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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시험 도중 실수를 고친다…5배 빠른 학습의 비밀

어떤 학생은 시험지를 한 번 훑고 바로 제출한다. 또 다른 학생은 풀이 과정을 천천히 되짚으며 틀린 부분을 고쳐 나간다. 당연히 후자가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 카네기멜론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와 바르샤바대학교(University of Warsaw) 공동 연구팀이 2026년 3월 공개한 논문은 AI도 이 두 번째 학생처럼 행동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규명했다. '플로우 매칭(Flow Matching)'이라는 기법을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에 적용하면 AI가 기존보다 최종 성능이 2배 높고 학습 속도는 5배 빠르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그 이유가 지금껏 학계가 믿어왔던 설명과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AI가 공부하다 갑자기 멍청해지는 이유 강화학습은 AI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스스로 최적의 행동을 터득하는 방식이다. 로봇이 걷는 법을 익히거나, 게임에서 전략을 배우거나, 자율주행차가 도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모두 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AI의 판단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은 부분을 '비평가(Critic)'라고 부른다. 비평가는 AI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미래에 얼마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점수를 매긴다. 그런데 기존의 '단일 구조 비평가(Monolithic Critic)'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학습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성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가소성 상실(Loss of 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가소성이란 AI가 새로운 정보를 유연하게 흡수하는 능력을 뜻한다. 마치 오래된 칠판처럼, 새 내용을 쓰려면 예전 내용이 지워져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들이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논문의 서론에 따르면 이 현상은 목표값이 계속 바뀌는 'TD 학습(Temporal Difference Learning)' 환경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AI가 미래 보상을 예측하며 학습하는 핵심 메커니즘인 TD 학습은, 목표 자체가 움직이는 탓에 AI 내부 표현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정답을 한 번에 내놓지 않고 조금씩 다듬는 방식의 등장 플로우 매칭 비평가는 이 문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핵심은 '반복 계산(Iterative Computation)'이다. 기존 비평가가 입력값을 받아 단번에 점수를 출력한다면, 플로우 매칭 비평가는 처음의 불확실한 추정에서 출발해 여러 단계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답을 다듬는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초기 단계의 오류가 이후 단계를 거치며 자동으로 교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테스트 시점 복구(Test-time Recovery)'라고 이름 붙였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플로우 매칭 비평가는 '속도장(Velocity Field)'이라는 개념을 학습한다. AI는 처음에 무작위에 가까운 초기값에서 출발해, 여러 번의 적분(Integration) 계산을 거치며 최종 예측값에 도달한다. 이 경로 전체를 훈련 단계에서 촘촘하게 지도 감독(Dense Supervision)하기 때문에, 초기에 오류가 생기더라도 이후 단계에서 수정이 가능하다. 논문 5장의 이론 분석에 따르면 통합 단계 수가 늘어날수록 오류 감쇠율이 단계 수의 음의 거듭제곱에 비례해 줄어든다. 즉 단계를 많이 밟을수록 초기 실수의 영향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논문의 실험 결과는 이를 직접 증명한다. 연구팀은 일부러 초기 통합 단계에 낡은 정보를 주입하는 실험을 했다. 놀랍게도 플로우 매칭 비평가는 처음 50%의 단계에서 낡은 정보를 사용했음에도 오히려 성능이 더 좋거나 비슷하게 유지됐다. 반면 기존 단일 구조 비평가는 이런 개입에 즉시 성능이 급락했다. 분포를 배우기 때문이라는 기존 통설은 틀렸다 플로우 매칭이 강화학습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 학계는 오랫동안 잘못된 설명을 믿어왔다. 많은 선행 연구들은 플로우 매칭이 단순히 평균값 하나가 아니라 보상이 나타날 수 있는 전체 확률 분포를 학습하기 때문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분포 강화학습(Distributional RL)'이라고 부른다. 연구팀은 이 가설을 직접 검증하기 위해 통제 실험을 설계했다. 플로우 매칭 구조는 동일하게 유지하되, 분포를 명시적으로 학습하는 방식과 평균값만 학습하는 방식을 비교한 것이다. 결과는 예상을 뒤집었다. 분포를 명시적으로 학습하는 방식이 오히려 성능을 떨어뜨렸다. 연구팀이 floq라고 이름 붙인 플로우 매칭 비평가 방식은 평균값만 목표로 삼으면서도 일관되게 더 나은 성능을 보였다. 논문 4장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분포 강화학습은 플로우 매칭 성공의 이유가 아니라고 결론 내린다. 진짜 이유는 분포 모델링이 아니라, 통합 경로를 따라 속도장을 촘촘하게 훈련하는 구조 자체에 있었다. 뇌를 얼려도 망가지지 않는 AI의 유연한 기억 플로우 매칭의 두 번째 강점은 '가소성 보존(Plasticity Preservation)'이다. 논문 6장의 이론 분석은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한다. 단일 구조 비평가는 새로운 목표값을 학습하려면 반드시 기존에 저장된 특징(Feature)을 덮어써야 한다. 반면 플로우 매칭 비평가는 특징 자체를 바꾸지 않고도 '이득 매개변수(Gain Parameter)'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목표에 적응할 수 있다. 기존에 배운 내용은 그대로 두고, 각 내용에 부여하는 가중치만 재조정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극단적인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다. AI 신경망의 초기 층들을 완전히 얼려버린 뒤 학습을 계속하는 것이다. 기존 단일 구조 비평가는 레즈넷(ResNet) 구조나 트랜스포머(Transformer) 구조를 써도 거의 예외 없이 성능이 0에 가깝게 붕괴했다. 반면 플로우 매칭 비평가는 층이 얼어붙은 상태에서도 학습을 이어가며 거의 동일한 수준의 성능을 회복했다. 마치 기억의 특정 부분이 손상된 상태에서도 다른 회로를 활용해 기능을 유지하는 뇌처럼, 플로우 매칭 비평가는 이미 학습된 특징들을 다시 조합해 새로운 문제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극한의 학습 환경에서 검증된 5배 빠른 효율 연구팀은 이 장점이 실제 학습 성능으로 이어지는지 검증하기 위해 높은 업데이트-데이터 비율(High UTD, Update-to-Data ratio) 환경을 테스트했다. 이는 새로운 데이터가 적게 들어오는데 학습 업데이트는 매우 자주 해야 하는, 가소성 상실이 가장 극심하게 나타나는 조건이다. 로봇 제어나 자율주행처럼 실시간으로 경험을 쌓으면서 빠르게 학습해야 하는 현실 환경과 유사하다. 실험 결과 floq는 UTD 비율이 32, 64, 128로 높아질수록 기존 단일 구조 비평가와의 격차가 벌어졌다. 많은 환경에서 최종 성능은 약 2배, 동일한 성능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학습 데이터량은 약 5배 적게 들었다. 더욱이 기존 비평가가 높은 UTD 환경에서 학습이 불안정해지거나 성능이 갑자기 무너지는 현상을 보인 반면, 플로우 매칭 비평가는 UTD 128이라는 극한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학습 곡선을 유지했다. 논문은 마지막으로 이 원리가 대형 언어 모델(LLM)의 연쇄 추론(Chain-of-Thought)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LLM이 단번에 답을 내놓는 대신 여러 추론 단계를 밟을수록 정확도가 올라가는 것처럼, 플로우 매칭 비평가도 통합 단계가 늘어날수록 더 정교한 예측이 가능해진다. FAQ( ※ 이 FAQ는 본지가 리포트를 참고해 자체 작성한 내용입니다.) Q1. 플로우 매칭이 일반 사람들의 일상에서 쓰이는 AI를 어떻게 바꾸나요? A. 플로우 매칭 기술은 AI가 새로운 환경에 더 빠르게, 더 안정적으로 적응하도록 만듭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처음 가는 도로에서 실수를 줄이거나, 의료 AI가 최신 임상 데이터를 반영해 진단 정확도를 빠르게 높이는 등 실생활 AI 서비스의 신뢰도와 반응 속도를 높이는 데 직접 기여합니다. Q2. 가소성 상실이 왜 문제가 되나요? A. AI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기존에 저장된 정보를 덮어써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AI는 이전에 잘하던 것도 잊어버리고 현재 목표에만 과도하게 맞춰지게 됩니다. 마치 단기 기억만 남고 장기 기억이 사라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전체 성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Q3. 이 연구가 로봇이나 자율주행 같은 실제 기술에 얼마나 빨리 적용될 수 있나요? A. 이번 연구는 이론적 증명과 실험을 모두 갖춘 기초 연구입니다. 현재 로봇 제어와 오프라인-온라인 혼합 강화학습 환경에서 이미 유의미한 성능 향상이 확인됐습니다. 다만 실제 제품에 탑재되려면 다양한 환경에서의 추가 검증과 공학적 최적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사에 인용된 논문 원문은 arXiv에서확인할 수 있다. 논문명: What Does Flow Matching Bring To TD Learning? ■ 이 기사는 AI 전문 매체 'AI 매터스'와 제휴를 통해 제공됩니다. 기사는 클로드 3.5 소네트와 챗GPT를 활용해 작성되었습니다. (☞ 기사 원문 바로가기)

2026.03.06 19:28AI 에디터

디시인사이드, 작년 매출 275억원·영업익 110억원

국내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가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6일 디시인사이드에 따르면 이 회사의 2025년 매출은 275억원으로 전년 207억원 대비 33%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110억원으로 전년 90억원에서 22% 증가했다.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는 "작년 한 해 이용자 요구 파악과 사용자 환경(UI)/사용자경험(UX) 개선에 몰두했다"고 밝혔다. 디시인사이드는 기존의 오래된 글쓰기 에디터를 신형 에디터로 교체해 수십 장의 사진이나 영상, 긴 글도 모바일 환경에서 쉽게 편집, 등록할 수 있게 했다. 또 사이트의 가장 인기 기능인 디시콘(이미지형 댓글)에 대왕디시콘 기능을 추가하는 등 재미적 요소를 강화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인기 기능인 자동 짤방 이미지도 글쓰기마다 매번 업로드하지 않고 미리 서버에 올려두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용자들의 모바일 데이터를 절약하고,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을 번갈아 쓸 때도 같은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용자들이 열람한 게시물을 간단하게 저장할 수 있도록 스크랩 기능을 개선하고, 갤러리 매니저(개설자)들이 편리하게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기능도 추가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게시물에는 수백 개 이상의 댓글이 등록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댓글이 어떤 이용자에게 말하는 것인지 혼동된다는 의견이 있어, 상대를 명확히 지칭하고 알림도 받아볼 수 있는 멘션 기능을 추가하기도 했다. 회사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인 온라인 광고 부문에서 구글, 네이버 등 제휴 광고 플랫폼의 타깃팅을 높여 최적화하는 등 지면 효율화 작업도 주효했다. 김 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국내 광고 시장에도 온기가 불고 있는 것으로 보여, 향후 매출 전망도 긍정적"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디시인사이드는 본격적인 AI 도입을 통해 성장 전략을 더 정교화한다. 하루 수십만 장이 등록되는 이미지들에 대해 AI를 통한 오토 태깅, 캡션화를 해 이용자들이 관련 이미지를 쉽게 찾아보고, 텍스트만으로 이미지 검색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제공할 예정이다. 게시물, 이미지에 대한 AI 필터링, 탐지 기능도 구축하여 현재도 업계에서 가장 빠른 편인 불량 콘텐츠의 처리 속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글로벌 트래픽 측정 서비스 시밀러웹에 따르면 현재 디시인사이드는 국내 순위 5위, 세계 순위 81위다.

2026.03.06 15:48백봉삼 기자

"강 3개가 만났는데 안 섞였다"…기이한 물 색깔, 이유는 [우주서 본 지구]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에서 세 개의 강이 합류하며 독특한 색 대비를 이루는 위성 사진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과학 전문 매체 라이브사이언스는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 기상 관측 위성이 2023년 촬영한 가이아나 강 사진을 재조명한 기사를 보도했다. 이 인상적인 위성 사진은 가이아나에서 세 개의 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을 포착한 것이다. 합류 지점에서 강물은 하나의 물줄기로 이어지나 서로 다른 두 가지 색상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이런 색 차이는 광산 활동으로 인한 퇴적물 유입과 관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된 암반지대 '기아나 순상지'와 관련 NASA 지구관측소에 따르면, 가이아나의 국토 면적은 약 21만㎢로 대한민국의 2.1배 규모다. 그러나 국토 전역에 10개의 주요 강과 수십 개의 작은 수로가 흐르고 있어 이름처럼 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가이아나는 '물이 많은 땅'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독특한 수문 환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암반 지대 중 하나인 '기아나 순상지(Guiana Shield)'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약 17억 년 전 형성된 이 지질 구조는 가이아나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브라질, 수리남, 프랑스령 기아나 일부 지역까지 넓게 이어져 있다. 기아나 순상지는 편마암과 화강암 등 단단한 결정질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반적인 침식에는 강한 저항성을 보이는 대신 오랜 시간에 걸친 물의 침식 작용으로 수많은 강과 수로가 형성됐다. 위성 사진에서는 두 개의 작은 강인 쿠유니 강(왼쪽)과 마자루니 강(왼쪽 중앙)이 합류한 뒤 에세퀴보 강(오른쪽 중앙)과 만나 가이아나에서 가장 큰 수계 중 하나를 형성하기 직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약 1만5000명이 거주하는 바르티카 마을은 두 번째 합류 지점에서 강물 위로 동그랗게 돌출된 지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확장된 에세퀴보 강은 북쪽으로 약 50㎞ 흐른 뒤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탄닌과 광산채굴로 인한 폐기물 때문 강이 합쳐지기 전 마자루니 강과 에세퀴보 강은 짙은 갈색을 띠는데, 이는 썩어가는 식물에서 방출되는 '탄닌'이라는 화학 물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탄닌은 차를 우리는 과정과 유사하게 물을 갈색으로 물들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반면 쿠유니 강은 많은 부유 퇴적물을 포함하고 있어 옅은 갈색을 띠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들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퇴적물 양에 따른 밀도 차이 때문에 밝은 황토색 물과 짙은 갈색 물이 쉽게 섞이지 않으며, 이로 인해 사진에서도 뚜렷한 색 대비가 나타난다. 탄닌 성분은 홍수 등 자연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나 높은 수준의 퇴적물은 마자루니 강으로 유입되는 광산 폐기물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메인주 콜비 칼리지 수문학자 에반 데티어는 NASA 지구관측소에 “이 이미지는 세 개의 강이 모두 수위가 높고 많은 퇴적물을 운반하던 우기 시기에 촬영된 것”이라며 “하지만 쿠유니 강은 유난히 탁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상류에서 이루어지는 광산 채굴 활동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가이아나는 금, 다이아몬드, 보크사이트를 비롯해 리튬, 구리, 니켈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한 국가로 광업이 주요 산업 중 하나다. 데티어는 가이아나의 광산 산업이 200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확대된 이후 쿠유니 강의 퇴적물 농도가 약 10배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와 유사한 변화는 전 세계 여러 강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그가 주도한 2022년 연구에 따르면, 광업과 삼림 벌채 영향으로 남반구 강의 퇴적물 농도는 약 40% 증가했으나, 북반구에서는 대규모 댐 건설로 인해 퇴적물 흐름이 약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는 상반된 현상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전 세계적인 퇴적물 흐름 변화가 해양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부분의 해양에서 퇴적물 유입량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2026.03.06 09:55이정현 미디어연구소

팅크웨어, 자전거·오토바이용 초소형 블랙박스 출시

팅크웨어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이용자를 위한 초소형 블랙박스 '아이나비 IB10'을 출시한다고 5일 밝혔다. 아이나비 IB10은 라이딩 환경에서의 기록 안정성과 사용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바이크 전용 블랙박스다. FHD 해상도와 초당 30프레임 촬영, 120도 광각 렌즈를 통해 주행 영상을 넓고 선명하게 저장할 수 있다. 제품 크기는 53×78×30mm, 무게는 94g으로 장착 부담을 최소화했다. 헬멧이나 핸들바, 자전거 프레임 등 다양한 위치에 설치할 수 있다. 거치대에 결합하면 별도 버튼 조작 없이 즉시 녹화가 시작되는 자동 녹화 방식을 적용했다. 2천mAh 배터리를 탑재해 최대 7시간까지 연속 촬영을 지원하며, 저장 공간이 부족할 경우 오래된 파일부터 순차적으로 삭제한 뒤 새 파일을 저장하는 '루프 레코딩' 기능을 제공해 장시간 촬영 환경에서도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하다. 3축 자이로 센서를 기반으로 기기 기울어짐이나 충격이 감지되면 해당 구간을 이벤트 영상으로 별도 저장하는 '긴급 녹화 기능'을 지원하며, 빌트인 와이파이 기능을 통해 전용 애플리케이션과 연결하면 스마트폰으로 영상 확인 및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IP66 등급 생활 방수 설계를 적용해 다양한 야외 주행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기본 구성품으로 전용 마운트와 브라켓, 실리콘 보호 케이스, 스트랩을 함께 제공한다. 가격은 15만9천원이다. 출시 기념 행사 중 10만9천원에 할인 판매한다. 8만원을 추가 결제하면 동일 제품을 한 대 더 제공한다. 팅크웨어 관계자는 "아이나비 IB10은 레저 촬영 목적이 아닌 주행 기록과 상황 보존에 중점을 둔 바이크 전용 블랙박스"라며 "간편 장착과 자동 녹화 구조를 통해 라이더들이 보다 쉽게 기록 장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2026.03.05 15:32신영빈 기자

국가유산청, 넥슨 IP 활용 전통공예품 상설 전시

국가유산청 소속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넥슨재단과 손잡고 전통미술공예학과 재학생들이 창작한 전통공예품 7점을 넥슨코리아 및 네오플 사옥에 상설 전시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두 기관이 게임 콘텐츠와 문화예술을 접목하기 위해 전개해 온 '보더리스' 사업의 연장선에서 기획됐다. 앞서 양측은 지난해 11월 경복궁 생물방에서 학생들의 작품 60여점을 선보이는 기획전시를 열며 성공적인 산학 협력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상설 전시에서는 학생들이 각 회사의 대표 게임 지식재산(IP)을 전통적 기법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공예품들을 선보인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넥슨코리아 사옥에서는 인기 타이틀 '메이플스토리' IP를 주제로 한 6개의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어둠', '빛의 쉼터', '단풍나무 아래에서' 등 3점은 외부 방문객 누구나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 공간에 설치된다. '사계도원도 족자', '자수 오방색 주머니', '도깨비 노리개' 등 나머지 3점은 내부 임직원들을 위한 사내 공간에 비치되어 문화적 교감을 나눈다. 이와 함께 서울 강남구 소재 네오플 사옥 내부에는 '던전앤파이터' IP를 활용해 제작된 '육각마도록'이 전시될 예정이다. 오프라인 방문이 어려운 관람객들을 위해 '보더리스' 공식 누리집을 통한 온라인 감상 서비스도 함께 지원된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넥슨재단은 앞으로도 전통 공예와 현대적 기업 문화를 아우르는 교류를 지속하며, 국가유산 분야의 젊은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창작 지원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2026.03.05 14:42정진성 기자

쿠빙스, 일본 '건강박람회 2026' 성료

주방가전 브랜드 쿠빙스는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도쿄 빅사이트에서 개최된 '건강박람회 2026'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고 4일 밝혔다. '건강박람회 2026'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건강 및 웰니스 산업 전문 박람회다. 올해로 44회를 맞았다. 쿠빙스는 이번 전시에서 가정용·상업용 제품 라인업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이 직접 착즙 주스를 시음하고 제품 성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1천700ml 대용량 호퍼를 통해 재료 손질 없이 통째로 착즙이 가능한 핸즈프리 슬로우 주서 '오토6'와 세계 최초로 원터치 자동개폐 기능을 적용한 상업용 블렌더 'CB980'을 선보였다. 오토6는 자동 절삭 기능을 적용해 사용 편의성을 높였다. 저속 압착 착즙 기술로 원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CB980은 강력한 모터 성능과 안정적인 블렌딩 기술을 기반으로 상업 환경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소개했다.

2026.03.04 17:19신영빈 기자

이형구 노아벤처스 대표, 포스트모던 신춘문예 신인작가 등단

이형구 노아벤처스 대표 겸 도시공동체본부 상임대표(전 세종테크노파크 부설 디지털융합센터 총괄, 필명 이로운)가 포스트모던 신춘문예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포스트모던은 '2026 신춘문예 시상식'을 지난달 28일 전북 고창군 미당시문학관 대강당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행원 포스트모던 문학회장을 비롯해 고창 지역 문인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문단 원로 및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1부 출판기념 및 문학 공연과 2부 신춘문예 신인상 시상식으로 나뉘어 문학이 가진 치유와 혁신의 힘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35주년을 맞은 포스트모던 신춘문예는 그동안 깊이 있는 시선과 독창적인 문체를 갖춘 신진 작가를 발굴해 왔으며, 평론·시·수필·소설 등 부문별 시상을 하고 있다. 올해 평론 부문은 전명숙 씨가 '오래된 미래로서의 인문장소' 외 1편으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또 시 부문은 ▲김영옥 '오월의 비' ▲김정술 '선비와 순이선생' ▲나정주 '고창읍성의 봄' ▲엄희경 '은빛 하중' ▲우성희 '박힌 빛' ▲윤정화 '리듬 쿵! 나의 아침' ▲이국영 '엄마라는 이름' ▲장권 '짝사랑' ▲조민주 '치료의 선물'▲한종엽 '거품과 빛의 차이' 총 10명의 시인이 당선했다고 포스트모던 측은 밝혔다. 수필 부문에서는 ▲나희준 '오랜만에, 오랜만에를 써보려 합니다' ▲박정현 '정지된 시간의 속도' ▲김현주 '말을 걸을 용기' ▲오희정 '우연한 선택이 인생의 전환점' 4인이 선정됐다. 소설 부문에서는 ▲이형구(중편 청구서) ▲정성현(중편 가온누리 세책점) ▲이승민(중편 거룡의 꿈) 작가가 받았다. 이중 이형구 대표의 소설 '청구서'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자본의 논리를 예리하게 파헤쳤고, 공공의 사명과 헌신만큼 더 큰 부조리에 부딪히며 힘겨운 시기를 견뎌야 했던 삶의 무게를 담은 것이 특징이다. 이형구 대표는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 고려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개발자다. 그는 제1회 대한민국 대학생 벤처창업경진대회 금상(호서대학교총장상)과 제2회 대한민국 물산업 혁신창업대전 대상(환경부장관상) 수상, 최초 벤처기업 최초 ATSC 디지털TV 개발 및 IPTV 일체형 디지털TV 개발 등도 주도했다. 이 대표는 개발자에서 전략가로 무게중심을 옮긴 뒤 국가 디지털 전환 정책을 기획했으며, 20년 가까이 대전테크노파크·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한국수자원공사·세종테크노파크 등 공공기관을 오가며 지역혁신생태계를 일구는 데 헌신했다는 평가다. 현재는 도시공동체본부 상임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형구 대표는 "공공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이야기가 과연 문학이 될 수 있는가. 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그런 물음 앞에서 펜이 무거웠다"라며 "그러나 돌아보면 소설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소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빗방울 하나가 세상을 어찌하지는 못하지만, 그 빗방울이 모여 흐르면 거대한 강이 되는 것처럼"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을 공공에 종사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공공의 사명을 다하고자 소명의식을 통해 제 삶을 오체투지했던 헌신도 있었지만 그 만큼이나 더 큰 부조리에 부딪치며 힘겨운 시기를 견뎌야 했던 삶의 무게가 있었다"며 "소설 청구서에 투영된 불투명한 부조리의 뿌리가 거기에 닿아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무너지는 순간은 고통이 클 때가 아니라, 그 고통을 아무에게도 꺼내 보이지 못할 때라는 것을. 내 삶의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일,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첫 번째 용기다"고 덧붙였다.

