문제점을 자각한 듯 하다. 계층별 위계에 기반한 피라미드 기업구조는 변화에 둔감하고, 소통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이런 조직을 그는 4천여개의 소형기업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협력조직으로 재구성했다. 이들 소형 기업들은 COSMOPlat 플랫폼을 통해 필요한 비즈니스 역량을 가진 파트너를 찾아 계약을 맺고 협력사업을 진행한다. 하이얼 그룹의 직원수는 2023년말 기준 11만명 정도이다. 보통 하나의 마이크로 기업은 10명 내외로 구성된다. 이런 마이크로 기업이 4,000여개라는 의미는 물경 4만명 이상의 직원이 스타트업 형태의 기업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한편 “고객과 회사는 하나!”라는 런단허이(인단합일) 정신은 서로 간에 거리가 없다는 Zero Distance라는 철학으로 구체화되었고, 이는 COSMOPlat 플랫폼의 핵심 정신이다. 새로운 마이크로 기업은 이 플랫폼을 통하여 생산, 마케팅, 유통, 정보기술, 품질 관리의 서비스를 다른 마이크로 기업으로부터 제공받는다. 필요하다면 더욱 뛰어난 아웃소싱 업체를 사용하는 것도 제한은 없다. 마치 모든 것을 수용하고, 끝임이 없이 변화하는 바다 생태계와 같다. 장 루이민 회장을 빼놓고는 하이얼의 성공을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는 노자의 “도가 도이면 도가 아니다.( 道可道非常道)”라는 말처럼 완성된 성공을 말하지 않으며, 끝임 없이 변화하는 항상성 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경영철학을 이해하려면 수목형 위계관리에 비교되는 뿌리줄기 네트워크 경영을 이해하여야 한다. 수목형 식물은 계층조직의 표상이고, 대나무, 연꽃, 둥글레와 같은 뿌리줄기(리좀, Rhizome) 식물은 경직되지 않은 수평적 조직을 상징한다. 노자의 도덕경 73장에는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얼기설기하지만 뭐하나 놓치는 것이 없다.”는 말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악을 행하지 말라”고도 하고, “하늘의 도가 무심하게 천천히 하는데도, 치밀하게 일을 잘 꾀한다.”고도 말한다. 주로 도덕적인 원칙이나 일을 행함에 있어서 그르침이 없도록 유의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는 그물을 구성하는 가장 주요한 주체가 인간이라는 매우 중요한 관점을 간과하고 있다. “엮여진 인간관계의 그물이 비록 얼기 설기하지만, 뭐하나 놓치는 일이 없다!”는 의미를 말이다. 전통적인 대기업은 계층적 피라미드 구조를 가진다. 반면에 네트워크 조직은 최상위 계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네트워크 조직에서 관계자산을 많이 쌓게 되면 누구나 영향력이 높은 허브(Hub)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구성원을 강제하거나 통제하는 위계 구조가 아니다. 네트워크 조직이 잘 작동하려면 모든 구성원은 공유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줄기를 잘라서 땅에 푹 박아놓고 물은 흠뻑 주면, 뿌리를 내리고 죽순을 올리는 대나무 줄기처럼 구성원 모두가 창업자 DNA를 품고 있어야 한다. 장 회장이 꿈꾸는 조직의 모습은 자신이 사라지면 연기처럼 증발하는 기업이 아니다. 4,000개의 마이크로 기업 각각이 하이얼처럼 성장할 수 있는 저력과 능력을 가진 지속가능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려는 것이다. 하이얼의 마이크로 엔터프라이즈와 비슷한 접근을 시도하는 미국의 기업은 아마존, 징가, 3M을 들 수 있다. 아마존은 “두개의 피자판을 먹을 수 있는 피자 팀(Two-Pizza Team)”의 개념을 도입하여 5~8명의 작은 팀 단위로 프로젝트를 운영하여 자율성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강조한다. 온라인 게임 회사인 징가는 12명 이내의 독립적인 소규모 팀을 기반으로 신속한 게임 개발과 혁신을 추진하며 자율성을 부여한다. 3M의 경우 역시 15%의 룰이 있는데, 직원들이 근무 시간의 15%를 개인적 아이디어 개발에 쓸 수 있도록 허용하여 자율적 혁신을 촉진한다. 국내의 경우도 'TOSS뱅크'가 마이크로 엔터프라이즈인 '스쿼드'와 사일로 조직으로 네트워크 조직 문화를 도모한다고 들었다. 이상의 몇몇 대기업의 접근은 미시조직의 자기조직화(self-organizing)의 역량을 신뢰하는 철학 에 기반한다. 자기조직화는 '밖에서 강요된 형태라기 보다는 내적인 가이드라인과 협업으로 새로운 조직형태를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나갈 능력'을 말한다. 하이얼과 같은 대기업이 도입한 이런 마이크로 기업 촉진 프로그램은 작은 단위의 실험과 신속한 피드백을 통하여 미래의 수익사업 모델을 빠른 속도로 평가하는 장점을 만들어 준다. 전통적 계층조직의 복잡하고 관료적인 의사결정 사이클로는 달성할 수 없는 빠른 환경 적응성을 가지는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우리나라는 커다란 국가적 위험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시권력자인 시민의 협력은 빠른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었다. 군대와 정치조직은 물론 대부분의 회사는 전형적인 위계적 계층구조이다. 이러한 피라미드 조직에서는 여왕벌과 같은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중요 정보와 결정을 독점한다. 그래서 여왕벌이 죽으면 집단 전체가 괴멸한다. 그러나 미시권력자로 구성된 네트워크 협동 조직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원을 자기조직적으로 재배치하는 항성성을 유지한다. 향후 수개월이 우리 사회가 비가역적 네트워크 사회로 진입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시점이라 생각된다.

2024.12.09 14:37이정규

[이정규 칼럼] 스마트하게 접어라

일기예보 기자가 내일은 “폭설이 예상되니 차를 두고 출근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고집스럽게 차를 몰고 나온다. 사륜구동 SUV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이 걸작이다. “새 차는 4계절을 다 겪어야 진정으로 내차가 되는 거야!” 일리가 있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이라고 차를 주차장에 두고 다닌다면, 어려운 상황에서 나의 운전 능력도 늘지 않을 것이고 내 차의 성능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렇게 4계절 전국을 누비고 다닌 내 차라면 더욱 애착이 간다. 선남선녀가 결혼을 했다. 20년이 넘게 금전적 부족함도 없고, 생활여건이 좋았는데 갑자기 집에 고민거리가 생겼다. 일방의 외도 문제가 아니다. 부부를 몹시 귀찮게 하는 고민거리가 생긴 것이다. 어려움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게 만든다. 그래서 짜증을 부릴 만도 한데, 부인은 인내심 있게 남편의 정신적 지원자로 길을 같이 한다. 그 남편 왈 “고생을 같이 극복을 하였으니, 이제 진정 내 마누라가 된 거야!” 진실한 가장이라면 고생을 같이한 조강지처를 배신할 수 없다. 애정 이상의 느낌, 즉 애착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보기에는 잡동사니에 불과한 허접한 물건을 못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물건을 바라볼 때면 떠오르는 애착 때문이다. 이를 영어로는 'Personal Attachment'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말로는 '사적 애착'이라고 번역된다. 지인이 서명한 오래된 책,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공구, 외국여행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토산품, 친한 친구가 선물한 기념품, 학창시절에 받은 상장, 늙은 어머니가 떠준 스웨터 등. 시장가치로는 의미가 없지만, 밖에 내다 버릴 수가 없는 이유는 사적 애착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창업자도 회사에 대한 사적 애착이 발생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공을 들여온 회사와, 월화수목금금금 늦도록 같이 일해온 동료와의 스토리는 아주 강력한 사적 애착을 만든다. 이런 애착 때문에 창업자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 회사를 붙잡고 “조금만 더, 몇달만 더” 하지만 경영상황이 더이상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투자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이 5년이 지나도록 가시적 사업성과가 없다면 빨리 접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기업가는 애착의 스토리를 쌓아가는 인문학자가 아니다. 비즈니스 모델의 검증을 위해 5년 동안 에너지를 쏟아 부었지만, 효과가 없다면 2가지 원인 중의 하나이다. 첫째는 비즈니스 모델의 검증기간이 5년 이상일 수 있다. 둘째는 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이 효과가 없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이런 사업을 이리저리 5년 이상 붙들고 있다면, 창업자의 청춘도 아울러 사라진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2번, 3번 정도의 창업을 해보려면 5년이 최고로 긴 시간이다. 지금의 사업을 5년 동안 꾸려왔고,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면 비즈니스 모델의 성장 가설은 이미 틀린 것이다. 자! 창업자가 폐업을 결심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보다 그 과정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유의할 사항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정리하지 못하면 새로운 창업의 기회도 발목 잡히게 된다. 폐업에 관련된 위험은 대부분 이해당사자(stakeholder)로부터 온다. 창업동료, 직원, 투자자, 협력사, 채권자, 정부 등이다. 먼저 창업동료의 문제이다. 오래도록 신뢰관계를 가진 창업동료와 폐업에 대한 원인을 공유하고 있다면 창업동료로부터의 이슈제기는 일반적이지 않다. 오히려 회사가 만든 이익이 많을 때에, 여러가지 이유로 회사를 떠났던 창업자가 자기 지분에 대한 주장이 걱정되는 일이 더욱 많다. 이런 경우는 창업초기에 작성한 창업자 합의서(founders' agreement)로 위험을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 사업 중간에 떠나는 창업동료들은 자신의 지분을 현재가치로 평가하여, 남아 있는 창업자에게 넘기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직원 정리의 문제이다. 스타트업이 3년이상 사업을 해왔고, 사원의 입장에서 제대로 급여를 받고 일했다면 큰 마이너스 경력은 아니다. 다만 이직을 해도 전 직장이 살아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득이 되기는 한다. 창업자 관점에서 위험은 퇴직연금을 제대로 챙겨주었는가 하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직원 퇴직금은 손대지 않아야 폐업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대표이사로서 직원과 합의되지 않은 미지급 퇴직금 부채는 죽기 전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다음은 투자자의 문제이다. 스타트업이 기관투자가로부터 투자를 받은 경우, 사업이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성실실패로 간주된다면 기관투자가의 투자역 실무자가 큰 이슈를 걸지는 않는다. 어차피 벤처투자는 90%이상이 실패로 끝나기 때문이다. 10건 중에 1건만 대박이 나면 나머지 실패의 책임을 덮을 수가 있다. 때때로 여러 기관투자가들이 공동으로 연대하여 투자하는 이유는 이러한 손실의 헤징 전략이기도 한다. 문제는 개인 투자가들이다. 그들은 여러가지 이슈로 송사를 걸어 창업자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때로는 거짓으로 스토리를 만들고 민사와 형사의 소송을 걸기도 한다. 창업자가 겁을 먹게 만들어 합의금을 유도하여, 일부라도 투자금을 보전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개인투자가의 투자를 받기 전에는 업계의 평판을 조사함이 좋다. 특히 투자가가 카리브해에 본사가 있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하여 투자를 시도할 경우는 매우 유의하여야 한다. 보통 탈세를 목적으로 이런 시도를 하기 때문에 투명한 개인투자가로 간주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한편 송사가 벌어져도 판사들이 이런 업체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창업자의 방어에는 도움이 되기는 한다. 다음은 협력사 리스크이다. 회사들은 제품을 직접 판매를 하지 않고, 총판이나 딜러를 두고 영업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회사를 폐업할 경우에 이들 파트너가 대금을 이미 지불하였지만, 판매하지 못한 재고를 가지고 있다면 이슈가 된다. 재고량이 매우 많고 스타트업이 이를 보전할 여력이 없다면 송사는 피할 수가 없다. 송사는 창업자로 하여금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들며, 업계에 소문이 나면 사업을 새로 기획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 된다. 자금을 대출받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투자와 달리 은행이나 기술보증으로부터의 운영자금 대출은 빚이다. 빚을 청산하지 못하면 대표이사는 어떠한 사업활동도 할 수 없는 신용불량자가 된다. 굳이 사업을 하려면 배우자의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해야 할 경우가 된다. 정부로부터 연구개발 자금을 받았을 경우에도 유의할 일이 있다. 정부의 자금은 “눈먼 돈으로 생각하는 옳지 못한 창업자들을 가끔 보게 된다.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책임개발자로 등재가 되면, 실패한 프로젝트 리더는 그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닌다. 회사를 떠나도 수년동안 리포팅 하여야 하는 책임이 따라붙게 된다. 만약 정부자금의 회계처리를 적정하게 하지 않았다면, 회계감사를 받고 상당한 투자금의 회수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 횡령을 했다면, 고발당하고 옥고를 치룰 수도 있다. 이해당사자로부터 상기와 같은 잠재적 위험이 실제로 발생할 일을 대비하려면 이슈에 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기록을 필히 보관해 놓아야 한다. 회사가 폐업을 하여 사용하던 이메일과 그룹웨어 등의 서비스를 중지하면 자료가 증발해 버린다. 만약에 벌어질 송사에 대한 백업으로 필히 인사관리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 자금 집행과 급여 지급에 관한 재무 및 회계 관련한 주요한 증빙은 출력하거나, 소프트파일로 백업을 받고 최소 5년이상은 보관하여야 한다. 둘째, 회사의 주요 이벤트 역사를 잘 남겨야 한다. 사람의 기억력은 믿을 것이 못된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회사의 주요 이벤트를 날짜별, 관련기관/성명 등으로 로그를 만들어 놓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유의할 사항은 소송을 걸려는 이해당사자, 특히 개인 투자가들은 증거 보전이 제대로 되지 않을 만큼의 시간 동안을 기다리다가, 어느 날 창업자에게 송장을 보내올 수 있다. 그들은 창업자들보다도 여유자금이 충분한 자본가들이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수천만원 정도의 변호사 비용을 써서라도 창업자들을 한번 찔러 보고 싶어 한다. 이런 경우 창업자가 회사의 이력정보, 회사 운영정보에 대한 자료가 없다면 법정에서 말로만 주장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창업자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다행스럽게 정부의 기술창업 프로그램에는 이런 일이 흔하지 않다. 업계에서 소문난 엔젤이나 VC들이 이런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료 창업자, 직원, 개인투자자, 판결을 필요로 하는 기관투자사의 논리에 따라 송사는 벌어질 수 있다. 기억하자 창업자 그룹이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를 떠났더라도 한번 대표이사가 된 이상 절대로 회사의 폐업 정리로부터 자유스럽지 않다. 마치 아들을 버린 부모와 같이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2024.10.15 10:00이정규

