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섭 AI 진테제] AI시대 개인 몸값...'능력'이 아니라 '복제 가능성'
여기 두 장의 수입 명세서가 있다. 하나는 중국 청두의 옥탑방에서 나왔다. 빅테크에서 AI를 만들던 20대 엔지니어가 회사를 나와 낮에는 외주 프로그램을 짜고, 저녁이 되면 배달 오토바이에 오른다. 약국에서 일하는 아내와 둘이 버는 돈이 한 달 약 1000달러, 우리 돈 140만 원 남짓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나왔다. 호텔업계 정규직으로 일하는 30세 직장인이 퇴근 후 올리는 집 꾸미기 콘텐츠로 지난해 14만 달러, 약 1억 9000만 원을 벌었다. 틱톡 팔로워는 3만3000명. 스타가 아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두 명의 1인 노동자다. 한쪽은 최첨단 기술을 팔고도 배달로 월세를 메우고, 다른 쪽은 평범한 일상 콘텐츠로 열 배가 넘는 돈을 번다. 이 격차를 개인의 능력이나 운으로 설명하면 핵심을 놓친다. 필자가 보기에 갈림길은 하나다. 무엇을 파는가, 정확히는, 파는 것이 복제되는가다. 1. 가격이 눌리는 쪽: 복제되는 기술 청두의 엔지니어는 자기 단가가 왜 무너졌는지 누구보다 정확히 안다. 본인이 AI를 만들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근 그의 하루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AI를 알수록 두려워집니다. 뭔가를 시키는 게 너무 쉬워졌기 때문입니다. 프롬프트 하나면 됩니다. 그 프롬프트를 알아낸 사람은 누구든 똑같은 걸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체감은 데이터로 확인된다. 경영학 저널 매니지먼트 사이언스(Management Science)에 실린 연구가 글로벌 프리랜스 플랫폼의 구인 공고 140만 건을 추적했더니, 챗GPT 출시 후 8개월 만에 글쓰기·코딩처럼 자동화에 취약한 직군의 의뢰가 수작업 중심 직군 대비 21% 줄었다. 이미지 생성 AI 등장 이후 이미지 제작 의뢰도 17% 감소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살아남은 일감의 성격이다. 남은 자동화 취약 일감은 더 복잡하고 보수도 높았다. 표준화된 기술, 그러니까 프롬프트로 복제 가능한 기술의 가격부터 무너진다는 뜻이다. 같은 청구서는 한국에도 도착해 있다. 국세청에 3.3% 원천징수로 소득을 신고한 인적용역 소득자, 사실상 넓은 의미의 프리랜서는 2008년 326만 명에서 2022년 847만 명으로 늘었다. 고용노동부가 2024년 발표한 실태조사 기준 플랫폼 종사자는 88만3000명으로 1년 새 11.1% 늘었는데, 구성이 흥미롭다. 배달·운전은 5.5% 줄어든 반면 소프트웨어 개발 등 IT 서비스 종사자가 141.2% 급증했다. 한국의 긱 노동은 이미 오토바이에서 노트북으로 번지고 있다. 프롬프트와 가장 정면으로 경쟁하는 자리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셈이다. 2. 돈이 흘러드는 쪽: 복제 안 되는 신뢰 반대편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은 2015년 17억 달러에서 2025년 약 330억 달러 규모로 커졌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시장의 크기가 아니라 돈의 배분이다. 커진 예산이 팔로워 수백만의 스타가 아니라 수만 명 규모의 작은 계정으로 흐르고 있다. 근거는 꽤 단단하다. 마케팅 분야 최상위 저널인 저널 오브 마케팅(Journal of Marketing)에 실린 연구가 소비자 직판 기업의 판매 약 190만 건을 인플루언서별 할인코드로 추적했다. 팔로워가 많은 매크로 인플루언서가 만드는 매출은 소규모 나노 인플루언서의 6배였지만 비용은 18배였다. 투자수익률로 환산하면 작은 계정이 3배 이상 앞섰고, 그 격차를 설명하는 변수는 팔로워와의 참여도였다. 계정이 커질수록 추천은 지인의 조언에서 연예인의 광고로 성격이 바뀌고, 신뢰가 희석된다. 기업 전략을 세워온 관점에서 보면 이는 광고 시장의 유행 변화가 아니라 비용 계정의 이동이다. 브랜드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100명에게 판매 수수료 기반으로 돈을 주는 구조는 광고 집행이라기보다 커미션제 영업 조직을 외주로 꾸리는 것에 가깝다. 매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판매 채널을 빌리는 것이다. 