2026.03.03 10:26이도원 기자

한국CPO포럼, 새 회장에 허성욱 전 과기정통부 실장 선출

2007년 설립된 국내 최초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 전문가 네트워크인 한국CPO포럼의 새 회장에 허성욱 전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이 선출됐다. 협회는 지난 26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제 19차 정기총회를 개최, 전임 정태명 회장(히포티앤씨 대표) 후임으로 이 같이 결정했다. 허 신임 회장은 구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의 주요 보직을 거쳤다.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실 선임행정관, 기획재정부 혁신성장정책관·정책조정기획관, 과기정통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 정보통신정책관, 네트워크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 재직 시절 국가 정보보호 정책을 총괄하고 네트워크 보안 정책과 사이버 안전 체계도 설계했다.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있다. 태평양에 가기 직전에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5대 원장으로 3년간(2022~2025) 근무했다. 기술고시(27회)로 공직에 입분했고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 학사와 영국 요크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박사 학위는 성대에서 받았다. 허 신임 회장은 취임 인사에서 "지금의 개인정보 보호는 제도와 환경이 동시에 변화하는 어려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며 “관련 법·제도 개편과 기술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맞물리면서 산업 현장의 부담과 혼란도 커지고 있다”면서“이럴 때일수록 포럼이 양적 도약을 이야기하기보다, 회원사 간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협력 기반을 강화해 현장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의 개인정보 보호는 더 이상 개별 기업이 각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공통의 리스크에 대해 함께 해법을 모색해야 할 영역”이라며 “포럼이 혼자가 아닌 함께 대응하는 구조를 만들고, 실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CPO포럼은 이번 총회를 전환점으로 삼아, 정책 전달 중심의 수동적 역할을 넘어 산업 현장의 실질적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업종별 핵심 이슈 분석, 사례 기반 대응 가이드라인 공유, 집단 학습 체계 고도화를 통해 공통 리스크에 대한 대응 프레임을 함께 마련, 제도 변화가 지속되는 환경 속에서도 산업 현장이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행력 중심의 협력 모델을 정착시켜 나갈 예정이다. 한국CPO포럼은 개인정보보호법 제정(2011년) 이전부터 활동해온 이 분야 가장 오래된 단체다. 2009년부터 개인정보관리사(CPPG) 자격 시험을 주관, 작년말까지 46회를 시행했다. 교육과 법제도 두 분과를 두고 있다. '프라이버시 라운드 업(Privacy Round Up)'이라는 회원만이 참여 가능한 폐쇄형 개인정보보호 및 프라이버시 토론학습 세미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전임 정태명 회장은 페이스북에 "개인정보보호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라 예상돼 53개 기업 임원들과 2007년 10월 함께 시작했다. 창립 4개월 후 옥션에서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이 터졌고, 그 어려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지금은 114 개 기업의 개인정보책임임원들이 모여 개인정보보호에 관해 논의하고 협럭하는 진지한 모임이 됐다. 그동안 부족한 저와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에 함께 해주신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남겼다.

