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칼럼] '닥치고 공급'과 '닥치고 분양'으로
1. 공급 절벽은 두 개의 무능이 겹쳐 만든 합작품이다 서울의 주택 공급은 시장(市長)이 하고, 돈의 흐름은 정권이 만든다. 인허가와 정비구역 지정은 서울시의 펜 끝에서 나오지만, 그 펜이 그린 도면이 실제 아파트가 되려면 금융이 돌아야 한다. 지금의 공급 절벽은 이 두 축이 동시에 무너진 결과다. 숫자가 말해준다. 국토교통부 주택건설실적 통계로 서울의 주택 착공은 2021년 6만 호에서 2023년 3만 3천 호, 2024년 2만 6천 호로 주저앉았다. 2009년 금융위기 직후를 제외하면 최저 수준이다. 그 시점이 정확히 윤석열 정부의 레고랜드 사태(2022년 10월)와 겹친다. 지방정부의 보증 채무 불이행 선언 하나가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 시장을 마비시켰고, 민간 부동산 PF는 신규 취급이 끊긴 채 만기연장으로 연명하는 동맥경화 상태에 빠졌다. 민간이 멈추자 공공이 떠받쳤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수도권 PF 보증은 2022년 1조 1천억 원에서 2024년 5조 6천억 원, 2025년 7조 5천억 원으로 폭증했다. 국가 보증 없이는 삽도 못 뜨는 시장.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남긴 유산이다. 서울시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오세훈 시장은 "박원순 전 시장의 정비구역 389곳 해제로 43만 호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본인의 2기 임기 5년(2021~2025) 성적표를 보면 인허가·착공·준공 모두 직전 10년의 52~68% 수준이다. 전임자 탓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숫자다. 정비구역 지정은 3.6배 늘렸다지만, 지정은 도면이고 착공이 집이다. 도면과 집 사이의 15년을 메울 전략이 없다면 그것은 실적이 아니라 예고편일 뿐이다. 2. 정권 따라 바뀌는 원칙은 원칙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관성이다. 오세훈 시장은 2024년 8월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미래세대의 주거 마련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는 것은 피치 못할 선택이 됐다." 12년 만의 서울 그린벨트 해제에 동참하며 서리풀 지구의 문을 연 당사자가 바로 오 시장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정권이 바뀌자 같은 입에서 정반대의 말이 나온다. 추가 그린벨트 해제는 동의할 수 없고, 용산 부지의 주택 공급은 "타협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고 한다. 명분은 똑같이 '미래세대'다. 미래세대를 위해 녹지를 희생하는 것이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면, 미래세대를 위해 녹지를 지키는 것은 어떻게 같은 논리에서 나오는가. 보수 정권의 집값 상승에는 특단의 대책으로 응답하고, 진보 정권의 집값 상승에는 결사반대로 응답한다면, 그것은 도시계획이 아니라 정치 일정표다. 녹지를 지키자는 주장 자체는 존중한다. 그러나 원칙은 정권을 가리지 않을 때만 원칙이다. 3. 재개발·재건축 '올인'과 아파트 편식을 넘어야 한다 오 시장의 해법은 사실상 하나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방향이 틀렸다. 전월세난에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착공절벽, 입주절벽 해소다. 이를 위해서는 신속한 통합심의를 통해 사업인가, 관리처분 인가 물량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오 시장은 엉뚱하게 입주까지 짧아야 12년, 길면 20년이 걸리는 새로운 정비구역 지정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그 결과 21∼25년 서울 재개발․재건축 착공실적은 7.6만 호에 불과한 반면, 정비구역 지정은 19.9만 호에 이른다. 