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의 헤디트] 미디어아트 수원 vs 강릉
올해 진행되는 문화재청의 전국 8개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중 7개 지역이 9~11월 집중적으로 개최됐다. 선선한 가을, 시민들에게 유산의 풍광(風光)과 함께 예술-기술이 융합한 작품을 감상하고 체험할 기회다. 헤리티지를 디지털 산책으로 경험하는 야외 전시인 셈이다. 이미 경주역사유적지구가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해 대릉원에서 5~6월 마쳤고, 9월 9일 백제역사유적지구 익산 미륵사지, 공주 공산성 개막을 시작으로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고창 고인돌 유적이 순차적 열었다가 종료했다. 지금 운영되는 지역은 수원화성이 11월 4일까지, 강릉대도호부관아는 11월 5일, 함안 말이산고분군이 11월 8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필자 또한 방문객이자 관찰자로 대부분의 현장을 방문했다. 헤리티지 미디어아트는 프로젝션맵핑, AR(증강현실)·VR(가상현실)‧XR(확장현실), 인터랙티브 아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선보이는 복합매체예술을 말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다. 일반적 빛축제가 아니다. 즉 문화재와 예술, 디지털이 컬래보레이션한 작품이다. 이를 통해 유산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확산하고 새롭게 경험하도록 한다. 문화유산산업(Heritage Industry)의 K-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의 기능과 역할 내년 5월부터 문화재가 계승과 활용, 미래를 중심축으로 하는 국가유산 체제로 대전환한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이래 '국가유산 기본법'이 신설되며 재화적 성격이 강한 문화재를, 역사·정신까지 아우르는 명칭 유산으로 공식 변경하게 된다. 우리 유산은 K-컬처의 원천으로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헤리티지 기반 K-콘텐츠'다. 국가유산법 제정은 배현진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지난 5월 16일 공포됨으로써 우리 유산을 미래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산업화의 교두보로 보존관리·활용할 수 있는 변화의 물결을 만들었다. 주목할 내용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활용과 진흥, 산업화에 관한 내용을 명확히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제4장에 국민 복지 증진, 유산정보 관리, 교육-홍보, 산업 육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면서 우리 유산의 디지털 보존과 첨단 복원, ICT 활용 솔루션이 중요해졌다. 시민의 문화적 향유는 물론 콘텐츠, 관광 등 산업화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 나아가서는 유산을 통한 국부(國富) 창출, 문화경제를 이뤄야 한다. 그 중심에 문화재청의 대표적 유산 활용 사업이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다. 이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의 관광‧경제 유발 영향력에 주목해야 한다. 올해까지는 문화유산을 명칭으로 사용하나, 내년부터는 '국가유산 미디어아트'가 된다. 헤리티지 미디어아트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K-콘텐츠의 경쟁력과 확장성을 압축하는 분야가 K-관광이다. 대체 불가능한 무기인 K-컬처를 관광산업과 국가유산에 정교하게 탑재시켜 2023-2024 한국방문의해와 함께 유산관광의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 대상 유산 가치와 역사적 스토리, 최신의 첨단기술을 어떻게 융복합해 지역의 관광산업을 선순환하도록 할지가 중요한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유산만의 독특한 콘텐츠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헤리티지 미디어아트는 현대미술이나 영상예술로서의 일반적 미디어아트와 달리 대상 유산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 장소성을 공감력 있는 스토리로 풀어내 동시대성의 예술작품으로 누리도록 하는 것이 본질이다. 또, 대상 유산의 건축적 특성과 경관적 환경을 최적화한 하드웨어 설계가 핵심이다. 궁극적으로는 한 편의 공연물로서 아트쇼, 비엔날레 같은 작품전, 낭만적 디지털 야행으로 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기승전결 서사의 황홀한 스토리, 몰입감 있는 콘텐츠, 최첨단의 웅장한 연출로 대중의 공감을 압도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디지털 워킹 투어이자 신기술 융합콘텐츠가 된다. 전 세계에서 우리 문화는 K-컬처라는 이름으로 환호받고 있다. 한류의 원천이 국가유산이다. 문체부와 반크(VANK)의 조사에 따르면 K-컬처 팬덤은 1억 6천만 명 규모다. 한국 관광의 잠재 수요다. 