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정 기고(⑤·끝)] 지금 우리 선택이 대한민국 디지털미래 10년 결정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디플정, DPG)위원회는 지난 2022년 9월 출범했다. 2년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무슨 일을 했으며,향후 행방은 어떻게 될까. 이승현 DPG위원회 AI플랫폼혁신국장이 본지에 디플정과 관련한 장문의 기고를 보내왔다. 이를 5회로 나눠 게재한다.(편집자 주) 제 21대 대통령선거가 이틀앞으로 다가왔다. 5년 단임제에서도 정책의 연속성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는데, 이번에는 탄핵으로 불과 3년 만에 대선이 치러진다. 현 정부의 1호 공약이자 대표 국정과제로 야심차게 출발한 '디지털플랫폼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임기 초반, 디지털플랫폼정부를 부처의 핵심 아젠다로 삼았던 부처들이 달라졌다. 디지털플랫폼정부가 각 부처의 과제에서 사라지고 있다. 정권 말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새 정부의 눈치를 보며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를 서둘러 지우려는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이는 단순한 정책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다. AI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 정부의 디지털 대전환이 좌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전 세계가 AI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부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는 이때, 우리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 왜 디지털플랫폼정부여야 하는가 전 세계는 지금 AI 혁명의 한가운데 있다. 챗GPT가 등장한 지 불과 2년 만에 모든 산업이 재편되고 있으며,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UAE는 정부 AI 전략을 발표한 지 6개월 만에 대국민서비스에 챗GPT를 도입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의 AI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3개월 만에 각 부처가 AI 도입 계획을 수립했으며, 6개월 만에 실제 서비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의 정부기술청(GovTech)은 민간 스타트업처럼 운영되며 3개월 단위로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가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통합된 디지털 인프라와 데이터 연계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21세기의 원유라 불리는 데이터가 흩어져 있다면 제대로 된 AI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 따라서 데이터 통합과 시스템 연계는 AI 시대 정부 혁신의 전제조건이자 필수 인프라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공공부문에는 1만7000여 개의 정보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이 숫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각기 고립된 '사일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A부처의 데이터를 B부처가 활용하려면 공문을 주고받고, 승인을 기다리고, 시스템을 연계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같은 국민의 정보를 각 부처가 따로따로 수집하고 관리한다. 여전히 국민은 똑같은 서류를 여러 부처에 반복해서 제출해야 한다. 구비서류 제로화와 공공마이데이터를 통해 점차 개선해나가고 있지만, 이제 시작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행정 처리 시간 지연, 중복 투자로 인한 예산 낭비, 통합 데이터 기반의 혁신 서비스 개발 불가 등 그 피해는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 심각한 것은 각 부처가 자기 데이터를 자기 것으로만 여긴다는 점이다. 부처 이기주의, 책임 회피, 성과 독점의 논리가 데이터 공유를 가로막고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DPG) 허브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홈택스, 행복e음과 같은 대국민서비스 시스템부터 국가공유데이터플랫폼, 서비스개방플랫폼, 공공데이터포털, 정보유통허브 등 행정내부시스템까지 공공의 정보시스템을 모두 연결하는 것이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심의·의결한 실현과제였다. 마치 전국에 흩어진 1만7000개의 섬을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대역사였다. 이를 통해 정부 부처 간 데이터가 자유롭게 흐르고, 국민은 한 번의 신청으로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민간은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려 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부처 간 이해관계와 책임 회피로 당초 계획했던 시스템 연계가 불투명해졌다. 갑작스러운 정치상황으로 현 정부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대통령의 힘이 약해지면 함께 힘이 빠지는 대통령직속위원회의 구조적 한계도 드러났다. 물론, 이는 개별 공무원들의 잘못이 아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전 정부의 사업을 부관참시해온 잘못된 관행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유로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사업이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왜 지금까지의 접근은 실패했는가 만약 DPG 허브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답은 명확하다. 몇 년 후 또다시 비슷한 프로젝트가 시작될 것이다. 새 정부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사업규모에 따라 예비타당성조사부터 정보화전략계획, 예산 확보까지 2~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사이 AI 기술은 몇 세대가 진화하고, 우리의 경쟁국들은 저만큼 앞서가 있을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이미 여러 번 반복되었다. 전자정부, 정부3.0, 지능정부 등 정권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비슷한 시도를 해왔다. 그때마다 이전 정부의 성과는 무시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국민의 세금은 중복 투자되고, 시간은 낭비되며, 기회는 놓쳐왔다. 이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우리 정부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첫 번째는 부처 간 칸막이와 책임 회피 문화다. 