과거 이명박 시장 시절 대규모 뉴타운 지정이 사업지연, 주민갈등 등으로 결국 정비구역 지정해제로 이어져 희망고문으로 끝났던 사례와 겹쳐 보인다. 편식도 문제다. 서울 주택의 절반 이상은 아파트가 아니다. 다세대·다가구·연립이라는 비아파트 재고가 서민과 청년 주거의 실핏줄인데, 전세사기 사태 이후 비아파트 시장은 공급도 수요도 붕괴했다. 빌라 신축은 급감했고, 그 수요가 아파트 전월세로 밀려들며 임대료를 밀어 올리고 있다. 아파트 공급만 세는 정책은 서울 주거의 절반을 지우는 정책이다. 비아파트 신축 매입약정 확대, 전세보증 정상화, 노후 저층주거지의 소규모 정비 활성화가 함께 가야 한다. 4. 주거난, 출퇴근 교통난, 지방소멸 가속화 – 집과 일자리의 균형이 해법이다. 강남구에 집은 23.6만 채다. 반면 취업자는 88.9만 명에 이른다. 집이 절대 부족하니 청년, 신혼부부는 집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룬다. 매일 아침, 저녁 출퇴근 전쟁에 몸은 파김치가 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오 시장은 용산국제업무지구, 여의도 금융중심지구, 강남 국제교류복합지 등 각종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집 문제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과시성 오피스빌딩 확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이 좋은 일자리의 블랙홀이 되어가는 사이 경기도는 서울의 베드타운이, 명색이 대한민국 제2도시인 부산은 별칭이 '노인과 바다'인 나라가 되었다. 이제 일자리와 주거의 균형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통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대규모 오피스빌딩 개발사업에 앞서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서둘러야 한다. 민간기업 본사, 대학 등 대규모 일자리 창출 기관도 수도권 또는 지방 이전을 유도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서울의 심각한 주거난과 출퇴근 교통지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경기도의 자족기능을 회복하고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다. 5. 대학가를 주거와 일자리의 새 경제 거점으로 그렇다면 서울 안에서 직주근접의 씨앗이 이미 심어진 땅은 어디인가. 나는 대학과 대학가를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서울에는 수십 개의 대학이 있고, 그 주변에는 이미 청년이 살고, 교통이 깔려 있고, 지식과 연구 인프라가 있다. 실리콘밸리가 스탠퍼드에서, 보스턴 켄달스퀘어가 MIT 옆에서 자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학은 그 자체로 일자리 발전소인데, 우리는 그 주변을 원룸촌과 술집 골목으로만 방치해 왔다. 구상은 이렇다. 첫째, 대학 캠퍼스와 대학가에 주택과 기업이 함께 들어올 수 있도록 용도와 용적률의 빗장을 푼다. 캠퍼스 유휴부지에는 창업 공간과 청년·신혼 주택을 복합 개발하고, 대학가 노후 원룸촌은 공공이 신축 매입약정으로 사들여 양질의 청년주택으로 바꾼다. 앞서 강조한 비아파트 공급 확대의 최적 실험장이 바로 이곳이다. 둘째, 공공기관과 공공 투자를 대학가로 집중한다. 창업지원기관, 연구소, 공공 데이터센터 같은 앵커 시설이 대학 옆에 자리 잡으면 민간기업은 따라온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학교 앞에서 하숙집과 원룸을 운영해 온 분들을 개발의 피해자가 아니라 첫 번째 수혜자로 만들어야 한다. 대학가 개발의 최대 걸림돌은 역설적으로 임대수익이 걸린 학교 앞 주민들의 반대였다. 기숙사 하나 짓는 데도 소송이 붙는 이유다. 이분들에게 하숙집과 원룸은 투기 자산이 아니라 수십 년 자식을 키우고 노후를 지탱해 온 생계 그 자체다. 그 생계를 위협하는 개발이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해법은 배제가 아니라 편입이고, 설득이 아니라 인센티브다. 