이들에게 K-헤리티지(유산)를 가고 싶은 나라, 경험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로 각인시켜야 한다. 미디어아트 수원화성 vs 강릉대도호부관아 지난 10월 23일과 24일 이틀간 수원화성과 강릉대도호부관아의 미디어아트 현장을 참관했다. 서로 다른 문화유산과 환경, 개최 여건에서 각각의 콘셉트로 미디어아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궁극적 목표는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운영 실태와 효과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의 성공 요소는 크게 4개다. 기획(마스터플랜)과 콘텐츠(작품 완성도와 기술 구현도) 그리고 현장 운영, 지역 활성화다. 먼저 첫째는 마스터플랜이다. 사업목적 부합성과 기획의 적정성, 예산계획의 적정성 등 사업 실행 전반이다. 첨단기술을 유산에 접목하여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로 개발(창작)했는지, 대상 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전체 사업비 대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운영‧홍보‧마케팅은 적정한지, 추진계획이 페이퍼로 끝나는 게 아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액션플랜으로 시뮬레이션했는지다. 둘째는 작품 완성도와 기술 구현력이다. 유산 특성을 반영한 미디어아트 작품의 차별성과 관람 몰입의 아트&테크놀로지 실현 가능성이다. 미디어아트가 대상 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예술적으로 드러냈는지, 전체 프로그램이 개연성 있게 구성됐는지, 유산 여건에 적합한 하드웨어로 미디어아트 시스템을 구축했는지, 경관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반응형 콘텐츠는 인터랙션이 잘 작동되는지다. 셋째는 현장 운영이다. 관람 편의와 안전관리, 홍보 전략, 방문객 유치 등 수행기관의 역량과 의지다. 대상 유산의 보존관리를 고려한 섬세한 활용방법인지, 문화재 훼손 방지를 위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지, 관람객 서비스가 적절하게 제공됐는지, 사전홍보는 조기에 시행했는지, 안내판 설치 등 현장 안내체계가 제대로 조성됐는지,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외지인 방문이 있었는지, 사업의 완성도 제고를 위해 프리 프로덕션 선행을 비롯해 예술성‧공공성 역량을 갖춘 전문가와 협업했는지, 시행사 선정 합리성과 계약 방법이 적합한지다. 마지막 넷째는 지역 활성화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산업 효과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확산해 시민들에게 향유 기회가 확대됐는지, 새로운 관광명소로 지역 브랜드가치 상승에 노력했는지, 지역 일자리 창출과 주변 상권 소비 증진에 기여했는지, 지역의 다른 문화자원과 연계가 활발했는지다. 필자는 ICT 칼럼니스트이면서 현장의 Media-Art 디렉터이기도 하다. 지난주에 찾았던 두 곳의 현장에서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 설계와 의지의 중요함을.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수원특례시장 이재준,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김현광)는 올해 탁 트인 광활한 공간으로 장소를 옮겼다. 거대한 피사체 창룡문을 캔버스로 미디어파사드가 메인쇼가 돼 미디어그라운드, 미디어홀, 미디어로드로 구성됐다. 주제는 '만천명월; 정조의 꿈, 빛이 되다'로 올해는 개혁의 준비를 마친 정조대왕이 효와 관광의 행렬로 성대한 잔치를 만드는 시즌3 '수원화성 행행(行幸)'이었다. 정조대왕이 1795년 수원화성으로 행차한 을묘행차를 재해석해 만든 연작으로, 네 편의 작품들이 행행의 준비-출정-행렬-도착 과정을 보여주며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했다. 4팀 작가들의 콘텐츠 구성과 연결, 흐름은 훌륭했다. 피날레로 연출된 극(極)-아하콜렉티브의 3D 황금갑옷 디자인과 내러티브까지. 하지만 문제는 음악이었다. 미디어아트는 빛(영상)과 소리(음악)의 총체예술인데, 콘텐츠의 모션그래픽에 사운드가 절묘하지 않았다. 또 밸런스에서도 배경음은 너무 크고, 효과음은 없거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나중에 보니 4개 작품의 작가별 사운드 창작을 한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음악감독이 일괄로 믹싱했다고 한다. 전자음 위주로 제작된 음악은, 그날 관람존에서 들리는 스피커의 볼륨도 너무 크게 틀어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는 소음으로 느껴졌다. 다른 심각한 문제는 과도한 조명이었다. 미디어아트가 아니라 마치 조명쇼가 돼버렸을 정도다. 조명기는 네 편 연작의 프로젝션맵핑 기반 미디어파사드를 효과적으로 확장해 주는 수단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라이트쇼가 부각된 멀티미디어쇼가 돼버렸다. 4개 콘텐츠의 각 색채에 빔라이트의 컬러를 맞추지 않았고, 내러티브에 따른 톤을 극적으로 연출해 주는 보조적 조명디자인도 되지 않았다. 바닥 연출 효과 역시 프로젝션맵핑 장면과 개연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올해 창룡문 미디어아트쇼는 한마디로 과유불급이었다. 