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 기업들 가격인상 '눈치싸움'…"고물가 고통 계속 주장해야"
정부의 물가안정 동참 압박에 유통 및 식품기업들의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이에 제품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상 계획을 철회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정부의 가격인상 자제 요청에도 가격을 인상하는 경우도 있었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재의 고물가는 전체적인 물가상승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꼽힌다. 이에 정부가 기업들에게 물가안정을 위한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는데, 이런 정부 압박이 향후 일시 가격 인상으로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가 인상 부담에 대해 소비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야 정부가 계속 적극 나설 것이라며,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 개편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특히 유통·식품 기업들의 잇따른 가격 인상은 서민들의 생활경제와 연계가 깊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 가격 인상폭 눈에띄게 높아, 최대 18% 인상..생수 가격도 15%↑ 우선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는 LG생활건강의 가격 인상폭이 눈에띄게 컸다. LG생활건강은 올해들어 세제, 샴푸, 치약 등 생필품 8종의 가격을 최대 18% 인상했다. 인상폭이 컸던 LG생활건강의 테크 가루 세제는 750g 가격이 기존 5천500원에서 6천500원으로 18% 뛰었다. 뒤를이어 홈스타 곰팡이싹(750㎖)도 5천900원에서 17% 인상돼 6천900원이 됐다. 샴푸 가격도 올렸는데 오가니스트 샴푸의 가격은 6천원에서 16% 인상된 7천원에 판매된다. LG생활건강은 올해들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코카콜라 제품 가격도 인상했다. 코카콜라 350㎖와 코카콜라제로 355㎖는 기존 1천900원에서 2천원으로, 1.5ℓ 페트는 3천800원에서 3천900원으로 인상시켰다. 식품기업인 버거킹은 10일부터 일부 메뉴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해 1월과 7월에도 가격을 올렸는데, 불과 약 8개월만에 또 다시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이번에 가격이 인상되는 메뉴는 버거류 32종, 사이드 메뉴·음료 15종 등 총 47종이고 평균 인상률은 2%다. 그밖에 롯데리아는 지난달 제품 가격을 평균 5.1% 인상했고 맘스터치는 이달 버거류 제품의 가격을 평균 5.7% 올렸다. 유제품 가격도 인상 돼 매일유업은 올해 1월 1일부터 편의점에 납품하는 유제품 44종의 가격을 인상했고, 남양유업과 빙그레도 각각 21종의 유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생수 가격의 오름세도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아이시스 출고가를 15%가량 올렸고, 제주도개발공사도 제주 삼다수 가격을 평균 9.8% 인상했다. 외식 품목 제품의 평균 가격도 전년동기 대비 10.8% 인상됐다.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자장면의 가격은 지난 1월 지난해 대비 무려 14% 가까이 인상됐다. 비빔밥 제품의 가격도 8.8% 올라 한그릇에 평균 1만원으로 집계됐으며, 국민 음식인 삼겹살도 200g 기준 12.1% 오른 1만9천1원, 학생들이 즐겨먹는 김밥 가격도 12% 인상된 3천100원으로 올랐다. 최근 핫 이슈였던 맥주 가격은 정부의 가격인상 자제에도 기업들은 계속해서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는 테라와 하이트 출고가를 각각 7.7%, 롯데칠성음료는 클라우드 출고가를 8.2% 인상하는 계획을 밝혔다. 특히 지난해 소주 출고가가 1병당 85원으로 인상되면서, 현재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소주 가격은 병당 1천원 가량 올랐지만 올해들어서 가격 상승분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치솟는 식품가격에 정부, 물가연동하는 맥주·탁주 세제 개편 압박 주류 가격의 끝없는 인상에 정부가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주세를 손질해 과도한 가격인상을 억제하겠다는 것. 현재 맥주·탁주 주세는 물가연동방식으로 책정되는데 물가상승률에 비해 소비자가격 인상폭이 훨씬 크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맥주·탁주 세금을 물가에 연동한 부분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맥주·탁주 세금 부과 방식이 2020년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면서 물가 연동제가 도입됐는데, 세금 인상을 빌미로 오히려 관련 기업들은 시장에서 몇백원씩 올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해마다 물가에 연동하기보다 일정 시점에 한 번씩 국회에서 세액을 정해주는 식으로 개편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지난달 28일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물가안정 간담회'를 열고 CJ제일제당과 오뚜기 등 식품업체 대표들과 만나 가격 인상 자제를 요구했다. 정 장관은 "올해 상반기에는 식품업계가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등 최대한 물가안정을 위해 협조해주길 바란다"며 "할당관세 적용품목 추가 발굴 등 업계의 비용부담 완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도 계속해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과의 간담회 이후 풀무원은 생수 가격인상 계획을 보류했고, CJ제일제당은 고추장과 다시다 등 일부 조미료 제품의 편의점 출고가 인상 계획을 보류했다. 전문가 "소비자가 계속해서 고물가 고통을 직접 주장해야...수입제품 관세 개편 필요도" 민생부담 완화를 위한 목적으로 정부가 유통 기업들에 물가안정 협조를 요청하고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향후 억눌렸던 가격 인상분이 일시에 반영될 경우 소비자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를 위해 소비자들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하며, 지금의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도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인상이 과하면 소비자들이 직접 의견표명을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정부가 이를 인식하고 향후에도 지속적인 인상 자제를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는 해외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좋은 품질의 저렴한 제품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유통기업들은 정부의 압박을 간섭이라고 하지만, 자율시장경제를 기업들이 정말로 생각한다면 관세에 대한 반대입장부터 거둬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은희 교수는 "기업들은 수입 제품에 대한 관세정책에 크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관세를 다 없애버리고 저렴한 제품들이 수입돼 들어오면, 소비자입장에서는 저렴하고 품질좋은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게 되고, 국내 유통 기업들의 독점현상도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