구체적으로 다섯 갈래의 길을 열자. 하나, 학교 앞 일대를 대규모 상업·업무지구로 과감히 상향해 원룸 임대료를 받던 토지주가 상업지 지주로 올라서는 자산 상승의 길을 열면 어떨까? 둘, 노후 원룸·하숙 건물을 공공이 감정가에 우대 매입하거나, 공공 재원으로 리모델링한 뒤 소유주에게 운영을 맡기고 임대수익을 보장하는 '공공 리모델링-위탁운영'의 길 — 공실 걱정 없이 안정된 노후 소득을 원하는 고령 임대인에게 맞는 선택지다. 셋, 필지가 작아 혼자서는 개발이 어려운 소유주들이 몇 필지를 묶어 가로주택정비나 결합건축으로 공동 개발하면 용적률 보너스를 주고, 새 건물의 상가와 주택 지분으로 정산받게 하는 지분 참여의 길 — 일본 롯폰기힐즈의 권리변환을 골목 단위로 옮긴 것이다. 넷, 땅과 건물을 '캠퍼스타운 리츠'에 현물출자하고 리츠 지분과 배당을 받는 길 — 임대료 관리의 수고 대신 배당 소득으로 갈아타는 방식이다. 다섯, 어느 길을 택하든 청년 대상 장기임대로 등록하면 양도세·종합부동산세를 감면해 세제가 전환을 밀어주게 한다. 자산을 키우고 싶은 이에게는 상향과 지분을, 안정을 원하는 이에게는 보장 수익과 배당을, 떠나고 싶은 이에게는 우대 매입을 — 선택지가 여럿일 때 반대는 참여로 바뀐다. 개발이익을 나누는 설계가 갈등 비용보다 언제나 싸다. 이렇게 되면 대학가는 하숙촌이 아니라 주거·일자리·연구가 순환하는 경제 거점이 된다. 청년은 학교에서 배우고, 걸어서 출근하고, 그 동네에서 결혼해 정착한다. 수십 년 학생을 품어온 하숙집 주인은 그 거점의 지주이자 주주로 함께 올라선다. 지방 대학가에 같은 모델을 적용하면 소멸 위기의 지방 도시에 닻을 내리는 국가균형발전 전략도 된다. 대학을 도시의 섬으로 둘 것인가, 도시의 심장으로 만들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6. 일본의 교훈 — 돈을 더 풀고도 집값을 잡은 나라 여기서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 지난 10여 년, 세계에서 돈을 가장 공격적으로 푼 나라는 일본이다.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와 국채 무제한 매입, 주식 ETF 직접 매수까지 동원해 본원통화를 몇 배로 불렸다. 유동성이 집값 폭등의 주범이라면 도쿄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폭발했어야 한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다. 최근 도쿄 도심 신축 맨션 가격이 오르고는 있지만,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으로 보면 서울이 도쿄를 크게 웃돈다. 도쿄의 평범한 맞벌이 부부는 여전히 통근권 안에서 신축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서울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돈은 일본이 더 풀었는데 왜 집값은 서울이 더 뛰었는가. 답은 하나다. 일본은 공급에 성공했다. 첫째, 도쿄는 공급을 멈춘 적이 없다. 인구가 정체된 나라에서도 도쿄도는 연간 13~14만 호 안팎의 주택을 꾸준히 착공해 왔다. 서울의 두세 배다. 2002년 도시재생특별조치법으로 도심 용적률 규제를 과감히 풀자 도심 한복판에 초고층 주거가 계속 들어섰고, "기다리면 언제든 새 집이 나온다"는 믿음이 시장에 뿌리내렸다. 이 믿음이야말로 최고의 투기 억제책이다. 사재기는 물건이 끊길 것 같을 때 일어난다. 공급이 항상성이 되면 추격매수의 심리적 토대 자체가 사라진다. 앞서 말한 '분양의 약속'을 일본은 도시 전체의 문화로 만든 셈이다. 둘째, 일본의 재개발은 원주민을 쫓아내지 않았다. 도쿄 롯폰기힐즈가 상징이다. 모리빌딩은 약 400명의 지권자(토지·건물 소유자)와 17년에 걸쳐 협의했고, 권리변환 방식으로 원주민 상당수가 새 단지의 주민이자 사실상의 주주로 재정착했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지만 착시다. 원주민을 밀어내는 개발은 소송과 농성으로 더 오랜 시간을 잃고, 무엇보다 다음 사업지의 저항을 키운다. 원주민이 개발이익의 지분을 갖는 순간 반대자는 동업자가 된다. 