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선진국에서 디지털 문명의 퍼스트 설계자로
지금 세계는 문명의 대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다. 산업 문명이 디지털/AI 문명으로 바뀌는 격변기다. 어느 나라도 디지털 문명의 새로운 표준(OS)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격변기의 초입'을 막 지나고 있다. 이런 격변기에 대한민국은 어느 쪽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할까? '이병한의 대한민국 탐문'은 쉽지 않은 이 질문을 깊이 있게 파고 든다. 이 책은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 '이병한의 테크노-차이나 탐문'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뉴 노멀 탐문' 3부작 완결판이다. 지금 아메리카에선 아메리카에서 실리콘밸리를 주축으로 한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복음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첨단 미래기술로 무장한 '테크노-차이나'로의 질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자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산업문명의 라스트 선진국에서 디지털/AI 문명의 퍼스트 설계자로” 나서자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과감하게 설계하자고 역설한다. 언뜻 “목청만 높인 무모한 주장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진지하다. 충분히 가능한 근거를 차근 차근 제시한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가 꽤 그럴 듯하다. 가보지 못한 길을 이끈 일곱 명의 길잡이들 무엇보다 G2 패권국인 미국과 중국은 패권전쟁에 골몰하느라 새 패러다임을 만들 여력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해볼 만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제국주의 식민 지배 역사가 없는 도덕적 권위에 기반한 제3의 리더십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질문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이 큰 과제를 수행할 역량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일곱 개 역사적 화두를 제시한다. 산업화, 민주화/정보화, 세계화, 생명화, 행성성, K-컬처, K-신화. 그리곤 일곱 개 화두를 대표하는 인물을 통해 '퍼스트 코리아'가 가능한 이유를 하나씩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일곱 명의 인물은 박정희, 김대중, 김우중, 김지하, 백남준, 이수만, 이상혁이다. 저자는 7명의 상징적 인물을 중심으로 '퍼스트 코리아'의 정교한 설계도를 제시한다. 상징적인 인물들을 통해 과거에서 길어낸 오늘, 오늘에서 길어낸 내일로, 책은 마치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높은 탑의 계단처럼 굽이굽이 뻗어간다. 저자는 현재의 맥락으로 과감하게 과거를 소환하여 재구성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방식으로 '대한민국 탐문'을 전개한다. 독자들은 박정희와 김대중, 그리고 김지하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에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어떤 독자는 박정희가, 다른 독자는 김대중이 많이 불편할 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수만과 (페이커) 이상혁에 이르면 “도대체 뭐지”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일곱 명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잿더미에서 산업화를 이뤄낸 박정희, 정보화의 반석을 놓음으로써 디지털-K의 서막을 연 김대중, K형 세계 경영의 원조 김우중, K-생명문명의 기틀을 마련한 김지하, 디지털 문명의 '행성성'을 탐구했던 백남준은 '퍼스트 코리아'로 향해 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좌우 갈등이 심한 요즘 상황에선 이런 선택에 절반쯤만 동의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조금 더 긴 시간의 안목으로, 조금 더 큰 문명의 시야로, 서로가 이루어낸 역사적 축적을 함께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여기에 K-컬처란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 이수만과 가상세계의 극강의 챔피언인 '페이커' 이상혁까지, 저자의 사유는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다. (마침 오늘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페이커를 가장 먼저 찾은 대목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이처럼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를 모두 이루어낸 대한민국의 다음 목표는 '새로운 문명의 표준적 OS'를 설계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곱 개의 별을 통해 바라보는 퍼스트 코리아의 비전 그런 면에서 '이병한의 대한민국 탐문'은 한국을 제국으로 만든 일곱 개의 별을 통해 '퍼스트 코리아'의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책이다. 물론 중국의 조공국에서 일본의 식민지를 지나 미국의 동맹국도 졸업해, 세계를 경영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첫 번째 나라가 되어보자는 저자의 제안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산업문명의 라스트 선진국에서 디지털/AI 문명의 퍼스트 설계자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과감하게 설계하자”는 저자의 제안은 독자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해주는 것 같다. '이병한의 대한민국 탐문'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저자는 이 책 원고를 '이병한의 프로토피아'란 제목으로 지디넷코리아에 먼저 연재했다. 매회 원고지 100매를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었지만, 연재될 때마다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기자는 매주 원고를 편집하는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 묵직한 내용의 글을 읽고 편집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늘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해주는 내용 덕분에 어느 새 다음 원고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디넷코리아를 통해 세상에 처음 소개됐던 저자의 방대한 사유의 결과물이 멋진 책으로 묶여 나온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 저자인 이병한 교수에게 다시 한번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이병한 지음, 서해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