디지털 전환처럼 모든 부처가 관련되는 과제는 누군가가 전체를 조망하고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각 부처는 자신의 영역만 바라본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 정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정부 전산센터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행정안전부가, 각 부처 시스템은 해당 부처가 따로 관리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통합 클라우드를 구축하려면 누가 총괄해야 하는가? 과기정통부는 "우리는 민간 클라우드 산업 육성이 목적"이라 하고, 행안부는 "우리는 정부 시스템 안정성이 우선"이라 한다. 각 부처는 "우리 데이터는 우리가 관리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전체를 조율할 것인가?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고, 혁신은 표류한다. 범정부 초거대AI 공통기반 사업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당초 담당부처는 이 사업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각자가 책임지는 정보시스템 범위 내에서만 AI를 적용하고 싶어 했지, 범부처가 공동으로 활용하는 기반을 만드는 것은 꺼려했다. 왜일까? 성과는 누가 가져갈 것인가, 실패하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각 부처의 다른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공통기반 구축 예산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등의 우려 때문이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없었다면 이 사업은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위원회는 대통령실, 담당 부처, 기획재정부를 설득했다. 공통기반의 필요성을 인정받기까지 수많은 회의와 토론이 있었다. AI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각 부처가 제각각 AI를 도입한다면 무분별한 도입, 제대로 된 성능 평가 없는 구축, 활용도 낮은 시스템의 양산으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더 심각한 것은 중복 투자였다. 각 부처가 비슷한 AI 시스템을 따로 구축한다면 얼마나 많은 예산이 낭비될 것인가? 위원회의 강력한 드라이브 덕분에 올해 드디어 이 사업의 첫 성과가 나올 예정이다. 두 번째 구조적 한계는 순환보직과 전문성 부족이다. 우리 정부의 국장과 과장은 평균 1년에서 1년 반 정도만 한 자리에 머문다. 2년을 넘기면 장기 근무자로 분류된다. 이는 부정부패를 막고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치명적 약점이 되고 있다. 민간 기업에서는 새로운 직무를 맡으면 최소 3개월은 학습 기간이다. 6개월이 지나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고, 1년이 지나야 전문성이 생긴다. 그런데 공무원은 1년 만에 자리를 옮긴다. 겨우 일을 배워 전문성이 생길 때쯤 다른 부서로 가는 것이다. 후임자는 또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인수인계다. 민간에서는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는 데만 2주에서 한 달이 걸린다. 주요 업무를 설명하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관련 인맥을 연결해 준다. 그런데 공직사회에서는 발령이 나면 그날 기준으로 담당자가 바뀐다. 대면 인수인계는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디지털 전환 같은 장기 프로젝트에서 이런 순환보직은 치명적이다. DPG 허브 구축을 담당하던 과장이 1년 만에 바뀌면 후임자는 왜 이 사업을 하는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전임자가 남긴 서류를 보고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열정도, 책임감도, 전문성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세 번째 구조적 한계는 5년이 걸리는 사업 추진 체계다. 500억 원 이상의 정보화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한다. 예타에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통과하면 정보화전략계획을 수립한다. 또 6개월에서 1년이다. 그다음 예산을 신청하고 국회 심의를 받는다. 1년이 더 걸린다. 마지막으로 사업자를 선정하고 구축에 들어간다. 2~3년이 걸린다. 모두 합치면 5년이다. 5년 전의 계획으로 5년 후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5년이면 디지털 세계에서는 영겁의 시간이다. 아이폰이 처음 나온 지 17년이다. 그동안 스마트폰은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챗GPT가 세상에 나온 지 겨우 2년인데, 이미 모든 산업이 AI로 재편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5년 전의 계획에 매여 있다. 이런 속도로 어떻게 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겠는가? ■ 디지털플랫폼정부가 만든 변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필요했다. 위원회는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닌 실행위원회를 지향했고, 실제로 다음과 같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첫째, 부처 간 칸막이를 극복했다. 대통령직속 위원회로서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범정부 AI 공통기반 구축을 성사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각 부처가 서로 책임을 미루며 시작조차 못하던 사업을, 위원회가 나서서 조정하고 설득해 궤도에 올렸다. 망보안체계 혁신은 더욱 어려운 과제였다. 물리적 망분리는 20년 넘게 대한민국 공공부문의 철옹성이었다. 인터넷망과 업무망을 물리적으로 분리해 보안을 지킨다는 이 체계는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외부 해킹으로부터 내부 시스템을 보호할 수 있었고, 실제로 큰 보안사고 없이 20년을 버텨왔다. 하지만 AI와 클라우드 시대에 이 체계는 족쇄가 되었다. 민간은 챗GPT를 업무에 활용하는데, 정부는 물리적 망분리 때문에 사용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 큰 문제는 어떤 부처도 이 체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정원의 보안 지침에 감히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두가 "보안이 최우선"이라는 명분 아래 침묵했다. 하지만 정말 물리적 망분리만이 보안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일까?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는 인수위 시절부터 이 문제와 싸워왔다. 단순히 비판만 한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했다. 제로트러스트 보안, 클라우드 네이티브 보안, AI 기반 위협 탐지 등 최신 보안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더 안전한 체계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 위원회의 끈질긴 노력 끝에 망보안체계 혁신이 국가적 과제로 채택됐다. 