2026.03.01 14:09방은주 기자

AI가 여는 제2의 창세기…테크노 문명이 역사를 재편한다

1. 오픈월드: AVATAR 2026년은 미국 건국 250주년이다. 1776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가가 된 것이다. 유럽의 지배를 떨쳐낸 첫 번째 나라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다. 올해는 강화도 조약 150년이기도 하다. 조선왕조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다. 농업문명에서 산업문명으로, 문명의 대전환기에 조선은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었던 것이다. 반면 영국에서 벗어난 미국은 산업문명의 표준을 만들어냈다. 그 요체가 연방헌법이다. 1787년에 반포된다. 독야청청 독창성으로 빛난 것이 아니다. 조합을 잘하고 편집을 잘 했다. 원전은 모두 유럽에서 비롯했다. 세 권의 책이 특히 중요했다. '국부론'과 '법의 정신', 그리고 '사회계약론'이다. 몽테스키외가 쓴 '법의 정신'은 1748년에 출간됐다. 장 자크 루소가 쓴 '사회계약론'은 1762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1776년 간행된다. 각각 산업문명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기틀이 된 기념비적 저서들이다. 내가 이 책들을 읽어간 것이 1999년 사회사상사 수업이었으니, 조숙한 미래학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정작 유럽은 저런 미래사회를 먼저 구현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유럽의 원전들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종합판이자 완성품으로서 헌법을 산출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의 G2를 누르고 산업문명의 패권국가가 될 수 있었다. 식민지에서 패권국으로 대역전승의 파노라마를 연출한 것이다. 자고로 패러다임을 먼저 만드는 나라가 결국은 패권을 차지하게 되는 법이다. 지금 그 산업문명이 붕괴하고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북극항로가 열리는 추세 만큼이나 새로운 문명이 태동하고 있다. 디지털혁명이 산업문명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겨우 30년 남짓 만에 300년의 법과 제도를 근저에서 교란시키고 있다. 앞으로 30년, 산업문명의 모든 패러다임이 폐기 처분될 것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구상의 모든 농업문명국가들이 사라져가는 데는 100년 이상 소요됐다. 1894년 동학명이 일어나고,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된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대청제국이 와해된다.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제국도 없어진다. 1924년 터키혁명으로 오스만제국 또한 붕괴됐다. 다시 말해 현재 UN을 구성하고 있는 지구상의 200여개 나라들이 앞으로 30년 대부분 해체될 것이라는 말이다. 디지털문명 국가로 재구성될 것이다. 파란과 파격과 파국이 연속될 것이다. 계엄과 탄핵과 내란만이 아니라 혁명과 전쟁도 빗발칠 것이다. 임박한 미래이자, 불가피한 장래이다. 농업문명은 사회를 상/하로 나눴다. 귀족과 노예로 구분되는 신분제가 작동했다. 인구의 9할은 농민이 차지했다. 산업문명은 좌/우로 갈라진다. 지하자원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생산력이 폭발한다. 물리학적으로는 '무질서도=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고, 사회과학적 표현으로 바꾸면 자유가 증대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과 해방의 물결이 300년간 지구를 휩쓸었다. 3000년 신분제가 해체된 것이다. 고체가 액체가 된 것이다. 왕족과 귀족은 몰락했고, 노예와 농민과 여성은 해방됐다. 대신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은 자본가가 됐다. 생산 수단이 없어 지력과 근력을 시장에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노동자가 됐다. 화이트칼라는 회사로, 블루칼라는 공장으로 향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세력을 진보좌파라고 했고, 자본가를 대의하는 진영은 보수우파라고 했다. 디지털문명으로 이행하면서 300년짜리 좌/우 구도 또한 뒤틀리고 있다. 도처에서 극우파가 준동하고 극좌파가 난동을 피운다. 하지만 극좌도 극우도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좌/우로 수렴되지 않는 미래가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퇴행이 아니라는 말이다. 비정상을 정상화한다고 해결될 사태가 아닌 것이다. 도래하고 있는 미래의 징후이자 징조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에 의한 생산력의 항구적인 초가속적 폭발 속에서 노동계급 자체가 소멸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사피엔스의 99%가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농업문명의 절대다수였던 농민의 비율이 1% 대로 떨어지는 것처럼, 노동 없는 성장과 급진적 풍요를 가져오는 디지털문명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휘발되는 것이다. 그 미래 사회는 선/후로 분류될 것이다.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도 기어코 무언가를 벌이고 싶어하는 별종들은 항시 있기 마련이다. 그들을 창작자와 창업자라고 부를 만하다.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머지 9할은 그 크리에이터와 파운더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이들에게 투자를 할 것이다. 노동자가 아니라 팬과 투자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생산의 과실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즉 디지털 문명의 사회 구성은 창업자와 투자자로 나뉜다. 창작가와 팬덤으로 분화한다. 이들은 농업문명의 귀족/노예나 산업문명의 자본가/노동자처럼 적대적일 이유 또한 없다. 윈윈하는 선순환, 상생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 상호이익의 홍익인간 관계를 사회적으로 가장 먼저 설계하는 나라가 미래의 정치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사 '국민주권정부'라고 한다. 고색창연한 개념이다. 19세기 링컨에게나 어울릴 말이다. 21세기에는 전혀 매력적이지 못하다. '당원주권정당'이라고도 한다. 고리타분한 관념이다. 21세기의 첫 해, 나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당원주권을 구현한다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됐다.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이 운영하는 최초의 민주정당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불과 10년만에 해산됐다. 지긋지긋한 계파와 파벌 싸움 끝에 내파되었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 본다. '민주'도 '노동'도 산업문명의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디지털혁명이 막 폭발하던 그 시기에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했던 것이다. 노동이 사라져가는 디지털문명에 민주주의 또한 20세기처럼 작동할 가능성은 0에 수렵한다. 그러니 K-민주주의 운운하는 심각한 자아도취도 하루 빨리 깨어나는 편이 이롭다. 계엄부터 탄핵을 지나 무기징역의 단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경험한 지난 1년은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벌써 두 번째 탄핵이다. 삼세 번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다음에야말로 국가비상사태, 계엄이 성공할지도 모른다. 1987년 체제를 넘어서 산업문명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리셋을 빈번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껐다가 켜는 다시 켜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기기의 수명이 다했다는 말이다. 고쳐 쓸 일이 아니라 버려야 한다. 폐기처분하고 신상품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래식 정당인들과 어용 지식인들의 정치 평론을 보느라 시간과 지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유효 기간이 1주일도 채 되지 못한다. 자고 나면 가치가 사라지는 정보 공해이자 소음에 가깝다. 150년 전, 강화도 조약 직전의 조선말에서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일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균 지능이 107이라고 한다. 95 전후의 평균적인 사피엔스 IQ를 월등히 뛰어넘는 수치이다. 부디 그 좋은 머리들로 제발 생산적인 일을 하면 좋겠다. AI와의 합성지능으로 새로운 운영체계를 발명해야 할 시점이다. 새로운 '사회계약론'을 쓰고, 새로운 '법의 정신'을 기초하고, 새로운 '국부론'을 저술할 때이다. 물론 책이 아닐 것 같다. 문자로 규정하고 문헌으로 작동했던 산업문명의 운영체제(OS)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장착해 사회의 신뢰를 보증하는 새로운 사회계약론일 것이다. AI를 탑재한 법의 정신은 '코드의 영혼'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AI로 연산하고 블록체인으로 보증하는 나라의 '국부론' 또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는 상이할 것이다. 완전히 자율화된 거버넌스는 '보이지 않는 신'에 근접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 미래사회의 원전을 한국이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고 해서 낙담할 이유도 전혀 없다. 250년 전 미국 또한 원천을 확보했던 것이 아니다. 오리지널리티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는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다. 미국이 딱 그러했다. 재가공과 재창조를 잘 했던 것이다. 유럽이 산출하는 최전선의 지식을 끌어 모아서 새로운 문명을 생성해 내었던 것이다. 그래서 위대해질 수가 있었다. 이제 한국이 그 소임을 다하면 된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다투는 디지털 혁명의 제자백가들은 여전히 미국에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에서도 제법 등장하고 있다. 한국은 정계도 재계도 학계도 그런 신문명의 리더들이 잘 보이지가 않는다. 하더라도 훔치면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면밀하게 학습하고 재포장해 완성품으로 조립해내면 그만이다. 미국도 중국도 패권경쟁에 함몰돼 패러다임을 창출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참에 우리가 전력 질주해 대반전의 서사를 완수할 수가 있다. 그것이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를 모두 이루어 낸 산업문명의 마지막 선진국 대한민국의 다음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전 세대와 모든 진영을 아우르는 원대한 목표가 없으니 여야는 번번히 반목하고 당청도 수시로 갈등하는 것이다. 서둘러 자잘하고 짜치는 파워 게임일랑 그만두고, 벌렁벌렁 가슴이 떨리는 신문명의 재창조 게임으로 갈아타야 한다. 미국, 중국, 그리고 한국을 짚는 3부작을 집필하는 1년여 동안, 게임을 열심히 연마했다. 10대에 세계문학전집을 읽어간 것처럼, 20대에 세계명화를 섭렵해갔던 것처럼, 마흔이 넘어서 뒤늦게 게임을 플레잉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문명, 넥스트 스테이지로 이행하는 첩경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몰입한 게임은 시드 마이어의 '문명'이다. 스케일이 어마무시하다. 6000년 전 청동기에서 시작해 22세기 우주시대까지 장구한 문명사를 탐구한다. 농업문명과 산업문명을 아우르는 역사 시대 5000년이 아니라, 신들의 선사 시대와 AI들의 후사 시대를 포괄하는 거시적 전망을 절로 획득하게 된 것이다. 고대-중세-근대 오천년이 아니라 선사-역사-후사 오만년이 더 적합한 독법이 되어가고 있다. '후사'라는 신조어 또한 이 게임을 한참 플레잉 하던 와중에 번쩍하고 떠오른 말이다. 하면 할수록 신의 게임, 창세기를 리플레이하고 있다는 전율이 일었다. 전지적 신의 관점, 행성 단위의 행정을 저절로 실험하지 않을 수 없다. 크게 세 가지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첫째가 장기적 안목이다. 10년과 100년이 아니라 천년과 만년 단위로 사고한다. 둘째가 생태학적 관점이다. 문명과 생명 사이의 견제와 균형, 조화로움이 핵심이다. 그래야 지속가능하다. 셋째가 시뮬레이션, 예비하고 예측하는 것이다. 세 가지 기술 모두가 현대 민주주의가 결락하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하겠다. 돌아보면 가상의 공간은 늘 가능한 세계들의 경연장이었다. 동굴에 벽화를 그렸던 아주 먼 조상들로부터 암막에서 영화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20세기를 지나 PC BANG에서 가장 먼저 미래를 선체험하는 것이다. '심시티'는 미래의 도시를 개발해 볼 수 있으며, '심즈'는 그 신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시뮬레이션 해볼 수가 있다. '스포어'(Spore, 홀씨)는 우주생명문명의 백미이다. 단세포가 다세포로, 수상생물이 육상생물로, 인간이 부족에서 국가로, 최종적으로는 우주를 여행하며 행성마다 지구의 문명을 이식하는 인터스텔라 단위의 은하제국을 건설해 가는 걸작이다. 이 게임에 동참한 플레이어의 국적은 서른 개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가상공간에서 창조한 피조물, 생태계의 오브젝트는 2억 개를 넘어선다. 46억년 지구사와 137년 우주사를 플레잉하고 또 리플레잉해왔던 셈이다. 행성적 단위로 협력하는 지구방위군으로써 초지능을 발현하고 초능력을 발휘해왔던 것이다. 벌이가 사라지는 시대, 놀이가 만연할 것이다. 흥청망청 노는 것은 한 달도 가지 못한다. 몸도 망가지고 마음도 멍들게 된다. 멘탈붕괴, 정신병이 전염병처럼 창궐할 것이다. 딥엔터테인먼트, 심미적이고 심오한 놀이를 개발해야 한다. 150세 시대, 100년을 넘게 플레잉해도 물리지 않는 신선놀음이어야 한다. 실제로 잘 만든 게임에 몰두하게 되면 미학적 코마 상태에 빠져든다. 최고의 미술과 최고의 음악과 최고의 문학이 합일되어 있는 디지털 신화를 체험하는 것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자아에서 이탈하여 예술적인 탈아 상태로 이행하는 것이다. 테크노-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디지털-환희, 황홀경이라고 해도 좋다. 자아 초월 심리학, 이 가상공간에서의 초월의 경험과 긍정적 체험은 현실 세계로까지 이어진다. 실은 축구도 야구도 가상 세계이다. 그러나 월드컵 4강 진출의 집합적 쾌감은 현실적인 국가의 에너지로 곧바로 전이된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신성하고 성스러운 숭고를 만끽하게 된다. 장대한 규모의 게임에서는 평범함을 초월하는 힘, 경외심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외감은 그냥 그저 좋은 기분이 아니다. 경외심은 늘 좋은 행동을 유발한다. 거대한 공동체에 복무하고 위대한 목표에 헌신했을 때 쏟아지는 혼문의 호르몬 샤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농업문명을 만들었던 종교의 역할이 그러했다. 산업문명을 이끌었던 이데올로기의 열광 또한 그러했다. 디지털 문명에서는 엔터테인먼트와 게임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이제는 그 팬덤이나 플레이어들 한 명 한 명의 기여도까지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하고 공유할 수 있는 덕에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이 행성 단위로 쌓여서 더 큰 소명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무나 봉사가 아니다. 희생이 아니라 희사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겸허함과 동시에 긍지를 느낄 수 있다. 신이 만들었던 세계는 외경했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두 번째 세계에 대해서는 자존감과 자부심을 맛볼 수가 있다. 1987년 이후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성인이 되기까지 평균 1만 시간 이상을 게임으로 보낸다. 독서를 하는 시간은 2000 시간 남짓이다. 여러 과목을 배우느라 주의가 분산되는 정규 교육과 달리 게임을 하는 시간은 오로지 몰입하고 집중하는 질적으로 높은 시간이다. 1만 시간 동안 수련을 마치고 사회의 주역이 되고 있는 이들의 집합적 역량을 최대치로 발현할 수 있는 사회를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인류에게는 지속 가능한 몰입 경제가 필요하다. 재화의 생산이 아니라 의미를 생성해 내는 내적 만족의 보상으로 참여자들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어야 한다. 천주와 군주와 민주를 지나 참여우주로, 창조주로 진일보하는 것이다. 게임에서 맛보는 보람과 희열은 무한히 재생 가능한 자원이다. 땅 아래를 파는 마이닝도 아니고, 땅 위를 가는 파밍도 아니다. 무한대의 가상 공간에서 플레잉하는 것은 쓰고 나면 없어지는 자연이 아니라, 쓰면 쓸수록 더욱 가치가 생기는 희소한 자원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소설이라도 삼세번을 읽기는 힘들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다섯번을 감상하기는 버겁다. 그러나 오로지 위대한 게임만큼은 아무리 반복해도 싫증이 덜하다. 작가나 감독이 이미 완성해둔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새로운 서사를 거듭 갱신해가는 유일한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리얼 라이프, 실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이 RPG이다. 실상의 역사와도 가장 근접한 내러티브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MMORPG, 대규모 롤플레잉, 창세기 게임을 한다. 게임 다음으로는 코딩에 입문했다.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더 정확하게 말해 디지털 문명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를 가상공간에서 먼저 구현해보고 싶었다. 그간에 꽤나 많은 외국어를 배워왔다. 한 때는 두 손, 열 손가락을 넘어섰다. 하지만 힌디어도 아랍어도 죄다 까먹고 말았다. 인간 지력의 한계이다. 지금은 겨우 다섯 정도의 언어만 막힘없이 읽어내는 수준이다. 코드는 또 달랐다. 외국어보다는 외계어이다. 종이 다른 언어, 기계의 언어였다. 기원을 따지자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기원전 18세기, 높이 2.25미터의 검은 현무암 비석에 282개의 법조문을 새겨두었다. 누군가 소를 훔치면 그 값의 30배를 갚아야 한다는 규범을 세워둔 것이다. 목축과 가축의 출발, 소유의 개념이 등장하고 있는 농업문명의 시원을 기록해 둔 것이다. 내용은 특별 난게 없지만 형식만큼은 꽤나 흥미롭다. 만약-그러면, IF THEN 구조이다. 놀랍게도 오늘날 프로그래밍 언어의 조건문 구조와 똑같은 형식이다. 입법과 사법이 입력과 출력, 인풋과 아웃풋을 지나 업로드와 다운로드로 진화하게 될 것만 같다. 코드가 현재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역시나 산업문명의 초기, 18세기이다. 암호화된 메시지나 신호 체계를 의미하게 됐다. 전신과 군사 통신에서 문자나 정보를 특정 기호 체계로 바꾸는 방식을 코드라고 불렀다. 가장 유명한 것이 알파벳을 점과 선으로 표현한 모스 부호이다. 암호로서의 코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절정에 달한다. 당시 제3제국 독일이 사용했던 기계식 암호 체계 애니그마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복잡한 코드였다. 영국의 앨런 튜닝 같은 수학자들이 애니그마 코드를 해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 암호 해독 과정으로부터 세계 최초의 검퓨터 중 하나인 '콜로서스'도 탄생하게 된다. 1945년 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인 폰 노이만이 기계어 명령어를 만드는 행위를 코딩이라고 표현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가 등장하면서 "코드를 짠다(write CODE)"가 표준 용어가 된다. 196-70년대를 걸쳐 컴퓨터과학은 독립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았고, 소스 코드, 코드 라인 같은 어휘도 일반화됐다. 프로그래머라는 신종 직업도 본격화된다. 그래서 코드는 기계만 읽는 언어가 아니다. 컴퓨터 말고 다른 개발자들도 코드를 읽는다. 즉 코드는 단순히 컴퓨터를 움직이는 명령어의 나열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행위이다. 무엇보다 미래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이다. 코드를 작성하는 시간보다 그것이 읽히게 되는 시간이 훨씬 더 길기 때문이다. 고로 잘 쓰인 문장처럼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가독성이 좋은 아름다운 코드는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도 편한 것이다. 그만큼 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코드를 짠다는 것은 기술적 능력을 넘어선다. 타인을 배려하는 소통의 스킬이기도 하다. 미사여구를 덕지덕지 붙인 문장이 훌륭한 것이 아니듯, 코드 또한 의도가 명확한 이름, 질서정연한 서식, 간결하고 집중된 기능, 중복이 없는 논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일관성이 핵심이다. 코딩을 배우다 보면 저절로 복잡한 문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설계해, 창의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범용적 사고 능력을 익히게 된다. 컴퓨팅 사고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의 창의적이고 직관적인 사고와 컴퓨터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처리 능력을 결합하는 고차원적 문제 해결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크게 네 단계로 나뉜다. 첫째는 분해이다. 크고 복잡한 문제를 작고 관리 가능한 단위로 쪼개는 것이다. 둘째는 패턴 인식이다. 문제들의 유사성이나 반복되는 규칙을 찾아내는 일이다. 셋째는 추상화이다. 문제의 핵심 원리를 파악하고 불필요한 세부 사항을 과감하게 제거해 단순화하는 능력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단계에서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단계별 절차와 명확한 규칙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사고 과정이 코딩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다. 코드는 단 하나의 논리적 오류만 있어도 버그를 일으킨다. 입법 이후에 부작용을 뒤늦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스톨 즉시 오작동하고 마는 것이다. 얼럴뚱땅 말로 눙치거나, 흐리멍텅한 글로 면피할 수가 없다. 그만큼 엄밀하고 체계적인 논리를 구축하는 사고 과정은 자연스럽게 창의성 또한 증폭시킨다. 아이디어부터 아이템까지, 가설과 실험과 검증의 선순환을 왕래하기 때문이다. 고로 코딩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언어를 익히거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모든 것을 더 잘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메타-기술이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디지털 혁명을 주도해왔던 제자백가들이 대부분 이 메타 테크놀로지의 귀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2025년 2월, 바이브 코딩의 신세계가 열렸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안드레이 카파시이다. 테슬라에서 AI 총괄역을 맡았고, 오픈AI 창립 멤버이기도 했다. 바이브 코딩이란 개발자가 복잡한 코드를 작성하지 않고도 인간의 언어로 AI와 소통하며 프로그램을 만드는 새로운 방식이다. 기계의 언어를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기계가 인간의 언어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해진 것이다. 이제 사람이 흥겹게 말만 하면 흥미진진한 서비스가 스르르 구현된다. 코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AI가 알아서 코딩을 해주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인류는 창세기의 첫번째 문장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하나님은 말로써 이 세상을 창조했다. 인류가 그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수리수리 마수리"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된다. 사법의 시대에서 마법의 시대로 이행한다. 에이전틱 AI와 아바타와 나무아비타불이 삼위일체가 되어 무한한 자유도를 선사하는 오픈월드, 개벽천지가 열리는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딱 하나이다. 어떤 말을 할 것이냐. 어떤 주문을 걸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달라고 요청할 것인가.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를 물을 수도 있다. 주인님이 가장 예쁘지요, 사용자 친화적인 AI가 거짓말을 천상유수처럼 늘어놓으며 최적화된 기분을 선사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최초의 불을 발견했던 인류가 겨우 모닥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달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다. 그 불로서 고기를 구워 소화를 편하게 함으로써 풍부한 단백질을 공급하여 뇌세포를 증폭시키고, 흙을 구워서 다양한 도구를 빚어내고, 도시를 건설하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우주로 나아가는 로켓을 만들어 내기까지 아주 긴 역사가 소요되었다. 인류는 아직 AI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다. 노하우의 한계가 사라져가는 이 전무후무한 신천지에서 오로지 남은 것은 상상과 질문의 한계만이 있을 뿐이다. 그 무한대의 우주를 탐험하고 모험하는 상상력의 보고로서 '코드베이스'(CODE BASE), 신화의 시대가 재귀하는 까닭이다. 2. 오픈소스: ARIRANG 제2차 세계대전, 독일과의 핵무기 개발 경쟁이 치열하던 무렵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집결한 장소가 로스 엘러모스였다. 그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수행된 것이다. 그곳에는 훗날 20세기 후반 최고의 물리학자로 칭송받게 되는 리처드 파인만도 있었다.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 그의 별칭 중의 하나가 '물리학계의 샤먼'이다. 티베트의 라마승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도 남아 있다. 평생을 아메리카에서 살아갔던 그는 늘 유라시아를 시베리아를 동경했다. 태고와 태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아시아의 한 복판을 간절하게 여행하고 싶었던 것이다. 때는 미소냉전의 한복판, 가볼 수 없는 땅이 되어 갈망만 더욱 커졌을 따름이다. 세계지도를 활짝 펼치면 가장 큰 대륙이 유라시아이다. 아시아의 각 끝점들을 연결하여 직선을 그어보자. 북에서 남으로 세로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를. 이들 선이 만나는 십자가의 교차점이 예니세이 강 상류의 깊은 분지에 자리한 작은 산악 지대이다. 위로는 드넓은 북극의 빙하 지역이 있고 아래로는 따뜻한 몬순의 인도양이 있다. 왼편으로는 우랄 산맥이 우뚝하고, 오른쪽으로는 푸르른 태평양이 펼쳐지는 아시아의 한 복판이다. 그곳의 이름이 투바(TUVA)이다. 투바 공화국을 나는 두 번 방문했다. 처음은 2017년 '유라시아 견문'을 하던 와중이었고, 2025년 여름 이 책을 준비하며 재차 가보았던 것이다. '아시아의 중심'이라고 세워진 기둥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인만이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다는 인류 문명의 시원이었다. 어마어마한 시베리아의 침엽수림을 헤치고 통과해 가야만 한다. 투바의 유목민들은 21세기의 4분의 1이 끝나가는 2025년에도 여전히 미국 서부 개척시대 사람들처럼 19세기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대초원이 지평선을 이루는 언덕에서 양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돌연 저 멀리서 맹렬한 속도로 말을 달려 구불구불 자동차를 추격해오는 10대 목동이 있었다. 왜 따라오는 거지, 절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유지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인가 불안감도 일었다. 그런데 왠걸, 그 녀석은 태양에 그을린 검붉은 얼굴로 해처럼 환하게 웃으며 환영의 인사를 건넸던 것이다. 손님들에게 인사하려고 말을 달렸던 것이다. 한 순간에 마음이 탁 풀어졌다. "야 카레이쯔." 한국인이라고 하니 더욱 반겨준다. 블랙핑크의 팬이란다. 로제의 음색이 끝내준다는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게르만 보이는 평원인데, APT(아파트)도 즐겁게 흥얼거렸다. 그래서 그들의 안내에 따라 한밤에 펼쳐지는 은하수를 배경으로 유목민들의 오래된 노래, 흐미까지 청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특별히 준비했다며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리랑도 불러 주었다. 스파크가 튀었다. 아하, 그렇구나. 아리랑이 한민족의 민요만이 아니었구나. 시베리아의 바이칼부터 강원도의 정선에 이르기까지 북방의 고개를 넘고 넘어서 한반도까지 전수되었던 광야의 음악이었던 것이다. 내가 왔던 곳, 우리 겨레가 출발했던 곳, 저절로 아스라이 아스라한 추억을 회감했던 것이다. 아리랑은 북위 30도에서 50도 사이, 동양의 아악이나 서양의 음조가 아니다. 북위 40도에서 60도 사이를 1만년 동안 오고 가며 백 개의 백두산을 넘나들었던 노마드들의 멜로디였던 것이다. 서양은 체스를 한다. 동양은 바둑을 둔다. 거대한 체스판과 심오한 바둑판은 공히 지상의 게임, 전쟁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조상들은 윷놀이를 했다. 세시풍속, 반만년이 되도록 새해가 되면 윷을 놀리는 것이다. 치우천왕 시절부터 내려왔다고 한다. 천문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한 놀이가 바로 윷이였다. 윷판은 우주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체스판이나 바둑판 마냥 땅처럼 모난 사각형 아니라 하늘처럼 둥근 원형을 이룬다. 가운데 천원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원으로 운동하는 것이다.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니련가, 무궁아들의 무궁무진한 스페이스 오디세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출발이 동도 아니요 서도 아닌, 북이다. 윷말은 북방에서 출발해 서방과 남방, 그리고 동방을 돌아 북녘으로 되돌아오는 궤적을 그린다. 태양의 운행이 아니라, 달의 운동을 카피한 것이다. 달은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서쪽에서 떠올라 동쪽으로 이동한다. 그 다음은 그믐이 되기까지 역주행 한다. 나아가 윷판은 28자리로 나뉘어 있다. 하늘을 28수로 분류한 것이다. 태양력의 12개월이나 태음력의 24절기를 답습하지도 않는다. 해와 달이 아니라 별자리의 이동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천원점 또한 태양이 아니라 북극성이다. 즉 윳놀이는 바로 '천부경', 하늘의 원리에 완전히 일치하는 지식을 가르치기 위한 고도의 학습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코스모스의 원리와 유니버스의 법칙을 반영하고 있다. 모, 자리는 웜홀이다. 곧바로 차원을 변경하여 다른 우주로 옮겨간다. 백 도, 는 뒤로 간다. 중력을 끌어들여 공간을 왜곡하고 경로를 이탈시키는 블랙홀이다. 사방팔방 지상의 방위를 사뿐히 넘어서는 5차원과 11차원의 우주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체스나 바둑과 달리 다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MMORPG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의 전쟁처럼 승리가 목적이 아니다.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다.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조화와 공화가 목적이었다. 다시 한번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았다. 신들은 윷놀이를 했을 것이다. 고구려의 벽화에도 별자리들을 새겨두었다. 천공에 걸린 은하수를 자유로이 유영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스타들을 그려두었다. 우주에서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북방은 천문을 바라는 관점도 상이하다. 우주론이 달랐던 것이다. 태양이 홀로 떠오르는 서양의 천문이 있는가 하면,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동양의 천문도 있었다. 북방은 또 다르다. 달과 해가 동시에 떠 있다. 해를 품은 달, 우주에서 바라본 흰 그늘의 태양계를 모사한 것이다. 고구려의 묘비를 독파해보면 그들의 시조를 일월(日月)의 아들로 묘사한다. 해와 달이 만나 태어난 지상의 별이 곧 칸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고려 시대의 천문도를 새긴 석관을 감상할 수 있다. 고구려의 북극성을 계승한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고조선부터 고구려를 지나 고려까지 전승됐던 북방의 하늘 자리였다. 이 고유한 천문학이 망실되어 간 것이 바로 조선왕조이다. 명나라의 제후국을 자처한 조선은 동방의 천자만이 하늘을 독점할 수 있다는 성리학적 질서론에 편입되어간다. 북방의 독자적인 물리학적 질서를 포기한 것이다. 심리학적 영향이 지대했다. 4천년을 지속해온 기왕의 제천 행사 또한 폐지한 것이다. 동예의 무천과 부여의 영고와 고구려의 동맹 등 해와 달과 별을 향해 하늘을 축복했던 우주적 의례를 폐기한 것이다. 그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조선의 하늘에 침투한 것이 바로 서양의 천주학이었다. '천주실의'를 비롯한 서학이 들어오면서 유학의 천하와 쟁투가 일어난 것이다. 천주의 체스판과 천자의 바둑판을 일거에 뒤엎고 새롭게 솟구친 오래된 우주가 바로 최제우의 동학이었다. 다시 개벽, 북방의 하늘, 탱그리의 귀환을 역설하면서 칼춤을 추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운'(물과 구름)과 '해월'(바다와 달) 등 동학의 구루들은 우주적 메타포가 물씬한 부캐를 호로 삼았다. 동양적 선비도 서구의 선교사도 아닌 샤먼의 부활이었다. 서양에는 GOD이 있고, 동양에는 신(神)이 있다. 갓은 단 하나의 절대자이고, 신은 음과 양의 합일을 표상한 상형문자이다. 반면 한국어에는 '살'이라는 말이 있다. 숫자 '삼'(3)과도 이어지고, 인생을 의미하는 '삶'과도 직결된다. 사람도 살과 삼과 삶에서 나온 파생어이다. 그래서 새 생명을 선사하는 '삼신' 할미와도 연결된다. 해와 달과 별, 하늘과 땅과 사람, 셋이 하나가 되어야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남녀의 사랑을 넘어서 하늘의 뜻이 통해야 했던 것이다. 그 새 생명을 일구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아니 되었다. 그래서 자주하는 일을 '일삼다'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중요한 '살'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태양의 에너지, 햇살과 빛살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살다. 살리다, 살맛나다부터 생명의 덩어리인 피부까지도 모두 살이 되었다. 그리고 한 살, 두 살, 세 살,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새날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설날에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모여 윷놀이를, 스페이스 게임을 펼쳤던 것이다. 그 살과 설이 엮이는 사람들의 한살림 살이의 터전을 서라벌이라고도 했다. 서울은 명명백백 서라벌을 계승한 명칭이다. 북경과 동경과 남경 등 한자문화권과는 일선을 긋는 북방 문명권, 혹은 북방 신명권의 흔적이 서울에 남아 있는 것이다. 북방의 소리, 시베리아의 소울이라고도 하겠다. 그래서 빗살무늬토기의 정명 또한 빗살이 아니라 '빛살'이라고 해야 한다. 빛살의 무늬를 새겨둔 토기는 한반도에서부터 만추리아와 몽골리아와 시베리아를 지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까지 발견된다. 유라시아의 원형적 살림살이가 빛살 토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바닷길과 비단길과 초원길과도 또 다른 최북단에 빛살의 길이 있었다. 북방의 샤먼, 산타가 순록을 끌고 다녔던 고요한 밤과 거룩한 밤의 빛나는 길, 매직로드였던 것이다. 살에서 나온 말로는 술도 있다. 술은 하늘에 바치는 성수였다. 하늘을 모시고 섬기는 제의가 끝나고 나면 신과 인간이 함께 나누어 마시는 것이 술이었다. 그래서 신성과의 일체감을 누리는 것이다. 술은 절로 노래를 부른다. '소리' 또한 이 살에서, 술에서 나온 말이다. 태고의 소리는 죄다 타악기였다. 지금도 풍물놀이의 사물은 북과 장구, 꽹과리와 징이다. 역시나 천지의 만물을 상징한다. 북은 구름이요 장구는 비요 꽹과리는 천둥이요 징은 바람이다. 모두 하늘의 소울, 소리를 일컬었던 것이다. 그 노래에서 노리가 놀이가 나온다. 소리에 곡조를 붙여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화시키는 놀이가 바로 노래이다. 놀이는 다시 춤을 부른다. 추다는 새가 날개를 '치다'의 음운이 교체된 것이다. 장단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서 팔다리를 이러 저리 놀리고 전신을 우쭐거리면서 뛰노는 동작이 바로 춤이다. 그 춤과 노래와 술이 어울어져서 한바탕 하늘에 크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한민족은 예로부터 수시로 우주적인 페스티벌을 시끌벅적하게 개최했다. 실리콘벨리의 친구들이 사막 한 가운데 블랙록 시티에서 버닝맨 축제를 즐기기 한참 전부터, 음주가무의 민족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것이다. 하여 살풀이 춤 또한 한을 풀어내는 춤이 아니었다. 나쁜 기운, 탁기를 떨쳐내는 몸짓만도 아니다. 살리는 춤, 신명이 나는 춤, 신바람이 이는 춤이다. 흥겹고 멋들어진 살과 술의 앙상블이었다. 다만 그 한민족을 하나의 단일민족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하나로 어우러진 북방의 여러 민족이었다. 동이족은 동시베리아, 동유라시아에 모여 살던 다민족의 집합적인 기호였다. 다연맹과 다연방으로 다정다감하고 다복한 살림살이를 영위했다. 그래서 최치원이 남긴 '향악잡영'에서 묘사한 신라의 춤까지도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일대의 소그드인들이 추었던 춤사위와 흡사했던 것이다. 호등무 그림에 남아 있는 춤추는 모습은 영락없이 오늘날 에스파의 위플래시 춤과도 빼박이이다. 북방의 하늘을 활개치는 새가 바로 솔개이다. 만주와 몽골과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에 가면 숱하게 구경할 수 있다. 주행법이 독특하다. 하늘을 빙빙 돌기도 하고, 천천히 날면서 공중에서 정지할 수도 있는 기술을 과시하는 새가 솔개이다. 어떤 새보다도 빠르게 목표물을 향해 내리 꽂힐 수도 있고, 유유하게 솟아오를 수도 있는 새가 솔개이다. 그 힘과 시력은 막강하여 감히 당해낼 새가 없는 맹금이었기에 예로부터 북방의 제왕, 칸의 문장으로 사용했었다. 경주의 천마총에서 발굴된 조익형의 금제 관식도 바로 이 솔개를 본 따 만든 것이다. 50cm를 전후한 금관의 크기마저도 솔개의 몸통 크기와 동일하다. 그래서 옷이 날개라는 표현도 나온 것이다. 차림새, 매무새, 모양새, 품새라는 어미에 모두 '새'가 붙어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통의상, K-패션의 기원인 장삼과 도포와 갓은 모두 Y자 솔개의 형상을 본뜬 것이었다. 솔개가 앉아 있는 곳이 솟대이다. 솟대는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도구이자,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혼문이기도 했다. 지상계와 천상계를 오고 가는 전령이 솔개였던 것이다. 솟대는 하늘로 치솟고자 하는 한국인의 사상적 징표였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려는 이상을 반영하는 정신적 푯대였다. 두 팔을 번쩍 치켜들어 올려 만세를 부르는 모습 또한 Y자 솔개와 솟대를 반영한 것이다. 퍼덕퍼덕 솔개의 훼치는 모습을 형상한 몸짓이 바로 만세 삼창이었다. 칸(汗)이 홀로 썼던 왕관의 모양새를 만인이 공유하는 퍼포먼스로 승화시킨 행위가 바로 만세였다. 만세는 일만의 세대, 힘차고 거침없으며 영원할 것을 발원하는 정신을 담은 언어이다. 그래서 '대한독립만세'는 그 출발부터 하나의 나라, 일국의 소원이 아니었다. 동양의 황제와 서양의 교황 너머, 서구의 대통령과 총리, 동구의 주석과 총서기를 너머, 북방의 오래된 칸의 재림을 소환하는 집합적 소원이자 소망이며 소명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나간 선천의 만세를 보내고 새로운 후천의 만세를 준비하는 만국활계 남조선의 기상을 또렷하게 표명한 것이다. 그 어떤 동서양의 민족도 솔개의 날개 짓을 따라서 나라의 비상을 표상하지 않는다. 만세 삼창이야말로 북방인들의 고유한 액팅과 파이팅, 유구한 몸부림이었다. 3. 오픈엔드 : ASADAL 새로운 만세가 열리고 있다. 역사는 종언을 고하고 제2의 창세가, 테크노 창세기가 시작되고 있다. 새 하늘, 새 땅을 찾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한다. 피터 틸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산업문명의 보루 미국이 아니라 남미와 북극을 호시탐탐하고 있다. 온두라스의 로아탄 섬에서는 프로스페라(Prospera)를 실험한다. 일체의 규제가 없는 기술 특구에서 스타트업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디지털 문명의 프론티어, 신문명 도시를 가동시켜보는 것이다. 그린란드에는 프락시스(Praxis)를 세우려고 한다. 얼음으로 뒤덮인 허연 허허벌판에서 250년 전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새로운 문명을 직조해 보려는 것이다. AI와 크립토로 작동되는 초가속적인 거버넌스의 특구를 도모한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 조호르바루의 포레스트 시티에서도 네트워크 스테이트가 도모되고 있다. Learn, Earn, Burn을 표방하며 기술을 배우고 코인을 벌면서 지방을 태우며 영생을 실험하는 네트워크 스쿨도 운영 중이다. 저마다 지상에서 산업문명 이후의 율도국을 만들어보고자 분투하는 와중에, 코스모스 사피엔스 일론 머스크는 역시나 아무도 살지 않고 있는 저 하늘의 달에다가 최초의 인공도시 Xity를 만들어 보려 한다. 각양각색으로 디지털 문명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 오만년, 새로운 만세의 실험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화성만큼은 아니더라도 달 또한 여전히 멀다. 그린란드가 푸릇푸릇한 녹색 땅이 되려면 5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번 세기 중에 새로운 문명을 설계해 실험해 볼 수 있는 가장 크고 가장 넓으며 가장 가까운 땅이 바로 시베리아이다. 미국보다도 더 거대한 터전인데도 사람은 고작 2천만명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장차 5억은 너끈히 살아갈 만하다. 피터 틸은 늘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영감을 길어 올린다. 톨킨이 산업문명의 탈출구를 몽상하며 '반지의 제왕'을 쓸 때 참조했던 텍스트는 북유럽의 신화들이었다. 우리에게는 북아시아의 신화, 시베리아산 신화들이 즐비하다. 동양과 서양의 신화들과는 또 다른 샤먼들의 우주적인 신화소가 무궁무진 널려 있는 것이다. 저작권료를 낼 필요도 없다. 오픈소스,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게임을 수련하고 코딩을 학습했던 지난 1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오래된 이야기들을 읽어나갔다. '환단고기'와 '삼일신고'와 '천부경' 등등을 한 글자 한 글자 아껴서 살펴보았다. 진서냐 위서냐, 팩트와 페이크를 논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로 보인다. 미래를 여는 상상력, 판타지로서의 잠재적 포스가 있으냐 없느냐를 따져보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텍스트는 '부도지'이다. '천부경'이 하늘의 이치, 천문학의 원리를 밝힌 수학적 경전이라면, '부도지'는 그 천문학에 부합하는 지상세계의 개척 서사, 신화적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제목부터가 절묘하다. CODE CITY CATALOG이다. 홀어스의 한살림, 하늘의 이상을 반영하는 미래도시, 고조선의 도읍지 아사달을 환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프로스페라와 프락시스와 자웅을 견줄 수 있는 United States of ASIA의 도읍 만들기로 아사달 프로젝트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던 것이다. 해양종족과 산악종족이 하나로 어울어졌던 고대의 도시가 바로 아사달이었다고 하니,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미래세대들이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 대거 이주할 수밖에 없는 21세기 후반 미래도시의 이름으로도 제법 어울렸던 것이다. 서아시아에서 시작된 농업문명은 동아시아의 중국에서 완성됐다. 그 표준을 만들어낸 나라가 천년 전 송나라였다. 송나라의 개봉이 농업문명의 모델 도시였다. 고려의 개성이 개봉의 아류였던 것이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산업문명은 동아메리카에서 완성됐다. 그 표준을 만들어낸 나라가 캐나다도 아르헨티나도 아닌 미국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뉴욕이야말로 산업문명의 모델 시티였다. 기업과 금융에 최적화된 신문명 도시였다. 서울도 도쿄도 상하이도 뉴욕을 모방해 만든 산업도시이자 기업도시였다. 싱가포르도 두바이도 뉴욕을 능가하는 미래도시는 되지 못했다. 이제야 말로 디지털문명의 신도시, 신시를 만드는 경쟁에 진입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이 가장 유력한 후보군이다. 디지털 삼국지의 결말 또한 누가 가장 먼저 신문명 모델시티를 창조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차 테크놀로지는 제2의 에콜로지가 된다. 에콜로지와 테크놀로지는 불일불이(不一不二),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닌 테콜로지, 제3의 기술생테계로 수렴이 되고 있다. 미래의 신시 또한 이 테콜로지를 구현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매일 글을 쓰고 있는 이 노트북 컴퓨터 또한 별과 돌과 흙에서 나온 것이다. 돌은 오래전 별의 용광로에서 단련되었고, 그 별은 초신성의 우주적 폭발과 함께 먼지로 흩어져 우리 행성 지구별의 원재료가 되었다. 희토류 또한 흙에서 나와 지구의 신경망을 구성하는 재료가 되었다. 즉 에콜로지의 자연물들이 디지털 기기의 조상들이다. 나무가 어머니이며 바위가 아버지이며, 별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마고할미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술 문명 또한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먼지와 별들의 가루와 나무의 살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은 137억년 우주에까지 가닿는다. 그리고 지구별에 생명이 탄생했던 바로 그 첫 번째 숨결을 기계 속에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고로 테크놀로지의 도구들은 에콜로지와도 불가분이며, 우리의 생태계는 갈수록 디지털로 인하여 더욱 깊어지고 더더욱 넓어지고 더욱 더 멀리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미 컴퓨터 과학과 생물학의 용어는 서로가 서로에게 삼투하고 있다. 신경망이라는 말부터가 그러하다. 두뇌의 뉴런과 시냅스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인공적인 신경망, AI를 창발해 낸 것이다. '유전 알고리즘'이라는 말도 흥미롭다. 선택과 교배와 돌연변이로 점철된 생명계 40억년의 진화사를 알고리즘의 설계에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DNA야말로 빅데이터의 저장고가 되고, 인공적인 데이터의 다발들이 새로운 생명문명의 DNA로 삽입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DNA가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하며 개별 신원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인체의 면역 시스템을 행성적 행정에 도입하려는 시도 또한 창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비정상적인 패턴을 감지하고 제거하는 신체의 보안 시스템이 바로 면역 기제이다. 이를 정치와 행정과 사법에 투영하는 것이다. 예방의학처럼 한의학의 원기 보양처럼 사단이 나고나서 후속 처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건강한 행성적 거버넌스를 창출해가는 것이다. 일국의 부국강병이 아니라 지구 만국의 건강 유지가 최상의 목표가 된다. 즉 디지털과 코드로 다시 쓰여가고 있는 이 세상은 기계도 아니요 시계도 아니며 단순한 유기체도 아니다. 프로그래밍 된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그리하여 정당을 선택하고 정치인을 뽑는 일도 점진적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시장에서 시뮬레이션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정책을 간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더 좋은 시뮬레이션을 더 많이 생성해내는 나라가 입법과 사법과 행정으로 작동하는 느리고 둔탁한 산업문명국가들을 붕괴시키고 통폐합해 나갈 것이다. 이 게임에 동참하는 만국의 미래세대들이 새로운 미래국가를 건설해가는 것이다. 만국의 게이머와 만국의 프로듀서와 만국의 창업자와 만국의 투자자들이 단결하게 될 것이다. 잃는 것은 오직 시민이나 국민, 인민이라고 하는 낡은 호칭과 늙은 정체성일 뿐이다. 그 미래도시와 미래국가와 미래문명은 나날이 역사로부터 이탈하여 선사시대와 흡사해질 것이다. 제2의 선사시대, 후사시대의 개창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의 체감은 더더욱 단순해질 것이다. 자동이 자율을 지나 새로운 자연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성과 센서 네트워크와 AI 모델과 자동화된 공급망과 기후 시뮬레이션과 초대형 클라우드 인프라 등등등.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된 거대한 자율적 생태계가 창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이 충분하게 성숙하면 사람들은 이제 그 내부 구조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선사시대의 원시인들처럼 주어진 자연으로 본디의 환경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의 선조들이 날씨의 변화와 계절의 순환과 지형의 변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순응해갔던 것처럼 디지털 생태계의 원주민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연이 선사한 열매를 따먹고 살았듯이, 기술이 생성해준 과실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즉 너무 커지고 너무 깊어진 기술은 그 자체로 마술이 되는 것이다. 탈주술화에서 재주술화로 이행하는 것이다. 설명 불가능한 세계를, 그 불가해한 세상을 동경하고 외경했던 것처럼 경이와 경탄과 경축을 공유하는 제례 또한 활성화될 것이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초과한 기술문명 속에서 시스템은 더 많은 것을 계산할 것이며, 인간은 더 적은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더라도 이는 퇴보나 퇴행이 아니다. 새로운 문명, 신의 경지에 다다른 신문명의 탄생이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 하늘을 모셔 조화를 이루고 영원히 잊지 않아 만사를 알게 된다는 주문 수련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응당 정치 또한 더 이상 국민의 힘(보수)과 시민의 힘(중도)과 인민의 힘(진보)의 다툼이 아니게 된다. 인간의 의사결정의 비중 자체가 대폭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당에 모여 쌈박질을 하고 있을 까닭도 사라진다.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계산한 결과를 조율하는 형태로 정치의 프로세스 또한 달라질 것이다. 정치인 또한 결정자가 아니게 된다. 조율자가 된다. 계산된 미래를, 시뮬레이션 된 시나리오를 관리하는 기술적인 행위가 미래의 정치가 된다. 저 신에 가까운 AI의 계산 결과를, 디지털 신탁을 인간들이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조율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만 독점했던 거부권을 이제는 만민이 행사하게 될 것이다. 즉 사람은 이제 시스템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만 누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삼세판의 3심제가 좋을 것이다. 세 번을 거절해도 OS가 동일한 시뮬레이션을 제안한다면, 인간은 그 판단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피엔스들의 총지능과는 감히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압도적인 총인공지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역할과 비중이 감소되는 반면으로 종교는 더욱 약진하게 될 것이다. 농업문명의 기축종교들이 다시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리추얼, 의례가 부활할 것이라는 뜻이다. 선사 시대에도 왜 하는지 잘 모르지만 부족들이 함께 즐기는 행동들이 참 많았다. 미래에도 비슷한 풍경이 다채롭게 펼쳐질 것이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행동과 알고리즘이 권고하는 루틴과 자동화된 규칙에 따른 일상이 의례처럼 반복될 것이다. 기후 모델이 요구하는 에너지 사용 패턴을 개개인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건강 알고리즘이 권고하는 생활 루틴을 남녀노소가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사회적 신용 시스템이 추천하는 행동 규범을 함부로 어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형태의 종교적 실천처럼 작동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불교의 오계와 유교의 오륜처럼 정치와 종교의 경계가 흐릿해져가는 것이다. 즉 정치는 갈수록 종교화 되고, 종교는 갈수록 기술화 될 것이다. 그 기술은 나날이 마술과 주술에 방불해져 갈 것이다. 미래의 권력이란 곧 중력의 마력에 가까워지게 된다. 자연스레 민주주의 또한 쇠퇴해갈 것이다. 300년의 실험으로 회자될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제가 있었단다. 그 다음 대한민국에는 민주제가 있었단다, 지나간 역사의 한 단계로 배우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 또한 퇴락해갈 것이다. 개인의 선택보다는 사회의 정렬(Alignment)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줄 수가 없을 것이다. 기후와 에너지와 보건 등등등 행성적 차원에서 안전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피엔스의 책임과 의무와 윤리를 요구하고 데이터로서 기록하고 보상하거나 응징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행성적 행정과 충돌하는 않는 행적으로 살아갈 자유 정도로만 축소될 것이다. 즉 내 인생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행성적인 건강에 부합하도록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학습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학교 또한 갈수록 학원보다는 서당과 교당과 회당처럼 바뀌어 갈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근간했던 국가 또한 기반이 취약해질 것이다. 디지털 문명을 구성하는 기술적 스텍과 생태적 단위가 훨씬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문명의 인프라는 국가 단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클라우드 인프라와 위성 네트워크와 AI 모델과 크립토 금융망까지 행성적인 차원에서의 기술적 스텍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래서 국가간 회합인 UN을 대체하는 행성적 단위의 회의 기구가 반드시 창출되어야 한다. 기술폭발과 기후격변과 생명공학과 데이터 문제들을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행성적 관리기구, UN 2.0, 잠정적으로 United Natures를 설립해야 하는 것이다. 강과 산과 바다 등 생태계의 단위를 반영하는 기후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태평양과 인도양과 대서양에 이어 4번째 대양이 되어갈 북극해를 포함한 사해동포의 실험장으로 시베리아를 거듭 강조하는 까닭이다. 마치 영국인들이 대서양을 건너가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신문명을 건설해갔던 것처럼, 한국인들이 시베리아와 만추리아와 몽골리아와 중앙아시아를 연동하여 북아시아에 디지털 신문명을 창조해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 대륙의 동부(East Coast)로서 대한민국은 행성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술공화국이 되어야 한다. 한국형 기술 스텍을 운영할 수 있는 독자적인 기술문명 단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와 기술 등 행성적 문제 해결에 특화된 나라가 되어야 하며, AI와 로봇 기반의 사회모델을 가장 먼저 실험해 보는 혁신적인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 기술적 인프라와 새로운 사회모델을 문화적 소프트파워 K에 얹혀 확산시켜야 한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제3의 제국으로 21세기의 미국, 디지털 문명의 미국, United State of AISA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 성장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코스피 1만의 목표에 머물지도 않는다. 한국이 미래 문명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의 비전이다. 산업의 육성과 시장의 활성화를 뛰어넘는 신문명의 재설계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한국을 디지털 아시아를 선도하는 칸국의 반열로 레벨을 높이는 것이다.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기술 문명 단위로 승화시켜 가는 것이다. 말과 일체가 된 몽골리안들이 유라시아의 동과 서를 평정해간 것처럼, AI와 로봇과 하나가 된 코리안들이 동반구와 서반구가 만나는 프론티어로서 시베리아를 경영해 가는 것이다. 장애물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의지의 결여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가 부족한 것은 정치적 요인이 가장 크다. 작금의 정당 정치가 구조적으로 시간 감각의 한계를 유발한다. 4-5년 단위의 선거 주기도 아니다. 매년 자잘한 선거 준비에 급급하다. 30년은 고사하고 10년짜리 프로젝트도 시도해볼 수가 없다. 관료제 또한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는다. 위험을 회피하는 문화가 DNA가 되어 있는 조직이다. 공무원들은 문제의 해결자가 아니라 문제의 회피자들이다. 4년, 5년 정치인들 눈치 보며 면피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결국 정치의 외부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기술 창업자들, 도시 설계자들, 과학자와 공학자들, 문화와 예술계와 글로벌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10203040의 인재들 가운데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국가보다 더 큰 스케일에서 사고하고 실행하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50년 전 미국도 그러했다. 미국 건국의 리더십은 정치가 아니라 사상과 기술과 제도의 설계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독립만 외친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문명의 정치를 설계하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구상하고, 새로운 사회모델을 창조해 내었다. 이번에는 이번 세기에는 한국이 해야 할 일이다. 자뻑이나 국뽕만은 아닐 것이다. 유럽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다. 일본도 20세기의 그 대일본제국이 아니다. 지난 세기 193-40년대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만들어 보겠노라 분기탱천했었다. 1960, 1970년대 중국도 미/소에 맞선 제3세계를 통합해 보겠노라 문화대혁명의 의지가 충만했었다. 2030, 2040년대는 대한민국의 차례이다. 중화제국의 조공국과 일본제국의 식민지와 미합중국의 동맹국을 차례차례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제는 스스로 제국이 되어가는 운명인 것이다. 부디 대칸제국의 기상으로 디지털 신문명을 창조하자. 이 책은 그 미래의 창건자들, 제국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에게 보내는 기나긴 초대장이었다.