앞서 본 플로리다 직장인의 명세서가 그 증거다. 14만 달러 중 브랜드 광고비는 2만9000달러뿐이고, 가장 큰 몫은 추천한 물건이 팔릴 때마다 정산되는 제휴 수수료 9만1000달러였다. 광고주의 마케팅 예산은 경기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잘리는 돈이지만, 판매 연동 수수료는 성과가 있는 한 계속 흐르는 돈이다. 이 사람의 소득을 지탱하는 것은 유명세가 아니라, 3만 명이 구매 버튼까지 따라오게 만드는 축적된 신뢰다. 그리고 신뢰는 프롬프트로 복제되지 않는다. 3. 갈림을 만든 변수, 복제 가능성 이 갈림은 하나의 원리로 설명된다. 디지털카메라가 인간의 눈을 이겼다고들 하지만, 무엇을 이겼는지 따져보면 화질이 아니다. 인간의 눈은 지금도 웬만한 센서보다 가성비가 좋다. 카메라가 이긴 것은 딱 하나, 복제 가능성이다. 눈이 본 장면은 머릿속에서 꺼낼 수 없지만, 사진은 완벽하게 복사되고 어디서나 똑같이 열린다. 뇌와 AI 사이에서 정확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의 뇌는 약 20와트, 백열전구 하나 수준의 에너지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지능이다. AI가 파는 것은 뇌보다 똑똑함이 아니다. 똑같이 10억 번 복제되고, 언제든 대기하고, 로그로 감사까지 되는 균질한 정신이다. 뇌는 이것을 못 한다. 하나를 완성하는 데 20년의 양육과 교육이 들고, 그 하나는 복제가 안 된다. 이 원리를 노동시장에 대입하면 개인의 가격 공식이 다시 쓰인다. 복제 가능한 것, 즉 표준화된 기술과 시간의 가격은 프롬프트 한 줄의 가격으로 수렴한다. 복제 불가능한 것, 즉 축적된 신뢰와 고객 관계, 그리고 판단에만 프리미엄이 남는다. 청두 엔지니어의 코딩은 전자가 됐고, 플로리다 직장인의 팔로워 신뢰는 후자다. 물론 후자에도 단서는 있다. 그 신뢰 자산은 플랫폼이라는 남의 토지 위에 지은 건물이다. 알고리즘과 정책이 바뀌는 순간, 등기부등본이 내 명의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4. 마지막 남은 복제 불가 자산 그렇다면 조직 안팎의 개인에게 남은 최후의 복제 불가 자산은 무엇인가. 필자는 판단이라고 본다. 이 상황이 우리에게 맞는가, 이 결론을 믿어도 되는가를 가리는 능력 말이다. 역설은 여기서 생긴다. 복제된 사고가 워낙 값싸게 공급되다 보니, 사람들이 마지막 자산인 판단마저 스스로 반납하기 시작했다. 보고서 초안을 AI에 맡기는 것은 반복의 위임이라 문제가 없다. 그러나 AI가 내놓은 결론이 우리 상황에 맞는지 따지지 않고 그대로 올리는 순간, 넘긴 것은 반복이 아니라 판단이다. AI가 짜준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붙여 넣으면, 나중에 왜 그렇게 도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남는다. 무서운 것은 대가가 즉시 청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판단을 넘긴 날은 오히려 빠르고 편하다. 청구서는 한참 뒤, 왜 이렇게 결정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조직이 됐을 때 도착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프롬프트를 공유하지 않는 신입사원에 대한 이야기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다. 사실 이런 것은 잠시 지나가는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판단을 반납한 개인의 가격이 어디로 수렴할지는 자명하다. 프롬프트 한 줄의 가격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AI 시대에 개인의 몸값을 결정하는 변수는 능력의 총량이 아니라 복제 가능성이다. 이번 주에 자신의 수입을 두 줄로 나눠 적어보길 권한다. 복제 가능한 시간과 기술을 팔아 번 돈, 그리고 복제 불가능한 신뢰·관계·판단이 벌어준 돈. 둘째 줄이 비어 있다면 지금의 소득은 프롬프트 한 줄과의 가격 경쟁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AI 도입의 성패는 무엇을 위임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임하지 않느냐, 즉 판단을 어디에 남겨두느냐에서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