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보도되는 기사보다 오래 인용되는 정보를 향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변화와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의 의미를 한참 설명한 뒤, 출입기자들로부터 "말씀만 들으면 당장 기사로 써야 할 것 같은데요"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이어진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기사를 올려도, 데스크에서는 '클릭이 나오겠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그 시간에 아파트나 전셋값 기사를 하나 더 쓰라고 한다는 것이다. 국토나 부동산원에서 나온 자료를 받아 쓰는 게 수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은 꽤 오래 남았다. 그 기자가 새로운 산업에 관심이 없어서도, 취재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상업용 부동산과 프롭테크는 여전히 독자에게 낯선 분야다. 주택 정책과 아파트 가격, 재건축, 건설사 이슈를 매일 따라가야 한다. 생소한 시장을 처음부터 공부하고, 데스크를 설득하고, 독자가 이해할 언어로 다시 설명하기에는 시간도, 지면도 부족하다. 언론사의 취재 환경은 요동치고 있다. 과거에는 부서를 옮기면 선배 기자가 후배에게 산업의 구조와 주요 취재처를 알려주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신입 기자도, 다른 부서에서 이동해 온 기자도 곧바로 낯선 현장에 투입된다. 마감에 쫓기다 보면 정부 기관이나 익숙한 업체가 제공한 자료를 빠르게 해석해 기사를 쓰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 된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갈증을 느낀다. 알려진 수치를 되풀이하기보다 시장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업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알고 싶어했다. 문제는 기자 개인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차분히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기업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KT, 11번가, 여기어때처럼 소비자에게 익숙한 B2C 기업에서 홍보 업무를 해왔다. 새로운 서비스와 캠페인, 이용자의 반응 자체가 이야기가 됐다. 회사 이름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 곳인지 대략 알 수 있었기에, 산업의 기초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B2B 기업으로 옮기자 판이 달라졌다. 물론 B2B 시장 홍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기업은 위기관리에 집중하고, 어떤 곳은 언론과 거리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협업, 제휴, 채용이나 투자처럼 특정 목적이 있을 때만 홍보가 필요한 기업도 있다. 상업용 부동산 분야에서 PR은 당장 판매나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기업의 성과를 기록하고, 시장을 대표하는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장기적인 신뢰를 축적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회사를 열심히 설명했다. 어떤 데이터를 갖고 있는지, 경쟁사와 무엇이 다른지, 어떤 성과를 만들었는지 알렸다. 기대만큼 깊이 전달되지 않았다.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산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기업의 차별성부터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기 규칙을 모르는 사람에게 특정 선수의 장점만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때 질문을 바꿨다. 회사를 더 크게 말하는 대신, 우리가 속한 산업부터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어떨까. 그 고민에서 시작한 것이 미디어허브다. 기자들을 초청해 기업의 성과와 서비스를 발표하는 일반적인 간담회가 아니라, 특정 시장을 함께 공부하는 소규모 스터디다. 회사 소개는 줄이고 시장의 구조와 변화, 데이터와 현장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았다.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부터 인공지능, 공유오피스, 전자계약, 시니어 주거, 건설과 인테리어 폐기물까지 아직은 낯설지만 취재 현장에서 점점 중요해질 주제를 다뤘다. 기자들을 직접 만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배움의 욕구가 큰 사람들이다. 자신이 맡은 출입처와 취재원을 깊이 있게 활용하고, 남보다 먼저, 더 구체적으로, 팩트에 기반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한다. 특정 기업의 뒷이야기나 성과 자랑, 보도자료 한 줄을 받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기자는 많지 않다. 취재 관행이 오래 굳어진 연차 높은 기자들도 속내를 들춰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산업 자체를 이해할 기회를 함께 제공하는 자리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모든 이야기를 무조건 공개한 것은 아니다. 민감하거나 불필요한 논란을 부를 내용은 처음부터 제외했다. 맥락을 설명해야만 신뢰도가 높아지는 경우에는 비보도를 전제로 공유하기도 한다. 그들도 그 원칙을 이해해준다. 기본적으로는 현장에서 공개돼도 무리가 없고 기사에 인용해도 문제가 없는 데이터와 사례를 골랐다. 발표 자료를 별도로 요청하는 경우가 있고, 처음 접한 분야라 한 번의 자리로는 부족하니 같은 주제로 다시 열어달라는 요청도 있다. 산업을 이해할 자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그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참석하지 못한 기자가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료를 별도로 요청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나온 데이터와 사례를 바탕으로 후속 취재가 이어졌고, 다른 기사에서 정보가 다시 인용됐다. 기업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았지만, 정보의 출처는 기사 속에 자연스럽게 남았다. 기자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보도자료 한 건이 아니라 산업을 이해할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앞에 서지 않는 판 비슷한 고민은 협회(한국프롭테크포럼) 활동으로 이어졌다. 산업에서 비교적 앞서 성장한 기업이라면 협회를 통해 자사의 목적만 달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경험을 쌓은 기업이 후배 기업에 기회와 노하우를 나누고, 시장 전체의 저변을 넓히는 역할도 맡아야 했다. 순수한 선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산업이 커지고 좋은 기업이 늘어나면 먼저 자리 잡은 기업의 신뢰와 영향력도 함께 커진다. 후배 기업을 돕는 일이 소속 회사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홍보인으로서 회사가 잘되고, 그 과정에서 영향력있는 커뮤니케이터로 인정받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길게 보기로 했다. 그렇게 프롭테크 기업의 PR과 마케팅 실무자들이 서로 배우는 커뮤니티인 PRM스퀘어를 만들었다. 그 안에서 기자와 기업, 전문가를 연결하는 업계 스터디를 시작했다. 주제를 정하고 발표자를 섭외하며, 출입기자들이 궁금해할 질문을 다듬는다. 현장에서는 발표와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대화를 연결한다. 많이 보이는 행사가 좋은 행사는 아니다. '발표자는 기억해도, 모더레이터는 기억하지 못하는 자리가 오히려 잘 설계된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홍보인의 물건은 미디어허브도, PRM스퀘어도 아니다. 이번에 소개할 물건은 판이다. 사람을 앞에 세우고 뒤로 물러나는 판, 회사의 이야기를 줄이고 산업의 맥락을 채우는 판, 기자가 질문하고 전문가가 답하며 새로운 취재가 시작되는 판이다. 당장 계약이나 매출로 돌아오는지는 알기 어렵다. 산업을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곧바로 회사가 칭찬받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멀리 돌아가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회사를 많이 말한다고 회사가 각인되진 않는다. 산업을 이해하고, 취재할 때 반복해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얻게 되면 정보의 출처도 함께 남는다. 기업의 메시지를 그대로 옮긴 기사보다, 시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용된 정보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 이제는 단순히 보도자료가 몇 건 기사화됐는지만 세기 어려운 시대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비슷한 문장을 쏟아낼 수 있다. 그래서 많이 보도되는 정보보다 다시 인용되는 정보, 한 번 크게 드러나는 브랜드보다 여러 기사에 서서히 스며드는 브랜드에 더 관심을 둔다. 이 모든 일은 회사를 위한 것이다. 다만 회사를 위한 가장 넓고 긴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좋은 PR은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 산업을 더 잘 이해하고,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판을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