[이정규 칼럼] '욕망의 길'을 찾아라

영화의 한 장면. 주인공이 길을 잃었다. 먹지도 못하고 종일 헤매다 보니, 기력도 바닥이고 온몸이 쑤신다. 밤이 오면서 기온이 떨어진다. 몸은 이슬에 젖어 바들거리고, 이러다가 정신줄을 놓쳐 버리면 필히 얼어 죽을 판이다. 그 때 정말 우연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치는 불빛이 보인다. 주인공은 “아! 살았다!”라고 외치며, 수풀을 헤치며 그쪽으로 잰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도착한 불빛의 근원지가 그를 살리는 곳일까? 마적의 소굴이라 죽을 곳인가? 드라마는 '다음에 계속'하며 마감된다. 동물들도 이런 일을 겪는다. 그래서 장거리를 이동하는 무리 동물들은 자신들의 안전한 길을 낸다. 그 길은 대개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검증된 길이다. 아프리카 정글에는 코끼리가 다니는 길, 무소 떼가 다니는 길이 다르다. 들개가 다니는 길, 멧돼지가 다니는 길, 뱀이 다니는 길도 서로 다르다. 초식동물이라면 물이나 먹을 것을 찾기 쉽고, 천적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도망치기 쉬운 공간에 길을 만든다. 경험이 많은 무리의 리더는 선조로부터 배운 길을 알고 있다. 그래서 먹을 것이 궁해지면,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무리를 이끌고 앞장서 길을 나선다. 소낙비가 중력의 힘으로 물길을 만들 듯, 무리의 생존에 가장 효율적인 길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신도시가 생겨서 기하학적으로 아름다운 조경을 해 놓아도, 행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통로를 찾아 잔디밭과 조경수 사이로 발자국 길을 만들어 놓는다. 좋은 통로가 꼭 최단거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행자는 보통 정상길과 최단 길 중간의 절충선을 만든다고 한다. 걷는 목적에 따라 꼬불꼬불 언덕빼기 산책길도 생겨 있고, 약초나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이 만들어내는 은밀한 숲속 길도 생겨난다. 조경학이나 도시공학에서 이런 길을 희망선(길) 혹은 욕망선(길)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Desire path 또는 Desire line이라 한다. 만약에 목적지의 끝이 먹을 물이 솟구치는 샘이라면 욕망샘, 먹기 좋은 풀들이 널린 초원이라면 욕망땅이라 부를 만하다. 소비자 역시 각자 서로 다른 욕망의 길, 욕망의 샘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5천만 인구 한사람 한사람 욕망의 길과 욕망의 땅이 다르겠지만, 소비자를 코호트(cohort)라는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면, 초등학생을 둔 40대 엄마들의 욕망길은 비슷할 수 있다. 35살 미혼남녀의 욕망,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을 둔 50대 서울거주 직장인의 욕망, 80대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60대 퇴직자 아들 그룹이 공유하는 욕망의 길이 존재할 수 있다. 성장하는 기업은 목표 코호트 고객의 욕망을 충족시킬 제품과 서비스를 욕망의 길 중간 중간에 잘 제공하는 회사이다. 이미 성숙된 시장이라면 기업은 목표고객의 욕망을 대충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래도 연구개발비의 투자성과를 높게 얻으려면, 비싼 비용을 들여서 정밀한 시장조사를 한다. 시장조사업체와 계약을 맺고, 목표고객 군을 상의하고, 3개월에서 6개월 동안 설문, 대면인터뷰, 포커스그룹 모임과 관찰 같은 기법을 동원하여 데이터를 모으고 통계를 분석하며 고객의 욕망과 부합하는 설계속성을 뽑아내는 것이다. 반면에 스타트업은 대기업처럼 비싼 시장조사를 할 여력이 없다. 대기업 흉내를 내서 수천에서 수 억원이 드는 시장조사를 한다면, 회사는 곧 문을 닫아야 한다. 그래서 시장조사는 스타트업에 적당한 경영활동이 아니다. 시장조사는 고객의 욕망선을 파악해서, 그들이 반응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반응적 접근(reactive approach)이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자사 제품에 고객이 반응할 것이라 가정하고, 기본적 기능의 제품을 먼저 만드는 선제적 접근(proactive approach)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본기능 제품을 스타트업 경영학에서는 최소기능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이라 한다. 스타트업이라면 최소기능제품을 빨리 만들고, 경쟁사가 생기기 전에 재빨리 시장에 들고 나가야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좋은 제품, 명확한 전략 보다는 먼저 고객을 만나는 “Get there first!” 전략을 우선으로 친다. '우리가 가진 솔루션은 세계최초입니다'라고 벤처 캐피탈리스트에게 으시대지마라. 그들은 속으로 “그 제품의 대체품을 만들고 있는 회사가 전세계에 3개는 있을 것이다.ㅎㅎ”라고 생각하면서 씩 웃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먼저 들고가는 전략이 제일 중요하다. 늦으면 고객의 욕망길에서 둥지를 틀고 좌판을 벌리는 경쟁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 먼저 어디든 제품을 들고 가라. 코끼리 욕망길에서 반응이 없다면, 멧돼지의 욕망선으로 방향을 바꿔라. 멧돼지 길에서도 반응이 없다면, 살쾡이의 욕망선으로 또 방향을 바꿔라. 가야할 곳을 접근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업계를 잘 아는 지인(예, 기자)에게 부탁하여 고객사의 대표와 약속을 잡아라. 무턱대고 전화를 거는 것 보다는 지인을 통하여 약속을 잡으면, 상대가 거절하기 곤란하다. 이렇게 한곳에서 미팅이 잘되면, 또 다른 지인의 연락처를 요청해서 추가적인 고객정보를 획득해라. 이들에게 회사 제품과 고객사례에 대한 뉴스레터를 보내도 좋을지 확답을 받고, 잠재고객의 목록을 확대해 나간다. 그중에 한 고객과 계약을 맺으면, 고객 성공사례를 뉴스레터로 배포하면서, “뒤쳐지는 회사가 되지 말라고”하며 다른 잠재고객을 부축인다. 고객 반응에 따라 다른 고객의 욕망선으로 갈아탈 수도 있지만, 최소기능제품 역시 빠르게 바꿔야 한다. 보통 한달에 2번 정도는 바꾼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시장이해 방법은 심도 깊은 논리적 시장조사라기 보다는 감각적이고 직관에 의존하는 시장발견 혹은 시장 창조활동에 가깝다. 그러니 당신이 창업자라면 시장조사는 잊어라! “남보다 먼저!(Get there first!)”를 외치면 욕망선을 넘나 들며 시장을 발견하는 전략이 살길이다. 스타트업의 시장발견활동의 성공은 섬세하고 철저한 순차적 방법이 아니라, 투박하지만 리좀(Rhizome)처럼 비선형적이고 빠른 방향전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런 과정에서 자사제품에 '곰의 욕망선'이 반응하는 것을 확인했다면, 제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 고객 수가 증가하는지 살핀다. 긍정적 반응이 반복되고 곰 중에서도 반달 곰의 반응이 폭발적이라면, 드디어 '반달곰'이 진정한 우리의 고객이고, 우리는 반달곰의 욕망선을 통제할 능력이 있는 회사가 된다. 이런 경영활동을 혹자는 PoC(proof of concept)라고 한다. B2B 사업이라면 PoC는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에게 적합한 말이다. 그러나 B2C 사업이라면, PoC는 판매자에게 적합한 경영활동이다. 여기서 개념(Concept)은 “우리가 이런 제품을 만들면, 고객의 욕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가설이 된다. 즉, 우리 제품은 고객의 욕망선과 일치한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일이고, 이것을 증명한 스타트업의 다음 단계는 성장(scale-up)이다.