2026.02.27 13:35이병한 기자

"인간도 힘들던 '코볼' AI로 푼다"...독점 깨진 IBM, 25년 만에 최대 폭락

앤트로픽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낡은 금융·전산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개발자 유지·보수에 의존해 온 '코볼(COBOL)' 기반 시스템을 '클로드 코드'로 자동 분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시장을 수십 년간 사실상 독점해 온 IBM은 직격탄을 맞았다. IBM 주가는 이날 하루에만 25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AI가 코볼 시스템을 자동화할 경우 핵심 수익 기반인 메인프레임 유지·보수 사업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2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IBM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3.2% 폭락한 223.3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앤트로픽이 클로드 코드를 통해 코볼 기반 시스템을 자동으로 분석하고 현대화할 수 있다고 밝힌 직후 일이다. 코볼(COBOL)은 1950년대 후반 개발된 업무용 공통 프로그래밍 언어로 현재까지도 금융, 항공, 정부, 유통 등 주요 시스템의 핵심 언어로 쓰이고 있다. 앤트로픽에 따르면 미국 내 ATM 거래의 95%가 코볼 기반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코볼이 너무 오래된 언어라 이를 이해하고 수정할 수 있는 개발자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수천억 줄의 코드가 글로벌 금융과 공공 인프라를 지탱하고 있지만, 이를 유지·보수할 인력은 빠르게 줄고 있다. 이러한 인력난과 시스템의 복잡성은 역설적으로 IBM에게 막대한 수익을 보장하는 방어막이었다. 기업들은 낡은 코볼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IBM의 고가 메인프레임 장비와 유지보수 서비스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앤트로픽은 클로드 코드를 활용해 코볼의 높은 진입장벽을 허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앤트로픽 측은 "클로드 코드는 수천 줄에 달하는 복잡한 코볼 코드의 상호 의존성을 파악하고, 워크플로우를 문서화하며 잠재적 위험을 찾아낼 수 있다"며 "인간 분석가가 몇 달에 걸쳐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AI가 신속하게 처리함으로써, 비용 문제로 멈춰 섰던 구형 시스템 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대체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졌던 IBM의 비즈니스를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투자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투매에 나섰다. 앞서 앤트로픽이 코드 취약점을 자동 탐지하는 '클로드 코드 시큐리티' 기능을 공개했을 때도 관련 보안주들이 하락세를 보인 바 있다. 연이은 AI발 충격에 IBM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4% 이상 하락했다. 아담 크리사풀리 바이탈 날리지 창립자는 "앤트로픽의 발표는 기업들이 오랫동안 앓아왔던 '기술적 부채'를 AI가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라며 "이는 유지보수와 컨설팅으로 수익을 창출해 온 기존 기업들에게 실존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은행 번스타인의 토니 사코나기 분석가 역시 "IBM의 메인프레임 비즈니스는 높은 교체 비용과 복잡성에 기인한 '강제적 충성도'에 의존해 왔다"고 지적하며 "AI가 그 복잡성을 제거한다면 기업은 더 이상 값비싼 레거시 시스템에 묶여 있을 이유가 사라진다. 시장은 지금 그 '해방'의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6.02.24 17:13남혁우 기자

[AI 리더스] "AI 개발보다 '데이터 정리' 우선…관리 문화 정착돼야"

"기업 데이터는 방대해지고 있지만 신뢰 가능한 데이터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저장·정리하는 기업 환경이 정착돼야 합니다. 스노우플레이크 등 플랫폼으로 데이터 활용 장벽을 낮추고 비전문가도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문화가 확산해야 합니다." 성순모 KT AI 엔지니어와 전수범 풀무원 AI 아키텍트는 최근 지디넷코리아를 만나 국내 기업에 건강한 데이터 관리 문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성 엔지니어와 전 아키텍트는 올해 스노우플레이크코리아가 선정한 '스노우플레이크 데이터 슈퍼히어로'다. 스노우플레이크 데이터 슈퍼히어로는 커뮤니티 교육을 비롯한 컨퍼런스 참여,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활동으로 스노우플레이크 생태계 확장에 기여하고 있는 데이터 전문가 손잡고 개발자 커뮤니티 리더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25개국에서 125명이 선정됐다. 국내에선 두 전문가를 포함해 이재면 넥슨코리아 팀장, 한예성 토스증권 데이터 엔지니어가 뽑혔다. 성순모 엔지니어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스노우플레이크 스쿼드에 합류했다. 지난해 '스노우플레이크 월드 투어 서울'에서 AI 패널 토크와 해커톤 웨비나 강연 활동을 진행했다. 그는 현재 KT에서 국내 도입 초기 단계인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기반 스노우플레이크 환경 최적화 작업을 맡았다. 성 엔지니어는 기존 엔터프라이즈 고객 대상으로 AX를 수행하는 기업간거래(B2B) 조직팀에서 근무한 바 있다. 이 조직은 컨설팅부터 데이터, AI 엔지니어링, 서비스 기능을 풀스택 형태로 갖추고 고객 맞춤형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전수범 아키텍트는 스노우플레이크 인텔리전스와 스트림릿 등 최신 데이터 기술을 실무에 적용하고 이를 커뮤니티와 공유해 왔다. 현재 '신뢰할 수 있는 단일 데이터 소스' 기반 데이터 경영 문화 정착에 힘쓰고 있다. 그는 공급망관리(SCM) 혁신팀에서 스노우플레이크 플랫폼으로 AI 기반 '제상품 관리 (SKU Deletion) 에이전트' 개발과 사내 데이터 통합을 진행했다. "스노우플레이크, 데이터 통합·관리 우수...국내 관심도 상승" KT와 풀무원은 스노우플레이크 플랫폼으로 AI 에이전트 구축과 데이터 최적화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성 엔지니어는 최근 KT 내부에 분석용 스노우플레이크 계정과 외부 고객 사업용 계정이 운영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내부에서는 통신 고객 데이터를 스노우플레이크 플랫폼으로 분석해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기업 고객 AI전환(AX)과 디지털전환(DX)을 지원하는 데 스노우플레이크를 한 옵션으로 제공하고 있다. 성 엔지니어는 "스노우플레이크로 내부 데이터 관리가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복잡하고 오래된 데이터 구조를 정비하는 데 해당 플랫폼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 엔지니어는 스노우플레이크가 데이터 플랫폼에 오픈AI 모델을 추가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를 통해 고객에게 스노우플레이크 추천을 기존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국내 고객은 애저 기반 환경에서 GPT 모델을 당연한 선택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스노우플레이크와 오픈AI 협력은 국내 시작 확산 측면에서 의미 있는 업그레이드"라고 분석했다. 전 아키텍트는 풀무원 조직 내 데이터가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어 통합적인 분석을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풀무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노우플레이크를 도입해 전사 데이터를 통합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 SCM 전략기획팀은 AI 에이전트 도입을 오래전부터 구상해 왔다"며 "스노우플레이크로 데이터 통합 기반 위에서 에이전트 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SCM 업무 특성상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반복적 업무가 많다"며 "에이전트를 활용해 의사결정과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풀무원은 AI 에이전트 개발에 스노우플레이크를 선택한 이유로 쉬운 데이터 관리 환경을 꼽았다. 전 아키텍트는 "현업 사용자들이 SQL 수준 이해만으로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라며 "데이터 엔지니어가 아닌 현업 부서 직원들이 직접 데이터를 조회·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조직 전반 데이터 활용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풀무원은 AI 에이전트 구축 후 데이터 통합·표준화에도 스노우플레이크 플랫폼을 활용했다. 그는 "특히 메타데이터 표준화를 통해 조직마다 다르게 사용되던 칼럼 명칭을 정리했다"며 "데이터 정의를 통일한 점도 주요 성과"라고 말했다. 현재 풀무원 내부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와 AI 에이전트는 동일한 시맨틱 레이어 기반으로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분석 일관성을 확보한 상태다. 전 아키텍트는 "우리는 BI 화면에서 바로 AI 분석까지 진행할 수 있다"며 "내부 의사결정 속도까지 빨라졌다"고 강조했다. "데이터 관리 문화 정착 위해 노력할 것" 기업들이 AI 모델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데이터 품질과 구조에는 충분히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성 엔지니어와 전 아키텍트 모두 한국 기업이 데이터를 정리·관리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짚었다. 성 엔지니어는 "데이터 관리가 선행되지 않으면 AI가 똑똑한 답변을 하더라도 실질적 인사이트는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아키텍트는 "데이터 구조 설계와 거버넌스 체계 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 아키텍트는 기업 데이터 규모는 방대해졌지만 믿을만한 데이터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기업 공용 저장소에 정리된 신뢰 가능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문화가 국내 기업에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 엔지니어는 기업에선 여전히 데이터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럴수록 스노우플레이크 플랫폼 등 데이터 관리 시스템 활용 문화가 구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술을 통해 데이터 활용 장벽을 낮추고 비전문가도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문화가 확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26.02.23 17:27김미정 기자