이외 개선 사항은 기회가 될 때 다시 이야기하겠다. 수원화성 참관 다음 날인 10월 24일 강릉대도호부 미디어아트(강릉시장 김홍규, 강릉문화원장 김화묵) 현장을 찾았다. 강릉은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를 올해 처음으로 개최하는 지역이다. 장소는 고려~조선시대 지방관아 기능을 했던 사적 전체가 하나의 야외전시장으로 재탄생했다. 주제는 '빛으로 만나는 강릉의 신화'다. 33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5개 구역의 41개 콘텐츠는 관람자의 동선에 따라 스토리텔링 미디어아트로 연결됐다. 1구역 빛으로 내려앉다, 2구역 빛으로 깨어나다, 3구역 빛으로 아롱지다, 4구역 빛으로 노닐다, 5구역 빛으로 머물다까지 강릉의 12신을 모셨던 '대성황사'가 미디어아트로 재현됐다. 한지 섀도 라이팅, 민화 영상, 숲속 맵핑, 대성황사 홀로그램, 글라스 미디어아트, 미디어 수조, 터치 인터랙션, 담장 맵핑, 만화경, 인피니티 미러, 미디어파사드와 이머시브 사운드, 라이트 정원, 식물학 소통, 전통 파티클, 그림자 영화관, 인공지능 전시, 미디어 다도, 바닥 인터랙티브, 가야금 맵핑, 대성황사터 VR 등 최신의 ICT가 적용됐다. 강릉대도호부관아 건축물과 숲, 마당 곳곳에 맞게 제작된 새롭게 경험하는 예술작품으로. '고난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강릉의 정신이 신화와 함께 빛이 된다'는 강릉단오제 철학처럼 총감독, 예술감독의 애정과 헌신, 33명 아티스트의 뜨거운 열정을 다양한 기법의 참신한 작품으로 오롯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국가유산 미디어아트의 탄생, K-HERITAGE 지난 7~9월 문화재청이 지자체를 대상으로 전국 공모했던 2024년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7개 지역이 선정됐다. 올해 진행한 수원화성-강릉대도호부관아,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부여-익산)가 연속 개최하며,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요지와 진주성이 처음 개최하게 된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유산을 유산 자체로의 이미지만 갖고 있던 대중에게 그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디지털 익스피리언스(Digital Experience)다. 더불어 한국 이미지 제고와 인바운드 관광을 마케팅하는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 실행의 프레임워크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사업 4년 차를 앞둔 올해 가을, 지난 3년의 학습효과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이 단순한 일상의 변화와 기술‧산업 발전을 넘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혁신의 기본이 되는 새로운 체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또 한 번의 새로운 대변혁이고 과거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20세기 후반 미국의 정보화 혁명에 이은 '디지털 혁명'의 시점에 있다. 모두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시대인 만큼, 기술과 문화적 요소를 접목한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콘텐츠가 미래산업이다. 문화재 체제도 이제 계승‧활용‧미래의 국가유산 체제로 대전환한다. 이러한 대변혁의 시점에서 변화와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디지털이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 유산의 미래가치 창출이다. 새로운 산업영역 개척,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의 관광콘텐츠, 미디어 예술작품으로의 향유 증진 등 혁신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이제 4년 차인 내년부터 문화유산 미디어아트가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라는 명칭처럼 그야말로 한국의 유산관광을 브랜딩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효과를 증명해야 한다. 단편적 축제‧행사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방문의 매력요인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휴먼웨어가 중요하다. 외지인 방문의 촉매제로, 우리 지역의 브랜드 콘텐츠로 접근하는 마케팅적 마인드, 장인 정신이 작금의 유산관광에 요구되는 화두다. 올해 개최한 지역과 내년 개최할 지자체의 공직자, 협업기관 여러분을 응원한다. 기초자치단체 시‧군‧구 문화관광 부문 예산 내역에서 총사업비 17.4억 원 규모(내년 16억 원)면, 단일 프로젝트로 상위 사업일 것이다. 비주얼 퍼포먼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애정과 열정, 디테일로 준비해야 한다. 한류 확산 마중물로 지속 가능성의 희망 콘텐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