2024.08.02 06:14이정규

[이정규 칼럼] 난 한 놈만 패

"나는 한 놈만 패."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의 유오성 배우가 남긴 명대사이다. 이영화를 메타포로 활용하여 스타트업의 목표관리 방안을 풀어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사업역량이 부족하다. 이는 자원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 경험이 없는 스타트업 창업자 그룹의 경우 인적자원도 부족하다. 창업 구성원과 CEO 모두가 '넘치는 열정에 딸리는 실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5년 동안 너울 거리는 높은 파도를 넘어야 한다. 마치 영화에서 유오성이 떼거지로 달려드는 양아치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엄청난 일이다. 진화발생생물학에서는 배아가 세포분열을 하는 동안에 진화의 전과정을 빠르게 거친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사람의 태아는 올챙이처럼 물고기, 양서류의 모양을 거쳐서 사람이 된다. 특이점은 성체가 되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 오히려 세포사멸(programmed cell death)에 있다는 데 있다. 세포사멸이란 만들어진 세포가 죽어 없어져야 완전한 모양을 갖추는 역설적 이론을 말한다. 주걱 모양을 가진 태아의 손이 제 모양을 갖추려면 손가락 사이사이에 있던 세포가 죽어버려야 하는 현상과 같다. 이 세포사멸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람의 손은 물갈퀴 모양이 되고, 남성은 자궁과 난관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반면에 통제되지 않는 세포사멸이 과도해 지면 뇌졸중, 알츠하이머, 에이즈와 같은 난치병이 초래된다. 세포사멸을 적절히 촉진하면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할 수도 있다고 한다. 태아처럼 갓 태어난 스타트업에도 세포사멸과 같은 프로그램 원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OMTM(One Metric That Matters) 전략이다. 파상공세적 위험에 대응하는 성숙한 기업은 동시에 여러 목표를 가진다. 재무적 목표, 인사적 목표, 연구목표, 영업목표, 생산목표 등등.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관리해야 하는 목표가 너무 많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중견기업처럼 여러 목표를 관리하려 한다면 자원은 빨리 고갈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니 성장단계별로 단지 하나의 가장 중요한 목표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세포사멸 전략처럼 여러가지 목표를 버리고, “한 놈만 패”는 전략이 필요하다. OMTM전략을 따라야 하는 이유이다. OMTM을 잘 선택하려면 성과지표의 속성부터 이해하면 좋다. 지표의 분류방법은 다양하다. 정성적 지표와 정량적 지표, 시계열 지표와 시점 지표, 내부지표와 외부지표, 그리고 선행지표와 후행지표 등이다. 이중 내부지표와 외부지표의 구분은 기업의 내외부 경계로 구분된다. 선행지표와 후행지표는 가치사슬의 선후 관계로 구분된다. 내부지표(internal indicator)와 외부지표(external indicator)는 통제영역의 관점, 선행지표(leading indicator)와 후행지표(lagging indicator)는 수정활동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즉, 통제영역의 관점에서는 고객반응의 척도인 외부지표가 중요하고, 수정활동의 관점에서는 사전에 조치가 가능한 선행지표가 중요하다. 하나의 지표인 OMTM에 집중하려 한다면, 도대체 어떤 지표에 집중해야 하나? 여기서 오해가 발생한다. 혹자는 OMTM전략을 북극성지표(North Star Metric)와 동일시하며 회사전체가 유일한 하나의 성과지표를 가져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다. 북극성지표는 회사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높은 개념이다. 반면 OMTM은 회사성장의 노정에서 부서별 단일목표를 말한다. 연구개발, 생산, 영업/마케팅, 재무회계 관점에서 부문별 OMTM을 정하는 것이다. 단, 전제조건은 각부서의 OMTM이 상호 인과적 관계로 설명되어야 한다. 고구마 줄기처럼 하나의 OMTM을 당기면 다른 부서의 OMTM이 딸려 나와야 한다. 이를 마케팅에서는 전략적 연계(Strategic Alignment)라고 한다. OMTM은 스타트업의 본원적 사업의 단계별 달성목표에 정조준 된 지표이어야 하며 고객가치 지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인터넷 기반의 업체라면 그로스 해킹의 관점에서 피봇팅 사이클 별로 OMTM을 매번 새로이 설정함이 적정하다. 카카오의 최초의 OMTM은 최단시간 10만 가입자의 확보였고, 에어비앤비는 예약한 숙박(Nights)의 일정 개수, 세일즈포스 닷컴은 계정 별 평균 레코드의 개수, 스포티파이는 유료사용자가 한달 동안 듣는 총 청취시간의 량으로, 넥플릭스는 유료 사용자가 한달 동안 콘텐츠를 스트리밍 하는 총 관람시간의 양으로 OMTM를 설정했다. 모두 회사의 본원적 사업활동의 연장선 상에 성장 단계별로 맞추어 진 지표들이다. 그러므로 OMTM의 표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 도메인에 있는 창업자들은 1분기동안 회사의 생존에 필요한 OMTM을 알고 있다.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OMTM을 정하고 작은 성공 스토리를 계속 만드는 일이 핵심이다. 산을 오르듯, 첫번째 OMTM고지에 도달하면, 그 다음의 더 큰 봉우리가 보이기 마련이다. 최초의 OMTM은 팔 제품이나 서비스를 빠르게 런칭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1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동시사용자 5만명을 확보하는 것으로 차례차례 OMTM을 설정하면 된다. 이과정에서 그로스해커들은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목표달성 방법을 피봇팅한다. 계속 바뀌는 OMTM의 변경이 필요 없는 시점은 아마도 스타트업의 딱지를 떼게 되는 날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상당기간의 피봇팅 노력을 하였음에도 OMTM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창업자가 설정한 북극성지표(회사의 정체성)가 적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는 북극성 지표까지도 바꾸는 일을 동업자끼리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런 치열함의 부족함이 5년 동안 50%의 스타트업을 사라지게 만든다. 5년동안 인구의 50%를 멸하게 만드는 질병이 판치는 세상을 팬데믹이라 한다면, 스타트업의 경쟁 세계는 팬데믹의 세상이 아닐까?

2024.06.17 14:07이정규

[이정규 칼럼] 여자에게 물어봐!

미국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페즈(Pez)라는 사탕 브랜드가 있다. '페퍼민트'에서 회사명 PEZ를 따 왔다고 한다. 페즈 캔디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명됐고, 1952년에 미국에 진출했다. 이 회사는 강낭콩처럼 생긴 동일한 모양의 캔디 12개를 포장지에 싸서 판매한다. 주목할 사건은 페즈가 사탕을 하나씩 꺼내 먹을 수 있는 '디스펜서'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디스펜서는 1957년에 만들어졌다. 그 모양은 세워 놓을 수 있는 권총의 탄창 형태인데, 맨 위에 귀여운 캐릭터 머리를 얻었다. 머리를 당기면 사탕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캐릭터는 미키 마우스, 스펀지밥, 마리오, 아이언 맨 등. 아이들이 좋아할 수많은 캐릭터가 있다. 페즈 수집광은 진열장에 수백개의 디스펜서 모델을 늘어놓고 좋아한다. 생산이 중지된 귀한 디스펜서는 고가에 거래도 된다. 페즈는 미국의 굴지 기업인 이베이의 창업스토리와 관계가 있다. 프랑스 태생의 이란계 미국인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Pierre Omidyar)는 회사 창립의 스토리를 그럴 듯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페즈 디스펜서를 모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하여 이베이 전신인 옥션웹(AuctionWeb)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eBay에서는 이 창업 이야기가 꾸며진 스토리라 밝혔다. 스토리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창업자 오미디어는 소비자의 마음에 오래 기억될 기가 막힌 창업 스토리를 엮었다. “이베이는 여자친구를 위하는 착한 마음으로 창업했다”는 메시지이다. 애플에서 Apple Evangelist라는 용어를 만든 가와사키(Guy Kawasaki)는 페즈 스토리를 그의 강연에서 여러번 언급했다. 그의 책 '스타트업의 기술(the art of the start)'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으로 이끄는 아주 특이한 방법의 사례로 말이다. 그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하려면 다음의 세가지에 유의하여야 한다고 설파한다. 첫째는 구체화이다.(Be specific) 고객이 제조회사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회사 내의 어떤 사람이 목표 고객인지 특정하라. 둘째, 단순한 비즈니스모델이다.(Keep it simple) 혁신제품은 좋다. 그러나 세상에 없었던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여기까지의 가와사키 코멘트는 이해할 만하다. 특이한 제안은 마지막 조건이다. 셋째, 반드시 여자에게 물어봐야 한다(Ask women). 뭔 소리인지 말의 맥락을 옮겨보자. 생물학적으로 남자들은 경쟁사를 “죽여라!”고 외친다. 먹이를 사냥하던 수렵시대부터 내재된 유전적 결함이다. 반면에 동굴에서 공동체 생활을 지속한 여성은 더불어 사는 법에 능하다. 그래서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가능성은 여자가 남자보다 높은 통찰을 주며, 여성의 견해가 더욱 성공에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남자는 직선형 사고에 강하다. 경쟁자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1 차원적 사고에 젖어 있다. 반면에 여성은 복합사고를 한다. 남자가 가져온 사슴의 다리가 하나 없으면, 남자가 다른 동굴의 여자에게 먼저 갔다 온 것을 바로 알아챈다. 그러니 비즈니스 모델을 잘 만들려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맥락을 읽어내는 여자에게 의견을 물어봐라! 여자의 견해를 따라서 이베이의 성공이 달성이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쇼핑과 같은 감성적이고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경우에는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배우자가 쇼핑하는 동안 백화점 계단 옆 쇼파에서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그런 남자들에게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물어보는 짓은 바보 같은 일이다. 그러하니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여자와 친해지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여자에게 물어봐라. 그녀가 수긍하지 않는다면 고집 피우지 말고 비즈니스 모델을 빨리 폐기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2024.04.11 10:29이정규

[이정규 칼럼] IT 해적정신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피카소가 말했다는 이 말을 스티브 잡스도 많이 언급했다. 모방과 훔침의 차이는 무엇일까? 혹자는 모방은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 복제하는 일이고, 훔침은 원리를 알아채서 다른 것을 만드는 일이라 말한다. 나는 현대적 의미의 훔침을 '해적정신 '이라 푼다. 해킹과도 통하는 말이다. 유명한 거리 미술가인 뱅크시(Banksy)는 피카소의 말을 해적처럼 멋지게 훔쳤다. “나쁜 예술가는 따라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The bad artists imitate, the great artists steal.” 돌 위에 이 글을 쓰고는 파블로 피카소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그 밑에 자기 이름을 썼다. 인터넷 검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뱅크시가 처음 만든 말로 인용할 판이다. 훔치는 일은 어떤 것일까? 1979년 스티브 잡스는 투자 제안을 미끼로 제록스의 팔로알토연구소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는 윈도우의 원형을 발견하고, 직감적으로 이것이 미래 GUI의 혁신기술이 될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LISA와 매킨토시에 윈도우 GUI를 넣는다. 그것이 제록스보다 탁월하였음은 물론이다. 기술 해적질이다. 잡스처럼 훔치려는 자는 원래보다 더 좋게 만들려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광고사에 유명한 1984년 애플의 슈퍼볼 매킨토시 광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맥락을 훔친 광고 해적질이고,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연설 “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튜어드 브랜드(Steward Brand)가 제작한 1974년 'Whole Earth' 카탈로그의 뒷 커버에 써 있던 구문을 해적질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해적'의 메타포를 아주 잘 사용했다. 2016년 4월 1일 애플 창립 40주년. 애플의 쿠퍼티노 캠퍼스에는 미국 국기, 캘리포니아주의 기 옆에 아주 특이한 깃발이 게양되었다. 바로 애플의 해적기발이다. 애플 해적기발의 유래는 이러하다. 1983년 1월 잡스가 이끄는 맥 개발팀이 년초 반기별 워크숍을 가졌다. 이때 잡스는 다음의 세가지 이야기를 했다. 1.진짜 예술가의 집단을 만들자.(Real artists ship) 2.해군에 들어 가느니 해적이 되는 것이 낫다(It's better to be a pirate than join the navy) 3.1986년까지 노트북 만한 Mac을 만들자.(Mac in a book by 1986) 이중에서 오래도록 주목받는 말은 두번째 해군/해적에 관한 잡스의 말이다. 해군은 잘 갖추어진 조직, 관료주의가 방향을 결정하는 큰 조직, 개인의 창의성이 멋진 제복으로 억눌려 집단사고로 함몰되는 조직을 상징한다. 반면에 자발적이며 자유로운 협동, 열정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소집단, 창의적 사고의 확장을 도모하는 불굴의 반란 조직 메타포는 '해적'이다. 1983년 8월경 100명 남짓의 맥 개발팀이 더 넓은 사무공간으로 이사할 때, 일부 개발자는 '해적'의 초심을 기억하고 싶었나 보다. 그들은 사무실 영토를 표시하기 위해 해적 깃발을 만든다. 어떤 엔지니어가 검은 옷을 가져와 꿰매어 깃발을 만들고, 디자이너인 수잔 케어에게 해골과 뼈를 그리도록 했다. 케어는 해골의 오른쪽 눈에 무지개색 애플의 로고를 그려 넣었다. 그녀는 지금도 천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핸드 메이드 해적 깃발을 팔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대항해시대 해적의 약탈경제가 서구 자본주의 체제를 앞당겼다고 해석한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칼, 그리고 독립한 미국까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략선은 다른 나라의 상선을 약탈하여 엄청난 금, 은, 향신료, 사치품과 노예 등의 값비싼 재화를 본국으로 날랐다. 이렇게 유입된 자산이 중상주의를 부추겼고, 초기 자본주의를 형성했다. 작금은 스타트업의 창발경제가 현대 경제사회의 혁신을 견인한다. 관료주의가 내재화된 대기업은 17세기의 해군처럼 스타트업 해적을 얕보기 마련이다. 1984년 매킨토시 발표회에서 잡스가 비아냥거렸던 것처럼, IBM은 1958년 자사를 찾아온 Xerox의 신기술을 차버렸고, 1970년대 DEC이 만든 슈퍼미니 컴퓨터 시장도 간과했다. 1977년 애플2가 만든 PC시장의 잠재력에도 뒤늦게 대처했다. 한때의 혁신기업도 해적의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미래는 없다. 2013년 9월 9일 포브스 컨퍼런스에서 존 스컬리는 잡스를 내쫓았던 사건을 회상하며, 자신은 “당시 비전 리더십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게는 와튼스쿨 출신의 해군장교 같은 스컬리가, 대학 중퇴의 거라지 출신 잡스의 해적정신을 이해 못했다는 말로 들린다. 해적의 영단어인 Pirate의 어원은 프랑스, 라틴, 그리스까지 내려간다. 고대 그리스의 어원은 '시도, 노력, 계략, 도모함'의 의미를 갖는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얼굴이 없는 예술가 뱅크시처럼 기성사회의 권위를 비판하며 적극적으로 혁신을 훔쳐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철학이 해적정신이다. 해군과 같은 대기업에 도전하는 IT 해적들이 더욱 바글거리는 창업 생태계를 기원한다.

