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s 픽] '첫 상장 취소' 이노그리드, 이테크시스템 가족됐다…정명철, IPO 나설까
지난 8월 코스닥 상장 승인이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던 이노그리드가 이테크시스템의 지원에 힘입어 기사회생 할 기회를 갖게 됐다. 코스닥 최초 승인 효력 불인정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이곳은 자금 압박으로 사업 존속 위기를 맞았으나, 이번 일로 이테크시스템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IPO(기업공개) 재시도에 탄력이 붙을 지 주목된다. 이테크시스템은 클라우드 컴퓨팅 및 디지털전환(DT) 전문 기업인 이노그리드에 230억원을 투자해 지분 43%를 확보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를 통해 이테크시스템은 이노그리드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테크시스템은 최근 본사를 둔 서울 중구 에티버스타워에서 이노그리드 지분 투자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노그리드는 클라우드 풀스택(IaaS, PaaS, SaaS, CMP)'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기업이다. 당초 이노그리드는 지난 1월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해 지난 7월 코스닥에 상장할 계획이었으나, 공모 청약을 닷새 앞두고 곧바로 코스닥 시장위원회에서 돌연 이를 인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상장이 무산된 바 있다. 예비심사를 통과한 기업이 다시 취소 당한 경우는 코스닥 개장 이래 처음이다. 이는 이노그리드에 전 최대주주 박 모씨의 '투서' 한 장이 원인이 됐다. 박 씨는 경제사범에 해외 도피 중인 인물로,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와 전·현직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사기·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박 씨는 과거 회사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지자 기술총괄(CTO)이었던 김 대표가 사재를 털어 경영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주주로 끌어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박 씨의 고소 건을 내사 종결하고 이노그리드의 무혐의로 결론을 낸 바 있다. 시장위는 현 대주주와 과거 대주주의 법적 분쟁 소지가 있음에도 이노그리드가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장 예비심사 통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노그리드는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이 수익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외부 심사에서 요건을 충족하면 상장 기회를 주는 '기술특례 상장'으로 도전에 나섰지만 결국 좌초됐다. 이 탓에 이노그리드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곳은 지난해 11억원, 올 상반기에만 5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상장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기술 투자를 이어온 탓에 재정 상태도 갈수록 악화됐던 상태다. IPO에 돌입한 기업들이 외부 투자 유치가 불가능하단 점에서 그간 단기 차입 등으로 버텨왔지만, 최근 자금 사정이 상당히 불안해지면서 결국 김 대표가 결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2천567.8%로, 이 때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지난 2022년 이후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현재 단기 차입금은 50억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88억9천639만원에서 올해 상반기 27억6천858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테크시스템으로부터 230억원을 조달 받게 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자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CDC)를 세워 오는 2025년에 매출 1천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 달성에도 다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노그리드는 당초 172억원을 공모해 이 중 130억원을 CDC 구축에 사용할 계획이었다. 이번 일로 이테크시스템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비즈니스를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양사 간 클라우드 관리 플랫폼(CMP) 공동개발을 통해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 사업자(MSP, Managed Service Provider) 사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또 온프레미스(On-Premise, 내부 구축)부터 클라우드를 아우르는 클라우드 SI(시스템 통합)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 더불어 전략적 협업으로 공공 클라우드 시장 공략 및 양사의 비즈니스를 융합한 신제품 개발도 추진할 방침이다. 이테크시스템이 이처럼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5월 사모펀드(PEF) 운용사 SG프라이빗에쿼티로부터 1천800억원 투자를 받은 덕분이다. 이테크시스템은 IT컨설팅, 시스템·네트워크 구축사업을 하는 곳으로, 투자 덕분에 에티버스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에티버스그룹은 '용산전자상가 신화'로 불리는 정명철 회장이 세운 곳으로, 이테크시스템 투자금 1천800억원 중 정 회장 측 자금도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금 유입으로 에티버스그룹 출자구조는 이테크시스템·사모펀드→에티버스→에티버스eBT로 재편됐다. 또 이테크시스템의 지분구조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긴 것으로 파악된다. 이테크시스템은 작년 말 기준 정명철(23.7%), 정인성(21.9%), 정인욱(18.9%), 정인나(18.1%), 양경남(15.2%)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 전량을 보유 중이다. 업계에선 이노그리드의 최대 주주로 올라선 것을 두고 향후 IPO를 추진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했다. 이노그리드는 당초 상장 예심 신청 제한 기간인 1년이 지나면 다시 상장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상장 주관사는 기존대로 한국투자증권이 맡는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의 자녀들이 그룹에서 현재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상태로, 각자 맡은 역할을 봤을 땐 아직 승계구도가 명확치 않은 느낌"이라며 "내년 4월쯤 공개될 지분 구조 방향을 좀 더 주목해봐야 할 듯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IPO를 추진해도 오너일가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를 탄탄하게 가져가려는 의도도 엿보인다"며 "치열해지는 시장 경쟁 속에 시스템 고도화 등을 위한 투자에도 정 회장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도 이번에 드러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티버스그룹은 앞으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그룹의 성장축을 옮겨 외형을 더 키운다는 전략이다. 또 전문 인력 양성과 영입, 기업 인수 등으로 사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시스코·AMD·삼성전자 출신 이명우 부사장을 이테크시스템 클라우드사업본부장으로 영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부사장은 이테크시스템 클라우드사업본부를 3년 안에 3배 이상 키울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현재 400억원 규모의 클라우드 사업을 1천억원대 비즈니스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로 온프레미스와 퍼블릭 클라우드를 모두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역량을 높일 계획이다. 에티버스그룹 관계자는 "IPO 가속화를 위해 투자한 것으로, 이테크시스템으로 (IPO를) 할 지, 이노그리드로 할 지 아직 확실치는 않다"며 "이번 이노그리드의 에티버스그룹 계열사 합류는 IT 시장 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테크시스템의 자회사인 에티버스와 에티버스이비티는 IT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제조사와 국내 최다의 총판 파트너십을 보유하고 있어 IT 유통에 강점이 있다"며 "이테크시스템의 SI(시스템 통합), NI(네트워크 통합), 클라우드 MSP, IT 컨설팅, 서비스에 이노그리드의 클라우드 솔루션 개발까지 IT 전반을 잇는 '사업 수직 계열화' 확대는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 계약 종결일은 이달 27일이며 인수 후 통합(PMI) 과정을 거쳐 양사의 충분한 교류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이테크시스템은 이노그리드의 현 경영진과 조직을 일단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는 "앞으로 자체 솔루션 고도화와 AI,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신제품 및 사업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이테크시스템과 함께 신규 시장 개척 및 고객 확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