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너 내 동료가 돼라…HD현대가 그리는 미래 조선소
올해로 인공지능(AI)이 세상에 등장한 지 70년이 됐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인류의 지식과 정보를 언어로 학습한 생성형 AI가 이제 물리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 나올 채비를 마쳤습니다. 이름하여 피지컬(Physical) AI.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다크팩토리, 헬스케어 등이 대표적입니다. 챗GPT에 이은 피지컬 AI는 첨단제조 강국인 한국 경제를 더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엔진으로 바꿔 놓을 무한한 잠재력까지 갖고 있습니다. 산업화를 넘어 미래 지능형 플랫폼 사회로 나아가는 관문도 피지컬 AI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측불허의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창간 26주년을 맞은 지디넷코리아가 연중기획 '피지컬AI가 미래다'를 통해 당면 과제와 이슈를 고민합니다. 많은 관심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조선소는 로봇에게 가장 까다로운 일터다. 자동차 공장처럼 같은 부품이 정해진 위치로 반복해서 들어오지 않는다. 선박 블록의 위치와 형태가 매번 달라지고, 용접해야 할 틈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람과 비, 먼지와 온도 변화까지 견뎌야 한다. HD현대는 이처럼 정형화하기 어려운 조선소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한 로봇을 투입하고 있다. 정해진 좌표만 반복하는 기계를 넘어 작업 대상을 직접 인식하고, 필요한 경로와 조건을 스스로 판단하는 'AI 숙련공'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송영훈 HD현대로보틱스 솔루션개발부문 상무는 조선해양 현장에서 칭하는 피지컬 AI를 "비정형 현장을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해 실제 작업까지 수행하는 AI 기반 자동화 운영 체계"라고 정의했다. 그는 "기존 AI가 모니터 안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지능이었다면 피지컬 AI는 여기에 몸을 부여한 개념"이라며 "로봇이나 장비에 AI를 결합해 현실 세계에서 직접 움직이고 작업하는 '일하는 AI'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해진 동선 넘어 스스로 판단…비정형 용접 현장에 '일하는 AI' 기존 산업용 로봇은 정해진 동선과 고정된 지그, 반복 공정을 전제로 움직인다. 같은 위치에 같은 부품이 놓인다는 조건 아래 미리 입력된 규칙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조선소에서는 어제의 작업 조건이 오늘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같은 종류의 선박이라도 블록의 위치와 용접 이음새, 작업 자세가 달라질 수 있다. 정해진 답을 빠르게 실행하는 능력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송 상무는 "피지컬 AI 기반 로봇의 가장 큰 차이는 비정형 환경에서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한다는 점"이라며 "처음 마주한 문제 앞에서도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로봇으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은 같은 제품을 대량으로 만드는 자동차·반도체 산업과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 구조다. 선박 블록은 수십 미터, 수백 톤에 달해 작업물이 로봇 앞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직접 작업 위치를 찾아가야 한다. 좁은 선박 하부와 복잡한 격벽 사이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도 많다. 여기에 야외 작업장 특유의 바람과 비, 분진, 온도 변화까지 더해진다. 송 상무는 조선소를 두고 "피지컬 AI가 가장 절실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무대"라고 표현키도 했다. HD현대가 피지컬 AI의 첫 적용 분야로 용접 공정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박 한 척에는 수만 미터의 용접선이 들어간다. 전체 건조 작업에서 차지하는 공수도 크다. 고열과 연기, 불편한 자세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숙련 용접사를 양성하는 데 수년이 걸려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작업량은 많지만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용접 자동화는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 생산을 지속하기 위한 과제가 됐다. 동시에 용접은 비정형 환경 인식과 자율 경로 생성, 실시간 위치 보정 등 피지컬 AI의 핵심 기술을 검증하기에 적합한 공정이다. 