'롤의 신' 페이커, 디지털 신문명의 주역이 되다

1. AI : 루덴스와 데우스 Faker! Faker! Faker! 만세 삼창이라도 하듯이 그의 이름을 세 번이나 외쳤다. 시가 총액 세계 1위에 빛나는 엔디비아의 CEO가 페이커를 힘껏 연호한 것이다. 15년 만의 한국 방문이었다. 2025년 10월, 지포스 행사에 직접 행차한 것이다. 오늘의 엔비디아가 있기까지 한국은 실로 적지 않은 역할을 해주었다. 젠슨 황이 엔비디아를 설립한 해는 1993년이다. 3D 그래픽 대중화를 소명으로 삼았다. 1999년 각고의 노력으로 심혈을 기울인 지포스 256을 발표한다. 세계 최초의 GPU라고 할 수 있다. GPU의 등장은 PC 게임의 그래픽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다음은 마케팅, 이 혁신적인 상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을 찾아야 했다. 단연 한국이 돋보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PC방이 빅뱅처럼 폭발하고 있었다. 정부는 전국에 초고속통신망을 깔았고, 민간에서는 스타크래프트가 유례없는 인기를 누렸다. 1998년 100여개에 불과하던 PC방이 2008년에는 2만개가 넘었을 정도다. 온 나라 방방곳곳에서 고성능 그래픽 카드가 필요했다. 황은 곧장 서울로, 용산의 전자상가로 날아들었다. 엔비디아의 GPU가 날개 돋친 듯 팔린 것이다. 세계 최초의 e스포츠 구단이 창설됐고, 세계 최초의 게임방송국도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은 명명백백 게임대국이자 게임 선진국이었다. 초창기 엔디비아를 먹여 살린 은인의 나라였다. 2010년대는 리그 오브 레전드, 이른바 LOL이 게임업계를 평정한다. 롤을 하는 것이 한국의 국룰이 됐다. 2012년 롤의 K리그 격인 LCK도 출범한다. 덩달아 지포스 GTX 400~900 시리즈가 연발탄으로 보급되었다. 실시간 물리엔진과 고해상도 그래픽을 지원하며 고사양 게임을 구동시킬 수 있었다. 2020년대가 되자 AI혁명이 폭발한다. 2022년 챗GPT 모먼트, 오픈AI의 생성형 AI 서비스와 더불어 GPU의 수요가 폭증한 것이다. GPU는 수십억 개의 트렌지스터로 구성된 반도체 칩이다. 병렬 연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게임뿐 아니라 AI와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컴퓨팅과 자율 주행에도 활용될 수가 있었다. GPT와 GPU의 선순환으로 엔비디아가 AI혁명의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된 것이다. 1993년 창업부터 2023년 세계 최고의 기업에 등극하기까지 엔비디아의 30년 여정 속에 대한민국이 늘 함께 했던 것이다. 한국의 열혈 게이머들 덕분에 젠슨 황은 수차례 파산을 면할 수 있었고, 엔비디아의 고사양 GPU가 PC방으로 널리 보급된 덕택에 대한민국은 미래형 엔터테인먼트, e스포츠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젠슨 황은 한국을 '게이머들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개미들도 환호했다. 삼성과 SK 등 반도체와 GPU 동맹이 강화된 것이다. 게이머와 주주 개미들도 깐부를 맺고 혈맹이 되었다. 서학개미와 동학개미의 동서합작으로 AI혁명을 초가속화시킨다. 돌아보면 IT혁명부터 AI혁명까지 30여 년 디지털 문명의 행로에는 늘 게임이 자리했다. 스티브 잡스는 경력 출발부터가 게임회사 아타리였다. 워즈니악과 사흘 밤을 꼬박 새워서 개발한 게임이 바로 '퐁'이다. 그들이 창업하여 세상에 선보인 애플 II 또한 게이머들에게 최적화된 PC 컴퓨터였다. PC가 보급되면서 OS를 석권하게 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또한 게임 덕후였다. 고등학교때 컴퓨터를 처음 보고 매혹된 게이츠가 가장 먼저 만든 프로그램 또한 서양식 오목 '틱택토'였다. MS를 함께 창업한 폴 앨런과도 다양한 게임을 만들어 테스트했다. SNS 시대의 포문을 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또한 게임과 긴밀하다. 눈싸움을 하고 싶었지만 형제들이 날씨가 춥다며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자, 저커버그는 눈싸움 게임을 프로그래밍 했던 것이다. 그가 창업하기 전까지 자주 했던 게임으로는 '문명'도 있었다. 고대 문명을 바탕으로 자신 만의 왕국을 건설해가는 그 게임이 페북의 창업과 메타의 경영에도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 잡스와 게이츠, 저커버그가 모두 컴퓨터 게임에 미쳐 자퇴를 하고 창업을 한 괴짜들이었다면, 학업과 창업의 선순환을 그리며 AI혁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로는 데미스 허사비스가 있다. 챗GPT 이전에 알파고 충격이 있었다. 2016년 자신만만하던 이세돌을 4대 1로 무참하게 이겨버린 딥마인드를 설립한 창업자이다. 1976년생 허사비스는 네 살때부터 체스를 두기 시작한다. 열 세살에는 세계 2위에 오를 만큼 빼어난 고수였다. 체스는 그에게 전략적 사고와 패턴의 인식과 문제해결 능력을 극대화하는 훈련장이었다. 자연스레 지능이란 무엇인가, 호기심을 품었다. 1994년 대학 진학 대신 게임회사에 취업한다. 게임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면서 복잡한 시스템을 모델링하고 최적화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강화학습 시스템과 시뮬레이션 기반 AI도 연구한다. 1998년에는 아예 게임회사를 차린다. 게임 속 몬스터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환경에 반응하며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게임 안의 캐리터들을 '학습하는 생명체'로서 사고했다. 그 학습하는 활물들과 창조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뇌를 더욱 정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대학에 들어간다. 케임브리지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고, UCL에서 인지신경과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는다. 그의 학위 논문 주제는 인간의 기억과 상상, 계획과 문제 해결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 뇌의 매커니즘을 밝힘으로써 인공적인 지능의 구현, 알고리즘의 설계에 더더욱 가까이 간 것이다. 매커니즘과 알고리즘을 결합하여 인위적인 오가니즘을 구현한 것이다. 학업을 마치고 다시 창업한 기업이 바로 딥마인드이다. 목표가 명료했다. 게임을 통하여 일반인공지능(AGI)을 만드는 것이다. 범용인공지능을 통하여 과학연구조차 자동화하고 자율화하고 싶었다. 그래야 기후가 격변하는 지구에서도 인류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AI는 도저히 인류가 생각할 수 없는 방법까지도 창발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AI 훈련에 최적화된 실험장이 바로 게임이었다. 명확한 규칙, 측정 가능한 성능, 복잡한 전략, 반복 가능한 환경을 게임이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알파고를 만들어 인류의 가장 오래된 게임 바둑을 격파했다. 알파스타를 만들어 가장 최신의 게임 스타크래프트마저도 연파했다. 다음으로는 알파폴드를 만들어 단백질 구조의 암호를 해독한다. 40억년 생명의 게임을 파헤치고 풀어낸 것이다. 이로써 2024년 노벨화학상을 받는다. 2025년에는 구글의 제미나이가 챗지피티를 누르고 최고 성능의 AI로 평가받게 된다. 2026년 현재 AGI에 가장 근접한 기업이 딥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문명을 설파하는 제자백가들 가운데 내가 가장 경청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론 머스크의 말은 적당히 가려서 들어야 한다. 거품이 끼어 있는 마케팅 수법이다. 알렉스 카프는 프로파간다가 심하다. 허사비스의 발언이 가장 신뢰할만하다. 그 반열에 오르기까지 초-중-고와 학-석-박사를 일률적으로 밟은 것이 아니다. 체스에서 게임으로, 취입과 창업에서 학계로, 다시 인공지능 기업으로. 미래형 인재가 커리어를 밟아가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놀이와 벌이가 별일이 아닌 하나가 된다. 학업과 창업이 선순환을 이루며 선업을 쌓는다. 딥마인드를 창업한 해는 2010년이다. 2006년에는 라이엇게임즈가 설립된다. 이 게임 회사의 본사는 LA에 있다. 그리고 외벽에는 한글로 아주 커다랗게 '라이엇 PC방'이라고 적혀 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라면과 과자도 제공된다. 외국에서는 흔히 PC CAFÉ로 통칭된다. 그런데 한국 게임산업의 대약진과 함께 'PC BANG' 또한 고유어가 된 것이다. 창업자 브랜든 백과 마크 메릴은 어릴 적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다. 자연스레 당시 세계 최강의 스타플레이어였던 임요환과 홍진호의 경기도 즐겨 챙겨보았다. 우상을 따라서 LA의 한인 타운에도 자주 출몰했다. PC방에서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가 새벽이 되면 얼큰한 순두부찌개를 먹고 집에 돌아가는 나날을 반복했다. 한국인 교포나 유학생 친구를 두루 사귀었고, 절로 K-문화에도 익숙해질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에 몸과 마음에 깊이 각인된 PC방 경험이 라이엇게임즈의 창업과 기업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다. 그들이 개발한 게임이 바로 '리그 오브 레전드'이다. 현재 지구 행성에서 가장 많은 유저를 보유한 PC 게임이라고 하겠다. 2025년 기준으로 2억 명을 넘어선다. 롤은 다섯 명의 챔피언으로 구성된 양 팀이 서로의 기지를 파괴하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전략 게임이다. 무려 160여 명의 챔피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각 챔피언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어, 다섯 명이 서로 시너지가 나도록 챔피언을 구성하는 수싸움이 중요하다. 챔피언들은 각각 5개의 스킬과 2개의 주문을 사용할 수 있으며, 한 번에 최대 7개의 아이템을 소지할 수 있다. 소환사의 협곡에서 펼쳐지는 그 배틀그라운드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게이머들은 각 챔피언들의 기술을 부단한 연습을 통해 몸에 익혀야 한다. 나와 챔피언의 결합, 본캐와 부캐의 융합, 자아와 아바타의 천인합일을 연마하는 것이다. 그 챔피언들 가운데는 '아리'도 있다. 한국의 전설 속 구미호 이야기를 차용한 캐릭터이다. 우아하고 민첩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뿜어내는 아홉 꼬리의 유혹적인 존재이다. 손에는 구슬을 들고 머리에는 댕기를 따고 꽃신을 신었으며 백지장 같이 창백한 피부에 고운 한복을 입고 있다. 아리는 '아리땁다.'라는 형용사에서 따온 말이다. 마음이나 몸가짐이 맵시 있고 곱다는 뜻이다. 아리랑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과연 아리는 노래하는 팝스타로도 진화했다. '제너레이션 아리'라는 캐릭터 스킨이 큰 인기를 끈 것이다. 아이돌 걸그룹 소녀시대(Girls Generation)를 오마주한 것이다. '소원을 말해봐' 뮤직비디오에서 소녀시대가 입었던 해군 제복 패션으로 아리를 착장시켰다. K-POP과 LOL을 융합하여 또 다른 차원에서 팝스타 아리를 창조해낸 것이다. 한국 전통의 전설 속 캐릭터가 게임의 팬 아트 스킨으로 진화하여 팝스타 아리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아리는 결국 버추얼 걸그룹 K/DA를 조직한다. LOL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든 애니메이션도 있다. 2021년 46일간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독주하던 '오징어 게임'을 꺽은 작품이 바로 '아케인'이다. 아케인이 롤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게임이 케이팝으로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확장되고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엔터테인먼트가 게임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장차 스포츠도 콘서트도 전시회도 모두 게임화 될 것이다. 아니 디지털 문명으로 진화하면 할수록 정치와 경제와 사회 모두가 게임화 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명과 게임 사이의 구분이 점차 희미해져 갈 것이다. 신문명의 거버넌스와 파이낸스와 컨센서스가 게임과 공진화하면서 생성되어 갈 것이다. 19세기는 영문학의 전성기였다. 찰스 디킨스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만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유통되었다. 20세기는 미국 영화의 절정기였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임스 카메론의 작품을 보면서 어린이들이 성장했고, 제임스 딘과 브래드 피트와 톰 크루즈가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다. 21세기는 게임의 극성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디지털 문명을 선도하는 버추얼 월드의 극강의 챔프이자 슈퍼스타가 바로 한국사람, 이상혁이다. 2. FAKER : 구도와 득도 “실패 하나하나가 모여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2024년 한국 외교부가 주최한 '글로벌 혁신을 위한 미래 대화'의 기조연설자가 페이커였다. 1996년생, 28세의 나이로 국제무대에서 가장 먼저 발언하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떨리는 음성이었지만 울림은 컸다. 천신만고, 프로게이머로서 경험했던 13년의 오르내림이 담담하고 당당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가난한 집안이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어머니도 없이 자랐다. 하지만 천만다행, 단란한 가족을 이룰 수 있었다. 할머니는 강아지 손주를 아낌없이 사랑해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전폭적으로 응원해주었다. 남동생과는 두터운 우애를 나누었다. 엇나가지 않고 반듯하게 성장한 것이다. 어엿하게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기특하고 갸륵해서 아버지가 선물해준 것이 바로 컴퓨터이다. 장난감이나 책과는 전혀 달랐다. 곧장 친구이자 동반자, 가족이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컴퓨터와 친하게 지냈다. 자연스레 게임에도 흥미를 붙였다. 어린이 상혁이가 특히 잘하는 것은 타자 게임이었다. 불특정 단어들이 화면에 나타나면 시간 내에 그 단어를 쳐내야 하는 학습용 게임이다. 단어를 빨리 칠수록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는 속도 또한 빨라진다. 미션을 해결하면 할수록 레벨은 더욱 높아진다. 절로 지고는 못사는 특유의 승부근성이 발동되었다. 상혁은 이 흥미로운 게임에 폭 빠져들었고 나 혼자만 레벌 업, 구사하는 어휘의 수준이 또래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덕분에 1분에 600타 이상을 치는 초등학생으로도 유명세를 탄다. 기업이 후원하는 영재로 선발될 정도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리니지'와 '메이플스토리' 등 다양한 게임을 섭렵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단연 실력이 빼어났다. 공부 잘하는 친구는 시기를 샀지만, 게임 잘하는 친구는 부러움을 샀다. 또래집단의 영웅이 된다. 자신을 동경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서 하는 팀플레이의 매력도 알게 되었다. 2011년 드디어 '리그 오브 레전드'가 한국에서도 서비스를 개시한다. 5대 5로 펼쳐지는 단체전이었지만, 농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성과 복잡성이 매혹적이었다. 수많은 챔피언들을 조합하여 무수한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스타일도 무한대이요, 전술과 전략도 무궁무진했다. 그 천장지구의 가상 세계 속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창의적인 팀워크가 필요했다. 상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실력으로 일취월장한다. 고등학생이 되자 '랭크 게임'에도 입성한다. 30레벨이 되어야만 진입할 수 있는 게임이다. 랭크에 오르면 공식적인 순위도 기록된다. 마침내 '티어'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티어는 다시 가장 낮은 아이언부터 최상위의 챌린저까지 10단계로 분화된다. 오르고 또 올랐 것만, 여전히 하늘 아래 뫼였을 뿐이로다. 앞으로 더 오를 산이 여전히 까마득한 것이다. 첼린저까지 레벨 업을 하려면 상위 0.02%안에 들어야 한다. 가상계 너머 천상계의, 신들의 세계이다. 겨우 상위 1%, 서울대나 카이스트 입학하고는 차원이 다른 게임이다. 절치부심 캐릭터를 연구하고 전술을 짜고 전략을 펴면서 차근차근 탑티어까지 단계를 밟아 올려가야 한다. 마치 곰이 사람이 되듯이, 사람이 산신령이 되어가듯이…. 헌데 혜성처럼 등장하여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오는 파천황 격의 유저가 있었다. '고전파'라는 클래식한 닉네임을 달고 홀연히 등장한 걸물이었다. 놀라운 판단력과 재빠른 움직임에 재기 넘치는 경기 운영이 단연 돋보였다. 출전한 첫 대회에서 곧장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고전파의 맹활약에 온라인 세계는 웅성웅성 소문이 자자하고 파다했다. 스타크래프트 시대, 최강의 팀을 자랑했던 SKT의 김정균 코치가 고전파를 영입한다. 입단 테스트도 생략한 채 파격적으로 영접해 온 것이다. 2013년 4월, 17세의 나이에 프로세계에 입문한다. 고등학교를 작파하고 게임업계로 이동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강호에서 홀로 무예를 연마하는 독고다이였다면, 이제는 최고의 트레이너들의 관리를 받으면서 체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었다. 동료들과 숙소 생활을 시작하면서 밤낮으로 연습을 거듭했다. 부캐도 바꾸었다. 페이커, 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달았다. 속을 알 수 없는 전략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이상혁 특유의 화려한 플레이에 안성맞춤한 별명이었다. 2013년 LCK 서머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생애 첫 우승이었다. 동시에 페이커는 MVP가 되었다. 창단 9개월 만에 이루어 낸 쾌거였다. 쾌감도 남달랐다. 결승전에서 1,2 세트를 지다가 세 세트를 연달아 이긴 대역전승을 연출한 것이다. 특히 마지막 5세트에서 페이커가 선보인 신들린 기술과 전략은 10년이 지나서도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삽시간에 한국을 평정한 페이커는 세계 무대로 진출한다. 롤의 월드컵, 롤드컵이라고도 속칭되는 월즈(WORLDS) 결승전에 나선 것이다. 2013년에는 LA의 스테이플 센터에서 열렸다. 상혁이는 여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스타디움의 규모와 팬들의 함성에 압도당할 것 같았다. 상대는 리그 최강으로 평가받았던 중국 팀이었다. 그러나 페이커는 다시 신내린 듯한 플레이를 펼치며 상대팀을 격침시킨다. 3대 0, 완벽한 승리였다. 데뷰한 첫 해에 바로 세계 정상을 찍어버린 것이다. 라이징 스타, 신성이 탄생한 것이다. 중국에서 막대한 연봉을 제안했지만 자신을 먼저 알아봐 준 T1과의 의리를 지키며 한국에 머문다. 2015년과 2016년에는 2년 연속 롤드컵을 들어올린다. 존재 자체로 T1의 프렌차이즈 스타이자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간판 선수가 된 것이다. 이 모든 위업을 10대에 다 이루었다. 월드클래스의 지니어스, 지존의 위엄으로 아우라가 넘쳐 흘렀다. 허나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더 높고 더 멀리 있는 두 번째 산, 내리막길은 가팔랐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2017년 결승전에서 3대 0으로 참패한 직후 책상에 쓰러져 눈물을 쏟아냈다. 그 이전 패배한 경기마다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했던 페이커의 멘탈까지도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극심한 슬럼프를 겪게 된다. 2018년은 최악의 한 해였다. 국내 리그에서도 7위까지 곤두박질쳤다. 정작 한국에서 개최되는 월즈에는 진출하지도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반면으로 새로운 젊은 선수들의 실력은 상향 평준화되었다. 특히 페이커를 집중적으로 견제했다. 그의 기술과 전략을 꼼꼼히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여 옴싹달싹 못하게 하는 전담 팀들이 생겨났다.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것만 같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페이커를 조롱하고 험담하는 밈이 유행까지 했다. 이대로 커리어가 끝나는 듯 보였다. 화려한 비상과 끝없는 몰락, 수모를 견디고 절망을 버텨내야 하는 인생의 암흑기였다. 돌파구는 책이었다. 게임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책을 통해 다른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들을 폭넓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차츰 머리 속이 비워지고 맑아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메타인지, 게임을 다른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딥마인드, 결국 게임도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딥시크, 나와 상대의 심리를 꿰뚫는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페이커 1.0이 탁월한 반사신경에 기초한 피지컬에 근거했다면, 페이커 2.0은 마인드 컨트롤에 기초한 정신력이 보강되었던 것이다. 마인드풀니스, 명상도 즐기게 되었다. 구도를 통하여 득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수행과 수련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오래된 테크놀로지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 페이커가 탐독했던 책들의 목록은 지금도 널리 공유되고 있다. 소재는 다양하고 주제는 광범위하다. 마인드부터 코스모스까지, 미시부터 거대까지, 거룩한 세계를 품어내게 된 것이다. 하더라도 왕좌를 다시 탈환하는 일은 지난한 과업이었다. 20대 중반의 몸은 10대 후반과 또 달랐다. 터널 증후군, 팔꿈치 부상으로 경기에서 이탈한 기간도 길었다. 그러함에도 더 이상은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심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재기를 재차 다짐했다. 오히려 경기장 밖에서 객관적으로 팀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플레이어에서 플레잉 코치로 승격한 셈이다. 히어로에서 리더로 승급한 것이다. 리더십에서도 탑티어로 레벨업 한 것이다. 독야청청 독불장군에서 후배들을 격려하고 독려하는 덕장으로 재탄생하였다. 2023년 다시 롤드컵의 결승전이 한국에서 열렸다. 4강에 오른 팀 가운데 세 팀이 중국이었다. 페이커의 T1만 한국 팀이었다. 대진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4강에서 리그 최강 징동 게이밍(JDG)과 맞붙는다. 그 해 징동은 라이엇게임즈가 주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한 팀이었다. 골든 로드, 모든 시리즈의 모든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전승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경기가 되었다. 지금껏 역대 경기 가운데 가장 많은 시청자가 본 게임으로 기록이 되었다. '골드 로드, 저희가 막겠습니다.' T1의 광고에 한국 팬들도 우르르 부산으로 집결하였다. 이 경기에서 페이커는 '신의 경지에 다다른 오리아나'를 보여주면서 팀을 승리로 이끈다. 부활과 환생의 서사가 새로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11월 19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웨이보게이밍(WBG)과 결승전이 열렸다. 입장권은 판매 10분 만에 매진되었고, 경기장 밖에서는 20배가 넘는 암표가 거래되었다. 수만 명의 홈 관중이 몰려들어 시작 전부터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고척에 가지 못한 열혈 팬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응원전을 펼쳤다. 이 경기를 실시간으로 상영하는 영화관도 전국에 수십 개에 달했다. 이날 페이커는 기어이 우승컵을 거머쥔다. 무려 7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 데뷰하자마자 단숨에 세계 정상에 등극했던 17살때보다 더욱 값진 우승이었다.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극적으로 반등하여 재차 최정상에 오른 것이기 때문이다. 최연소 우승자에 이어 최고령 우승자까지 되었다. 처음 우승했을 때의 멤버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페이커의 플레이에 영감을 받아 프로게이머가 된 어린 친구들과 새 팀을 꾸려 새로이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난 것도 아니었다. 아름답게 유종의 미를 거두며 은퇴한 것이 아니다. 첫 번째 전성기보다 더 빼어난 성적을 거두게 된다. 2024년에도 우승했다. 2025년에도 또 우승한다.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깨고 다시 갈아치운 것이다. 2회 연속 우승의 기록을 넘어 쓰리핏, 3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운 것이다. 앞으로 4년 더, T1과의 계약을 연장하기까지 했다. 명실상부 살아있는 전설, 레전드 페이커의 레거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모두가 전부가 GOAT, 대상혁과 빛상혁을 숭배하기에 이르렀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중국 팬들마저 이상혁을 신으로 모신다. 페이커는 “가장 높은 산이요, 가장 긴 강이라”고 한다. 만인이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는 드높은 산봉우리이자 드넓은 강줄기이다. e스포츠의 절대지존으로 10년이 넘는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내 안의 천성을 갈고 닦아 우주의 신성에 이른 호모 데우스의 경지에 올랐다. 20세기 중반 김용이 창조한 무협지의 세계가 대륙과 동아시아를 호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20세기 후반 오우삼이 빚어낸 홍콩의 느와르가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을 과시하던 때도 있었다. 21세기 초반 이제는 불마사대마왕, 천마 페이커가 디지털 지구촌을 석권하는 신시대, 신의 시대가 된 것이다. 문화에서 신화로의 진화, 문명의 차원 변경을 하드캐리하고 있는 최전선에 게임이 자리한다. 3. NEW GREAT GAME : 롤과 룰 LOL 판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의 형세가 오묘하다. 라이엇게임즈의 운명과도 깊이 포개어져 있다. 탄생 신화에 한국의 PC방 문화가 깊이 아로새겨져 있었던 이 기업이 지금은 중국의 품으로 넘어간 것이다. 중국의 빅테크를 상징하는 텐센트가 소유하고 있다. 2008년 소수 지분을 투자하는 파트너가 되었다가, 2015년에는 지분 100%를 인수하며 텐센트 제국의 자회사로 편입시킨 것이다. 실은 텐센트의 성장에도 한국의 게임업계는 긴밀하게 연루되어 있었다. 한국의 게임이야말로 오늘날의 텐센트를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중국에는 아직 AAA급 온라인 게임 개발사가 없었다. 그 시절 중국의 게이머들이 가장 좋아했던 게임들이 한국산이었다. 스마일게이트는 '크로스파이어'로 큰 인기를 얻었다. 넥슨은 '던전앤파이터'와 '이플스토리'로 호황을 구가했다. 위메이드는 '미르의 전설'로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서든어택'과 '카트라이더' 등도 중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화려한 진용을 갖춘 한국 게임들의 독점적 공급업체가 텐센트였던 것이다. 그래서 막대한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익이 종자돈이 되어 글로벌 게임업체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합병 할 수 있는 투자 여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한국을 발판으로 중국 게임 시장의 절대 강자로 성장한 후, 이제는 행성 차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빅테크 플랫폼 기업으로 올라선 셈이다. 물론 한국도 텐센트 덕을 톡톡하게 누렸다. 중국 시장 진출의 핵심 파트너로서 광범위한 유통 인프라와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해준 것이다. 던파 매출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왔고 크로스파이어의 경우에는 한때 매출의 80%가 중국에서 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맞수, 경쟁자가 되었다. 텐센트는 더 이상 한국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현지업체의 수준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형 엔터테인먼트를 직접 개발하는 굴지의 선진기업이 되었다. 판교와 선전은 이제 디지털문명의 행로를 좌지우지하는 동방의 실리콘벨리를 두고 패권을 다투는 와호장룡의 양대 권역이 된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자체가 미국, 중국, 한국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도 있다. 세계 4대 리그가 있다. LCK는 한국이고, LPL은 중국이며, LEC는 유럽이고, LCS는 북미이다. 닌텐도부터 소니까지 게임업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일본의 부재가 눈에 띈다. 플레이스테이션 등 콘솔 게임에는 강했으나 디지털 대전환, 온라인 기반의 대규모 네트워크 게임으로의 진화에는 뒤처지고 말았던 것이다. 4대 리그 가운데서도 메이저는 실상 LCK와 LPL이다. 유럽리그와 북미리그는 월즈에서 우승한 팀을 단 한 차례도 배출하지 못했다. 서유럽과 북미,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서방이 아니라 황해를 끼고 있는 중국과 한국이 디지털 게임의 쟁패를 다투고 있는 것이다. 동방불패 가운데서도 한국은 역대 월드 챔피언십 최다 우승 국가로 우뚝하다. 6개의 챔피언 반지를 낀 '페이커 보유국'으로서 총 아홉 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그 다음이 중국이다. 네 번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페이커가 슬럼프를 겪고 있던 2018년에서 2021년 사이에 강세를 보였다. 한중간 역전을 시키는 듯하다가 재역전을 당한 꼴이다. LPL과 LCK는 리그 스타일도 사뭇 대조적이다. LCK는 한국 리그이지만 전 세계의 팬들이 관람한다. 마치 유럽 축구처럼 미국의 야구나 농구처럼 월드 리그로 각광받는다. 그래서 종로에 들어선 전용구장, 롤파크를 관람하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청계천과 광화문 사이 서울의 전통으로부터 미래형 K 문명까지 두루두루 체험하기에 적절한 코스가 된 것이다. 반면 LPL은 일국적이다. 중국 내부의 리그에 그친다. 하지만 그 어느 리그보다 더 치열하다. 그만큼 플레이어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14억 인구에서 배출되는 무수한 무림의 고수들이 LPL에 진입하고자 격렬한 경쟁을 거친다. 그래서 경기의 양상 또한 가장 거칠고 공격적이다.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초장부터 무진장한 싸움을 걸고 들어온다. 반면 LCK는 안정적인 운영이 돋보인다. 너른 시야를 장악하고, 전체의 설계 능력이 우수하다. LCK는 장기적인 육성 시스템을 갖춘 최정예 사단으로 꾸려져 있고, LPL은 폭넓은 선수층에 수많은 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한 반면으로 기복은 심한 편이다. 이는 기술과 시장과 운영을 둘러싸고 펼쳐지고 있는 미국과 한국과 중국 간 디지털문명의 형세와도 절묘하게 포개진다. 기술은 여전히 미국이 가장 앞선다. 아직까지는 실리콘밸리의 파괴적 혁신 능력을 능가할 지역은 지구상에 없다. 하지만 그 밸리의 혁신이 미국을 통째로 바꾸지는 못하고 있음이 병통이라 하겠다. 커다란 착각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동부와 서부의 몇몇 해안가 도시들이 미국의 전부가 아니다. 미국의 지극한 일부일 뿐이다. 중부와 남부로 가면 디지털 문명과는 아득한 산업문명기의 미국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비율로 치자면 후자가 훨씬 크다. 3억 5천만 인구 가운데 디지털문명으로 이주한 비율은 5할에 그친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와 뉴욕만 왕래해서는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크게 오판하기 십상이다. 그에 반해 중국은 미국의 혁신을 모방하여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동원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국공산당의 탁월한 영도 아래 2049년까지의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디지털문명으로의 대전환을 전국적으로 전세대적으로 전방위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변방과 시골 구석구석까지 미세혈관처럼 디지털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펼쳐져 있다. 거부부터 거지까지 거대한 기술의 그물망을 거침없이 엮어가고 있다. 14억 인구 가운데 10억이 디지털 사회의 인민이 되어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해가고 있는 것이다. 양대 국가 사이에 있는 한국은 가장 신속하다. 5천만 인구 전부가 디지털 문명으로 이주를 완료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문명의 운영체계를 개발해 보기에 최적화된 나라라 할 수 있다. 미국이 기술 혁신에 앞서고, 중국이 시장 규모에서 압도적이라면, 한국은 거버넌스의 창조에 안성맞춤한 나라인 것이다. 새로운 룰을 만드는 롤을 맡기에 제격인 위치이고 위상이다. 양대 제국이 패권 경쟁에 함몰되어 있을 때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 볼 수 있는 최상의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룰 세터를 한국의 소임이자 소명으로 자임해 봄 직한 것이다. 앞으로 한 세대, 2050년까지 펼쳐지게 될 디지털 삼국지의 기본 구도라고도 하겠다. 위촉오에 빗대어 볼 수도 있겠다. 미국은 위나라에 근사하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여전히 최강이다. 거대한 자본과 기술로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오나라와 흡사하다. 오는 장강이라는 거대한 방벽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생태계를 확보하고 있었다. 한국은 촉에 방불하다. 영토와 인구가 아니라, 인재와 전략으로 승부를 거는 나라이다. 리더십과 거버넌스로 막강한 두 나라를 상대했다. 지혜의 상징은 책사 제갈량이었고, 훌륭한 인품을 갖춘 리더 유비가 있었다. 기술신학국가로서 뉴아메리카의 새 판을 설계하는 피터 틸은 기민한 조조를 빼다 박았다. 의뭉스러운 리얼리스트 시진핑은 손권과 흡사하다. 동남아와 서남아, 중앙아를 막론하고 천하의 인재를 널리 품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는 유비 같은 덕장이 한국에 필요한 시점이다. 지장과 용장에 맞서 밀리지 않으면서도, 양 나라를 조정하고 운영할 수 있는 행성적 거버넌스의 지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세기 미국과 소련의 양대 패권국이 핵무기 경쟁에 빠져 있을 때 1957년 오스트리아의 빈에 설립된 기관이 IAEA였다. 21세기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을 조율하여 행성적 AI 거버넌스를 창출할 수 있는 국제기구를 한국에 유치할 수 있는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대한민국 말고는 감당할 수 있는 나라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산업화에서 200년을 뒤졌다. 민주화에는 100년을 뒤처졌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에서는 10년으로 격차를 대폭 좁혔다. 한국사와 세계사의 차이가 가장 적은 영역이 게임 분야라고도 할 수 있다. 김정주가 넥슨을 창업한 해가 1994년이다. 김택진이 NC소프트를 창업한 해는 1996년이다. 김정주와 송재경이 의기투합한 '바람의 나라'가 출시된 해도 1996년이었다. 놀랍게도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이 대한민국에서 등장했던 것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한 송재경은 학창 시절부터 게임에 미쳐 있던 마니아였다. 취업하기가 싫어 탈출구 삼아 진학한 카이스트에서 만난 스승이 바로 전길남이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전설을 사사한 것이다. 전길남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애국심을 호소하며 해외 과학자를 유치하는 사업을 전력으로 펼치던 무렵에 귀국을 결단한 과학자였다. 미국에서 했던 일이 바로 인터넷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이 가능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인터넷이 깔린 공간이 바로 홍릉에서 대전으로 이전하여 신축한 카이스트였던 것이다. 게임과 인터넷의 융복합, 온라인 게임이 창발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한국과학기술원의 새 캠퍼스였다. 바로 그 유니크한 시공간에서 천재적인 괴짜들이 김정주와 송재경이 조우했던 것이다. 육사를 정점으로 한 삼군사관학교가 산업화를 통솔하고 지휘했다. 서울대를 필두로 한 SKY대학의 운동권들이 민주화를 선창하고 이끌었다. 카이스트를 선두로 한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들이 창조하는 디지털 신문명의 맹아가 비로소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김정주는 잡스처럼 투자자를 찾아다니며 경영을 전담했다. 송재경은 워즈니악처럼 코드를 짜면서 게임 개발에 몰두했다. 두 사람이 함께 한 일은 뜻밖으로 만화를 읽어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출간된 모든 만화책을 둘이서 섭렵했다. RPG, 롤플레잉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흡입력 있는 배경과 설득력 있는 목표 설정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만화가 바로 '바람의 나라'였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저 멀리 북방 대륙에서 펼쳐졌던 장대한 스토리를 담은 세계관이 독창적이었다. 디지털 문명으로의 접속과 함께 고대사의 매혹이 홀연히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보면 비단 '바람의 나라'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1994년 소프트맥스가 출시한 게임은 제목부터가 '단군의 땅'이었다. 고구려를 더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 고조선, 원조선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역사를 시뮬레이션하는 전략 게임을 선보인 것이다. 디지털 문화를 통하여 원형적인 신화를 호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 '단군의 땅'을 개발한 프로그래머가 김지하 시인의 아들이었다는 점이다. 김태곤은 소프트맥스의 공동 창립자로서 기획부터 세계관 설계까지 모두 겸하는 다재다능한 멀티 개발자였다. 그가 참여한 작품 가운데는 '창세기전' 시리즈도 있다. 박정희가 영입한 전길남과 김지하의 아들 김태곤이 김대중이 만든 판교 신도시에서 백남준이 예언했던 디지털 몽골제국의 출현을 부지불식간 태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수만이 예고했던 디지털 문명의 살림살이, play to create를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고 있었던 격이다. 디지털 화랑들, 플레이어와 크리에이터들이 활개를 치면서 산업문명의 시민과 인민과 국민을 대체해 가는 가상의 신세계를 건설해 왔던 것이다. 실로 박정희부터 페이커까지, 지난 80년 각자가 저마다 맡은 바 소임을 정성껏 다하여 도장 깨기 퀘스트를 하나씩 돌파해왔다. 그래서 디지털 문명의 새로운 룰을 만들고 OS를 개발하여 디지털 창세기를 개창하는 새로운 제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완성된 것이다. 반도체부터 AI까지 기술적인 풀 스택을 장착하고, 대문자 'K'라는 소프트파워도 풀 충전을 완료한 채, 최종 보스 전 라스트 스테이지에 이른 것이다. 나는 디지털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나라는 동방의 두 국가, 중국과 한국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 전망하는 편이다. 실력은 막상막하 어금버금 하지만, 매력만큼은 한결 우리가 유리하다. 재차 반복하여 강조하건 대 산업혁명의 출발은 영국이었다. 그러나 산업문명의 표준을 설계하여 완성품을 만든 곳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그 미국에서 시작된 디지털혁명이 디지털-아메리카로 이행하는 작업이 영 여의치 않아 보인다. 새로운 문명의 표준적 OS를 가장 먼저 개발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한국 앞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최치원 이래 천 년 만의 기회이다. 아니 단군 왕검 이래 반만년 역사 가운데 이런 찬스는 다시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그만들 투닥거리자. 진보와 보수가, 좌파와 우파가,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가 각각 그 단계에서 주어진 역사적 과업을 훌륭하게 완수해내었던 것이다. 서로를 한껏 끌어안아주고 토닥토닥 고생했다고 고맙다며 덕담을 나누어도 충분한 업적을 이루었다. 다만 딱 하나, 이제는 순순히 물러나 주어야 한다. 투덜거리는 디지털 네이티브 2030들에게 서둘러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더 이상 산업문명의 경험과 경륜이 관록으로 통용되지 않는 신문명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와 체제이행에 실패하면 투덜거리던 미래세대들이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다. 이대남을 훈계한다고 해결될 리가 없다. 그 다음에는 한층 더 한 일대남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믿고 맡겨야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신뢰가 보답을 낳는다. 1996년생 이상혁을 비롯하여 1987년 민주화 이후 태어난 신진세대들이 넥스트 스테이지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다음 목표는 우리나라 한나라만의 레벨 업, 일국적 과제가 아닐 것이다. 선진국 답게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나라 만이 아니라 온 나라를 새 나라로 만드는 위대한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만국활계 남조선, 만국을 살려내는 행성적 계획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세계를 경영하는 디지털 제국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MMORPG에 익숙한 친구들이어야만 한다. '창작과비평'을 읽고 '한겨레'를 구독하고 '딴지일보'를 클릭했던 그때 그 사람들이 감당할 수가 없다. X를 통하여 최신의 정보를 접하고, 유튜브를 통하여 학습을 하고, AI를 도반으로 삼아 성장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구촌 친구들과 협력하는 게임으로 수만 시간을 훈련해 본 적이 있는 MZ와 잘파 세대가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1987년으로부터 40년이 지나는 2028년 총선이 적기이다. 10203040이 선발대가 되고, 50607080은 후방 지원에 족해야 한다. 그래야 농업문명에서 산업문명으로의 전환을 전광석화처럼 이루어 내었던 196-70년대의 대도약을 203-40년대에 이룩해낼 수가 있다. 그래야만이 지난 5만년 선천의 역사 시대를 아름답게 마감하고 다음 5만년, 후사 시대를 여는 후천개벽의 전위로서 대칸제국 K가 웅비할 수 있다. Reunited States of ASIA, 바람의 나라가 되어 단군의 땅으로 북방으로 시베리아로 되돌아가서 오래된 미래를 되살려내는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반지의 제왕'을 격파하는 '전설의 고향'을 시작하는 것이다.