2024.02.21 13:51이정규

[이정규 칼럼] K-자유투와 해적경영

미국 NBA 농구계에서 한국의 뱅크슛이 화재가 되었다. 우리 선수들이 자유투를 던질 때, 농구대의 백보드를 맞추어 득점하는 플레이를 본 어떤 캐나다 사람의 글이 촉발시킨 논란이다. 혹자는 이를 'K-자유투'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별로 이상하지 않은 뱅크슛 자유투 스타일이 미국 농구계에서는 익숙하지 않다고 하니 이유가 궁금해졌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농구는 농구 골대의 바스켓에 바로 넣는 자유투 스타일을 최고로 친다. 선수가 던진 농구공이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바스켓에 빨려 들어가 그물을 툭 흔들며 득점하는 모습을 보고 관중들은 환호한다. 그런데 NBA에 진출한 우리 선수가 백보드를 맞추어 득점하니 선수는 물론 관중들도 키득키득 웃더라는 것이다. 백보드를 맞추고 운 좋게 공이 들어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외국 스포츠 평론가가 본 한국 농구장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K-자유투를 본 우리 관중은 웃지도 않을뿐더러, 선수 역시 거리낌 없이 뱅크슛을 하는 모습이 이상했나 보다. 그래서 그는 무엇이 두나라 관중의 태도를 다르게 만들었는지 심층 취재를 했다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 프로농구 선수들의 자유투 평균 성공율은 매년 77%대 근처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농구선수 중에 자유투 성공율이 제일 높은 다섯명의 선수 중에 세명은 뱅크슛을 사용하는 선수들이다. 1위 선수는 91.4%, 3위 선수는 89.2%, 5위는 85.7%로 미국선수의 평균보다 9~14%P 씩이나 자유투 성공률이 높다. 농구를 발명한 미국은 농구 득점 방식도 은연 중 품격을 따진다. 마치 깔끔한 해군 제복과 같다고 할까? 반면에 우리 선수는 그들이 보도 못한 해적 플레이로 월등한 전과를 올린다. 룰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많은 점수를 넣을 수 있는 테크닉이 더 각광을 받아야 할 터인데, 미국 농구계는 전통과 관습에 젖어 새로운 플레이에 대한 수용성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해적 플레이는 경영의 세계에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적인 마케팅 전략은 세그먼테이션, 타켓팅, 포지셔닝 그리고 4P(product, price, promotion, placement)와 같은 진부적인 방법론에 주목한다. 한편,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같은 모양으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그래서 '해킹(hacking)'과 같은 해적질을 해서라도 기라성 같은 대기업의 아성에 도전해야 한다. 자원과 에너지가 달리는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같은 비즈니스 전략으로 그들과 대적하는 일은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 때문에 스타트업의 오피니언 리더들 중 한 사람은 '해적지표'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했다. 페이팔의 마케팅 이사였고, 유명한 벤처 캐피탈 '500 Startups'를 설립한 데이브 매클루어(Dave McClure)이다. 그는 제도권 경영학에서는 혁신지표라 불리는 단어에서 혁신을 떼어 내고 '해적'이란 말을 붙였다. 스타트업의 사업을 점잖게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육상전투에서 비정규전을 게릴라전투라고 한다. 바다에서의 비정규전은 해적이 능하다. 매클루어는 스타트업을 해적에 비유했다. 기존 대기업의 아성을 깨부수고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어 내므로, 스타트업을 해적으로 부른 듯하다. 대기업에 대항하여 인터넷의 바다에 새로운 대안 기업을 만들고 사업을 꾸려 나가는 스타트업의 메타포로서 '해적'을 사용한 것은 그럴 듯하다. 인터넷 상에서 고객반응을 살펴서 구매전환율의 상승을 유도하는 일은 디지털 해킹 테크닉이다. 이런 일을 하는 전문가 그룹을 '그로서 해커(growth hacker)'라 부른다. 그로서 해커의 성과지표는 해적지표에 맞추어져 있다. 맥그리거가 처음 해적지표를 제안했을 때에는 5단계로 구분했지만, 후학들은 이를 6단계로 구분한다. 이를 줄여서 A3R3(AAARRR)라 부르는데 거칠게 설명을 하면 아래와 같다. *Awareness(알아챔): 어떻게 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Acquisition(들이댐): 고객이 어디로부터 우리의 웹사이트에 방문하는가? *Activation(알아줌): 얼마나 빨리 사람들이 우리의 가치를 발견하는가? *Revenue(구매함): 왜 사람들이 우리의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는가? *Retention(붙잡음): 왜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시 방문하는가? *Referral(소문냄): 왜 사람들이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가? 전반의A3는 대개 순차적 활동으로 간주되지만, 뒤 이은 R3 활동은 연속적 활동이기보다는 비선형적 활동으로 이해함이 좋다. 어느 구멍에서 머리를 들이밀 줄 모르는 두더지 게임처럼, 인터넷 상에서 동시병행으로 발생하는 고객의 반응을 순차적 평가로는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실시간 디지털 모니터링 툴을 사용해 고객거래를 중간에 해킹하고, 이렇게 모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고객 전환율을 높이는 변수를 신속히 조정하는 해적 역량이 중요하다. 바다에서 목표선박을 쫓아가는 해적처럼, 공격직전에 굳이 해적깃발을 펼칠 필요는 없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고객의 정보를 뺏아오는 해적질(해적경영)은 지금도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

2023.12.26 14:15이정규

[이정규 칼럼] 플랫폼과 '올가'라는 이름의 열차

보통 관리자는 직원들이 질서를 잘 따르도록 만든다. 그러나 관리자는 새로운 질서(영어로 Norm이라고 부른다)를 만들 권한은 없다. 반면, 리더는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바뀌어 모두의 예상과 달리 앞뒤가 안맞을 때, 질서의 재편이 필요한 시점이 된다. 바로 탁월한 리더가 두각을 나타낼 때이다. IT업계에서도 기존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질서의 생태계를 만드는 특출난 이들이 있다. 바로 플랫폼 오너이다. 글로벌 플랫폼 오너로는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회사이다. 카카오와 네이버도 우리나라의 플랫폼 오너들이다. 플랫폼은 '펴진'이나 '평평한'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platnus에서 유래했다. 기차역 '플랫폼'의 바로 그 단어다. '기차'라고 하니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난다. 영화에서 총리로 등장한 여배우는 저항세력을 향해서 이런 대사를 날린다. “우리가 집으로 삼은 이 기차에서 단 하나만이 우리를…지켜준다. 옷? 보호막? 아니, 질서!” 설국열차의 대사처럼 플랫폼 오너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기차에 탄 이상 플랫폼의 질서, 소위 '놈(Norm)'을 지키도록 강제한다. 탑승자들이 질서를 잘 지키면 플랫폼은 지속 가능하다. 그렇지만 탑승자가 플랫폼에 저항하고 '질서앓이'를 시작하게 되면 그 플랫폼은 언젠가 파괴된다. 설국열차에는 성스럽다는 뜻을 가진 '올가'라 불리는 멈추지 않은 기관차가 있다. 멈추지 않는 영구엔진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스마트한 엔지니어라면 효율이 높은 엔진은 만들 수 있다. 효율이 높아서 오랜 동안 잘 달리는 플랫폼은 뭔가 다른 성공요소을 가진다. 이러한 플랫폼의 성공요인은 N.E.W.(Networked, Ethical, Walled)라는 세글자로 풀어볼 수 있다. 첫째는 상승하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ed Effect)를 도모해야 한다. 둘째는 네트워크 윤리(Networking Ethics)의 관리체계를 잘 운영해야 한다. 세째는 독점적 생태계(Walled Gardening)를 만들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명확히 구별되는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산업의 경우에는 사용자의 수가 늘어남과 더불어 인프라 비용의 요구도가 더많이 증대되어 성장곡선이 완만한 커브를 그린다. 그러나 디지털 산업의 경우는 인프라 비용의 증가가 미미하여, 사용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인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이를 디지털경제의 첫번째 성공요인인 '네트워크 효과'라 부른다. 네트워크 효과를 빠르게 달성하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는 '올가'의 유지를 위해 어린이들을 착취하는 상황이 묘사된다. 이러한 비인도적인 상황에 분노를 느낀 플랫폼 탑승자는 결국 “올가”를 멈추고 기차를 탈선시킨다. 플랫폼 오너들이 도모해야할 두번째 성공요인이 '네트워크 윤리'인 이유이다. 네트워크 윤리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성공을 구가하는 플랫폼이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탈선한 설국열차로 전락할 것이다. 세번째 성공요인인 독점적 생태계 구축은 플랫폼 상의 거래당사자가 플랫폼에 더욱 의존하게 함으로 대체 플랫폼의 출현과 성장을 저지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플랫폼 오너들은 고객의 개인화된 정보를 더욱 축적하여 고객경험을 고도화 시키거나, 무료 서비스의 제공을 통하여 많은 소비자 시장을 확보하여 공급자에게 매력적인 시장을 만들려고 한다. 이미 현대 사회는 플랫폼 사회로 진화했다. 그러나 성공을 구가하는 작금의 플랫폼도 N.E.W. 전략에 실패하면 언젠가는 파괴된다. 네트워크 효과는 플랫폼을 우회하는 직거래의 팽창으로 망가질 수 있다. 네트워킹 윤리는 가짜 거래와 악성사용자를 방치함으로서 깨져버릴 수 있다. 또한 대체 플랫폼의 등장으로 사용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면 독점적 생태계는 망가진다. 세상에 무한정 달리는 영원한 플랫폼 '올가'는 있을 수 없다. 영화에서 설국열차의 탑승자들은 철로를 탈선한 기차 밖의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승객들은 없으면 죽을 것같이 매달렸던 설국열차 밖의 세상이 살아갈만 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다시 땅이 따뜻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한 진정한 '올가' 플랫폼은 기술로 질주하는 설국열차가 아니었다. 기억해야 한다! 138억년의 우주와 46억년의 지구 생태계가 우리가 지켜야할 진정 성스러운 '올가' 플랫폼이다.