이는 20년간의 고정관념을 깨는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둘째, 민간 전문성을 제대로 활용했다. 기존 정부 위원회들을 보면 늘 비슷한 얼굴들이 등장했다. 부처가 다루기 편한, 이미 잘 아는 전문가들이 반복해서 참여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는 현장의 최신 동향을 아는 진짜 전문가가 필요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는 달랐다. AI 분야에서는 실제로 AI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기업의 대표들이 참여했다. 클라우드 분야에서는 학계,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CSP와 MSP 전문가들을 다양하게 찾아 나섰다, 데이터 분야에서는 빅데이터를 다루는 현장 실무자들이 합류했다. 이들은 단순한 자문역이 아니라 실무를 함께하는 파트너였다. 위원들은 단순히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실무자들과 머리를 맞대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었다. 이런 변화는 정책의 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직접 반영되었다.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민간과 정부 사이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민간의 혁신성을 인정하고, 민간은 정부의 공공성을 이해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셋째, 출연사업 관리를 내실화했다. 정부 부처는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을 산하기관에 출연금 형태로 지원한다. 문제는 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초 사업 목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거나, 성과가 미미한데도 관성적으로 계속되는 사업들이 많았다. 중복 사업도 많았다. A기관과 B기관이 비슷한 사업을 따로 하는데도 이를 조정할 주체가 없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는 실현계획에 포함된 출연사업들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감시나 간섭이 아니었다. 위원회는 각 기관과 긴밀히 협업하며 사업의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았다. 필요하면 민간 전문가를 연결해 주고, 부처 간 협업이 필요하면 조정 역할을 했다. ■ 왜 연속성이 필요한가 정보화사업의 특성상 기획부터 구축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이제 겨우 시스템들이 구현되고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이러한 노력들이 정권 교체와 함께 사장될까 우려스럽다. 3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도 안타깝지만, 더 큰 문제는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첫째, 막대한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DPG 허브, 범정부 AI 플랫폼, 망보안 혁신 등에 이미 수천억 원이 투입됐다. 이제 겨우 시스템이 구현되고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중단한다면, 투입된 예산은 모두 매몰비용이 된다. 새 정부가 비슷한 사업을 새 이름으로 다시 시작한다면 또 5년이 걸리고, 또 수천억이 든다. 그동안 경쟁국들은 훨씬 앞서갈 것이다. 둘째, 정책 학습의 축적이 사라진다. 3년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 어떤 접근이 통하고 어떤 것이 안 되는지, 부처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민간과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무 지식이 쌓였다. 이를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면 또다시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것이다. 셋째, 국제 경쟁력에서 뒤처진다. AI 시대의 속도는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 6개월이면 기술 세대가 바뀐다. 우리가 정권 교체 때마다 리셋하고 있는 동안, 경쟁국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보다 늦게 시작한 UAE가 6개월 만에 정부 서비스에 AI를 도입한 것을 보라.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일론 머스크는 올해 초 미국 정부 효율성 부서(DOGE)를 이끌며 "관료주의가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말을 그저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 AI 시대의 관료주의는 단순한 비효율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관료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변화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방식, 기존의 절차, 기존의 권한 구조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너무 강하다. AI가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도 "그건 우리 부처 소관이 아니다" "전례가 없다" "규정에 없다"는 말로 혁신을 가로막는다. 변화하는 시대에 기존 부처의 업무 영역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국토교통부 소관인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인가, 경찰청 소관인가? AI 의료는 보건복지부인가, 과기정통부인가, 식약처인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부처 간 영역 다툼이 일어나고, 그사이 혁신은 지체된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를 넘어 전체를 조망하고 조정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면, 우리는 AI 시대를 따라갈 수 없다. ■ 새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 그렇다면 새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미국처럼 정치적 임명직이 대거 교체되는 엽관제도 아닌데, 왜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가? 첫째, 강력한 거버넌스를 유지해야 한다. '디지털플랫폼정부'라는 이름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다면 바꿔도 좋다. 'AI 국가위원회'든 '디지털 혁신위원회'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디지털 전환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조직은 단순한 자문기구여서는 안 된다. 예산 배분권, 사업 조정권, 평가권을 가진 실질적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처들이 따른다. 또한 민간 전문가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법적 근거를 갖는 것이다.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로 설치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없앨 수 없다. '디지털플랫폼정부 기본법' 같은 것을 제정해 디지털 전환의 기본 방향과 추진 체계를 법제화해야 한다. 