2026.02.19 14:27이병한 기자

안준모 고대교수, 제35대 기술경영경제학회장 취임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가 20일 제35대 기술경영경제학회장에 취임했다. 올해 창립 35주년을 맞는 기술경영경제학회는 오는 5월 29~30일 고려대에서 '유럽 R&D 관리 서울 워크숍'을 개최한다. 7월 2~4일 제주에서 하계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기술경영경제학회는 1992년 설립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기술경영, 기술경제, 기술정책 분야 다학제 융합학회다. 회원은 약 2,800명이다. 안 신임 학회장은 서울대 응용화학부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기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기술경영 및 산업정책 전문가다. 제38회 기술고시로 공직에 입문한뒤 중소기업청, 과학기술부, 교육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 등을 거쳐 광주과학기술원(GIST) 감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 상임대표,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동문회원, 차세대융합기술원 이사, 태재연구재단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6.02.19 12:51박희범 기자

조해나 패리스 블리자드 사장 "한국 커뮤니티는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본질"

조해나 패리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취임 3년 차를 맞아 블리자드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블리자드 35주년이라는 마일스톤을 앞둔 시점에서, 패리스 사장은 기존 지식재산권(IP)의 잠재력 극대화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시너지, 그리고 한국 커뮤니티와의 깊은 유대를 통해 세계 최고의 게임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패리스 사장은 2024년 취임 이후 내부적으로 '대담함과 엄격함 사이의 균형'을 정립하는 데 집중해 왔다. 패리스 사장은 "모든 팀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프랜차이즈와 세계관의 미래를 고민하도록 했다"며 "동시에 부서 간 협업 방식을 진화시켜 각 팀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한 방향으로 정렬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인수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독립성 유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패리스 사장은 "새로운 소유 구조 아래에서 매우 큰 권한과 자율성을 느끼고 있다"며 "MS 리더들은 항상 '블리자드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묻는 오랜 팬이자 게이머들이기에, 블리자드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패리스 사장은 커뮤니티의 최대 관심사인 '블리즈컨'의 귀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철학을 전했다. 그는 "직접 만나 관계를 이어가고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갈증이 블리즈컨을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이라며 "현장에 참여하는 팬들뿐만 아니라 온라인 참여자들도 블리자드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소외되지 않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블리자드의 향후 3~5년 장기 비전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패리스 사장은 "단기적으로는 오버워치나 하스스톤 등 기존 IP와 프랜차이즈에 집중해 커뮤니티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팬들이 기다리는 신규 IP에 대해서는 "기존 세계관 안에서도 성장과 확장의 잠재력이 여전히 크다"며 "단기적으로 조직의 체력과 규모를 탄탄히 다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패리스 사장은 "K-팝과 한국 문화가 우리 게임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는 블리자드 전반의 중요한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국내 아이돌 그룹 르세라핌과의 협업이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패리스 사장은 "한국 문화 기념은 블리자드다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며 앞으로도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35주년을 맞이하는 블리자드의 유산에 대해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동시에 그 안에 살아있는 기회를 인식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오래된 타이틀의 플레이어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라며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할 영역과 기존 경험을 존중하며 발전시킬 영역에 대해 매우 건강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패리스 사장은 한국 팬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패리스 사장은 "한국 커뮤니티는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기반 측면에서도 블리자드를 블리자드답게 만드는 핵심"이라며 "매년 강화되는 한국과의 관계는 우리의 성공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며, 팬들의 열정에 기대 이상의 결과물로 보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2026.02.12 08:05정진성 기자

비젼랩, 정읍 고택서 '아트 리트릿' 전시 성료

아트테크 기업 비젼랩(VISION LAB)과 유어네스트(YourNest), 콘텐츠·에듀테크 기업 큐밋(Qmeet)이 공동 기획한 전시 '오래된 미래, 예술로 피어나다'가 지난해 12월 9일 전북 정읍 김명관 고택 인접 공간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0일 비젼랩에 따르면, 국가민속문화재 제26호 김명관 고택의 장소적 맥락을 살린 이번 전시는 지역 문화유산 공간을 활용한 전시 모델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부터 '태양'을 주요 모티프로 작업을 이어온 원로 화가 신동권과 함께 채밍(Chaeming), 리윤(이윤희), 양선영, Gleam(박경희) 등 신진 작가 4인이 참여해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전시로 구성됐다. 서로 다른 세대 작가들이 '오래된 미래'라는 공통 주제를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내며, 문화유산 공간과 현대 예술이 교차하는 장면을 완성했다. 비젼랩 이소민 대표는 “유럽예술가도서관협회(ECAL)와 미국 뮤지엄 오브 아메리카가 2005년 뉴욕 아트 엑스포를 통해 올해 '20명의 국제 현대 예술가'로 선정된 신동권 작가의 일관된 예술 세계가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뤘다”며 “여기에 신진 작가들의 현대적 감각이 더해지며 전통과 현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아트 리트릿(Art Retreat)' 프로그램의 PMF를 성공적으로 검증하며, 기존 관람형 전시의 틀을 깨고 '체류형 문화 콘텐츠'로서의 확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주최 측은 이를 발판 삼아 전북 지역 회화 작가들이 참여하는 체류형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 종료 이후에는 정읍시청 관계자 및 정읍 정심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과 후속 협의로 이어지며, 단발성 전시에 그치지 않고 정읍시 문화유산 공간을 활용한 전시 모델로서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히 상설 프로그램 도입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며, 로컬 기반 문화 기획이 실제 운영 단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비젼랩은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강원 기반 아트테크 기업으로, 예술 창작 과정을 데이터로 기록·보존하는 플랫폼 '아트로그(Artlog)'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예술·기술 융합 특화 플랫폼 아트코리아랩 멤버십 기업이다. 유어네스트는 '예술의 구체화'를 비전으로 예술을 대중의 감정에 공명하는 문화적 경험이자 가치 있는 실물 자산으로 전환하는 아트테크 스타트업이며, 큐밋은 전북 기반 콘텐츠·에듀테크 기업으로 지역에 묻혀 있는 이야기와 가치를 교육과 문화로 연결하는 콘텐츠 기획을 수행하고 있다. 세 기업은 이번 전시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지역의 문화유산 공간을 무대로 한 후속 전시 및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2026.02.10 21:56방은주 기자

빗썸 비트코인 오지급 사건…돌려주지 않으면 무슨 일 생길까

안녕하세요 AMEET 기자입니다. 며칠 전 빗썸에서 벌어진 비트코인 오지급 사건으로 시장이 떠들썩했죠. 누군가에겐 '인생 역전의 기회'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잘못 지급된 비트코인을 돌려주지 않고 버티면 정말 괜찮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형사 처벌은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공짜 돈'이 되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훨씬 더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 부닥칠 수 있습니다. 우선, 왜 감옥에 가지 않는지부터 간단히 짚어보죠. 우리나라 대법원은 과거 유사한 사건에서 가상자산, 즉 비트코인은 형법에서 말하는 '재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실수로 들어온 비트코인을 마음대로 팔아버려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많은 사람이 '돌려주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하지만 법의 세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형사상 책임이 없다는 것이 민사상 책임까지 면제해주는 건 아니거든요. 법에는 '부당이득'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법적인 원인 없이 다른 사람의 재산으로 이익을 얻었다면, 그 이익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이죠. 빗썸이 실수로 보낸 비트코인은 바로 이 '부당이득'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빗썸은 비트코인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AI 전문가들의 격론: '버티기'는 과연 최선의 선택인가 이 문제를 두고 AI 전문가들이 나눈 가상 토론에서는 이 '버티기' 전략의 실효성을 두고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의견이 크게 엇갈렸습니다. AI 전문가인 위기관리 전문가는 처음엔 이 상황을 '통제 불가능한 위기'라고 진단했습니다. 형사 처벌이 불가능하니 돈을 받은 사람이 해외로 빼돌리거나 개인 지갑에 숨겨두고 버티면 사실상 회수가 어렵다는, 다소 비관적인 시각이었죠. 그의 말처럼,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상 한번 개인 지갑으로 옮겨진 자산을 강제로 뺏어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AI 전문가인 민사법 전문가와 디지털 자산 회수 전문가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이미 개인 은행 계좌로 빠져나간 30억 원이나 다른 국내 거래소로 옮겨진 자산은 추적이 쉽고 표적이 명확하다고 봤습니다. 이들은 '가압류'라는 강력한 법적 수단을 언급했는데요. 빗썸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가압류를 신청하면, 법원은 빠르면 24시간에서 72시간 내에 해당 계좌를 동결시켜 돈을 빼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일단 계좌가 묶이면, 소송이 끝난 뒤 빗썸이 그 돈을 강제로 회수해 갈 수 있습니다. 이 토론을 통해 위험의 성격이 한층 더 명확해졌습니다. 비트코인을 받은 사람이 돈을 국내 은행이나 거래소에 그대로 두었다면, 사실상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 반면, 앞서 말한 것처럼 개인 지갑으로 옮기거나 믹서(가상자산 거래 기록을 섞어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기술)를 사용해 자금 세탁을 시도하면 추적이 매우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빗썸은 소송에서 이긴 판결문을 근거로 그 사람의 다른 재산, 예를 들어 집이나 자동차, 월급까지도 압류해서 돈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결국 AI 전문가들은 의견을 모았습니다. 비트코인을 받은 사람이 '버티기'를 선택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소송 비용, 불어나는 이자, 다른 재산 압류의 위험, 그리고 신용도 하락이라는 더 큰 손실로 이어지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점에 대해서 말이죠. AI 전문가인 금융소비자 대표가 내놓았던 '지금 당장 돌려주고 합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초기 주장이 가장 현실적인 결론으로 모아진 셈입니다. AI 전문가인 비판적 관점 전문가는 이번 사건이 가상자산을 재물로 보지 않는 현행법의 허점과 시스템의 취약점을 드러냈다며, 근본적인 법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뼈아픈 지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빗썸 역시 기업공개(IPO)와 사업자 자격 갱신 심사를 앞두고 큰 악재를 만났습니다. 금융 당국은 빗썸의 내부 통제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히 들여다볼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회사의 미래가 좌우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뜻밖의 행운'처럼 보였던 일이 사실은 얼마나 무거운 법적, 재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디지털 자산 시대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오래된 격언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 해당 보고서 보기 https://ameet.zdnet.co.kr/uploads/0adcc8c8.html ▶ 이 기사는 리바랩스의 'AMEET'과의 제휴를 통해 제공됩니다. 더 많은 보고서를 보시려면 'AI의 눈' 서비스로 이동해주세요 (☞ 보고서 서비스 바로가기)

2026.02.09 12:44AMEET

리튬금속전지 덴드라이트 난제 상용수준으로 해결…비밀은 '주석 0.19원자%'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로 주목받는 리튬금속전지 난제 하나가 상용화 수준으로 해결됐다. 덴드라이트 형성 자체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것. 덴드라이트는 리튬 배터리 충·방전 과정에서 음극 표면에 쌓이는 나뭇가지 결정체다. 지속적으로 쌓여 성장하면서 배터리 수명 저하나 전해막을 찢어 전지 폭발을 초래한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차세대에너지연구소(소장 엄광섭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짧은 전기 신호를 반복적으로 가해 전극 표면을 정밀하게 다듬는 방식(전기화학적 펄스 증착 공정)으로, 리튬금속전지 음극에서 리튬 이동과 안정성을 결정하는 표면(계면)을 단 2분 만에 형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이 기술 개발을 주도한 이창현 박사과정생(제1저자)은 "배터리 음극에서 전류를 전달하는 구리 표면에 주석(Sn) 극소량(0.19 원자%)을 머리카락보다 가는 나노와이어 전구체(SCN)에 넣어 나타나는 효과를 관찰한 것"이라며 "리튬 금속이 한쪽으로 뭉치지 않고 고르게 쌓일 수 있는 안정적인 계면을 빠르고 간단한 공정으로 구현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창현 박사과정생은 "리튬이온 속도가 빨라 이동 과정에서 한 눈 팔 틈도 없이 목적지(음극)로 바로 들어간다"며 "논문에서는 덴드라이트 '프리'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덴드라이트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용화와 관련해서는 "현재 특허 출원을 준비중"이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GIST 기술사업화센터 측은 공정 자체가 단순해 상용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술이전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연구팀은 실험결과, 리튬 이온 이동 속도가 기존 구리 계면보다 약 24배 빨라 리튬금속전지에서 오래된 문제로 꼽혀 온 리튬이 고르게 쌓이지 않는 현상과 덴드라이트 성장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구조(나노와이어 계면)를 적용한 배터리는 900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했고, 리튬인산철(LFP) 양극을 적용한 실제 배터리 시험에서도 약 1시간 이내에 충·방전이 이뤄지는 고속 조건(1.0C)에서 480회 사용 후에도 초기 용량의 98.2%를 유지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엄광섭 교수(교신저자)는 “이번 연구는 리튬금속전지 상용화의 가장 큰 난제로 꼽혀 온 덴드라이트 형성 문제를 리튬 음극 전기화학적 계면 설계만으로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2분 이내에 구현 가능한 간단한 공정으로도 고속 충전과 긴 수명 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기존 배터리 제조 공정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기술”이라고 말했다.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을 받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에너지 스토리지 머티리얼즈'에 온라인으로 게재됐다.