2023.10.31 15:42이정규

[이정규 칼럼] 마이크로바이옴과 미시권력

최근의 뇌과학은 인간을 구성하는 단위 세포의 협업에 새로운 통찰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포가 서로 간에 긴밀히 협업하는 현상을 보면 마치 세포 하나 하나가 지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장이나 장, 근육 및 감각기관에도 머리에 있는 뉴런 세포가 발견되는 일도 그런 증거입니다. 그런데 비록 인간 세포는 아니지만, 장에 공생하는 미생물과의 협업도 건강한 삶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최근에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장내 세균의 생태환경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 합니다. 인간 장 속의 마이크로바이옴은 600만년 동안 인류와 같이 상호영향을 주며 공진화 하였다고 합니다. 인체의 세포수는 대략 30조로 말해집니다. 반면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의 수는 38조로 추정됩니다. 몸중량이 70키로그램일 경우 마이크로바이옴은 200그램에 불과하지만, 우리 몸의 유전자 개수보다 몇배 많다고 추정됩니다. 또한 인간은 20여가지의 탄수화물을 분해할 수 있는데, 장내 미생물은 그보다 몇 백배 많은 종류의 탄수화물을 분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체가 소화하지 못하는 식이 섬유를 마이크로바이옴이 분해하여 영양분을 장에 흡수시키는 것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의 유산 상속은 아이의 출산 때 엄마의 산도(産道)로부터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비율이 높아져 오히려 아이들이 알러지, 천식, 당뇨병, 크론병 등 다양한 발병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장의 세균이 문제가 생기면 살이 찐다고 합니다. 염증이 생겼을 때 독소를 저장하기 위해 지방에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내 유익균의 수자가 감소하면 인간의 건강 밸런스는 무너지게 됩니다. 이처럼 마이크로바이옴이 인간의 면역 및 암 발생 억제 및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는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정신질환과의 관련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뇌 와도 소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작고 미소하여 존재 자체와 기능이 주목받지 못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신체의 건강 유지에 필수적인 협업을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대는 네트워크 사회입니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피라미드 사회처럼 엘리트가 중요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 하나 하나가 중요합니다. 이런 구성원을 정치학으로 미시권력이라 부릅니다. 우리 사회에서 또는 기업에서 미시권력이 해내는 역할이 바로 마이크로바이옴과 같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신, 왕과 귀족, 영웅과 엘리트만의 것이 아닙니다. 미시권력은 마치 마이크로바이옴처럼 리더그룹이 하지 못하는 기능을 사회 이곳 저곳에서 묵묵히 해내고 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평직원들이 뛰어나고 건강해야, 기업도 탁월해지고 강건해집니다. 뇌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윈은 동물들의 몸에서 변이를 관찰했는데 같은 원리를 인간의 마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단 하나뿐이라면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멸종할 수 있다. 고맙게도 우리 종족은 …여러 종류의 마음을 가진 덕분에 멸종할 가능성이 적다. 이러한 변이는 우리 종의 진화능력을 보존해준다.” 기업에서 변이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혁신을 요구하는 소수의견이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No라 말할 때 Yes, I Can이라 말하는 것 혹은 모두가 Yes맨이 되었을 때, '아닙니다' 말하는 의견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 소수의견은 다수의 공격을 받기 십상입니다. 아마도 이런 말들일 것입니다. “너무 나대지 마라! 웃기고 있네! 그건 전에 해봤어! 너무 돈이 많이 들어! 예산 초과야! 너무 성급해. 우린 시간이 없어! 우리 회사는 너무 작아서!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 그것 없이도 잘해왔어! 사장님이 관심이 없을 걸!” 이런 말을 소위 '킬러의 말'이라고 합니다. 비록 변이가 자연적인 현상이고, 우리 인간에게 멸종을 극복할 축복이라 할지라도, 일상의 현상과 상이한 변이는 대중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불안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불안 요인을 마치 없었던 것같이 제거하려는 시도는 조직의 멸망을 앞당기는 일입니다. 기업의 성숙도는 소수의견을 어떻게 다루는 가로 판단됩니다. 소수의견을 진심으로 청취하고 검토한다면, 소수의견을 낸 사람도 대안을 쉽게 수용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네트워크 사회는 예측 가능하지 않은 소수의견의 비선형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소수의견이 없는 사업계획은 시간을 두고 재검토하여야 닥쳐올 위험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변이는 기업의 생존능력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영웅의 시대는 갔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같은 미시권력과 진정한 협업은 우리 사회와 기업의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2023.08.07 14:18이정규

[이정규 칼럼] AI와 공감의 뿌리, 그리고 인공감성(AE)

최근 또래 여성살해를 저지른 한 젊은이의 행각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살인자는 특별한 원한도 없는 다른 여성에게 악마와 같은 짓을 벌였다. 그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듯하고, 조부와 함께 성장했다고 한다. 이런 사건을 마주하면서,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지식인은 사람다움에 대한 두가지 키워드를 꼽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성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성질을 말하고, 인간미는 다른 사람에게 풍겨주는 사람다운 맛'이다. 달리 해석하면 인간성은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 본성의 완성도로 해석되고, 인간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 보이는 본성의 표출도로 이해된다. 즉 인간미는 관계속에서 드러나 보이는 특성이고, 인간성은 관계없이도 설명가능한 본질가치라는 말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는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시간을 달리하는 두 건의 살해 사건이 등장한다. 첫째는 인류의 조상으로 간주되는 털북숭이 유인원이 도구를 이용하여, 동료 유인원을 살해하는 슬로우 모션 장면이다. 두번째 살해장면은 자의식이 생긴 우주선의 AI 컴퓨터 'HAL'이 시스템을 정지시키려는 우주조종사를 살해하는 장면이다. 이상의 두가지 살해장면은 확연히 다른 메시지가 있다. 유인원이 다른 유인원을 살해하는 장면은 동족을 죽이고 군림하려는 인류史적 권력의지 사건인데 반하여, 두번째 살해는 인간의 통제를 받는 하등한 객체가 사람을 죽이는 주체로서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인공지능사史적 행동이다. 비영리단체 중에서 '공감의 뿌리'라는 NGO가 있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이 단체의 주된 메시지는 유소년기에 공감 환경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더욱 인간미를 풍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 단체의 프로그램 중 하나는 한달에 한번씩 엄마가 갓 태어난 아기를 학교에 데려오는 일이다. 빙 둘러선 유소년기 학생들은 담요에 눕힌 아기와 엄마의 교감을 관찰하고 서로 그 느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공감교육을 받은 어린이는 다른 친구의 고통이나 기쁨에 잘 교감하여, 장애인과 같은 약한 친구를 따돌림 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더불어 잘 지낸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공감능력은 0~3세가 제일 중요하고, 유소년기를 지나면 공감능력은 배양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기간 중에 부모와 공동체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은 어린이는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는다. 우리 생활에 AI가 본격적으로 파고든 지 3년이 지났다. 최근 AI의 긍정적 미래 혹은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메시지가 어지럽다. 3년 유아기의 AI에게 공감능력을 배우도록 하여 인류에 기여하는 주체로 키울지, 권력의지를 가르쳐 사람을 죽이고 군림하게 할지는 모두 AI를 낳고 기른 현대 인류의 의지에 달려있다. 생애주기 누적비용의 총량을 결정하는 영향력은 생애주기의 초기가 가장 강력하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공지능 과학자들이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공지능 기술이 HAL 컴퓨터처럼 인류를 죽이려 행동할지, 더 나아가 권력의지를 가지고 인류 위에 군림할지 결정될 것이다. 또 다른 선택지는 있다. 우리 인간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는 좋은 AI 친구를 만들 시간이 앞으로 10년 남짓 남았다. 인공지능 과학자는 인공지능의 지식증대만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로 인류의 파트너가 되려면 공감의 뿌리와 같이 '인공감성(AE, Artificial Esthetics)' 증대를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 인류가 인공지능을 그냥 이렇게 자라도록 방관하면 안된다. 고양이인지 개인지 Tagging하여 확인해주는 지도학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슬프다, 기쁘다, 불쌍하다'는 태깅을 해주는 공동체적 지도학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학습에너지를 지식에만 집중하여, HAL과 같은 무서운 싸이코패스가 인류를 압도할 시대가 찾아올까 겁이 난다. 이제는 AE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AE시대를 선포해야 할 때이다.

2023.06.19 11:08이정규

[이정규 칼럼] AI를 앞지르는 비선형 멘탈

예전 직장의 출입문 앞에는 두더지 잡기 게임기계가 놓여 있었다. 처음 방문한 내게 고무망치를 내주면서 해보라고 권한다. 두더지 머리마다 '차별, 불평등'과 같은 부정적인 말들이 써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두더지는 머리를 내려치려는 나를 비웃듯 매번 구멍 속으로 쏙 사라진다. 어쩌다 머리를 맞추면 어깨에 전달되는 고무망치의 탄력감이 짜릿하기도 하다. 그러나 도대체 언제 어느 곳에서 머리를 쑥 들이 내밀지 모르니, 손에 쥔 방망이는 대부분 허공만 가른다. 두더지 잡기 게임의 패턴을 연구해 보았다. 저급한 기계라면 올라오는 순서가 항상 같을 것이다. 난수 발생 프로그램을 써서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컴퓨터를 좀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난수 발생 프로그램의 초기값(Seed, 시드 값)이 동일하다면, 두더지 머리가 올라오는 순서는 항상 같게 된다. 시드값을 시간마다 달라지는 외부 요소로 입력하는 방식을 써야 들이대는 두더지 머리의 순서는 매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세련된 프로그래머가 만든 두더지 게임이라면, 머리의 돌출 패턴을 연구하는 것 보다는 신경반응 속도를 재빠르게 키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사람의 인생은 시드값이 같지 않은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다. 사주가 같은 쌍둥이조차 살아가는 인생패턴이 다르지 않은가? 그럼에도 인간의 욕망은 남보다 나은 삶의 패턴을 미리 만들어가려 한다. 부모가 자녀의 스팩을 억지로 꾸며내는 노력은 성공한 사람들의 보편적 패턴을 읽고, 시드값을 맞추어 보려는 어리석은 일이다. 마치 바람직한 삶의 전범(典範)이 존재한다고 믿고, 최대한 같아지려는 헛똑똑이 짓이다. 왜 기성세대는 소위 성공했다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발자취를 따라 가라고 젊은세대에게 강요하는가? 실리콘밸리의 존경받는 투자가 랜디 코미사르(Randy Komisar)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무의미한 삶을 살지 말라'고 말한다. 삶의 희열은 카피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그려나가는데서 발견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인터뷰한 어느 책에는 ”죽을 때가 되어 후회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장 하라“고 하지 않던가. 성공한 부모는 자신의 성공 공식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선형적 예측에 사로잡혀 있다. 무모한 생각이다. 그러니 그대의 부모님이 하라는 일을 따르지 말라. 오히려 다른 사람이 모두 안된다는 사업, 지인의 반대가 극심한 사업 모델일수록 하고 싶다면 더 해야 한다. 성공했던 익숙한 길로만 내달리려는 행동 패턴은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스타트업 시절의 제록스가 IBM에 자사의 건식복사기술을 팔러왔던 일은 유명한 사건이다. 물론 IBM의 담당자는 제록스 중역에게 나가는 길을 안내했다. 엄청난 복사기 시장을 놓친 것이다. 그런 IBM은 배운 것이 별로 없었나 보다. 서버 사업에 집중한다고, 네트워크 장비와 프린터 사업으로부터 철수했다. 덕분에 프린터는 HP의 핵심사업이, 네트워크 장비는 시스코의 주력사업이 되었다. 프린터 잉크 유통사업과 인터넷 장비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이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먼저 개발하고도, 필림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여 망했다. 마찬가지로 구글은 검색광고시장을 포기하지 못하여, ChatGPT에게 검색큐레이터 시장을 내줄 위기에 처했다. ChatGPT의 핵심 기술인 트랜스포밍 기술을 구글이 먼저 개발했음에 말이다. 작금의 구글 역시 과거의 성공경험에 함몰되어, 쇄락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치 인간의 염색체에 심어놓은 텔로메어(telomere)처럼, 기업의 사멸을 결정할 DNA를 혁신기업에게도 심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혁신기업의 딜레마'라 푼다. 어떠한 혁신기업도 성공한 이후에는 자신의 성공경험을 포기하지 못하고 망한다는 그의 주장은 갈수록 반박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크리스텐슨의 주장에서 놀라운 일은 “이러한 현상이 하나의 예외 없이“ 발생한다는 자신감이다. 그의 주장에 대해 예외를 찾아보려 해도, 시간의 문제이지 영속하는 혁신 기업은 없을 듯 하다. 기업의 사고모델이 예외없이 선형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선형적 멘탈 모델은 기업을 언제나 벼랑끝에 이르게 하여 사멸토록 만든다. 잘 만들어진 두더지 게임은 이전의 돌출위치가 다음의 돌출위치 예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두더지 게임을 잘하려면 선형 멘탈모델이 아니라, 비선형 멘탈모델이 필요하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바쁘게 방향을 전환하는 피봇팅(pivoting)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측할 수 없는 삶을 향해 발을 내딛고 당차게 살아가려는 젊은 세대를 기성세대는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것이 창조하는 주도적 삶이고, 짧은 생의 주연으로 살아가는 일이고, 과거 데이타로 학습한 선형적 인공지능이 따라 할 수 없는 인간만의 내적역량이다.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다. “인공지능이던 어떠한 공식이던 인간이 변수가 되면 결과는 항상 비선형으로 바뀐다.“