우리 재개발의 고질병 — 낮은 원주민 재정착률, 세입자 내몰림,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비용 — 을 생각하면, 일본의 '느린 합의'가 결과적으로 '빠른 공급'이었다는 역설을 곱씹어야 한다. 앞서 대학가 상업지구 상향으로 주민 반대를 참여로 바꾸자고 한 것과 같은 원리다. 쫓아내는 개발은 느리고, 품는 개발이 빠르다. 셋째, 일본은 밀도를 거래 가능한 자원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용적률 거래, 공중권(空中權) 거래다. 대표 사례가 도쿄역이다. 붉은 벽돌의 마루노우치 역사(驛舍)를 보존하려면 그 땅의 개발 잠재력을 포기해야 했는데, 도쿄는 '특례용적률적용지구' 제도를 만들어 역사가 쓰지 않는 미사용 용적률을 주변 마루노우치의 업무 빌딩들에 팔 수 있게 했다. 초고층 빌딩들은 법정 상한을 넘는 밀도를 사들였고, 그 매각 대금 수백억 엔이 역사 복원 재원이 됐다. 보존할 곳은 보존하고, 밀도가 필요한 곳에는 밀도를 몰아주고, 그 거래 대금으로 보존 비용까지 조달하는 삼중의 해법이다. 이 제도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는 각별하다. 용산공원 논쟁을 보라. '공원이냐 아파트냐'라는 양자택일에 갇혀 정부와 서울시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일본식으로 사고하면 제3의 길이 열린다. 공원 본체는 온전히 보존하되, 그 땅이 품은 개발 용적을 캠프킴 같은 주변 산재부지와 인근 역세권으로 이전해 그곳을 초고밀로 개발하는 것이다. 공원은 1센티미터도 훼손되지 않고, 주택은 공원 옆에 들어서며, 용적 매각 대금은 공원 조성과 오염 정화 재원이 된다. 보존과 공급이 싸울 이유가 없어진다. 밀도는 지켜야 할 성역이 아니라 도시가 설계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것, 이것이 일본의 세 번째 교훈이다. 용산 공원 전체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공원도 걸리고 집도 짓는 결단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완벽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있다. 집값을 올리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이 몰릴 때 공급이 없는 상태다. 그리고 공급의 속도는 원주민을 포용하는 설계에서 나오며, 밀도는 거래를 통해 보존과 양립할 수 있다. 세 가지 모두 우리 제도에 이식 가능하다. 7. 대안 — '선분양 신뢰계약' 4원칙 성공과 실패를 가른 변수는 땅의 상태와 약속의 구속력이었다. 여기에 일본의 교훈을 더해 네 가지 원칙으로 정리한다. 첫째, 대한민국 땅의 재고조사부터 하자. 즉시 착공 가능한 국공유지를 찾는 일은 몇 개 부지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자산 전체를 뒤지는 전수조사여야 한다. 대한민국 국공유재산이 3,800조 원이나 된다. 국유재산만 1,300조 원이다. 그중 저이용·유휴 상태로 잠자는 땅이 얼마인지 정부도 정확히 모른다. 후보군은 이미 눈앞에 있다. 수색·구로·창동 같은 철도 차량기지와 유휴 철도부지의 상부 인공대지,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비게 된 수도권 적지와 노후 정부청사 부지, 국가골프장(체력단련장)과 도심의 예비군훈련장·군 관사·군인아파트 부지, 저층 노후 공공청사를 주택과 복합화하는 청사 복합개발, 학령인구 감소로 나오는 폐교와 대학 유휴 캠퍼스, 캠프킴·유엔사 등 미군 반환 산재부지, 이미 훼손돼 녹지 기능을 잃은 그린벨트 내 국공유지, 준공업지역의 저이용 공장부지 공공 매입까지. 이 아홉 갈래를 기획재정부·국방부·국토부·교육부·지자체가 합동으로 전수조사해 소유권·오염·규제 상태를 등급화한 '가용지 백서'를 만들고, 소유권이 정리돼 6개월 내 분양 가능한 땅부터 리스트에 올려 준비된 순서대로 분양한다. 부처마다 흩어진 땅을 한 손에 쥐기 위해 LH 토지은행을 '국가 가용지 은행'으로 확대 개편하는 것도 방법이다. 논쟁적인 부지 하나를 두고 몇 년을 싸우는 동안, 준비된 땅 아홉 갈래에서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국회의원 단체장들이 전부 나서면 찾아낼 수 있다. 둘째, 약속을 계약으로 만든다. 