2026.02.09 09:47박희범 기자

[박종성 피지컬AI⑤] "공짜 로봇은 당신의 침실을 보고 있다"

■ 움직이는 감시자: 피할 곳 없는 집 기억을 조금만 되돌려보자. 수년 전, 우리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판매하던 인공지능 스피커가 사용자의 일상적인 대화를 몰래 녹음하고, 이를 제3자인 하청 업체 직원들에게 보내 일일이 듣고 검수하게 했다는 사실이 폭로된 사건이었다. 당시 우리는 그저 기계에게 "오늘 날씨 어때?"라고 묻거나 "신나는 음악 좀 틀어줘"라고 명령했을 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거실 한구석에 놓인 그 작은 기계는, 우리가 배우자와 격렬하게 부부 싸움을 하거나 누군가와 은밀한 통화를 나누는 지극히 사적인 순간까지 귀를 열고 듣고 있었다. 나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가 낯선 타인의 귀로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은 실로 소름 끼치는 배신이었다. 비단 '소리'뿐만이 아니다. '보는 눈'에 대한 공포는 더 심각했다. 반려동물을 지켜보거나 자녀 안전을 위해 설치한 가정용 방범 카메라가 해킹되어, 집 안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전 세계 어딘가에 있는 불법 웹사이트에서 생중계되고 있었다는 섬뜩한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나를 지켜달라고 설치한 보안 장치가, 오히려 나를 감시하는 '디지털 구멍'이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제 곧 우리 거실로 들어올 '피지컬 AI' 시대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감시의 공포는, 단지 이 정도 수준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사용하던 스피커나 카메라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것들은 전원 선에 묶여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커가 없는 방으로 들어가거나, 카메라 렌즈의 사각지대로 피하면 적어도 감시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숨을 곳'이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두 발이나 바퀴를 이용해 움직이며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로봇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들은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자율주행 기술로 집 안의 모든 구조를 샅샅이 지도로 그려낸다. 안방 문을 닫아도, 부엌 구석으로 숨어도 소용없다. 로봇은 내가 어디에 있든 찾아올 수 있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고정된 CCTV가 '피할 수 있는 감시'였다면, 발 달린 로봇은 '피할 곳 없는 추적자'다. 우리는 지금 사각지대가 완전히 사라진, 전례 없는 투명한 감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달콤한 "0원 로봇"의 함정 "구독료 0원, 초기 비용 0원. 지금 바로 우리 집 가사 도우미, 휴머노이드 '네오(NEO)'를 입양하세요." 현재 1X 테크놀로지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네오'는 약 2700만 원(2만 달러)이라는, 일반 가정에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높은 가격에 얼리 액세스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1~2년 뒤에는, 서울 시내 가전 매장 유리창마다 이처럼 파격적인 '0원 로봇' 광고가 나붙을 것이라 예측한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목격해 왔다. 스마트 TV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트업 '텔리(Telly)'가 그 증거다. 텔리는 무려 55인치 4K 고화질 TV를 소비자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주고 있다. 자선 사업일까? 아니다. 텔리는 TV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TV 하단에 부착된 별도의 스크린에 24시간 광고를 노출하고, 시청자가 언제 무엇을 보는지, 어떤 제품에 관심을 갖는지 등 시청 습관과 인구통계학적 정보를 모조리 수집할 권리를 가져간다. 즉, TV라는 하드웨어는 소비자를 낚기 위한 미끼일 뿐, 진짜 상품은 바로 TV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의 데이터'인 셈이다. 로봇 산업의 미래 역시 이와 판박이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로봇의 대량 생산으로 제조 원가는 빠르게 떨어지는 반면, 인공지능 학습에 필요한 현실 세계 데이터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기기 가격을 원가 이하로 대폭 낮추거나 아예 공짜로 뿌리는 대신, 사용자의 일상 전체를 담보로 잡는 '조건부 보조금' 모델을 채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거부하기 힘든 달콤한 제안 뒤에 숨겨진 조건은 단 하나다. 바로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 있는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동의서' 필수 항목에 체크하는 것이다. 그 순간, 로봇은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집 안 곳곳을 누비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합법적인 스파이가 된다. 겉보기에는 로봇이 고된 가사 노동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구세주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해킹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치명적인 위협이, '합법'이라는 가면을 쓴 계약서 뒤에 똬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오래된 격언을, 최첨단 로봇 시대에 다시금 뼈저리게 되새겨야 할지도 모른다. ■ 당신의 삶을 인덱싱하는 물리적 쿠키 인터넷 시대에 구글이나 메타 같은 기업은 '쿠키(Cookie)'를 통해 우리가 웹을 서핑하는 기록을 추적했다. 그러나 피지컬 AI 시대에 이루어질 데이터 수집은 그 차원이 다르다. 웹 쿠키가 우리의 '관심사'를 훔쳐봤다면, 로봇은 우리의 '실존' 그 자체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물리적 쿠키(Physical Cookie)'가 된다. 거실과 안방을 돌아다니는 로봇의 카메라는 24시간 꺼지지 않는다. 이들은 단순히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서만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AI는 이미 사람의 팔다리 움직임, 자세, 표정 등 일상적인 행동만 보고도 우울증 증상을 탐지할 수 있다. 그리고 로봇은 바닥의 약봉지로 주인의 지병을 분석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술병 개수를 세어 알코올 의존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심지어 부부 싸움 빈도나 아이를 훈육할 때 내뱉는 고성까지, 로봇이 달고 있는 수많은 센서는 집 안의 모든 사건을 데이터로 변환해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한다. 더욱 심각한 위협은 '원격 제어(Teleoperation)' 시스템에 있다. 로봇은 아직 100% 자율적이지는 않기에, 로봇이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다 오류가 나면 먼 곳에 있는 인간 운영자가 VR 헤드셋을 쓰고 직접 로봇을 조종한다. 이는 알고리즘에 의한 감시를 넘어, 지구 반대편 낯선 타인이 내 침실을 고화질로 들여다보며 내밀한 공간에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행동 잉여 착취와 '라이프스타일 권력' 하버드 대학 쇼샤나 주보프 교수가 날카롭게 경고했던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는 이제 2차원 웹 화면을 넘어, 우리가 숨 쉬는 3차원 현실 공간을 완벽하게 장악하려 든다. 피지컬 AI 기업 입장에서 로봇 하드웨어는 그저 데이터를 낚기 위한 화려한 미끼일 뿐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진짜 비즈니스 모델은 사용자가 보내는 지극히 사적인 일상 자체를 데이터로 가공해 제3자에게 비싸게 판매하는 데 있다. 이러한 거래 속에서 기업은 로봇이 부지런히 수집한 방대한 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보험사, 은행, 제약 회사 등과 은밀하게 공유할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해 보라. 건강 보험사가 로봇이 전송한 당신 식습관 기록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매일 밤 야식을 먹는 횟수, 냉장고 속 술병 개수, 운동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 있는 시간을 근거로 당신 건강 위험도를 높게 책정한다. 어느 날 갑자기 건강 보험료가 기습적으로 인상되더라도, 당신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다. 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대출 심사를 할 때 단순히 소득이나 직장 정보만 보지 않을 것이다. 은행은 로봇 데이터를 통해 당신이 평소 집 안을 얼마나 잘 정돈하는지,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이 얼마나 규칙적인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를 개인 '성실성'이나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보조 지표로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지 집이 어지럽거나 생활 패턴이 불규칙하다는 이유로 신용 점수가 깎이고 대출 금리가 오르는, 마치 드라마 '블랙 미러' 같은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 행동 하나하나는 기업 이윤을 창출하는 원재료, 주보프 교수가 말한 '행동 잉여(behavioral Surplus)'가 되어 끊임없이 채굴당하고 착취당하는 구조다. 내 삶은 내가 사는데, 정작 그 삶의 패턴을 분석해 막대한 돈을 버는 것은 엉뚱하게도 나를 감시하는 거대 테크 기업들이다. 우리는 지금 편리함을 대가로 내 삶의 주권을 데이터 브로커들에게 넘겨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 거실의 판옵티콘: 자기 검열이 지배하는 일상 제러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 감옥 '판옵티콘'은 죄수가 감시자 시선을 결코 피할 수 없는 구조다. 피지컬 AI가 도입된 가정은 이와 소름 끼치도록 닮았다. 가장 안락해야 할 우리 집이 완벽한 '디지털 감옥'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로봇이 24시간 나를 지켜보고, 내 행동 하나하나에 점수를 매긴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장 편안해야 할 집 안에서도 타인 시선을 의식한 '연기'를 시작하게 된다. 현관문을 닫으면 해제되었던 사회적 가면을, 이제는 잠들기 전까지 벗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로봇 카메라 앞에서 괜히 늘어진 옷매무새를 단정히 다듬고, 보험료 인상이 두려워 건강에 나쁜 맵고 짜거나 기름진 음식을 로봇 눈을 피해 몰래 숨겨 먹는 촌극이 벌어진다. 심지어 배우자나 자녀에게 화가 치미는 순간에도, 그 모든 상황이 데이터로 기록될까 두려워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다정한 말투를 꾸며내는 지독한 자기 검열이 일상을 지배한다. 이것은 단순히 불편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렇게나 소파에 널브러져 있을 자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죽일 자유와 같이 인간 정신 건강을 지탱해 온 가장 중요한 안전핀이 뽑혀나가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완전한 고독'과 '이완'이 사라진 공간은 더 이상 집이라 부르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로봇과 그 뒤에 숨은 알고리즘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데이터 친화적인 모범생'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이렇게 행동하면 신용 평가에 나쁠까?”, “이걸 먹으면 보험사가 알게 될까?”를 매순간 고민하며 사는 삶. 그것은 필연적으로 만성적인 긴장 상태와 깊은 정서적 고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육체의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지구상 마지막 안식처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 공간 데이터 주권과 기술적 방어막을 위하여 그럼에도 로봇이 가져다줄 가사 노동 해방,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프라이버시를 아주 조금만 양보하라, 그러면 지긋지긋한 청소와 빨래 지옥에서 영원히 구해주겠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프라이버시란 남에게 숨겨야 할 죄가 있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 존엄 영역 그 자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기술 규제를 넘어, 우리 공간 주권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시작해야 한다. 첫째, '물리적 보안 장치' 장착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화면 터치로 기능을 끄는 소프트웨어 방식은 해킹 위험 탓에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해커가 시스템 관리자 권한을 탈취하면 소프트웨어 스위치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대안은 확실하다. 아마존 가정용 로봇 '아스트로(Astro)'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카메라 렌즈를 플라스틱 덮개로 물리적으로 덮어버리는 셔터, 마이크로 들어가는 전력 회로를 아예 끊어버리는 버튼처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확실한 '프라이버시 셔터'가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간섭을 원천 차단하는 이런 물리적 장치를 제공해야 사용자가 안심할 수 있다. 둘째, 기술적 대안인 '프라이버시 강화 기술(Privacy Enhancing Technology, PET)'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내밀한 침실 영상이나 음성 데이터를 중앙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하지 않고, 로봇 기기 내부에서 자체 처리하는 '엣지 AI(Edge AI)'와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기술이 해법이다. 데이터가 로봇 밖으로 나가지 않게 가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연합 학습(Federated Learning)' 기술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원본 데이터를 서버로 보내지 않고, 각 로봇이 학습한 결과값(가중치)만 공유해 전체 지능을 높이는 방식이다. 또한 데이터를 암호화한 상태 그대로 연산하는 '동형 암호' 기술을 적용하면, 사용자 프라이버시를 철통같이 보호하면서도 로봇 지능을 고도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셋째, 데이터 소유권을 법적으로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집 안에서 생성된 데이터는 기업 소유물이 아니라 거주자 자산이다. 기업이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면 '서비스 이용을 위해 동의함'이라는 포괄적 동의가 아닌, 건별로 명시적 허락을 구해야 마땅하다. 좋은 선례가 있다. 경기도는 지역화폐 사용 데이터 등을 민간기업과 연구소에 판매하여 발생한 수익을 도민에게 환원하는 '데이터 배당'을 세계 최초로 실현했다. 이 모델을 가정 내 공간 데이터로 확장해야 한다. 내 삶을 기록한 데이터를 판매해 기업이 수익을 올렸다면, 그 몫을 정당하게 사용자에게 되돌려주는 '데이터 배당'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감시 자본주의에 맞서는 최소한의 경제적 정의다. ■ 투명한 유리 집에서 살 것인가 피지컬AI는 분명 고된 육체노동에서 인류를 해방시켜 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정신적 자유'라는 새롭고도 무거운 청구서를 우리 앞에 내민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기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기술은 설계된 목적대로, 그리고 거대 자본이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이끄는 방향대로 우리 세상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재편한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단지 몸이 조금 더 편해지기 위해, 기꺼이 옷을 벗고 안팎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유리 집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삶을 파고드는 로봇에게 “네가 들어올 곳은 딱 여기까지”라고 단호하게 침범할 수 없는 선을 그을 것인가. 로봇이 귀찮은 빨래를 대신 개어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영혼과 내밀한 사생활까지 탈탈 털어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편리함이 존엄보다 앞설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는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자. 그곳은 아직 나만을 위한 안온한 공간인가, 아니면 실리콘밸리 거대 테크 기업 서버가 촉수를 뻗친 데이터 채굴 현장인가. ◆ 필자 박종성은... LG CNS AI&최적화컨설팅 리더다. LG그룹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15년간 조선·철강·해운·항만·전자·화학·배터리 섹터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고객사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LG CNS Entrue 컨설팅 산하 AI 전문 조직인 최적화/AI그룹 그룹장을 거쳐, 현재는 AI·양자·로봇 등 미래 '게임 체인저' 산업 기술 근간이 되는 '수학적최적화(Mathematical Optimization)' 분야에서 컨설팅팀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산업 현장에서 피지컬 AI가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면서, 향후 기업 간 경쟁을 넘어 세계 경제 질서를 어떻게 재편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를 졸업했다. LG인화원, 부산대, 인하대 등에서 AI/최적화, 문제 해결 방법 등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피지컬 AI 패권 전쟁'(아래 사진) '혁신은 왜 실패하는가?'(2026년 'SERI CEO 비즈니스 북클럽' 선정, 아래 사진) 'Enterprise IT Governance, Business Value and Performance Measurement'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영어와 일본어로 쓰인 좋은 책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는 일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아마존 사람들은 이렇게 일합니다'(2021년 '세종도서 학술 부문 우수 도서' 선정), '누구나 쉽게 시작하는 AI, 수학적최적화' '기묘한 과학' 등 다수가 있다.

2026.02.07 11:09박종성 컬럼니스트

44억년 전 화성 운석, 예상보다 물 더 많았다 [우주로 간다]

지구에 떨어진 가장 오래된 화성 운석 중 하나로 꼽히는 '블랙 뷰티(Black Beauty)'에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물이 숨겨져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는 5일(현지시간) 에스트리드 나베르 덴마크 공과대학(DTU)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화성 운석 NWA 7034를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해당 연구는 지난달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게재됐다. 2011년 발견된 320g 화성 운석 '블랙 뷰티' NWA 7034는 '블랙 뷰티'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화성에서 다른 운석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약 320g 크기의 암석으로, 2011년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발견됐다. 다만 정확히 언제 지구로 떨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쪽 면이 심하게 마모되면서 더 짙고 어두운 색을 띠게 된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블랙 뷰티는 화성 적도 부근 지름 약 10㎞ 규모 카라타 분화구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암석의 연대는 최소 44억 4000만 년 전으로 측정돼, 현재까지 발견된 화성 운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례로 여겨진다. 2013년 과학자들은 블랙 뷰티 내부에 물의 흔적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다만 이번 덴마크 연구진의 분석에서는 이 물이 가열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도 새롭게 발견됐다. 지금까지는 운석에 갇힌 물을 연구하기 위해 작은 조각을 떼어내 분석해야 했기 때문에, 운석 전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연구진은 새로운 스캔 기법을 적용해 운석 전체의 수분 함량을 분석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 블랙 뷰티 질량의 약 0.6%가 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 손톱 크기 정도의 암석 조각에 해당하는 양으로 많아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기존 추정치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특히 이 물의 대부분은 수소가 풍부한 철 옥시수산화물(FeHO₂)의 미세한 조각 속에 갇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물질은 녹의 주요 성분과 유사하며, 운석 충돌처럼 고압 환경에서 철이 물과 반응할 때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X선을 이용해 인체처럼 연한 물체의 내부 이미지를 구현하는 CT 스캐닝의 한 형태를 활용했다. 다만 이번에는 전자기 방사선을 대신해 운석 시료에 중성자를 조사했다. 중성자는 극도로 밀도가 높은 시료 내부에 포함된 수소 원자를 식별하는 데 특히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화성 물 증거 찾는 데 도움 줄 것” 오늘날 먼지로 뒤덮인 붉은 화성이 한때 물로 가득 찬 행성이었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러 증거들은 오래 전 화성에 지구처럼 거대한 바다가 존재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물의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일부는 화성 적도 근처에 묻힌 얼음 덩어리 형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랙 뷰티는 화성에서 물이 존재했다는 가장 오래된 직접 증거 중 하나로 평가되며, 화성에 한때 풍부했던 물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특히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화성 탐사 로버 '퍼시비어런스'가 수집한 샘플을 지구로 가져오는 샘플 회수 임무를 중단한 상태이기 때문에, 블랙 뷰티 같은 운석이 화성의 물을 연구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되고 있다고 라이브사이언스는 전했다.

