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 걸리던 정산, 실시간으로...금융권, 스테이블코인 결제 실험
국내 금융권에서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은행은 자금 정산과 금융 인프라를, 카드사는 기존 가맹점망을 앞세워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27일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과 카드사는 기존 결제 시스템에 스테이블코인을 접목하는 기술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블록체인을 통해 자산을 송금하는 수준을 넘어, 이용자가 달러 등 다양한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면 가맹점이 원화로 대금을 정산받는 구조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은행은 정산 인프라…배달·병원 결제까지 검증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 결제 이후 가맹점에 대금을 지급하는 정산 인프라 구축에 주목하고 있다. 이용자가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더라도 가맹점은 원화로 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금융 시스템과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하나금융그룹은 두나무와 함께 스테이블코인 결제·정산 생태계 구축에 나선다. 두나무는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와 기와월렛을 연동해 이용자가 보유한 스테이블코인으로 실시간 결제하고 대금을 정산하는 과정을 검증한다. 관련 제도가 마련되는 대로 상용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취지다. 기존 신용카드 결제망에서는 가맹점에 대금이 정산되기까지 수일이 소요되지만, 블록체인을 활용한 스테이블코인 결제는 이를 실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다. 결제 한 번에 여러 종류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는 기능도 검증 대상이다. 예를 들어 업비트 지갑과 연동한 카드로 결제할 때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우선 사용하고, 잔액이 부족하면 엔화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부족한 금액을 자동 결제하는 방식이다. 신한은행은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대상으로 스테이블코인 간편결제 서비스를 실증한 바 있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크립토닷컴의 QR코드 간편결제를 통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면 가맹점인 병·의원은 원화로 대금을 정산받는 구조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쿠팡과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실시간 정산 기술검증을 완료했다. 쿠팡 배달 앱 쿠팡이츠에서 발생한 주문 결제대금을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가맹점주에게 실시간 송금·정산하는 과정을 구현했다. 스테이블코인 특화 레이어1 블록체인인 템포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전자지갑과 은행 계좌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법정화폐를 상호 전환하는 온·오프램프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실제 결제·정산 과정에 스테이블코인을 적용할 수 있는지 운영 안정성을 확인했다. 우리은행 측은 “중소상공인 자금 회전 주기를 단축하고 금융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카드사는 기존 가맹점망 활용…결제 인프라 연동 카드업계는 기존 결제망과 가맹점 인프라를 활용해 스테이블코인 결제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결제 단말기를 대규모로 보급하기보다 기존 카드 결제 시스템에 스테이블코인을 연동하는 방식이 주요 검토 대상이다. 신한카드는 지난 4월 기존 카드 결제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한 스테이블코인 결제 기술검증을 진행했다. 아톤, 솔라나 등 국내외 블록체인 기업과 비자·마스터카드와 블록체인 기반 개인 간(P2P) 결제, 스테이블코인 기반 체크·신용 하이브리드 상품,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국가 간 송금·정산, IC칩 기반 카드형 하드월렛 결제 서비스 등을 검증했다. 신한카드는 기존 법정화폐 기반 결제 시스템과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결제, 정산 영역에서 이용자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등 차세대 금융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KB국민카드도 기존 카드 결제 인프라에 스테이블코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결제 모델 구현에 나섰다. 이를 위해 글로벌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아발란체의 메인넷을 활용한 카드 결제 모델을 설계하고 있다. 국내 블록체인 기업 오픈에셋과 협력해 스테이블코인 충전부터 결제, 정산까지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구현 중이다. 카드에 스테이블코인 지갑을 연동해 이용자가 일반 신용카드 결제와 디지털자산 기반 결제 중 원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BC카드는 약 3개월간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국내 가맹점에서 별도 환전 없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는 실증을 지난 8월 완료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코인베이스의 블록체인 네트워크 베이스 기반 지갑에 보유한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C를 국내 BC카드 가맹점에서 QR코드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결제 기술검증 잇따르지만…상용화까지 과제 산적 은행과 카드사가 잇따라 결제 실증에 나서면서 스테이블코인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특히 기존 금융 인프라를 활용해 이용자와 가맹점이 블록체인 기술을 직접 다루지 않고도 결제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기술검증 완료가 곧바로 상용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 결제·정산 과정 관련 규제와 이용자 보호 체계 등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포함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움직임이 멈춘 상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관리, 관련 사업자 규제 체계 등 주요 쟁점을 둘러싼 이견도 있어 실제 서비스 도입 시점은 불확실한 상황이다. 기존 카드 결제 대비 수수료, 정산 비용을 얼마나 절감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이용료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과 원화 간 환전 비용,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 등에 필요한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결국 국내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장 경쟁력은 기술검증을 넘어 기존 결제 시스템과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동하고, 이용자와 가맹점에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