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재강국] 일본은 왜 국가 AI 연구소에서 기초 연구를 파고드는가
국가 AI 연구거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지원을 받고 서울시와 서초구청이 뒷받침하는 AI 연구 컨소시엄으로, 카이스트·고려대·포스텍·연세대와 국내 기업들이 함께한다. 지디넷코리아는 격주마다 한국 AI 연구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을 국가 AI 연구거점의 생생한 이야기로 조망해 본다. [편집자주] AI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각국 정부는 앞다투어 국가 차원의 AI 전략을 세우고, 그 중심에 국가 단위 연구기관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AI 연구 그 자체는 국경을 모른다. 오늘날 머신러닝의 토대를 이루는 이론과 알고리즘은 어느 한 나라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경을 넘나드는 연구자들의 오랜 축적 위에 서 있다. 국가가 만드는 연구 토대와 국경 없는 연구 공동체, 이 둘을 어떻게 함께 세울 것인가. 국가 단위 AI 연구기관들이 공통으로 마주해온 질문이다. 일본은 2016년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놓았다. 문부과학성의 지원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RIKEN) 산하에 혁신지능통합연구센터(RIKEN Center for Advanced Intelligence Project, 이하 RIKEN AIP)를 설립한 것이다. 설립 당시 일본 정부의 판단은 명확했다. AI 시대의 국가 역량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기초 연구의 축적에서 나오며, 그 축적은 대학과 기업이 각자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RIKEN AIP는 처음부터 세 개의 축으로 설계되었다. 머신러닝의 수학적 원리를 탐구해 AI의 신뢰성과 해석가능성, 안전성의 토대를 세우는 기초 이론 연구, 의료와 재해 대응, 과학 발견 등 구체적 영역의 지식과 AI를 결합하는 목표 지향 연구, 그리고 AI가 사회에 확산되며 생기는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연구다. 기초 이론과 사회 응용, 그리고 AI 윤리를 한 지붕 아래 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셋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AI가 사회에 뿌리내릴 수 없다는 것, 이 설계에 깔린 확신이다. 필자 자신의 연구도 이 철학과 닿아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불완전한 정보로부터의 학습'을 연구해왔다. 현실의 데이터는 교과서처럼 깨끗하지 않다. 레이블이 부족하거나 잘못 붙어 있고, 학습할 때의 데이터와 실제 환경의 데이터가 서로 다르다. 약지도 학습과 분포 변화 대응 같은 이론은 바로 이 간극을 다룬다. 데이터가 완벽하기를 기다릴 수 없는 의료와 재난, 과학의 현장에서 AI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토대다. 기초 연구의 축적이 결국 응용의 뿌리가 된다는 것, 이것이 RIKEN AIP를 관통하는 믿음이다. 그리고 지난해, RIKEN AIP는 같은 믿음을 가진 파트너를 이웃 나라에서 만났다. 한국이 카이스트와 고려대, 연세대, 포스텍 컨소시엄으로 출범시킨 국가 AI 연구거점이다. 국가가 뒷받침하는 AI 연구 거점이라는 점에서 거점과 RIKEN AIP는 서로의 거울과 같은 존재다. 2025년 7월 두 기관은 연구자 교류와 공동 세미나부터 공동연구까지 폭넓은 협력을 담은 연구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문서는 서랍 속에 머물지 않았다. 그해 12월 김기응 센터장이 이끄는 거점 대표단이 도쿄의 RIKEN AIP를 찾아왔고, 양 기관 연구자들은 하루 동안 서로의 연구를 소개하며 향후 협력의 방향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올해 7월, 서울에서 열린 ICML 2026에 맞춰 거점은 RIKEN AIP와 캐나다 벡터 연구소(Vector Institute)를 한자리에 불러 3개 기관 공동 워크숍을 열었다. 세 기관에서 세 명씩, 아홉 명의 연구자가 이론에서 응용까지를 아우르는 발표를 했고, 포스터 세션과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양해각서에서 방문으로, 방문에서 공동 워크숍으로, 1년 사이에 협력은 문서에서 사람으로 옮겨왔다. 한국 연구 커뮤니티와의 협력이 특별히 기대되는 이유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AI 연구는 강점의 결이 서로 다르면서도 보완적이다. 그리고 두 나라는 닮은 고민을 안고 있다. 월등한 컴퓨팅 자원을 가진 나라들과의 경쟁 속에서 기초 연구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과제다. 같은 고민을 가진 이웃이라면, 해법도 함께 찾는 편이 낫다. 국제 협력에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협력은 행사가 아니라 인프라라는 것이다. 한 번의 서명식이나 워크숍이 협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협력은 연구자가 국경 너머의 동료와 논문을 함께 쓰고, 상대 기관의 연구실을 오가는 왕래가 제도의 뒷받침 속에 당연한 일상이 될 때 비로소 뿌리내린다. 젊은 시절 국경을 건너 보낸 연구의 시간이 그 뒤의 연구 인생을 바꿔놓는 일은 이 분야에서 드물지 않다. 지금 한국과 일본을 오가게 될 젊은 연구자들의 시간이 두 나라 AI 연구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것이다. 국가 연구기관의 역할은 바로 그 왕래가 끊기지 않도록 다리를 놓고 지키는 일이다. AI 연구의 축이 반드시 태평양 건너에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서울과 도쿄는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다. 같은 시간대에서, 닮은 고민을 안고,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두 연구 공동체가 이미 오가기 시작했다. 거점과 RIKEN AIP의 협력이 한일 양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세계 AI 연구의 또 하나의 축을 세우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