용접에서 성과를 내면 사상과 도장, 가공 등 다른 공정으로 기술을 확장할 수 있다. 숙련공의 눈·손·귀를 센서와 AI로 구현 핵심은 베테랑 용접사의 감각을 로봇에 옮기는 기술이다. 숙련공은 도면만 보고 토치를 움직이지 않는다. 눈으로 용접선과 부재 사이의 틈을 확인하고, 작업 방식을 판단한 뒤 손으로 토치를 조절한다. 아크 소리를 들으며 용접 상태를 파악하기도 한다. HD현대 로봇은 2D·3D 비전센서로 작업 대상의 형상과 자세를 실시간으로 인식한다. 이후 인식한 정보를 바탕으로 용접 경로를 생성하고 작업 순서와 조건을 판단한다. 작업자가 매번 좌표를 입력하는 '티칭' 작업을 줄이고, 현장 변수에 따라 경로를 다시 짜는 방식이다. 향후에는 로봇이 소리와 전류·전압 신호까지 읽어 용접 상태를 판단하고 스스로 조건을 보정하는 단계로 발전할 전망이다. 송 상무는 "숙련 용접사의 작업 방식은 인지, 판단, 행동의 과정으로 이뤄진다"며 "숙련공의 감각을 센서와 AI로 구현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가려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시연에 성공했다고 곧바로 생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보다 빠른 생산성과 균일한 품질, 작업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의성, 고열과 분진을 견디는 내구성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 송 상무는 "결국 생산성, 품질, 사용성, 내구성을 모두 갖춰야 '숙련공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현장의 동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회사이자 국내 1위 산업용 로봇 제조 기업인 HD현대로보틱스는 판넬 용접 공정에서 불량률 1% 미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로봇이 동일한 위치와 조건을 반복해 작업하며 사람의 피로나 컨디션에 따른 품질 편차를 줄인다는 구상이다. 한 사람이 로봇 여러 대 운용…"대체 아닌 숙련공 역량 확장" 피지컬 AI 로봇의 등장은 제조업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온다. 그러나 HD현대는 로봇 도입 목적을 사람을 생산 현장에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업자가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역량을 확대하는 데 두고 있다. 울산 조선소에서는 이미 작업자가 좁은 공간에 직접 들어가는 대신 태블릿으로 로봇 2~3대를 동시에 운용하고 있다. 협소 공간용 소형 로봇 한 대는 사람이 하루 동안 수행할 작업량의 약 4배를 처리하며, 이상이 생기거나 조건 조정이 필요할 때 작업자가 개입한다. 송 상무는 "핵심은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자의 안전과 효율적인 작업환경을 구현하는 것"이라며 "숙련공 한 명의 역량을 몇 배로 확장하면서 숙련 용접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로봇이 수집한 작업 데이터는 숙련공 개인에게 머물렀던 노하우를 회사의 자산으로 바꾸는 역할도 한다. 현장의 기술을 AI에 학습시키면 경험이 적은 작업자도 로봇의 도움을 받아 일정 수준 이상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숙련 용접사의 고령화와 젊은 인력 부족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로봇은 남은 인력의 생산성을 높이고 위험 작업 노출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송 상무는 생산성 향상과 품질 안정화, 안전 개선을 로봇 도입의 주요 효과로 꼽으면서도 "줄어든 인력으로 사업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절박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로봇이 가까운 시일 안에 사람의 개입 없이 조선소 전체를 돌아다니며 모든 업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HD현대는 피지컬 AI가 '전면적 자율'보다 '조건부 자율'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피지컬 AI의 적용 범위는 향후 용접에서 사상(금속·기계 가공에서 표면을 다듬는 공정) 도장, 가공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조선소에서 검증한 비정형 환경 대응 기술은 건설기계와 에너지 등 다른 산업 현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는 피지컬 AI가 단일 사업의 자동화 도구를 넘어 그룹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 역량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송 상무는 "피지컬 AI와 제조 AX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이라며 "본질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고 힘든 일에서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