둘째, AI 시대에 맞는 예산과 조달 체계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현재의 5년 주기 시스템으로는 6개월마다 바뀌는 AI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일본은 정부가 AI 스타트업의 기술을 우선 구매해주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고민이 필요하다. AI 패스트트랙을 도입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관련 사업은 예타를 면제하거나 간소화하고, 대신 사후 평가를 강화해 책임성을 담보해야 한다. 클라우드 사용료 기반의 예산체제를 도입해 통합예산을 운영하고, 사회변화와 기술변화에 따라 필요한 경우 연중에도 빠르게 예산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디지털서비스계약제도가 도입됐지만 이것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고, 단년도 예산 원칙과 충돌하며, 공무원들의 이해 부족과 감사 부담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 벤처캐피털'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 유망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성공하면 정부가 우선 사용권을 갖는 방식이다. 실패 위험은 있지만, 성공했을 때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셋째, 1만7000개 시스템의 사일로를 실질적으로 해체해야 한다. DPG 허브를 제대로 완성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하지만 기술적 연결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정부 데이터와 시스템은 부처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기본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모든 정부 부처 데이터는 타 부처와 공유해야 한다. 부처 내부에서조차 각 과별로 사일로화된 시스템에 대한 거버넌스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국가데이터정책위와 공공데이터전략위로 나뉘어진 해괴한 구조도 정리해야 한다. 넷째, 민간의 혁신 역량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직접 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디지털플랫폼정부가 추구해온 철학이다. 정부 API 전면개방은 시작일 뿐이다. 구축보다는 구독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진짜 혁신적인 민간 기술과 서비스를 빠르게 정부가 구독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데이터를 더 개방하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민간이 정부가 생각하지 못한 혁신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다. 다섯째, AI·디지털 분야만이라도 순환보직의 폐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매일매일 기술은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AI, 데이터, 클라우드 등 핵심 분야는 최소 2년 이상의 근무를 보장해야 한다. 전문성을 쌓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일반 행정직과 다른 승진체계와 보수체계를 만들어서 제대로 된 전문가가 행정직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디지털 전문직위제를 도입하자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공무원 사회의 보수적 문화, 승진 체계와의 충돌, 기존 공무원들의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래서 더욱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같은 별도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민간 전문가들이 장기간 참여해 전문성과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결론: 디지털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디지털플랫폼정부는 특정 정부의 정치적 유산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생존 전략이다.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데이터의 연결과 활용, 그리고 민관 협력의 플랫폼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미 귀중한 3년을 투자했다. 1만7000개 시스템을 연결하는 DPG 허브가 구축되고 있고, 범정부 AI 플랫폼이 완성 단계에 있으며, 20년 된 망분리 체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늘 새로 시작한다. 새 정부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확립하려 한다.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국정 쇄신'이라는 명목으로 잘되던 정책도 중단시킨다. 하지만 이 피해는 누가 입는가? 세금을 낸 국민이다. 5년간 수천억 원을 들여 추진하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중단된다. 새 정부는 비슷한 사업을 새 이름으로 다시 시작한다. 또 5년이 걸리고, 또 수천억이 든다. 10년이 지나도 제자리다. 정보화사업은 특히 더하다. 일반 정책과 달리 정보화사업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 번 만들면 10년, 20년을 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만든다면? 호환도 안 되는 시스템이 난립하고, 데이터는 여전히 사일로에 갇힌다. 역대 정부는 항상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비슷한 국정과제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만약 연속성을 유지했다면? 지금쯤 세계 최고의 디지털 정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는 온라인화,전산화에 주력한 전자정부에서 대국민서비스를 혁신한 디지털정부로 이어진 역사를 계승하여, 이제 시대의 변화에 맞게 민관이 함께 데이터가 모이는 플랫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자는 개념이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또다시 리셋하고 처음부터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시작된 변화를 계속 추진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3년의 투자와 경험을 바탕으로 더 빠르게 전진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를 선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정치권은 초당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생존의 문제다. 차기 정부가 누가 되든, 디지털플랫폼정부의 핵심 과제들은 계속돼야 한다. 이름을 바꾸더라도 본질은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대한민국 디지털 미래 10년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