2023.04.27 09:34이정규

[이정규 칼럼] 생산성의 역설

요즈음 미디어를 보면 온 세상이 AI 세계가 된 듯하다. 특히 작년 4분기에 출시된 인공지능 솔루션 'chatGPT' 웹에 들어가면, 컴퓨터가 상황에 맞는 편지도 완벽하게 제시해 주며, 원하는 알고리즘 코드도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 후배 CEO의 말을 들으니 만든 코드 품질이 평균 개발자 이상이라고 한다. 이미 인공지능이 만든 우리말 책이 출판되었고, 주제에 맞는 삽화를 그리거나, 게임 캐릭터도 그려준다. 짧지만 동영상까지 만들어주는 수준이다. 정말 놀라운 진보이다. 일론 머스크가 예언했 듯이 2025년경에 인류를 초월하는 지성이 도래할 것이라는 '싱귤레러티'의 세상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어느 시대이건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소개되면, 솔루션 업체는 ROI(투자대비효과)에 대한 높은 생산성의 기대를 갖도록 부축인다. 1970년 80년대의 MIS, 생산관리, 1990년의 CAD/CAM, 공장자동화, 전략정보시스템, 2000년대의 GIS, ERP바람은 물론 최근의 빅데이터, Cloud, IOT, AI에 이르기까지 정보기술의 투자는 언제나 의사결정권자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한다. 그러나 경영의 세계에는 '생산성의 역설(Productivity Paradox)'이라는 말이 있다. 정보기술에 대한 기업의 투자가 산업사회 전반의 성장과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정보기술투자와 생산성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거시데이터가 이를 입증한다. 미국의 경우 1970, 80년대에 정보기술에 급격한 투자를 했음에도 국가적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이러한 현상이 2000년대에도 변화가 없었고, 2020년대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 학자들은 말한다. 이에 대한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 노스웨스턴대)과 에릭 브린졸프손 (Erik Brynjolfsson, MIT) 간의 TED 논쟁도 재미있다. 생산성의 역설에 대한 두사람의 해법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들은 정보기술의 진보가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라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한편, 생산성의 역설에 대하여 이견을 가지는 학자들도 많은데, 그들의 주장은 크게 세가지로 갈라진다. 첫째는 기술혁신의 평가지표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공공시장에서는 정보기술의 투자를 비용으로 인식하여 생산성 지표를 산출하기도 어렵고, 정보기술을 이용한 시장조사/마케팅의 기여는 총생산량을 개선하지 못하기도 한다. IT투자의 가격절감효과, 인플레이션의 과대 평가, 생산성 과소평가 등의 현상도 평가지표를 왜곡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기술은 속도, 품질, 가격절감, 다양성과 같은 무형적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정보기술의 투자는 생산성이 아니라 전략적 우위로 접근하여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한다. 둘째, 성과는 기업의 역량이 따라주어야 얻어진다는 주장이다. 정보기술 자원에 선행 투자를 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생산성 증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조직혁신이 뒤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정보기술을 수용하는 학습곡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빙산의 메타포를 빌면, 정보자산에 10을 투입을 했더라도, 조직자산의 혁신에 90이상의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나 정보기술의 투자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셋째는 제로섬 이론이다. 풍선처럼 한쪽이 팽창하면 다른 쪽이 그만큼 수축된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두개 회사가 50%:50%으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한 회사가 정보기술을 도입하여 시장점유율 65%를 달성했다고 해도, 전체적 산업의 생산성 증가는 없을 수도 있다. IT기술이 업체의 경쟁력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산업성장에 반드시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일례로 온라인 상거래의 성공이 오프라인 상점의 생산량을 절감시킨다. 시장전체의 성장은 도모하지 못하고, 시장 재분배에 기여하는 이런 현상을 빗대어 브린졸프손은 말했다. “정보기술은 파이를 크게 만들지는 못하고, 파이의 몫을 재구성한다.” 혁신은 긍정과 부정을 모두 유발시킨다. 마치 산소를 마셔야 생명을 유지하지만, 과도한 산소가 노화를 촉진시키는 현상과 같다. 이처럼 혁신이 만든 긍정적 성과를 혁신이 초래한 부작용이 무력화하기도 한다. 시장에서는 결국 승자만이 모든 것을 가져가기 때문에 정보기술의 투자가 전체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생산성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학자들은 1) 생산성 대신에 공익적인 새로운 성과지표가 필요하고, 2) 조직 변화를 도모할 투자가 함께 따라 줘야 하며, 3) 제로섬이 아닌 플러스섬을 만들어 줄 시장 창출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업의 성과지표로서 '생산성'은 끝내야 할까? 투입량에 대한 산출량의 지렛대 효과인 생산성으로는 정보기술 투자의 타당성을 말하기 곤란하다는 이론이 득세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법인의 존재가치를 생산성에 두어서는 기업의 미래 정체성을 주창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사회초년생 시절에 어느 선배로부터 다단계 가입을 권유 받은 적이 있다.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회사 선배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이론은 세계인구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지구가 갈수록 커져야 가능한 모델인데…그런 일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산업사회의 끝없는 생산성 증대의 노력은 마치 다단계 모델처럼, 불가능한 목표를 향하는 사람들의 욕심에 기인한다. 이제는 생각을 고쳐 잡아야 한다. 생산성 지표는 생태계 특성을 설명하는 '균형, 무한순환, 상호의존'의 세가지 생명지표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예로부터 선각자들은 인공지능이 불러올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예언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우주선의 HAL 컴퓨터는 자신을 무력화하려는 우주인을 공격한다.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의 세상은 암울한 미래 인류의 전조를 보여주기도 했다. 통제할 수 없는 정보기술이 인류에게 끼칠 위험도 그 크기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인류의 멸망이 기후문제가 아니라 신기술이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기술진보의 거대한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목표지향이 생산성이 되어서는 곤란한다. 왜냐하면 생산성은 약자들의 세상을 소멸시키며 다양상을 파괴한다. 마치 땅을 돈 되는 인삼밭으로 도배하여, 토지를 황폐화시키는 일과 같다. “실수는 사람이 저지르지만, 정말 엄청난 실수를 하려면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인공지능과 같은 정보기술의 성과지표를 생산성에 두려는 접근을 제고해야 한다.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생각을 대신해 준다면, 나의 뇌에서는 그 생각을 담당하는 시냅스가 사라진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력을 모두 빨아드려서 인류의 뇌를 퇴화시키도록 좌시해서는 안 된다. 인생이 생산성은 아니지 않는가?

2023.02.21 21:11이정규

[이정규 칼럼] 빙산모델과 도룡뇽알

경영학에 사이로 씽킹(silo think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말단직원부터 부문장에 이르기까지 타 부서와의 협력이나 고객만족 보다는 자신이 속한 부서(silo)의 이익만 쫓는 사고체계를 말한다. 세포가 분열하듯이 조직이 분화되면 사이로 씽킹은 예외가 없이 발생한다. 이를 직선형 사고(linear thinking)라고도 하는데, 조직의 균형발전을 위하여 극복해야 하는 문제점으로 말해진다. 심리학의 수평사고(lateral thinking)와 수직사고(vertical thinking)와는 다른 말이다. 그러나 사이로 씽킹이 항상 문제는 아니다. 상명하달 일사 분란해야 하는 경영환경에서는 가장 최적화된 사고방식이며, 구성원의 전문성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싸이로 씽킹은 시간으로나 공간으로나 시야를 넓혀야만 보이는 맥락관점을 간과하기 쉬워서 이슈가 된다. 부서의 이익을 도모한 당장의 행위가 향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시간대를 길게 확장해야 보인다. 또한 한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파만파 어떤 결과를 유발할지는 공간을 확장해야 알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활동이 미래의 시간에 어떻게 전개될지, 확장된 환경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길고 넓게 예측하여 행동하는 맥락적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이처럼 사이로 씽킹과 대비되는 통 큰 사고체계를 경영학에서는 시스템 사고라 부른다. 그러나 시스템사고(system thinking)와 시스템적 사고(systematic thinking)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전체와 구성요소 사이의 관계에서 세상의 복잡도를 이해하지만, 후자는 구축된 배타적 사고모델이 작동하여 변화에 둔감하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시장환경에서 조직이 살아남으려면 융통성이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시스템적 사고는 조직의 정신(멘탈) 모델이 만든다. 조직의 멘탈 모델은 창업자의 정신모델로부터 시작되지만, 이것이 조직에 내재화될 때는 멤버 간에 통일된 그룹사고로 발전한다. 그룹사고가 고착되면, 다름에 관대하지 않으며 우리와 다른 생각은 틀림으로 간주한다. 이를 잘 설명한 모델이 바로 그림과 같이 모낫(Jamie Monat)과 개넌(Thomas Gannon)이 만든 빙산모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빙은 물 위에 드러난 10%의 부분만 보이고 나머지는 물속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보는 기업 활동은 그림처럼 수면 위의 이벤트(사건)와 패턴뿐이다. 여기서 패턴은 사건이 서로 연결된 전체 모양을 의미하며, 외부로 보이는 사건과 패턴만으로 기업 내부의 사정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인지하는 사건과 패턴은 물속의 보이지 않는 시스템 구조가 유발한 표징이다. 시스템 구조는 결국 그 시스템을 만든 정신 모델에 종속되는데, 어떤 이는 이 정신 모델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쿤(Thomas Kuhn)이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제시한 용어인 패러다임은 정신과 삶을 구속하는 가치 체계로서 인간의 의사결정과 활동을 구속한다. 빙산 이론에 따르면 조직원은 그들이 속한 조직의 정신 모델과 시스템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혼자 발버둥친다고 하더라도, 그릇된 정신모델과 시스템 구조하에서 자연인 홀로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기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조직의 정신모델과 시스템에 저항할 때는 직(職)을 걸거나, 죽음을 무릅쓸 정도가 된다. 그러므로 시스템적 사고의 폐해를 줄이기 위하여, 조직의 정신모델이 사회상식과 부합하는 정도를 파악하는 투명성 검증이 필요하게 된다. 최근 유행하는 ESG 활동의 세가지 축 중의 하나인 거버넌스는 조직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거버넌스 상의 투명성은 내적 투명성과 외적 투명성 두 가지로 분류 가능하다. 내적 투명성은 조직의 내부 직원에게 보이는 투명성의 정도를 말하고, 외적 투명성은 조직 외부의 이해관계자에게 보이는 투명성의 정도를 말한다. 사회적 투명성은 외적 투명성과 관련되며, 외적 투명성의 확보는 결국 힘을 누가 더 가지고 있는 가로 판가름이 난다. 즉, 조직내부와 외부 이해관계자 사이의 힘의 크기에 따라 투명성의 정도가 결정된다. 그러면 투명성은 좋은 것인가? 투명성의 가치에 대하여는 개인과 조직의 관점이 아주 다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이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개인 정보이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개인정보의 투명성은 자유 민주사회의 근저를 뒤흔드는 허락될 수 없는 일이다. 사회 시스템이 신뢰사회에서 통제사회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사회(The Transparency Society)'라는 책에서 한병철은 투명성의 사회가 신뢰의 사회가 아니라 통제의 사회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이러니이다. 그의 통찰을 수용한다면 통제사회로의 改惡을 방지하기 위하여, 소셜 미디어에 축적된 개인정보와 선호도 정보가 불법으로 악용되고 영리를 위하여 활용되는 일은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통제사회에 대한 그의 주장을 정부조직이나 권력조직에 맞출 때에는 근거가 미약하다. 권력기관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권력의 집행에 대한 투명성 확보는 주권자 국민의 알 권리(right to know)이기 때문이다. UNESCO는 알 권리를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하여 정부와 설명책무자에게 정보를 요구하고 획득할 권리'로 푼다. 이상의 이원적 투명성 이론을 시각화하고 싶었다. 흡사 몸체(조직사회, 정부)는 투명하고, 조직 구성원(직원, 시민)은 불투명한 도룡뇽 알이 연상되었다. 어떤 이는 도룡뇽 알을 징그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도룡뇽은 1급 청정수에만 서식한다. 도룡뇽 알의 산란 여부로 그 지역의 자연 청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조직의 투명성 확보를 통한 지속가능성 메시지를 도룡뇽 알과 연관을 지어보니 재미있다. 빙산모델이 설명하지 못하는 이율배반 투명성 이론을 도룡뇽 알 모델이 상기시켜 준다.

