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 이통사에 어떤 '도깨비 방망이'가 있을까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3개사가 지배하는 과점 체제다. 정부는 이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과점 체제 탓에 시장 경쟁이 사라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면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가격 경쟁도 일어나지 않는다. 산업 생태계가 약화되고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통신 서비스를 사용해야만 하는 거다. 정보통신 분야 산업 생태계 활성화와 가계통신비 인하를 가로막는 주범이 통신 3사의 과점 체제라고 보는 셈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제4 이동통신사를 만들고자 한다. 제4 이동통신사가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메기'의 역할을 하기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걱정이 있다. 시장에 넣은 메기가 정어리를 자극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어리 등살에 메기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시장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정부 인허가 사업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대규모 장치 산업이라는 것이다. 먼저 대규모 투자를 한 뒤 오랫동안 수익을 보전 받는 형태다. 정부로부터 주파수를 할당받는 소수 기업만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독과점이 불가피하고 그 독과점으로 인해 장기간의 수익이 보장되는 것이며 이 믿음에 근거해 초기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수 있다. 신규사업자가 지금의 시장에서 메기가 되기 어려운 까닭은 초기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도 된다는 믿음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엔 5천만 명이라는 사용자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신규사업자를 위한 시장이 얼마나 될 지 불투명하다. 이동통신 3사에 비해 더 낮은 가격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때만 가입자를 빼앗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할 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는 탓이다. 이동통신 시장은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때만 해도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었고, 기술도 급격한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변화를 이용자가 직접 느낄 수 있었고 신기술에 뒤처지면 사용자를 빼앗기기 때문에 사업자들도 치열하게 기술경쟁에 나섰다. 이때는 모든 사업자가 서로 메기와 같아서 오히려 과열경쟁이 문제였다. 지금은 어떤가. 탈(脫)통신이 사업자들의 화두인 시대다. 통신 시장은 성장 없이 정체돼 있고 성장 없이는 지속사업이 불능하기 때문에 통신사업자마다 대놓고 탈(脫)통신을 외치고 있다. 인공지능이든 메타버스든 클라우드든 다른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통신사업자가 탈(脫)통신을 외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엄살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성장성은 떨어지고 기업가치는 내려간다. 통신이 더는 매력적이지 않은 까닭은 시장도 기술도 정체기에 접어든 때문이다. 시장은 포화돼 있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을 크게 흔들만한 기술의 부재인 듯하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전환되고, CDMA와 PCS와 IMT-2000 같은 기술이 속출할 때와 달리 지금은 투자를 한 만큼 가시적인 서비스 변화를 담보할 기술이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5G 28㎓ 주파수에 대한 정부와 사업자의 갈등은 따지고 보면 기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정부는 산업 생태계 활성화와 서비스 개선을 위해 사업자들이 28㎓ 주파수에 대해 투자하기를 원했지만 사업자들은 투자 효과를 의심했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투자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봤던 것이다. 비용에 비해 서비스 개선효과가 적고 소비자를 유인하기도 쉽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정부는 참다못해 28㎓ 주파수를 회수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4 이동통신사를 만들려고 한다. 여기에 3개 기업이 도전장을 던졌다고 한다. 일단은 다행이다. 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28㎓ 주파수 기반 생태계 구축을 새로 시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신규사업자가 이를 토대로 기존 3사를 자극할 '도깨비 방망이'를 찾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28㎓ 주파수는 기존 3사가 버린 게 아닌가. 기술이 더 발전한 훗날이면 모르지만 당장은 욕먹고라도 버리는 게 살 길이라고 3사 공히 판단했다면 그 사실을 무시하긴 쉽지 않다. 통신시장의 과점체제는 정책만으로 혁파할 수 없다. 이 체제는 지난 30년간 기술과 시장과 제도가 뒤얽혀 만들어진 구조다. 정책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시장을 흔들 기술이 있어야만 바뀐다. 과점 균열의 '도깨비 방망이' 중 하나가 기술인데, 지금은 그게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