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교체'...7년 만에 칼 빼든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고유의 '따로 또 같이' 경영문화를 공고히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그동안 최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4인 부회장단이 그룹 콘트롤타워에서 한걸음 물러났으며,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사령탑을 맡으며 사촌경영 체제가 강화됐다. 그룹 내 전반적인 세대교체를 위해 주요 계열사 7곳 수장 교체도 단행했다. 최고경영자(CEO) 3인도 신규 발탁했다. 2016년 말 인사에서 주력 사장단을 50대로 전면 교체한 지 7년 만에 대대적인 교체가 이뤄진 셈이다. SK그룹은 7일 그룹 최고협의기구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어 의장 등 신규 선임안을 의결하고, 각 관계사 이사회에서 결정한 대표이사 등 임원 인사 내용을 공유·협의했다. 최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임기 2년의 새 의장으로 선임됐다. 최창원 부회장은 2007년 SK케미칼 대표이사 취임에 이어 2017년 중간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를 맡아 SK의 케미칼, 바이오 사업을 이끌고 있다. ■ 가신그룹 힘 빼고 친족경영 힘주기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최창원 의장 선임 외에 지동섭 SK온 사장을 SV위원회 위원장에, 정재헌 SK텔레콤 대외협력담당 사장을 거버넌스위원회 위원장에 각각 신규 선임했다. 지동섭 신임 SV위원장은 SK온의 배터리 사업을 이끌어 왔다. 정재헌 신임 거버넌스위원장은 SK스퀘어 투자지원센터장을 지냈고, SK텔레콤 대외협력담당을 겸임할 예정이다. 2017년부터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이끌어 온 4인 부회장단의 거취도 정해졌다. 조대식 의장을 비롯해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4인 부회장단은 이번 인사를 통해 부회장직은 유지하지만,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거나 자리를 옮긴다. 2선으로 물러나는 셈이다. SK그룹은 “이번 협의회 인사는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고, SK 관계사들이 '또 같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경영 인프라 구축 및 변화관리 구축에 방점을 뒀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에서는 최 회장 장녀의 빠른 승진 속도도 눈에 띈다.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이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하며 입사 후 6년 만에 부사장급 임원 자리에 올랐다. 최 본부장은 1989년생으로 최연소 임원이기도 하다. SK바이오팜은 사업개발본부 산하로 사업개발팀과 전략투자팀을 통합 편성하고 수장으로 최 본부장을 선임했다. 최 본부장은 올 초 SK그룹 지주사 SK가 SK바이오팜과 꾸린 신약 태스크포스(TF)에도 합류하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이번 승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장남 인근 씨도 SK E&S 북미법인 '패스키'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녀 민정씨는 2019년 SK하이닉스에 입사한 뒤 미국 법인으로 옮겨 근무하다가 지난해부터 휴직한 상태다. SK그룹은 고 최종건 SK초대회장의 직계 가족인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장남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회장과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SK 회장(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한 지붕 두 가족' 사촌 경영이 그룹 고유의 문화가 된 것이다. 이번 인사로 인해 혈족 경영이 공고해지며, 그룹 지배구조 안정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오일선 CXO연구소 소장은 "최창원 부회장이 수펙스 의장을 맡으며 그룹 내 2인자로 부상했다는 것은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혹시라도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재 상황에 대비해 플랜B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4대 그룹 총수 대부분 예기치 못한 사고 발생 시 대신할 만한 2인자가 명확히 없다 보니 외국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그룹의 지배구조가 다소 불안정하다는평가를 많이 한다"며 "SK그룹이 만일에 대비한 그룹 지배력에 대한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시켰다는 점에서 한수 앞을 내다본 인사"라고 평했다. ■ 최고경영진에 젊은피 수혈…40·50대 사장 전진 배치 앞서 임원 인사를 실시한 다른 그룹처럼 SK그룹도 젋은 피를 수혈하는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신규 선임 임원의 평균 연령은 48.5세다. 