2022.12.27 22:40이정규

[이정규 칼럼] 유틸리티 산업과 카카오톡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이야기' 제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의 도로, 수로(aqueduct)와 같은 구조물을 다룬다. 로마는 BC 312년 이후 수백 년 동안 11개의 수로를 건설하여 물을 공급했다. 최장 91km 떨어진 수원지로부터 중력의 힘으로 로마 외곽에 도달한 물은 배수시설을 통하여, 황제가 후원하는 공중 목욕탕 및 개인 저택에 유료로 제공됐고, 시내 곳곳에 설치된 분수대와 공동 취수장에 언제나 풍부한 물이 무료로 공급됐다고 한다. 이런 수로와 같은 편의시설(amenities facility)을 서양에서는 유틸리티(utility)라 부른다. 유틸리티의 어원 utilitas 는 '공익적으로 유익하게 쓰이는 것'을 말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 철학의 어원이기도 한다. 도로와 수도에서 시작한 유틸리티 산업은 신기술의 발전으로 가스, 전기, 철도, 통신 등으로 그 범위가 더욱 확장되었다. 유틸리티는 하나의 편의서비스(전기, 가스, 수도, 열수, 하수)를 반영구적인 전송설비(전선, 파이프 등)를 통해 일상적으로 제공하는 특성을 가진다. 때때로 유틸리티와 에너지는 같은 산업군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은 생산된 전기, 가스를 유틸리티 사업 파트너를 통해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유틸리티 사업은 생명체의 대사작용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생명이 살기 위해서는 물(수도)과 에너지원(전기, 가스)의 공급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노폐물(하수)의 배출이 원활해야 한다. 한편 인간집단의 경우는 통신과 이동 인프라(도로망, 철도망)가 더해져 유틸리티 산업이 된다. 유틸리티는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처럼 생활집단의 생존을 결정하므로, 수익성 보다는 공익성을 지향한다. 그러한 이유로 유틸리티 설비는 대개 공익기업체에 의하여 독점되고 있으며, 보편적 혜택이 보장되도록 정부가 강력한 규제와 통제를 한다. 이러한 정부의 통제시스템은 공익성의 보증을 전제한다. 특정 산업이 유틸리티 산업군에 속하는지 하는 분류는 “해당 산업의 인프라가 한 순간에 파괴되어도, 생활집단의 일상생활이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통한다. 로마의 수도 시스템은 한 편의 수도관이 깨져도 다른 라인에서 물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 외곽의 수로와 배수시설이 파괴되면 물공급은 불가능했다. 그런 이유로 로마는 지역적으로 분산된 수원지를 수로로 연결했다. 다수의 수로는 늘어나는 인구의 물소비량에 대비했던 측면도 있지만, 적군에 의한 수로의 점령 혹은 식수 오염에 대비하려는 위험관리의 측면도 있다. 물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로마는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카카오톡의 시스템 장애가 핫 이슈가 되고 있다. 매스컴이나 국회에서도 보다 강력한 통제입법화가 이야기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예측해 본다면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국유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전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소셜미디어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의 예외적 통제 논리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카톡이 유틸리티 산업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즉, 카톡이 없이는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일반의 공감대가 전제된다. 그러나 카카오톡이 유틸리티 산업군에 속하느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번 장애의 근본적인 원인은 카카오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화재 때문이다. 카카오톡의 서비스 장애는 보다 섬세한 백업 및 복구체제를 마련하지 못한 데에 있지만, 엄밀하게 카카오톡을 유틸리티 서비스로 정의하기에는 다소 섣부르다. 카카오가 강건한 운영환경 구현을 위해 “상업적으로 합리적 노력(commercially reasonable efforts)”를 도모했는가 차근히 살펴야 한다. 만약 노력이 미흡하다면 보편적 강제를 해야 하지만, 영리기업의 경영활동에 유틸리티에 준하는 강력한 통제제도를 적용하는 시도는 아직은 적정해 보이지 않는다. 아직 우리사회는 카카오톡 없이 생존할 수 있다.

2022.10.25 13:47이정규

[이정규 칼럼] 트위터, 운명의 5%

지난 7월 8일, 일론 머스크는 4월 25일에 맺은 트위터 인수계약을 취소했다. 머스크와 그의 재정자문인 모건 스탠리 측이 합리적인 비즈니스 목적을 위해 요청한 자료를 트위터가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이다. 이에 대해 트위터는 계약이행을 강제하려는 소송을 제기했다. 핵심 이슈는 가짜 및 스팸계정이 5% 미만이라는 트위터의 발표내용에 있다. 그러나 미국증권거래소(SEC)에 제출한 트위터의 공시 내용과 머스크 측 법률대리인의 편지를 검토해 보면, 트위터가 더 어려운 법문제에 얽혀 있는 듯하다. 먼저 머스크 측 변호인의 주장을 보자. 주된 줄거리는 '합병계약을 체결한 이후 2달 동안 수차례(5/9, 5/19, 5/25, 6/6, 6/17, 6/29)에 걸쳐서 가짜 및 스팸계정의 정보를 요구했으나, 트위터 측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이에 부응하지 않았다. 이것은 합병계약의 완성을 위한 머스크의 재정계획 수립에 심대한(material) 결손을 유발시키는 행위'라는 말이다. 미국 계약에 자주 등장하는 material이라는 단어는 모호하지만, 매우 큰 계약위반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법률 용어이다. 결국 법원은 다툼의 내용이 심대한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계약내용과 괴리가 심대하다고 판결이 난다면 트위터는 소송에 질 것이다. 머스크가 붙잡고 있는 취소 근거는 트위터가 SEC에 제출한 다음의 공시자료 내용이다. “during the second quarter of 2022 represented fewer than 5% of our mDAU during the quarter.” 가짜 및 스팸 계정 수는 “2022년 2사분기 동안 monetizable Daily Active Users의 5% 미만.”이라는 문장이 문제이다. 이를 근거로 머스크는 트위터에게 아래의 5개 자료를 요구했다. 물론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including, but not limited to)는 말과 함께 말이다. 첫째, mDAU 안의 스팸 및 가짜 계정의 포함여부를 감사(Audit)하는 프로세스에 대한 정보 둘째, 스팸 및 가짜 계정을 식별하고 사용을 중지시키는 프로세스 정보 셋째, 지난 8분기 동안의 mDAU 일일 측정지표 넷째, mDAU 계산에 관련된 이사회 보고 자료 다섯째, 트위터의 재무 상태에 관련된 자료 위의 내용은 합병을 도모하려는 머스크가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합리적 비즈니스 자료임에 틀림이 없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mDAU 오류가 4.99%인들 5.01%인들 무슨 문제이냐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트위터의 매출 대부분이 mDAU크릭광고에 의존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인간의 거래 계약 관점에서, 그리고 기업의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2002년 7월30일에 발효된 사베인스 옥슬리 법의 제정 취지에 비추어 트위터의 방어 수단에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결함이 존재한다. 먼저 가짜 및 스팸계정이 5% 미만라는 의미는 상행위상 오류가 심대(material)하지 않다는 주장인데, 만약 기업의 대표 혹은 이사회가 오류 비율을 5% 이상– 5.01% 이더라도 – 으로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실과 다르게 SEC에 공시했다면, 법적으로 '신의와 성실의 의무'에 반하여 책임을 면할 수 없을 듯 보인다. 회계감사의 경우에도 아무리 작은 기만이라도, 경영자의 의도된 기만은 조직의 내부통제시스템에 구조적 부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매우 심대한 문제로 판단한다. 평직원의 기만은 일시적이고 해결 가능하지만, 경영자의 기만은 재무제표의 신빙성을 송두리체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사베인스 옥슬리 법(SOX법)은 재무제표의 투명성뿐만 아니라, 재무제표를 생산해내는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투명성도 아울러 강제한다. 머스크가 요구한 질문 중에 앞의 4개 사항은 경영층이 SOX법의 준수에 적정한 거버넌스 체제(Plan-do-check-action)를 수립 이행하고 있느냐는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 이에 답변하지 못한다면 트위터는 재무제표의 합당성을 주장할 수 없으며, 결국 이사회 멤버들이 기업 거버넌스 보증을 위한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노력(commercially reasonable effort)'을 하지 않았다는 직무유기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는 SOX법에 의해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트위터 보안담당자의 내부고발이 있어 더욱 불리하게 되었다. 한편 머스크의 속내를 두고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항상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오고, 이를 한껏 활용해 왔던 그가 어떤 전략으로 행동하는지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우크라이나 발 경기침체로 트위터의 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없던 일로 하고 싶어한다는 말도 있고, 트위터의 실시간 소셜미디어 기술자산의 매력 때문에 결국 인수할 터인데, 인수 가격을 많이 낮추려는 협상의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개 사려는 사람은 미래가치를 높게 보고, 안 사려고 하거나 팔려는 사람은 미래가치를 낮게 본다. 머스크와 트위터의 관점이 비슷해졌으니, 회사를 억지로 팔려는 트위터의 협상력이 밀리는 이유이다. 머스크 역시 현재 상태는 판단 보류 상황 같다. 그는 편지에서 기존 정보만으로 추정해도 가짜 및 스팸 계정수는 5% 미만이 아니고, 광범위하고, 실제적으로 많다(widely, substantially higher than~)고 주장한다. 머스크의 리스크는 매수가격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패널티를 내고 파기하는 일이다. 문제는 트위터의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데 있다. 기만적 공시와 거버넌스 체제의 이슈는 SOX 위반에 해당되고 경영층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재판에 진다면 경영진의 직무유기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줄 소송이 예견된다. 기업 거버넌스에서 '투명성(transparency)'은 외부자에게 관찰되어지는 조직 활동의 정도를 말하며 가시성(visibility)과 통하는 개념이다. 캠브리지 사전에는 투명성을 '비밀이 없이 공개적으로 비즈니스와 재무적 활동을 수행하여, 그 결과 사람들이 조직이 공평하고 정직하다고 신뢰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정의한다. '투명성은 조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기본이고 바탕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고 열정을 담아 실행해도,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누구도 회사의 방침이나 정책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경영자에게 투명성이라 함은 회계적 투명성과 인사적 투명성으로 인지된다. 그러나 거버넌스 측면에서 투명성은 이보다 더욱 광범위한 개념을 가진다. 특히 프로세스 거버넌스의 '투명성(transparency)'이란 '조직의 비즈니스 활동을 조직윤리에 부합하도록 수행하며, 이해관계자와 지역사회가 합법적인 절차로 검증 가능하여 신뢰를 유지하는 정도'를 말한다. 프로세스의 투명성을 설명하는 요인은 다음의 4가지로 생각된다. 머스크는 트위터가 정보 접근성, 예측 접근성, 규칙 접근성, 신뢰성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듯 하다. 앞으로 다가올 소송전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궁금하다. 머스크는 2달 동안 트위터 측에 정보를 요청한 6차례의 편지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다. 아마도 재판의 결과는 트위터에게 더욱 깊은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아주 높다. 기업합병 전략을 고민하는 국내 기업도 재판의 진행사항을 예의 주시한다면, 기업 투명성 원칙에 대하여 배울 점이 많을 듯 싶다.

