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4사, 5조 벌고도 표정관리…최고가격제 변수 부상
국내 정유 4사가 올해 1분기 나란히 조 단위 영업이익을 내며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업계는 유가 상승에 따른 일시적 효과가 컸다는 점을 강조하며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기름값 상승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정유사 실적 개선이 '고유가 수혜'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분기에는 최고가격제에 따른 손실보전 기준과 유가 변동성이 실적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4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SK에너지),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사는 올해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대규모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정유 4사 올 1분기 영업이익 합계는 5조 84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일부 업체가 적자를 내는 등 실적 부진에 직면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유가 상승에 조 단위 이익…“구조적 개선보다 일시 효과” 업체별로 보면 ▲SK에너지 매출 11조 9786억원, 영업이익 1조 2832억원 ▲GS칼텍스 13조 347억원, 영업이익 1조 6367억 ▲HD현대오일뱅크 7조 7155억원, 영업이익 9335억원 ▲에쓰오일 매출 8조 9427억원, 영업이익 1조 231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업황 부진과 비교하면 뚜렷한 회복세지만, 업계는 이를 구조적인 수익성 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적 개선의 가장 큰 배경이 유가 상승이기 때문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뒤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원유 매입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 사이 가격 차이에 따라 손익이 달라진다. 유가가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기존에 확보한 재고 가치가 오르면서 재고 관련 이익이 발생하고, 원가 상승분이 일정 시차를 두고 제품 가격에 반영되는 래깅 효과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1분기 호실적은 정제마진 개선과 함께 유가 상승에 따른 회계상 이익이 반영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정유업계는 이번 실적을 두고 “일시적 요인이 반영된 결과”라는 점을 일제히 강조했다. 기름값 상승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고유가로 이익을 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 실적이 좋아 보이지만,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과 래깅 효과가 반영된 부분이 있다”며 “내수 가격은 최고가격제로 눌려 있는 상황이어서 이를 단순히 정유사가 고유가로 이익을 본 구조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고가격제·손실보전 기준이 2분기 변수 2분기 실적은 최고가격제와 손실보전 기준에 따라 변동성이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중동 전쟁 이후 국내 석유제품 가격 안정을 위해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다. 업계는 국제 제품 가격과 국내 공급 가격 간 차이를 근거로 손실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원가 기준 손실과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2분기는 최고가격제 결론에 따라 실적 변동이 예상된다"며 "현재 가장 큰 변수는 최고가격제 종료 시점과 손실 보전 규모와 시점으로, 정부와 정유업계 간 손실 산정 기준(원가 vs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둘러싼 협의가 진행 중인 만큼, 확정 내용에 따라 3~4분기 실적은 위아래로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손실보전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업계에서는 석유제품이 연산품인 만큼 휘발유와 경유 등 개별 제품별 원가를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원유 조달 방식과 계약 조건도 정유사별로 달라 각사가 제출하는 원가 산정 방식과 손실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정유사별 원가 자료를 제출받아 회계법인 검증과 손실보전위원회 검토를 거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전 시점도 변수다. 업계에서는 3~5월분 손실을 6월에 한 차례 정산하고, 이후 9월과 12월에도 정산 절차가 진행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경우 2분기 실적에는 손실보전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최고가격제로 내수 판매 수익성이 제한되는 가운데, 보전 절차가 늦어지면 단기 실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유가 방향성도 변수다. 1분기에는 유가 상승이 재고 관련 이익으로 작용했지만, 2분기 중 전쟁 양상 변화나 수급 안정으로 유가가 급락할 경우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4~5월 높은 가격으로 들어온 원유가 있는 상황에서 유가가 갑자기 떨어지면 재고평가손실이 장부에 반영될 수 있다”며 “최고가격제로 내수에서 충분한 마진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손실보전 여부가 실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제마진 흐름 자체는 당분간 양호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름철 드라이빙 시즌을 앞두고 휘발유와 항공유 수요가 늘어날 수 있고, 중동 지역 정제시설 가동 차질이 이어질 경우 석유제품 수급이 빠르게 정상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제마진 강세가 곧바로 국내 정유사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수출 물량과 내수 가격이 최고가격제 영향을 받고 있는 데다, 손실보전 기준과 유가 변동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최고가격제가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지가 2분기 이후 실적의 핵심 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제마진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환경이지만, 국내 시장은 최고가격제와 손실보전 문제가 맞물려 있다”며 “1분기 호실적만 보고 업황이 완전히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2분기 이후에는 불확실성이 더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