이번에 선임된 사장단 나이는 40~50대다. ▲장용호 SK 사장(전 SK실트론 사장) 59세▲박상규 SK이노베이션 신규 사장(전 SK엔무브 사장) 59세 ▲이용욱 SK실트론 사장(전 SK머티리얼즈 사장) 56세 ▲오중훈 SK에너지 사장(전 SK에너지 P&M CIC 대표) 55세▲이석희 SK온 사장(전 SK하이닉스 사장) 58세 ▲김양택 SK머티리얼즈 사장(전 SK첨단소재투자센터장) 48세 ▲김원기 SK엔무브 사장(전 그린성장본부장) 53세 ▲장호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사장 49세 ▲노상구 SK인천석유화학 사장 55세▲류광민 SK넥실리스 사장 48세다. 자리를 지킨 사장단의 나이도 대부분 50대로 젊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내년 3월 임기 만료였지만 유임에 성공하며 회사를 계속 이끌게 됐다. 올해 막 60세가 된 1965년생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SK 이성형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은 사장직을 유지한다. 최 회장은 “새로운 경영진에도, 또 젊은 경영자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는 때가 당연한 것”이라고 인사에 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 조직 개편에 담긴 방향성…"AI 키우고 글로벌 시장 확대" 이번 인사 쇄신은 투자 실패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SK수펙스 투자팀 일부는 지주사 산하 투자센터와 합쳐져 통폐합된다. 협의회 소속이던 미국, 중국, 일본 등 글로벌 오피스도 SK로 조직을 옮기게 됐다. SK는 "중복됐던 투자 기능을 일원화·효율화함으로써 투자 자산의 미래 가치를 높여갈 예정"이라며 "지주회사 본연의 포트폴리오 관리 기능을 강화해 멤버사들의 기업가치 제고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계열사의 조직개편 내용을 살펴보면 SK그룹이 어떤 미래 사업에 힘을 주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번 조직 개편에서는 '인공지능(AI)'과 '효율화'가 키워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AI 메모리, 특히 HBM을 진두지휘하는 전담 조직이 생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금까지 부문별로 흩어진 HBM 관련 기능을 모은 'HBM 비즈니스'가 신설된다. 또 'AI&넥스트' 조직을 신설해 차세대 HBM 등 AI 시대 기술 발전에 따라 생겨나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업무를 맡겼다. 낸드플래시 관련 솔루션 사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조직도 신설했다. 'N-S 커미티'로 낸드플래시와 솔루션 사업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이밖에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기반기술센터'도 신설했다. 미래 기술과 기존 양산 기술 조직 간 유기적인 협업을 주도하는 부서다. 또 기존 '글로벌 오퍼레이션 테스크포스(TF)'를 비롯한 해외 생산시설 이슈 대응 조직을 '글로벌성장추진' 산하로 재편했다. SK텔레콤은 AI를 강조하며 4대 사업부 체제를 구축했다. 구체적으로 ▲AI 개인비서 '에이닷' 등 서비스를 전담하는 'AI서비스사업부' ▲글로벌 제휴 및 투자를 담당하는 '글로벌·AI테크사업부' ▲IPTV·인터넷 등을 맡고 있는 SK브로드밴드와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T-B 커스터머사업부'▲'T-B 엔터프라이즈사업부'를 만들었다. 사업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주요 서비스에 AI 도입을 서두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각종 솔루션 사업 확장을 위한 글로벌 솔루션 오피스와 글로벌 솔루션 테크도 신설했다. 이 밖에 계열사 조직개편 내용으로는 ▲SK에코플랜트, 국내·외 R&D로 분할돼 있던 조직을 단일 BU로 재편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 산하 전략투자팀과 사업개발팀 통합 ▲SK바이오사이언스, BD·바이오 연구본부·개발본부·L HOUSE 공장·퀄리티본부·경영지원본부 등 총 6개 본부 책임경영 체계 전환 ▲SK스퀘어, 최고투자책임자(CIO) 이원화 ▲SK네트웍스, 기획재무본부와 지속경영본부 경영지원본부로 통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