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는 커지는데, 구단은 적자…흔들리는 e스포츠산업
"구단 가치가 높아질수록, 선수에 투자하는 금액이 커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매출도 늘지만, 선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는다. 결국 구단을 키우기 위해서 투자를 하면 할 수록 적자가 나는 기이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e스포츠 구단 한 관계자가 e스포츠 산업의 위기를 거론하면서 든 예시다. 이 관계자는 "투자가 클수록 그만큼의 리턴이 커져야하는데, 투자비용만 높아지고 리턴은 몇 년째 비슷한 수준"이라며 "오히려 투자를 하지 않는 구단은 일정 수준으로 흑자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e스포츠산업 위기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새로운 수익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은 아직까지 부재한 상황이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e스포츠 위기론이 커지는 이유다. 북미시장을 강타한 e스포츠 위기론 라이엇게임즈는 북미에서 열리는 '리그오브레전드(LOL) 챔피언십 시리즈(LCS)' 개막을 2주 미루기로 했다. 지난달 LCS 선수협회가 파업에 돌입한 데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지난 1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LCS는 오는 15일 개막될 예정이다. LCS 선수들이 e스포츠 초유의 파업에 돌입한 이유는 '2부 리그 관련 규정의 변화'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라이엇게임즈는 LCS 개편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북미 1부 리그인 LCS 구단은 2부 리그 NACL(북미 챌린저스 리그) 팀을 운영할 의무가 사라졌다. 그 결과 10개 구단 중 7개 팀이 2군 운영을 포기하겠다고 밝혔고, 70명의 선수단, 감독과 코치진이 순식간에 실직하게 됐다. LCS 선수협회의 파업과 리그 개막 연기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된 상황이다. 라이엇게임즈의 개편안을 선수협회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 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결국 매출과 연관된 부분이 다수 포함돼있다. LOL e스포츠 역사에서 LCS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하지만 그에 준하는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LCS는 타리그와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편으로, 아직까지는 한 번도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도가 낮아졌고, 이는 뷰어십 하락과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매출이 줄면서 경영난에 허덕이는 구단들도 늘고 있다. LCS 최고의 명문팀으로 손꼽히는 팀솔로미드(TSM)은 전격적인 시드권 매각과 타 리그로의 이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TSM 소유주인 '레지날드' 앤디 딘은 LCS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 "월즈 챔피언 쉽(롤드컵)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다만 LCS의 뷰어십 저하로 인한 매출 감소가 TSM이 떠나게 된 결정적 이유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타종목에서도 재정난에 시달리는 구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상장한 미국 e스포츠 기업 페이즈클랜은 최근 나스닥의 경고를 받았다. 현재 50센트 수준인 주가가 1달러 이상으로 오르지 않으면 페이즈클랜 주식을 거래소에서 퇴출하겠다는 내용이다. 최근 페이즈클랜은 전체 직원의 약 40%를 해고한다고 밝혔다. 페이즈 클랜 역시 북미를 대표하는 e스포츠 구단이다. 국내 e스포츠산업도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 그렇다면 국내 e스포츠 산업은 어떠한 상황일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발간한 2022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종목사의 투자, 매출 금액을 제외한 국내 e스포츠 산업 규모는 1천48억 원으로 추산된다. 2020년에 기록한 1천204억 원에 비해 약 156억 원 감소한 수치다. 세부 항목을 살피면 게임단 예산이 606.5억 원으로 전체 산업 규모의 57.9%를 차지하여 가장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년 대비 14.7% 증가했다. 선수 계약 규모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다만 커지는 산업 규모 대비 수익은 점차 줄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는 2021년 프랜차이즈 도입 이후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LCK의 2022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LCK는 약 8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2021년 영업손실 11억원보다 더 늘어났다. 각 구단들의 상황도 비슷한 수준이다. LCK의 가장 인기 구단인 T1도 2019년 약 22억원, 2020년 약 110억원, 2021년 약 211억원, 2022년 약 166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구단인 디플러스기아도 2019년 약 5억원, 2020년 약 50억원, 2021년 약 33억원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디앤리서치의 'e스포츠 실태 산업 현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e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데 드는 연간 평균 비용이 35억~45억원인 반면 수익은 10억원 이하가 대부분이다. 또 구단 예산 중 선수 연봉이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을 차지하며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업계 종사자 "종목사·구단 힘 합쳐 수익 다변화 위해 신사업 유치해야" 업계에서는 e스포츠 산업의 위기에 대해 "이전부터 예고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종목과 선수·구단의 인기가 회사 매출과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위기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우선 e스포츠의 경우 게임을 제공하는 종목사가 모든 지식재산권(IP)을 소유하다보니, 구단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한정될 수 밖에 없다. e스포츠 리그를 운영하는 종목사들은 구단의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지원을 확대하고 대회 상금을 늘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직접적인 효과는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구단이 취할 수 있는 수익화 모델이 한정됐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e스포츠는 축구, 야구 등 다른 스포츠와 달리 중계권 판매 수익이 적다. 기성 스포츠에 비교하면 경기 숫자도 적고, 중계 역시 지상파·케이블이 아닌 유튜브, 네이버, 아프리카TV, 트위치 등 인터넷 중계가 중심이기에 많은 수익을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e스포츠 리그를 운영하는 종목사들은 구단이 수익을 내고 원활하게 경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신사업을 도입하고 구단을 돕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 라이엇게임즈는 LCK에 선수들의 연봉 상한선을 제한하는 샐러리캡 제도와 스포츠토토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3월부터는 지난 디지털 콘텐츠 전문 서비스 기업 레전더리스와 손잡고 구단과 선수 IP를 활용한 디지털 콜렉터블 서비스를 시작했다. 디지털 콜렉터블은 LCK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활동했던 선수들과 LCK 경기의 IP를 활용한 디지털 상품을 제작 및 판매하는 서비스다. 이 상품들의 판매 수익은 선수와 게임단에도 배분될 예정이다. 배틀그라운드 리그를 운영 중인 크래프톤은 올해부터 '글로벌 파트너팀 제도'를 도입했다. 글로벌 파트너팀 제도는 인기와 역사가 오래된 명문팀 8개 팀을 선발해 국제대회 시드 보장 혜택 등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또 해당 팀들의 고유 상징색 등을 활용해서 스킨 제작 및 판매를 통해 수익을 배분한다. 한 e스포츠 구단 관계자는 "e스포츠가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게임과 e스포츠가 함께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구단과 리그가 수익성을 높여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스포츠산업의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세액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최승우 국장은 지난 4월 개최된 'K-콘텐츠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세제지원 개선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지난해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조특법 개정사항으로 e스포츠 구단(경기부)을 설치·운영에 드는 비용 중 100분의 10금액을 법인세에서 공제 하는 내용(조특법 제104조의22 제3항 신설)이 포함되어 세액공제를 최근 받고 있으나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