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 자산화 나선 현대차…구독 넘어 '순환경제' 실험
전기차에서 배터리를 떼어내면 시장은 어떻게 달라질까. 현대자동차의 배터리 구독 사업은 단순한 가격 인하 실험을 넘어,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의 소유와 관리, 재사용까지 직접 설계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배터리 구독은 전기차 초기 구매 부담을 낮출 수 있지만, 중고 배터리의 성능과 안전성 검증, 사용 후 배터리의 자산화, 배터리 관리 책임과 보증 체계 등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지디넷코리아는 4회에 걸쳐 현대차 배터리 구독 사업이 전기차 가격 구조와 배터리 순환경제, 배터리 안전성 및 운영 방식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구독 실증은 수도권 법인택시 아이오닉5 5대에서 출발한다. 주행거리가 긴 법인택시는 배터리 성능 저하와 교체 비용 부담이 빠르게 드러나는 만큼, 구독 모델이 안착하면 사용후 배터리의 진단·회수·재사용·재활용 생태계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수도권 법인택시 아이오닉5 5대를 대상으로 전기차 배터리 구독 서비스 실증사업을 추진한다. 이번 사업은 국토교통부 모빌리티 규제샌드박스 심의를 통해 승인된 '전기차 차체-배터리 소유권 분리 등록' 특례를 기반으로 한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는 전기차 배터리를 차체와 분리해 별도로 등록·관리하는 체계가 없어, 이번 실증은 규제 특례를 통해 진행된다. 실증 구조는 차체와 배터리 소유권을 분리하고, 법인택시 사업자가 현대캐피탈에 월 구독료를 내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배터리 소유권 분리가 전기차 운행 비용과 차량 활용 기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실증도 추진할 예정이다. 상용차가 먼저인 이유…배터리 성능 변화 빨리 드러나 법인택시는 일반 승용차보다 주행거리가 길고 충전 빈도도 높다. 그만큼 배터리 성능 변화가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현대차가 법인택시를 첫 실증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배터리 구독 모델의 장단점을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구독이 안착하려면 월 구독료를 얼마로 책정할지, 배터리 교체 시점은 어떻게 판단할지, 차량 운영사가 부담하는 총비용이 실제로 줄어드는지 검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배터리 잔존 성능, 충전 이력, 사고 이력, 운행 패턴 등 실제 운행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 데이터는 구독료 산정에만 쓰이지 않는다. 배터리가 차량에서 역할을 다한 뒤에도 에너지저장장치(ESS), 재제조, 재활용 원료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상용차 기반 구독 실증이 전기차 운행 비용을 낮추는 실험인 동시에, 사용후 배터리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이터 확보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배터리 구독 모델이 상용차 중심으로 안착하면 사용후 배터리 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완성차 업체나 금융사가 배터리 소유권을 유지하면 차량 판매 이후에도 배터리 상태를 추적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한 배터리를 재사용·재제조·재활용으로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차전지 수요 둔화로 폐배터리 업황도 부진한 상황이지만, 전기차 배터리 구독 모델이 안착하면 사용후 배터리 사업이 다시 활기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며 “배터리 구독 비즈니스와 함께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으로 사업 모델을 확장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소유권 확보…가격 인하 넘어 회수권까지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배터리를 차량 가격에서 분리하면 소비자가 처음 부담하는 차량 구매 가격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배터리 구독 모델의 핵심은 가격 인하에만 있지 않다. 배터리 소유권이 소비자에게 넘어가지 않고 완성차 업체나 금융사가 보유하게 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터리 소유권이 분리되면 완성차 업체는 배터리 상태 데이터와 운행 이력, 성능 저하 정보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차량에서 역할을 다한 뒤에도 ESS, 재제조, 재활용 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단순 부품이 아니라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관리 가능한 자산이 된다. 결국 현대차의 배터리 구독 실증은 전기차 가격을 낮추는 금융 모델인 동시에, 배터리를 차량과 별개의 자산으로 관리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소유권을 유지하면 사용후 배터리 회수 경로를 확보할 수 있고, 회수한 배터리를 재사용·재제조·재활용으로 연결하는 순환경제 구조도 설계할 수 있다. 다만 현대차는 확대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재활용보다는 구독에 초점을 맞추고 시범 사업을 하는 것”이라며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구독 사업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성공 조건은 가격보다 신뢰…진단·보증·회수 체계가 관건 현대차 배터리 구독 실증의 성패는 가격 인하 효과뿐 아니라 소비자가 구독 구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차량 가격이 낮아지더라도 월 구독료를 포함한 장기 비용이 불명확하거나 배터리 성능 저하에 따른 책임 소재가 모호하면 시장 확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배터리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진단 체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 잔존 성능, 충전 이력, 사고 이력 등을 기준으로 배터리 가치를 산정해야 월 구독료 책정과 교체 여부 판단이 가능하다. 같은 데이터는 사용후 배터리를 ESS나 재활용 원료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보증과 책임 구조도 핵심 변수다. 배터리 소유자가 차량 이용자가 아니라 완성차 업체나 금융사라면, 배터리 화재나 성능 저하, 사고 발생 시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구독료에 보증·정비·교체 비용이 어디까지 포함되는지, 차량 소유자와 배터리 소유자가 다를 때 보험 처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제도적으로 정리돼야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춰질 경우 배터리 구독은 현대차에 전기차 보급 확대와 순환경제 구축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초기 구매 부담을 낮추고, 회사에는 배터리 회수권과 데이터 기반 사업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만 구독 모델은 가격 인하만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진단과 보증, 회수, 재사용·재활용까지 이어지는 운영 체계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구축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배터리를 전주기적으로 관리하는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로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중국 니오가 아직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듯, 현대차도 배터리 관리 책임과 규제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로 정착시킬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