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고 싶은 AI는 'X to Real'입니다"
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편집자주] “우리가 하고 싶은 AI는 'X to Real'입니다” 윤성호 마키나락스 대표는 어쩌면 타고난 기업가일지 모르겠다. 2012년 미국 MIT에서 고(高)에너지 핵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을 때만 해도 그의 미래는 과학자나 교수였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연구 조교로 일할 때에도 그게 천직이려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숨은 본질을 드러내게 하는 모양이다. 윤 대표에게는 삼성전자 연구원 경험이 그렇다. 병역특례 전문연구원으로 반도체 생산에 참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산업과 현장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고, 인생행로마저 바뀌게 된다. 'X to Real.' “X는 상상하는 모든 것이고, Real은 실질적인 그 무엇입니다. 마키나락스의 기업 모토죠. 인공지능(AI)이 연구실에서 개념검증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세계에 실질적인 가치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산업 현장 경험 이후 연구하려는 아이템도 그 철학과 실행 방식도 완전히 새롭게 바뀐 것이다. 윤 대표의 꿈은 그래서, 마침내, '기업가', 특히 '책임지는 기업가'다. ■ “내가 기업을 직접 해도 되겠구나” 윤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의무 복무 기간을 마친 뒤 해외 연구소로 가는 대신 SK텔레콤에 취직했다. 앞서 말한 대로 꿈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에서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했다. SK 그룹 산하 반도체·에너지 등 주요 계열사에서 나오는 각종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이 때 미국의 한 반도체 장비회사와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 AI를 활용해 장비의 이상 여부를 탐지하는 일.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윤 대표는 이 때 창업을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끝낸 프로젝트는 다른 여러 회사에서도 필요할 것이고, 우리가 비교적 그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가 되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회사를 만들어 하면 어떨까. 충분히 가능하고 또 필요한 일이 아닐까.' ■ 세 명의 창업 동지를 규합하다 마키나락스는 4명이 공동으로 창업했다. 윤성호 대표를 중심으로 미국 시카고대 출신인 이재혁 공동대표, SK텔레콤에서 함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재직하였던 임용섭 CDS, 하버드대 출신인 심상우 CTO 등이다. “창업 제의를 했을 때 임용섭 CDS의 경우 단 하룻밤 지나고 바로 오케이를 했어요. 오래 공부하다 대기업에 취직한 지 고작 1년이 조금 넘었는데 과감하게 결정하는 거 보고 고맙기도 하고, 된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4명의 결의로 마키나락스의 돛이 올랐다. 마키나락스(MakinaRocks)는 기계지능을 뜻하는 라틴어 마키나(Makina)와 속어로 '쩐다' '짱이다'는 의미를 갖는 락스(Rocks)를 합친 말이다. '인공지능 짱'이 되는 셈이다. ■ 그들이 '인공지능 짱'이 되려는 이유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사건은 단지 바둑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았다. 오래전에 개념이 나왔었지만 연구실 수준에서 그쳤던 AI가 실제 세계에 적용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임을 입증하는 대사건이었다. 윤 대표가 창업을 하게 된 배경도 그것이다. “AI 비즈니스의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데이터, 컴퓨팅,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 AI 비즈니스를 위한 환경이 이미 갖추어졌다고 본 겁니다. 우리는 특히 일반인을 상대로 한 AI 서비스보다 제조를 비롯한 전통적인 산업에 존재하는 현장의 문제를 AI 기술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했습니다.” 삼성전자 연구원 시절의 경험과 SK텔레콤 재직시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프로젝트 경험이 자산이 된 것은 물론이다. 제조를 비롯한 모든 산업은 항상 문제를 안고 있고, 그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데, AI가 핵심적인 솔루션인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게 윤 대표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에 초점을 맞춘 기업은 아직 많지 않고, 스타트업이긴 하지만 마키나락스가 앞장서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 시장은 특히 작지 않다. 