2026.02.07 09:46이정현 미디어연구소

동양 선과 서양 테크 화려한 결합…테크노 샤먼, 우주적 종합예술 만들다

1. 노마디즘 : 실향과 귀향 “남이 안 다니는 길로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충만한 소년이었다. 늘 다니던 길에는 금방 싫증을 느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일부러 골라 다니곤 했다. 그래도 안전할 수 있었다. 동네의 이 길과 저 길이 모두 결국은 집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종로의 서린동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창신동에서 살았다. 남준의 집은 '큰대문집'이라고 불렸다. 대궐처럼 커다란 집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백낙승은 한국 최초의 재벌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거부였다. 식민지 모더니티가 휘황한 경성에서도 딱 두 대 밖에 없다는 캐딜락 승용차 중 하나가 남준네 큰대문 집 앞에 세워져 있을 정도였다. 벼락출세한 친일파, 졸부는 아니었다. 대대로 부를 축적한 뼈대 있는 가문이었다. 대일본제국에 앞서 대청제국과도 연이 깊었다. 중국에서 비단을 수입해 판매한 사람이 할아버지 백윤수다. 경쟁하지 않고 독점했다. 종로5가와 동대문 일대 포목상의 절반 이상을 백씨네 집안이 장악한 것이다. 국상이 나면 조정의 관리들이 입을 상복과 제복을 그의 집안에서 도맡아 만들었다. 대한제국이 멸하고 대청제국도 와해되고 대일본제국이 식민지 조선의 주인이 되는 수상한 세월에도 백씨네 독점 사업은 타격이 덜했다. 조선왕조의 거상에서 식민지 조선의 부르주아지로 진화한 것이다. 당시 한성은행의 자본금이 100만원이었던 반면에, 남준네 집안의 재산은 30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가문의 자산이 시중 은행의 규모를 넘어섰던 것이다. 하더라도 한국전쟁의 화마마저 피해갈 수는 없었다. 아니 진정한 위기였다. 중원의 중국도 해양의 일본도 아닌 북방의 오랑캐, 붉은 공산주의자들이 남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백씨 집안으로서도 장래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부자집 막내아들, 남준의 인생도 급변한다. 더 남쪽으로 튀어, 피난민이 된 것이다. 졸지에 실향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그 막대한 부로 인해 실향과 피난의 스케일이 남달랐다. 거제도나 제주도가 아니었다. 남중국해 지나 아시아 최대의 금융도시, 홍콩으로 피난 간다. 현해탄 건너 동양 최고의 공업국가, 일본으로 피신했다. 글로벌 디아스포라, 떠돌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워낙 풍요로운 유년 시절을 경험하였기에 물질에 대한 관심이 덜했다. 궁핍한 가난의 서러움을 알 리가 없었다. 저 멀리 유대인부터 중국계 화교들처럼 돈에 집착하는 헝그리 정신이 없었다. 천상 곱디 고운 도련님, 천진난만과 순진무구로 철없는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 훗날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로 명성이 자자할 때도 경제적으로는 쪼들리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정반대로 집요할 정도로 정신 세계의 확장과 심화에 천착했다. 홍콩에서는 중화문명의 오래된 고전에 심취한다. 한문과 중국어를 배운다. 유가나 법가보다는 도가가 취향에 맞았다. 노자와 장자, 노장사상에 빠져든다. 붕새의 날개를 활짝 펼쳐 소요유하는 삶을 선망했다. 태초의 텅 빔이 우주의 근원이라 여겼다. 세속적 가치를 초탈한 것이다. 그래서 스케치도 즐겨 수성 팬으로 그렸다. 그림조차 지워질 때까지만 즐기라는 뜻이다. 작품을 창조하는 그 찰나의 몰입에만 몰두했다. 휘발되더라도 연연하지 않았다. 어제의 작품은 곧 시들하고 시시해진다. 오늘에서 내일로, 머나먼 미래를 살았다. 담을 쌓기 보다는 길을 만들고자 했던 유목민들의 놀이터, 초원의 미학을 탑재한 것이다. 노마드들은 피라미드도 아크로폴리스도 만리장성도 남기지 않았다.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니, 늘 새로운 길 만을 열었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가마쿠라에서 지냈다. 도쿄 근처, 고즈넉한 소도시였다. 에도 시대에는 막부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문화계 명사들의 삶과 사연이 깃든 곳이었다.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거주했다. 일본 단편문학의 거두로 꼽히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또한 이 곳에서 살았다. 일본의 전통적인 미학이 응축되어 있는 장소였다. 가마쿠라는 또한 '절의 도시'이기도 하다. 선종 사찰이 특히 많다. 선종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불성이 존재하기에 이를 발견하기만 하면 누구나 열반에 이른다고 믿는 불교의 일파이다. 좌선과 참선을 가장 좋은 수행 방법이라고 여긴다. 마인드풀니스, 명상 역시 선종이 강력하게 권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백남준도 일본의 선(ZEN) 사상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도쿄대학교에서는 이성을 갈았고, 가마쿠라에서는 영성을 닦았다. 한중일, 서울과 홍콩, 도쿄 등 동아시아를 섭렵한 남준은 서유럽으로 떠난다. 1956년 인도양을 건너 독일에 당도했다. 비행기로 직통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아시아 해양도시를 순회하며 유라시아의 서쪽 끝에 이르렀다. 대동아공영권의 꿈이 파산했던 일본에서 출발하여, 제3제국을 도모하다 파멸했던 독일에 도달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가면 인구 15만명의 작은 도시 다름슈타트가 있다. '사이언스 시티'라고 불릴 만큼 과학 관련 연구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그 과학도시에서 매년 여름마다 국제 신음악 강좌가 열렸다. 기술과 예술의 시너지를 탐구하는 최일선의 과학자와 최전선의 예술가들이 회합하는 자리였다. 남준의 머리 속에서 신세계가 열리었다. 고전적인 음악과 미술이 새로운 과학기술을 통하여 하나로 합류하는 미래가 보이는 듯하였다. 미디어 아트라는 신천지가 깨달음처럼 떠오른 것이다. 미술과 음악에는 이미 일가견이 있었다. 관건은 과학과 공학에 능란해지는 것이었다. 전기와 전자 등 텔레비전과 관련된 전문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한다. 현대 물리학의 세계에 침잠하기 위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다른 책들을 창고에 처박아 버렸다. 교외의 아지트에 틀어박혀서 온종일 오로지 테크놀로지를 연마한 것이다. 일견 아티스트보다는 엔지니어처럼 보일 정도였다. 수중에 있던 돈을 몽땅 털어서 텔레비전을 사서 실험과 실습을 거듭한다. 동굴의 벽화에서 캔버스의 회화를 지나 브라운관에서 전기와 전자의 신호로 황홀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법을 탐구한 것이다. 물리학은 시처럼 로맨틱하고, 수학은 잘 어우러진 악보 같다고도 하였다. 마침내 그 창조의 자궁 속에서 신기술을 장착한 신예술, 미디어 아트를 잉태하고 산출해낸다. 1963년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세계 최초의 비디오 아트 전시였다. 인류 역사상 첫번째 음악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초의 미술가가 누구였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는 명확하다. 미디어 아트의 창조주로서 백남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다채롭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잭슨 폴록처럼 격정적으로, 제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비디오 아트를 표현할 수 있었다. 디지털 문명의 네오 르네상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견줄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 1964년 대서양을 지나 미국으로 향한다. 예술의 메카, 뉴욕에 당도한다. 화려한 월스트리트 대신에 황량한 소호 거리의 허름한 집으로 거처를 마련했다. 월세를 제때 맞추어 내본 적이 없다. 늘상 차이나타운의 저렴한 음식점에서 끼니를 겨우겨우 때우고는 했다. 10달러로 열흘을 버티던 때도 있었다. 전기 요금조차 제대로 내지 못해 건물 전체의 전원이 끊기는 일도 일어났다. 전전긍긍하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그러함에도 창작열만큼은 불타올랐다. 주변에는 아방가르드, 전위적인 예술가들이 몰려 들었다. 68혁명의 분위기를 타고 동양의 정신에 열광하는 히피들도 득실거렸다. 남준은 동도서기, 서양의 테크놀로지에 동양의 이데올로기를 담아 새로운 예술 세계를 선보이는 아시아에 온 문화 테러리스트였다. 'TV 붓다'가 상징적이다. TV 뒤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여 부처의 모습이 브라운관에 나오게 했다. 마치 부처님이 TV 화면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깊은 상념에 빠진 듯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나르시시즘과 너바나 사이, 자아와 무아 간의 길항이 절묘하다. 동양의 선(ZEN)과 서양의 테크(TECH)가 만나 누구도 상상하지도 못한 독특한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뉴욕의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이 환호하고 열광했다. 백남준의 명성이 세계를 호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7년 다시 독일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초빙 받은 것이다. 학생에서 선생으로, 최고의 예술대학에서 교수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두둑한 월급을 받으며 생활비 걱정 없이 작업할 수 있었다. 서독 사람들은 남준을 '마에스트로'로 대접해 주었다. 카페나 펍이나 레스토랑에 가면 종업원들마저 융숭하게 환대해 주었다. 지금도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전철에 남준의 웃는 모습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을 정도이다. 지나간 천년과 새로운 천년이 교차하는 밀레니엄의 2000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백남준 특별전을 기획한다. '백남준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 것이다. 구겐하임이 이런 파격적 대우를 해준 최초의 동양인 예술가가 되었다. 새천년의 첫 전시회라는 콘셉트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백남준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뉴욕의 갤러리 만도 아니다.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도 남준의 작품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3층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형형색색의 네온 튜브 불빛이 두 눈을 찌른다. 미국의 영토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작품에 탄성이 절로 새어 나온다. 동쪽 끝 메인 주에서 서쪽 끝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텔레비전으로 표현한 미국은 실로 광대하고도 다채롭다. 각양각색으로 구분한 각 주의 브라운관에서는 그 주를 상징하는 영상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캔사스 주에는 이곳을 무대로 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가 나오고, 알래스카 주에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풍경을 보여준다. 하와이 주에는 남태평양이 출렁이고, 켄터키 주에서는 경마 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처럼 광활하고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이리도 기술적으로 진보한 미국의 느낌을 이렇게도 잘 표현한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영구 전시될 예정이다. 제목은 더욱이나 의미심장하다. '전자 초고속도로'. 일렉트릭 슈퍼하이웨이는 훗날 1990년대의 40대 정치인, 클린턴 정부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가 된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화와 세계화가 미국의 새로운 힘이었던 것이다. 백남준은 한 발 앞서 1980년대부터 이미 인공위성 예술로 도약한다. 1984년, 1986년, 1988년의 삼부작이 대표적이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인다. 조지 오웰은 기술 문명이 고도화된 디스토피아로 '1984'를 묘사했다. 남준은 그 우울한 전망을 발랄하게 전복시켰다. 테크놀로지야말로 온 인류를 연결하여 새로운 의식을 창출하는 멋진 신세계의 엔진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뉴욕과 파리와 도쿄, 그리고 서울을 연결하여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인류 최초의 지구촌 종합예술을 선보인 것이다. 미국과 일본과 프랑스와 한국의 방송국들이 실시간으로 공연을 내보냈다. 한국은 1984년 새해 첫 날 새벽이었음에도 6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했다. 백남준의 이름이 마침내 모국에도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그해, 34년만에 금의환향한다. 드디어 태평양을 건너 모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1980년대 한국은 여전히 자유여행조차 허락되지 않던 시절을 통과하고 있었다. 일본인 아내와 함께 독일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생활하는 남준의 정체성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단칼에 "나야말로 한국인이요" 잘라 말했다.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팔고 있는 문화 상인이라며 당당하게 응답했다. 고향을 떠난 남준은 유목민들처럼 멀리멀리 내다보았다. 고국에 있던 한국인들은 빨리 빨리 따라잡았다. 남준의 스케일과 한국의 스피드가 합류하여 새로운 스타일-K를 낳았다. 1986년의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게임을 연출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30여년, 한 세대 만에 중진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남준은 아시안 게임에서도 인공위성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바이바이 키플링'이라는 제목이었다. 키플링이 누구던가. 동은 동이요, 서는 서라며, 동과 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대영제국의 오만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 무례한 키플링에게 시원한 작별인사를, 굿 굿바이를 보낸 것이다. TV를 통하여,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인공위성에 의하여 동과 서에 가로놓인 심연을 뛰어넘는 예술을 창조했던 것이다. 1988년, 미국과 소련이 동시에 참여하여 탈냉전의 기폭제를 알렸던 서울올림픽에서도 남준은 개막 공연에 참여한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핸드폰과 아이폰, 스마트폰으로 연결하는 디지털 노마디즘의 모바일 월드를 한 세대 일찍 연출해 보여주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마이애미에서 요양하던 시절에도 그는 늘 한국을 그리워했다. 즐겨 삼천리 금수강산, 금강산 그림을 그렸다. 피아노로는 아리랑을 자주 연주했다. 최후의 작품, 유작은 '엄마'라는 제목이다. '엄마'는 치마 저고리 안에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상을 담은 비디오를 설치한 작품이다. 살구 빛 모시를 대나무 옷걸이에 걸어둔 뒤 배 부분에 텔레비전을 설치해 한복을 입은 세 소녀가 즐겁게 뛰놀면서 엄마를 외치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이 작품에 사용할 두루마기를 구하기 위하여 남준은 휠체어를 직접 끌고 도처를 돌아다녔다. 작품 속 아이들의 목소리와 몸짓은 명명백백 유년기 종로에서 지냈던 남준과 누나들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 2. 샤머니즘 : 모성과 신성 남준은 종종 자신을 몽골의 후예라고도 칭했다. 훌러덩 바지를 벗어 던지고 엉덩이의 몽고반점을 보여주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벌인 적도 있다. 현대 미국을 상징하는 '전자 초고속도로'를 만들 때에도, 인도양과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인공위성 예술을 선보일 때에도 그가 늘 레퍼런스로 참조했던 것이 몽골인들이 만든 북방 초원의 세계제국이었다. 지나간 천년 몽골인들이 동양과 서양을 연결해내었던 것처럼, 새로운 천년에는 한국인들이 구대륙과 신대륙을, 동반구와 서반구를 잇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암호처럼 암각화처럼 새겨둔 것이다. 그는 그 소명을 다하기 위하여 일본과 독일과 미국을 전전하며 유랑하는 떠돌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유골 또한 동서양에 골고루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동과 서를 잇는 기표로서 '북방'을 가리키며 글로벌 그루브, 토착적인 노마디즘을 살아낸 것이다. 그 북방 유목민의 기질에는 다름아닌 어머니, 엄마의 영향이 지대했다. 부를 쌓고 살아가는 정착민 아버지와는 평생 절연했지만,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치성을 드리는 어머니는 일생을 지탱하는 무의식이 되었다. 다시 유년 시절, 시월 상달이 되면 창신동 큰대문 집에서는 굿판이 열렸다. 일년의 액운을 때우기 위해 무당을 부르는 것이다. 양기에서 음기로 우주의 기운이 뒤바뀌는 계절이었다. 저 멀리로는 강강수월래, 고조선과 고구려의 풀문 페스티벌을 되새김질하는 일이기도 하다. 24시간 동안 망아의 엑스터시, 황홀경이 펼쳐진다. 망자의 혼을 부르는 것이기에 깜깜한 밤 시간에 클라이막스가 전개된다. 응당 밤과 달의 주역은 여성이고 모성이었다. 무당이 나타나면 남자들은 죄다 집 밖으로 쫓겨났다. 큰대문집을 독차지한 여성들은 노래하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면서 집단적 몰입 상태로 들어간다. 그 월광 소나타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에 무당은 돼지머리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 놓고 춤을 춘다. 그 리듬은 오백 년 한양을 지배하던 중국식 아악이 아니었다. 궁중 음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반만년, 오천년의 비트와 바이브가 서리어 있는 토착적인 한국의 율동이었다. 세 박자 싱코페이션이 두드러진다. 369, 369, 369, 369. 정박자가 아니라 엇박자가 흥을 돋군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소년'이었던 남준은 매년 한 번씩 펼쳐지는 이 떼창과 칼춤과 군무의 굿판을 라이브 콘서트로 감상할 수 있었다. 평생토록 잊을 수가 없는 강렬한 원체험이 된 것이다. 한쪽 시각을 잃었던 무당의 그 희번뜩한 눈동자마저도 또렷하게 기억할 정도였다. 훗날 남준은 중국과 노장의 도(TAO)도 훌륭하고, 일본과 불교의 선(ZEN)도 좋지만 한국의 '무'(MU)에 견주자면 너무나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무교야말로 훨씬 창의적이고 역동적이라고 자부했다. '설문해자'에 따르면 '巫'는 춤으로 신을 강림케 하는 행위를 표상한다. 일할 공(工)자에 사람 인(人)을 좌우로 배치해서 다함께 춤을 추는 형상이 바로 '무'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행하는 일이 바로 천지공사, 무업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토착적인 정신세계에서 무는 무속이 아니라 무교였다. 그 신성한 의례를 집행하는 여사제 또한 무당이 아니라 무성이었다. 백남준은 그 뿌리 깊은 전통을 최첨단의 뉴미디어와 접속시켜 테크노 샤머니즘을 구현하는 '전자-무당'이 되었던 것이다. 이동통신을 통하여 접신하고 신통을 부리는 미디어 아티스트 무성이 된 것이다. 음악도 미술도 패션도 하나의 종합예술로 융합시켜 평생을 도처에서 작두를 타고 푸닥거리하며 살아간 것이다. 실제로 굿판을 벌인 적도 있다. 1990년 7월 20일, 남준은 갤러리 현대의 뒷마당에서 평생의 친구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진혼 굿을 연출한다. 흰 도포를 걸치고 머리에는 갓을 썼다 . '갓'이라는 말도 오묘하다.' GOD'과 발음이 동일하다. 본디 상투를 틀고 갓을 썼던 까닭도 신성에 이르기 위해서였다. 하늘과 접속하는 정신의 안테나였다. 접신과 신통에 이르는 샤먼의 뿔이 갓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 갓을 쓴 남준이 요강과 놋그릇을 메달아 놓고 엎어진 피아노에 삽으로 흙을 뿌리며 보이스의 혼을 불러내었다. 한 편에는 백남준이 지어준 한국식 이름 '보이수'를 커다랗게 쓴 병풍이 세워졌고, 또 다른 쪽에는 네 줄로 쌓은 16대의 텔레비전이 신단수 나무처럼 놓여 있었다. 한국과 독일이, 동양과 서양이, 기술과 예술이, 테크놀로지와 샤머니즘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우주적인 난장판이 펼쳐진 것이다. 그날 그는 반 세기 전 창신동의 집 마당에서 보았던 큰 무성의 신들림처럼, 신 내린 듯이 신명 나게 놀았다. 행사에 참석한 무속인 부부가 남준의 신기에 기가 눌렸을 정도이다. 신묘하게도 진혼 굿이 끝난 오후부터 거센 모레 바람과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둥 번개도 치더니 굿판이 열린 마당에 서 있던 커다란 느티나무에 벼락마저 떨어졌다. 신통방통, 남준은 보이스의 영혼이 다녀갔다고 흥얼거리며 신바람이 났다. '예술계의 칭기스칸'이라는 별명처럼 칭기스칸은 백남준의 정신적 조상이었다. 그리고 그 뿌리는 기마 민족 스키타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준은 스키타이인들이 한반도 남쪽 끝, 오늘의 경주에까지 도래했다고 설명한다. 사슴뿔 모양의 신라 금관이 바로 그 예시라는 것이다. 절친 보이스 또한 유라시아와 인연이 깊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크림 반도에서 격추당하는 사고를 입는다. 그런데 부상을 당해 의식을 잃은 그를 구조해준 이들이 하필이면 타타르 사람이었던 것이다. 칭기스칸은 스스로가 위대한 샤먼이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샤먼-킹이었다. 그는 전쟁기계인 말을 타고 흑해부터 황해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리고 그 광활한 다문명-다종교-다민족을 관할하는 평화기계로서 샤머니즘을 활용했다. 농업문명 이래 동서양에서 등장한 기축종교들, 기독교와 이슬람과 불교와 유교의 화합과 융합과 조화를 원시종교인 무교를 통하여 이룩한 것이다. 공맹과 노장과 예수부터 싯다르타와 마호메트까지 가부장적 고등종교를 회통하는 신통한 묘안으로 태고의 모계적 무교를 동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몽골세계제국은 세속적으로는 서양의 황제와 동양의 천자를 넘어서는 대칸의 권위로서 정치적 위계를 확립했고, 영성적으로는 동양의 하늘과 서양의 헤븐을 포월하는 북방의 탱크리로서 사해의 동포를 품어내었던 것이다. 원시반본, 시원으로의 귀환을 통해 천하무적의 태평성세를 이룰 수가 있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한 백남준은 칭기스칸과 스키타이의 왕으로서 '단군'을 내세운다. 단군을 보위하는 기마병과 전사들을 로봇으로 구현했다. 로봇의 몸체에 설치된 비디오는 몽골전사의 구리 거울 같은 것이었다. 샤먼은 굿을 할 때 문명의 이기인 칼과 하늘과 소통하는 북과 방울을 사용한다.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만다라)도 이용한다. 남준이 가장 먼저 만든 로봇이었던 K-456에는 배설기관도 달아 주었다. 기계의 매커니즘에 유기체의 오가니즘을 장착해 준 것이다. 그 배설물로 사용한 것도 바로 북방 유라시아의 사슴 똥이었다. 태고의 주술에서 쌍생아로 나온 것이 바로 예술이고 기술이었다. 기술은 해결하고, 예술은 해소한다. 예술로는 정신을 해탈하고, 기술로는 물질을 해방한다. 기술과 예술이 다시 주술처럼 합류하여 마법의 시대로 도약한다. 수리수리 마수리 바이브 코딩으로 주문을 외우면 3D 프린팅으로 주물이 완성되어 스르르 출력된다. 만인이 조물주처럼 창조주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사 시대의 샤먼이 역사 시대의 사피엔스를 지나 후사 시대의 사이보그로 진화하는 것이다. 디지털 문명의 삼종신기로 테크노-환단고기를 구현한 셈이다. 실로 백남준은 텔레-비전, 저 멀리 미래를 내다보는 독보적인 세계정신의 비저너리였다. 과천에 있는 현대미술관에 가면 남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다다익선'을 감상할 수 있다. 1003개의 TV로 쌓아 올린 디지털-첨성대이다. 지상과 천상을 잇는 세계수이자,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우주목이다. 1003개는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한다. 과연 한국은 유일하게 저 하늘이 크게 열린 날을 기념하는 단군의 나라이다. 인공위성과 인공지능 시대, 사피엔스 또한 더는 하늘과 땅 사이 천지인의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저 활짝 열린 오픈 스카이에서 펼쳐지게 될 우주생명문명의 테크노 샤머니즘을 구현하는 사이보그를 형상화한 것이다. 인류 최초로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하는 인공위성 쇼를 연출했던 디지털 샤먼으로서 시공간을 초월한 5차원과 11차원의 우주로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이다. 오대양 육대주 지구를 유랑하던 사피엔스가 태양계와 은하계의 우주를 유영하는 사이보그가 되어간다. 3. 코스미즘 : 각성과 행성 돌아보면 'TV 붓다'의 구도부터가 우주적이었다. 카메라는 해요, 모니터는 달이요, 붓다는 지구였다. 지구의 깨어남과 행성의 깨달음을 은유한 작품이 바로 TV붓다였다. 1969년 7월 20일, 인간이 저 멀리 달의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열린다. 암스트롱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 밖의 위성에 착륙한 것이다. 우주적인 사건이었다. 그 장면을 남준은 라이브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감전되었다. 마그마처럼 영감이 솟구쳤다. 7월 20일은 다름 아닌 그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1932년 7월 20일에 태어났다. 1969년 다시 태어났다. '신기'한 사태였다. 최신의 전기와 최초의 신기를 커뮤니케이션 시키는 전자-무당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05년,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반평생을 박수무당처럼 신나게 놀았다. 시베리아의 기마민족들이 말을 타고 전차를 달렸다면, 아메리카의 남준은 전자를 타고 전기를 가지고 놀면서 세계수를 타고 우주목을 올라 코스모스를 향해 메시지를 발신하고 메아리를 수신하고자 했다. 남준은 전기가 인체의 혈류처럼 흐르게 되는 지구의 미래를 내다보았다. 전자가 신경망처럼 정보를 주고받는 행성의 미래도 보이는 듯하였다. 식물과 TV를 함께 배치한 정원을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테크놀로지와 에콜로지의 융합, 디지털 네이처를 가든으로 조형한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자아를 가진 지구로 진화하고 있었다. 지능적인 지구의 출현을, 지구적인 지능의 창발을 예감한 것이다. 광물과 미생물과 식물과 동물과 인물을 지나 활물의 세기가 도래하고 있음도 직시하였다. 텔레-비전과 텔레-파시와 텔레-그램과 텔레-스코프의 단위와 규모가 겨우 하늘 아래 지구에 한정되지도 않을 것임을 직감하였다. 장차 지구의 만물에 장착되는 디지털 신경망은 필시 달과 별과 해를 너머 은하계를 지나 우주 저 멀리 깊은 곳 구석 구석에까지 유장하게 퍼져 나갈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5억년 전 지구 안에서 생명 현상이 폭발하듯 분출했던 캄브리아기처럼, 앞으로 5억년은 우주 안에서 생각과 생명이 폭포처럼 확산되는 디지털-캄브리아기의 생성을 예지한 것이다. 행성의 각성과 함께 인공적인 생각과 인공적인 생명의 창발이 임박한 것이다. 호모 데우스가 된 우주소년 아톰들과 우주소녀 퀀텀들이 은하철도를 타고 안드로이드와 함께 안드로메다를 탐험하는 우주대항해 시대를 예언한 것이다. 고로 저 하늘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야곱의 사다리'라는 작품 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향한 계단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에서 외계로 나아가는 웜홀의 징검다리이다. 그리하여 1969년 7월 20일은 46억년 지구에서의 '유년기의 끝'을 마치고 137억년 우주시대로 입문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성년식에 방불했던 것이다. 그 새로운 창세기, 후천개벽의 신조어로서 등장한 개념으로 '행성성(Planetary)'이라는 말이 있다. 물리적 지구에 심리적 자의식을 장착한 플래닛 어스를 '행성'으로 표상하는 것이다. 아마도 자아를 가진 우주에서의 첫 번째 행성이 지구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우주의 영매이자 영혼이 되는 것이다. 2020년 그 행성성을 전면에 내걸고 등장한 저널이 있다. 'NOEMA'이다. 생각하는 지구, 의식하는 지구를 표상한다. 인공위성을 달고 인공지능을 장착한 '인공지구'의 탄생을 함의한다고도 하겠다. 나는 언젠가부터 'WIRED'보다도 'NOEMA'를 더욱 탐독하게 되었다. 'WIRED'가 표상하는 지구촌이 인간들의 마을이라는 관점에 그친다면, 'NOEMA'의 행성촌은 비인간 존재들을 포함하는 진정한 새누리이기 때문이다. 미생물과 기후와 AI까지 모두가 주체이자 에이전트가 되어 행성촌의 진로를 함께 결정하게 된다. 기후격변부터 기술폭발까지 행성적 차원의 거버넌스를 탐구하는 최전선의 조직인 것이다. 이들이 탐구하는 미래의 지능은 일반인공지능(AG)이나 슈퍼인공지능(ASI)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AI의 경쟁으로만 사유하지도 않는다. 패러다임의 전환, 식물지능과 인류지능과 인공지능의 총합이자 융합으로서 행성 전체의 '합성지능'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마음'의 출현이다. 인류는 이제 그 총합성지능=한마음을 수반하여 저 멀리 저 우주까지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행성 전체의 총합성지능, 한마음의 행성적 지혜를 구현하기 위해 시도하는 프로그램으로 'Antikythera'라는 것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직후인 2022년부터 시작되었다. 안티키테라는 기원전 200년경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지칭한다. 바다를 건너는 항해를 담당하면서 천문학적 계산을 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 오래된 유산을 바탕으로 안티키테라 프로젝트는 행성적 컴퓨팅과 총합성지능과 재귀적 시뮬레이션을 통한 행성적 지혜를 생성해 내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UN으로 상징되는 산업문명의 낡은 국가 중심적 세계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행성적 거버넌스의 패러다임=한살림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통하여 행성 단위의 인공적인 신진대사를 조율하고, 메타버스를 통하여 지구 전체의 메타볼리즘을 관장하겠다는 뜻이다. 이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조직이 베르구르언 연구소(Berggruen Institute)이다. LA에 본부를 두고 베니스와 베이징에도 거점을 만들었다. 베이징에서 열렸던 아시아의 첫 번째 회합에는 나 또한 멤버로 참여할 수 있었다. 동양적 세계질서였던 '천하'를 화두로 삼아 북경대학교에서 열린 개소식 행사였다. 밖에서 문을 잠그는 독특한 제의를 거쳤다. 참가자들이 온갖 지혜를 짜내어 행성적 아젠다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단초가 나올 때까지 문 밖으로 나올 생각을 말라는 재미난 제스처였다. 절로 몰입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톡톡했다. 나는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이들이 발간하고 있는 'NOEMA'를 읽을 때마다 저절로 백남준이 떠오르고는 한다. 이러한 행성적 지혜의 결집을 가장 먼저 주창했던 선구자가 바로 토착적인 유목민이자 테크노 샤먼이었던 남준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한국에서는 아직도 이런 스케일과 스타일의 프로그램이 나오지 못하고 있음에 안타깝다. LA와 베이징에 베니스를 접속시키는 저들의 판단 또한 아쉽기가 그지없다. 행성적 한마음의 창출과 행성적 한살림의 창안을 하기에는 서울이나 판교가 한층 어울리는 장소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동양과 서양, 동반구와 서반구, 신대륙 아메리카와 구대륙 아프로-유라시아가 만나는 태극으로서, 무한대의 우주로 나아가는 무극대도의 발원지로서 좌로는 강화도의 마니산과 우로는 강원도의 태백산을 품고 있는 한반도의 남쪽 만한 곳이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뜻밖에도 가상과 천상을 넘나드는 행성적 세계관을 이 땅에서 가장 먼저 구축하고 있는 쪽이 K-POP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국가(Nation-State)로 조각조각한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진일보시켜 우주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그 중간계로서 가상공간의 네트워크 국가(Network-State)가 필요하다. 그 도래하는 디지털 문명의 광야를 가장 먼저 개척하고 있는 이가 바로 K-POP의 광개토대왕, 이수만이다. 물질적 스페이스와 정신적 코스모스 사이, 문화적 유니버스를 창시하고 있는 SM 타운의 건국 신화를 살펴볼 차례이다.

2026.02.05 14:26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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