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너무 보지 말자
상대의 눈을 보고 말하라. 말을 끊지 말고 경청하라. 표정을 살피며 적절히 반응하라.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정석으로 새겨온 말들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상대를 열심히 바라보다 준비한 말을 망치고, 괜한 눈치를 보다가 정작 해야 할 말을 삼킨 적은 없을까. 상대를 잘 살피는 능력만큼, 때로는 보지 않을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잘 듣는 사람보다, 자기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 방송인 정영진은 수년째 선글라스가 트레이드마크다. 멋을 내려는 것이 아니다. 심한 안구건조증 탓에 방송 조명을 견디기 어려워 쓰기 시작했고, 본인도 인터뷰에서 방송 중 자주 눈을 감는다고 했다. 주목할 것은 그다음이다. 진행자가 상대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 정석과 반대의 조건이다. 그런데 그의 진행을 보고 있으면 시선보다 콘텐츠가 먼저 들어온다.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가진 지식을 꺼내고, 앞서 나온 이야기를 엮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강호동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외워둔 문장, 명언과 에피소드를 특유의 에너지와 리듬으로 쏟아낼 때가 많다. 너무 많이 준비해 온 것이 오히려 예능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쏟아냄'이 강호동이라는 진행자의 힘이다. 두 사람은 방식은 다르지만 한 가지는 닮았다. 상대의 반응을 좇기보다 자기가 가진 콘텐츠를 꺼내놓는 힘이 강하다는 점이다. 반대편에는 유재석의 진행 방식이 있다. 상대의 말을 기다리고, 받아주고, 호흡을 맞추며 다음 이야기를 끌어낸다. 흔히 말하는 경청형 커뮤니케이션에 가깝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유재석도 한때는 몸과 캐릭터로 웃기던 개그맨이었다. 그가 상대를 잘 받아주는 진행자로 자리 잡는 동안, 우리가 좋아했던 돌발성과 날것의 재미도 함께 옅어진 것은 아닐까.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다. 경청과 눈 맞춤과 리액션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상대를 열심히 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자신은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해설하는 사람이 된다. 둘 다 배려했는데 길 한가운데서 춤을 춘다 자전거를 자주 타다 보면 아이러니한 순간을 만난다. 좁은 길에서 맞은편 사람이 다가온다. 부딪힐 것 같아 한쪽으로 비켜선다. 그런데 상대도 같은 순간 같은 쪽으로 비켜선다. 급히 반대로 틀면 상대도 반대로 튼다. 둘 다 상대를 배려했는데, 길 한가운데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오히려 갈 방향을 먼저 정하고 그쪽을 바라보며 움직이면 쉽게 풀린다. 상대도 내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덜 살핀 이가 오히려 더 친절한 신호를 보내는 역설이다. 대화에서도 우리는 이런 춤을 춘다. 상대가 미간을 찌푸린다. '표현이 마음에 안 드나?' 고개를 갸웃한다. '내 논리가 틀렸나?' 휴대전화를 만지작인다. '지루한가?' 상대는 몇 번 움직였을 뿐인데, 머릿속에서는 벌써 대책 회의가 열린다. 원인을 분석하고, 의도를 추측하고, 표현을 누그러뜨리고, 준비한 결론을 뜯어고친다. 상대가 만든 것은 표정 하나다. 나머지 이야기는 내가 썼다. 불교의 '두 번째 화살' 비유를 여기에 빌려올 수 있다. 상대의 첫 반응까지는 막을 수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반응에 의미를 붙이고, 의도를 추측하고, 그 추측에 다시 내가 반응한다. 내 메시지는 상대가 쏜 첫 번째 화살보다, 스스로 쏜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에 더 크게 흔들린다. 홍보하는 사람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직업상 남의 반응을 누구보다 많이 살피기 때문이다. 기자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대표는 어떻게 생각할까. 현업 부서는 불편해하지 않을까. 고객은 싫어하지 않을까. 당연히 고민할 질문들이다. 하지만 모두의 표정을 읽으려 하다 보면, 처음에는 뾰족했던 메시지가 고칠 때마다 조금씩 둥글어진다. 마침내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문장이 완성된다. 그리고 대개 그런 문장은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상대가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끝난 뒤 상대에게 무엇이 남을까'로. 경청은 중요하다. 질문에 답하고, 반론에는 귀를 열어야 한다. 틀렸다면 고쳐야 한다. 하지만 모든 표정에 답할 필요는 없다. 눈빛 하나하나에 내 메시지의 핸들을 넘겨줄 이유도 없다. 대화가 끝나면 상대가 몇 번 고개를 끄덕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몇 초 동안 눈을 마주쳤는지도 잊는다. 그런데 어떤 문장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니 때로는 상대방을 너무 보지 말자. 덜 보고, 덜 넘겨짚고, 덜 흔들리자. 대신 준비했던 말은 끝까지 하자. 눈 맞춤은 순간이지만, 말의 잔상은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