확정분양가에 물가연동 조항을 배제하고, 입주 지연 시 지연배상금을 명문화한다. 3기 신도시 실패의 원인이 약속의 불확실성이었다면 해법은 약속의 법적 구속력이다. 국가가 지연 리스크를 지는 대신, 수분양자는 안심하고 기다림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공사비 변동 리스크는 국가가 물가채 발행이나 공사비 연동 기금으로 흡수하면 된다. 국가의 신용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셋째, 로또를 자산 사다리로 바꾼다. 목 좋은 국공유지의 확정가 분양은 필연적으로 시세차익 특혜 시비를 부른다. 지분적립형·토지임대부 방식으로 차익을 공유화하되, 20~30년에 걸쳐 내 집이 되는 경로를 보장하면 된다. 청년이 원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라 예측가능한 사다리다. 임대 일변도 공급이 "청년은 평생 세입자로 살라는 것이냐"는 반발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양은 임대가 주지 못하는 것, 즉 기다림의 끝에 소유가 있다는 확신을 준다.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의 BTO(Build-To-Order)는 이 방식의 완성형이다. 청약으로 수요를 먼저 확정받은 뒤 착공하니 미분양 리스크가 없고, 국민은 입주를 계약서로 보장받는다. 자가보유율 90%의 비밀은 공급량이 아니라 이 예측 가능성에 있다. 넷째, 밀도를 거래하게 하자. 일본의 용적률 거래제를 한국형으로 도입해, 보존해야 할 땅(공원·문화재·한강변 경관지구)의 미사용 용적을 역세권과 산재부지로 이전·매각할 수 있게 한다. 8. 설계하고, 완성한다 정리하자. 오늘의 공급 절벽은 서울시의 정책 실기와 중앙정부의 금융 실기가 겹친 결과이며, 어느 한쪽의 무능만 탓하는 정치 공방으로는 단 한 채도 지어지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전략이다. 대한민국의 잠자는 땅을 다 찾아내고, 준비된 국공유지에서, 지켜질 약속으로, 소유의 사다리를 걸고, 즉시 분양하라. 그 계약서에는 집만이 아니라 일자리를 함께 담고, 원주민과 함께 쫓아냄 대신 지분과 선택지를 주고, 지켜야 할 땅의 밀도는 팔아서 지켜라. 돈을 서울보다 몇 배나 더 풀고도 집값을 잡은 도쿄가 증명하듯, 집값을 올리는 것은 유동성이 아니라 유동성 앞의 공급 부재다. 집은 선언으로 지어지지 않는다. 구체성이다. 오세훈 시장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 청년의 절박한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이 모든 원칙은 서울 경계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서울 공급이 막힐 때 압력이 가장 먼저 터지는 곳이 경기도이고, 경기도 공급은 서울의 보조가 아니라 수도권 주거 안정의 본진이다. 경기도에는 두 개의 시계를 동시에 돌려야 한다. 하나는 3기 신도시의 빠른 안착이다. 착공을 앞당기되 집보다 길이 먼저 가야 한다. 2기 신도시의 실패는 입주가 끝나고도 철도가 오지 않은 데 있었다. 하남 위례 · 감일 지구 사례가 끝판왕이다. 광역교통과 일자리, 학교와 병원이 첫 입주민과 함께 문을 열어야 주민이 정착하고, 수요가 서울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다음 공급의 준비다. 노태우 200만 호가 김영삼 정부의 집값 안정을 만들었듯 공급의 효과는 다음 정부에서 온다. 서울 통근권 안의 경기도 택지를 과감하게 추가 지정하는 파격적인 신도시 확대를 지금 결정해야 한다. 다만 토지 확보와 광역교통 계획을 먼저 끝내고 분양하는 순서는 지켜야 한다. 신도시 확대는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준비해서 더 많이'여야 한다. 날아가는 새도 집이 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일자리, 주택 문제에 명운을 걸고 해결해 나가야 하고, 해결할 수 있다. 한국, 세계 10위 경제력 국가이다. 중앙과 지방, 정부 부처와 부처, 정부와 시장(특히 금융기관)의 벽을 넘어 협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