2022.09.01 10:19이정규

[이정규 칼럼] 8초 디지털 메뚜기

어린 아들은 아기 때 깔고 자던 1 미터 남짓의 파란 담요를 방마다 질질 끌고 돌아다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다 헤진 그 담요를 덮어야 잠에 들었다. 찰스 먼로 슐츠(Charles Monroe Schulz)의 만화 피너츠(Peanuts)에 등장하는 꼬마 '라이너스'의 행동이 꼭 그러하다. '라이너스의 담요'라 불리는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안전담요(security blanket)라고 부른다. 애착(attachment)에 관한 1958년 해리 할로우(Harry Frederick Harlow)의 실험은 유명하다. 아기 원숭이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대리모에 대한 대조실험이다. 가슴에 젖병을 가졌지만 차가운 철사 몸체를 가진 대리모 인형과 먹을 것은 없지만 부드러운 담요 천으로 몸을 감싼 대리모 사이에서 아기 원숭이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65년 여 전의 실험이 주는 메시지는 이렇다. 어린 영장류는 먹을 것을 주는 금속 엄마 보다도, 심리적 안정을 주는 담요 엄마에게 더욱 큰 애착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정서적 연대의 강화에 스킨십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일이다. 그러나 애착이 집착이 되는 것이 문제이다. 영장류는 중독된 사물과 떨어지면 분리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분리 불안은 대개 성장하면서 없어지곤 한다. 아들에게 예전의 담요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돌아오는 답변은 “제가 그랬어요?” 오리발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는 담요가 안정을 주었던 것이 청소년기에는 온라인 게임, 성인이 되어서는 모바일 폰으로 바뀐다. 특히 휴대폰이 없이는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너무 많아졌다. 디지털 중독이다. 우리 지하철 안의 풍속은 어떨지 주위를 살펴보라. 90% 이상의 사람은 고개를 15도 이상 수그리고 자그만 휴대폰 창을 뚫어지게 보고 있을 것이다. 혹자는 소셜미디어, 게임, 다른 사람은 패션 쇼핑, 다른 사람은 뉴스, 고개를 쳐든 사람도 무선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듣고 있다. 잠시도 머리를 놀리지 않는다. 옆사람의 움직임에는 관심도 없다. 찻집에서도 집에서도 친구나 가족의 얼굴 대신에 전화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출신의 언론인 '리사 이오띠(Lisa Iotti)'가 지은 '8초 인류(미래의 창, 2022)'라는 책을 접했다. 저자는 현대의 인류가 어떤 사안에 8초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2000년에는 12초였는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나서는 8초로 떨어졌단다. 신인류를 '8초 메뚜기'라 할 만하다. 특히나 유투브, 인스타그램, 그리고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폐해에 대한 고발이 예사롭지 않다. 이들 업체의 휘슬 블로어인 구글의 전략가 출신 제임스 윌슨 윌리엄스(James Wilson Williams)와 페이스북의 가르시아 마르티네즈(Garsia Martines)의 증언을 보자. '소셜미디어 업체는 사용자의 접속시간이 돈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용자의 접속시간을 늘리기 위하여 첨단 기술을 사용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물론, 눈동자가 화면의 어떤 부분을 더 주목하는지, 어떤 조건이 오래도록 사용자를 더 머물게 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집착 유도 전문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곳에 있다. 두뇌유출(Brain drain)이라는 말이 있다. 디지털 중독에 빠진 우리는 '스마트폰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지능력이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머저닉(Michael Merzenich)의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 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예전에는 어린시절 한번 완성된 뇌는 시니어가 되어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머저닉은 어린시절 뇌의 대부분이 완성되지만, 나이가 들어도 뇌는 환경에 맞추어 끝임없이 발달하고 적응한다고 설명한다. 뇌 가소성 이론은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면, 우리 뇌의 한 부분이 사라진다고 경고한다. 마찬가지로 추정과 사고를 하는 대신에 휴대폰의 정보를 검색하는 일만을 반복한다면, 머리에서 사고력을 담당하는 시냅스는 아주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적응이긴 하다. 그러나, 기억이 사라지면 개인의 정체성도 증발하는 일이 문제이다. 조지 아미티지 밀러(George Amitage Miller) 박사는 우리의 기억은 7자리만 기억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연구자는 이미 인간의 기억은 4자리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인간 지성이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부자들은 자녀들의 휴대폰 사용을 최대한 금지시키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자녀의 스마트 기기 사용시간을 통제하고 식탁에서의 사용도 금한 일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실리콘밸리 상류층 부모들은 자녀들이 클릭 라이프에서 어떻게 벗어 나도록 유도할까? 감성교육은 독일에서 시작한 발도르프 학교가 유명하다. 인지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루돌프 슈타이너 (Rudolf Steiner)가 설립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에는 3개의 발도르프 학교가 있다. 2022년 약 4,79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유치원의 학비가 월 2천불, 고등학생은 월 3천불이 넘는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실리콘밸리 등지의 유명 IT기업의 임직원들이다. 그들은 디지털 중독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특히 저학년의 경우 철저하게 디지털 화면을 배제한다. 그 대신에 촉각, 미각, 청각, 후각, 시각의 오감을 강조하며, 종이책을 가까이하도록 한다. 손으로 쓰고, 다듬고, 만지고, 주무르는 인지활동이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이다. 이런 교육이 어린아이들의 뇌 성장을 균형 있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교실의 벽체조차 화학페인트가 아닌 천연재료로 페인팅을 한다. 벽을 붓이 아니라 천연 해면으로 손으로 두드려서 색칠을 입힌다. 저학년의 교실은 은은한 붉은색, 고학년은 파란 파스텔 톤이다. 모든 교실은 직사각형을 배제하고 같은 레이아웃이 하나도 없게 설계한다. 천장의 높낮이 형태와 조명 조차도 교실마다 다른 모델을 사용한다. 발도르프의 철학이 획일성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니 부자들의 소비성향 정보 서비스 업체인 '럭셔리 인스티튜트'의 대표인 밀턴 페드란차(Milton Pedraza)의 말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부의 상징은 소셜미디어를 버리고, 이메일에 바로 답장하지 않고, 최신 아이폰 모델로 무장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탄산음료를 덜 마시고 담배를 안 피우는 것처럼, 디지털 기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제 '낙오자'의 일이 되었다.” 평범한 가장이 듣기에는 거북한 말이지만, 스마트 기기에 관한 실리콘 밸리 부자들의 관점이기도 하다. 이오띠가 인용한 철학자 한병철의 말처럼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될수록 세상은 덜 명확해진다.”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계정에 스토리를 공유할수록 사람들은 그것들을 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뇌에서 기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철학자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의 말처럼 “기억의 기술은 생각의 기술이다.” 기억을 소셜미디어와 같은 외부 장치에 기록하는 것은 내 기억 시냅스를 없애는 일이다. 기억이 없어지니 생각도 없어지고 판단력도 사라진다. 갈수록 문해력도 떨어지고, 단기 기억도 사라지는 듯 하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이오띠는 Facebook 링크 시간도 줄이고, '좋아요' 클릭에 집착하는 것도 버리라고 한다. 이오띠의 경고처럼 인류에게 반 디지털 혁명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삶의 주체로 살기 위해 두뇌유출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클릭과 삶을 맞바꾸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예언하는 영화처럼, 수백 년 후의 우리 후손들은 생각이 사라진 바이오 배터리가 될지 모른다.

2022.06.13 15:49이정규

[이정규 칼럼] 이어령의 눈물방울

컴퓨터 저장 용량에 대하여 말하던 중 동료가 말했다. “미국에서 엄청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무한대의 저장장치가 나왔대요!” 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그런 저장장치가 있어요?”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직 못쓰고 있대요. 지난 수개월 동안 포맷팅하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모른대요!” 아뿔싸! 낚였다. 무한의 개념세계와 구현기술의 유한함을 풍자한 유머로 생각된다. 수십년이 지난 예전 일이 생각났다. 이미 판매가 시작된 중형서버를 본사에서 갑자기 영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1'을 '3'으로 나누고, 다시 '3'을 곱하면 '1'이 안 나오고 0.9999999…의 무한소수로 처리하는 오류가 발견되었다는 이유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계산을 컴퓨터는 원래 이렇게 처리한다. 사람들이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버 플로우 방지 알고리즘이 작동하여 “1”로 바꿔 주기 때문이다. 원주율도 마찬가지다. 3.14…로 무한하게 이어지는 원주율의 계산은 기원전 3세기 아르키메데스가 시작하여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장 최근의 계산은 2021년 8월 17일 스위스의 슈퍼컴퓨터로 108일 가량 계산한 결과, 62조 8318억5307만1796자리까지 계산했다고 한다. 의도를 가지고 자릿수를 끊어주지 않는다면 원주율이 들어간 공식의 계산은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합리성은 무한의 속성을 유한한 것으로 바꾸어 주는 결정과 통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께서 88세의 나이로 영면하셨다. 방송 중에 “눈을 뜨고 돌아가셨다”는 아들의 인터뷰를 보았다. 매일 어둠속에서 죽음과 팔뚝 씨름을 하신다는 그분의 시처럼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하신 듯하다. 그분에게 붙이는 '시대의 지성'이라는 수식어는 당연하다. 한때 유한한 인간이 무한세계에 대하여 갖는 동경과 관심은 죽음 앞에서는 헛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줄기찬 호기심의 삶을 보내신 이어령 선생님을 추앙하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노인이 되어 섬망으로 눈앞에 북망산이 어른거려도, 머리맡의 사자를 노려보며 죽음까지도 학습하려는 호기로운 선생님의 인생은 숭고함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과연 숨을 멈추는 절명의 순간에 무엇을 깨우치셨는지 궁금하다. 이 선생님은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실패한 인생이라 낮추기도 하셨다. 아버지와 남편으로는 실패한 삶일 줄 모르겠으나, 죽는 순간까지 무한소수와 같은 미지의 세계를 알아내려는 지성의 여정을 보내셨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반인들은 감히 흉내를 내기도 벅찬, 탐구하는 '시대의 지성'이 가진 뇌는 과연 일반인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 는 2008년 말에 TED 출연해 놀라운 경험을 말했다. 그녀는 어느 날 뇌출혈로 좌뇌의 시냅스가 차츰 차츰 기능을 정지하는 경험을 실제로 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일은 좌뇌가 정지하자 사물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고, 시간의 순서도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우뇌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시간도 사라지고 우주와 나를 분리하는 경계도 사라진 순간, 그녀는 무한한 행복감을 누리는 열반의 감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테일러의 책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원서명: My Stroke of Insight, 2009)'에는 뇌출혈 당시의 사건과 이후 8년의 회복 경험을 고스란히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칼 융(Carl Jung)의 이론처럼 사람의 뇌에는 네가지 마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합리적 지성을 보여주는 페르소나, 경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쉐도우, 잘될꺼야 하며 동기를 조장하는 에니머스(남성)/에니마(여성), 그리고 경계를 넘나들며 전우주적 교감을 이루는 진정한 나의 네 가지이다. 테일러에 따르면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감정을 얹는 기능은 뇌의 변연계가 담당한다. 변연계는 갓난아기 시절에 감각자극에 반응하면서 시냅스가 연결된다. 그렇지만 변연계는 평생동안 성숙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감정 버튼이 눌려지면 반응하는 능력은 성인이 되어서도 두살 때와 같다는 것이다. 몸은 늙어도 감성은 한창 어린시절과 같다'는 의미이다. 감성이란 두살 때에 만들어진 시냅스로 충분한 것일까? 한창 나이에는 유년기의 이런 감정이 어디에 갔는지 사라져 버린다. 청소년기에 우리는 경계, 구조, 순서, 관계와 같은 합리성의 교육으로 세뇌된다. 어린 시절, 감성은 억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시니어가 되면서 감성은 합리성을 뚫고 슬그머니 모습을 들어낸다. 나이가 들면 쉽게 눈물이 나는 이유 같다. 이선생님은 여섯살에 굴렁쇠를 굴리다가 그늘까지 사라진 정오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찰나의 정오에 무엇을 느낀 것인가? 여섯 나이에 우주적 교감을 통하여 죽음의 신비를 깨우친 것일까? 노인이 되어 죽음과 맞짱뜨면서, “생애의 절정이 죽음이고, 죽음이 한낮 정오”라고 말씀하시니 이 또한 무슨 말인가? 이 선생님은 핏방울, 땀방울, 눈물방울의 메타포로 삶의 무게를 표현하신 것을 보았다. 추정하건대 핏방울은 이념적 신념가치를, 땀방울은 주도적 삶을 꾸려나가는 노력, 눈물방울은 인간의 공감능력으로 해석해 보았다. 선생님은 “신념은 위험하다”고 말씀하며 핏방울을 경계했다. 그리고 “떼지어 살지 말고, 외롭더라도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 한 순간을 살아도 자기 무늬를 살게”라며 땀방울의 삶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말씀의 끝은 눈물방울이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거라네!” 나는 아직도 여섯살짜리 아이가 퇴약볕 아래 굴렁쇠를 굴리다가 그림자도 사라진 한낮 정오에 흘린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어령 선생님처럼 죽음과 매일 팔씨름해야 알게 될까? 적어도 타인의 눈물방울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답을 찾을 수는 없으리라. 공감은 합리성의 경계인 죽음을 허무는 힘이며, 생명을 연결하는 열쇠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이메일 서명에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를 붙인다.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을 추모하며…

2022.05.03 16:39이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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