전체 AI 관련 시장 가운데 제조업을 지원하는 AI 시장이 절반을 차지할 거란 보고서도 있었다. ■ MLOps 플랫폼, '런웨이'를 내놓다. 2017년 말에 창업해 6년차에 접어든 마키나락스는 지난해 11월, 1년6개월의 연구개발 끝에 MLOps 플랫폼인 '런웨이(Runway)' 상용 제품을 출시했다. MLOps는 각종 AI 모델이 작동되게 지원해주는 플랫폼을 의미한다. AI 모델은 AI를 통해 구현하려는 단위 서비스로 이해하면 쉽다. AI는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집어넣어 재학습을 해야 하는데 계속 비슷한 데이터로 비슷한 학습을 하는 한 덩어리의 서비스를 AI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AI 모델은 그렇게 데이터를 받아들여 학습하고 그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을 반복한다. AI 모델은, 달리 표현하면, AI로 해결하려는 하나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의한 뒤, 그걸 풀어낼 로직을 세우고, 그에 맞게 데이터를 입력해 학습을 시켜서, 답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순환적으로 계속 반복하는데, 이렇게 굴러가는 한 단위가 AI 모델인 거다. ■ “런웨이에서 AI 모델 3천개가 운용돼요” MLOps의 경쟁력과 신뢰도는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AI 모델의 운영에 관여하느냐로 판단할 수 있다. 운용되는 AI 모델이 많을수록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그 MLOps의 도움이 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런웨이는 정식 제품이 나온 지 고작 두 달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이지만 이미 3천여 개의 AI 모델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창업 이후 계속해서 배터리 화학 반도체 자동차 에너지 분야 등 40여개 기업과 다양한 AI 프로젝트를 수행했어요. 그 결과를 집대성한 게 런웨이죠. 제조 산업 영역에서 개념검증(PoC) 단계를 넘어 실제 문제 해결에 AI를 적용하는 사례가 쌓여가면서 런웨이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조업은 AI를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까 제조업에서도 AI 쓰임새는 많다. 공장자동화(FA)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FA는 공정을 규격에 맞춰 시스템화(그리고 기계화)함으로써 효율을 높이는 개념이다. AI는 그렇게 된 공정을 더 지능화하자는 개념에 가깝다. 예를 들면 최첨단 자동화 공장이라 하더라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반도체 공장이 불시에 멈추면 하루 수백억 원이 손실이 발생한다. AI는 이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공장과 공정에 수많은 센서가 있고 이를 통해 많은 데이터가 쏟아진다. AI는 이를 학습해 이상 징후를 탐지할 수 있다. “학습된 AI가 실시간으로 기계와 설비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분석해 끊임없이 이상 유무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죠.” 윤 대표는 그런데 공정의 최적화 방법을 찾는 데에도 AI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테면 냉난방 공조시스템을 AI로 조절해 전력 소비를 줄인다거나, 심지어는 기판의 소자 배치 순서를 최적으로 하는 데에도 AI가 훌륭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표의 경험담이다. “우리가 한 기판 업체에서 최적의 소자 배치 순서를 강화학습시켰는데 과거 10년 성과를 단 6주 만에 따라 잡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 스타트업 혹한기에 성공시킨 투자 유치 마키나락스의 실력은 고객사 뿐 아니라 투자업계에도 소문난 모양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투자 시장에도 혹한기가 닥쳤지만 마키나락스는 지난해 12월 성공적으로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액은 309억원. 올해 매출 목표는 120억 원이고, 추후 기업공개(IPO) 계획도 갖고 있다. 투자업계가 윤 대표와 마키나락스를 신뢰한 것은 무엇보다 기술력 때문이겠지만 윤 대표의 확실한 '기업가 기질'도 한 몫 한 듯하다. 윤 대표가 생각하는 기업가정신은 한 마디로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이다. '자신이 책임을 안고 직접 현실(문제)에 참여하라.' 미국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가 동명의 저서에서 강조한. 탈레브가 책을 쓴 까닭은 말로만 간섭하고 책임은 회피하려는 모든 자들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한 번쯤 되새겨야 할 경구다. 그런데 윤 대표는 이 말을 되새길 필요조차 없어보였다. 책임지는 행동을 오히려 즐기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고 책임을 지는 행위를 무척이나 즐기고 있다는 느낌. 리스크를 온전히 감수하고 그걸 되레 즐기는 사람이라면 어떤 투자자라도 믿을 것 같은 느낌을 줬다. 덧붙이는 말씀: 윤성호 마키나락스 대표가 다음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한 사람은 반도체 설계 솔루션 기업 세미파이브의 조명현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