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컬렉션, 어떻게 완성됐나…그 강렬하고 내밀한 취향
지난 해 이맘때 '어느 수집가의 초대'란 전시회가 열렸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이란 부제가 붙은 행사였다. 그 때 고 이건희 회장이 평생 수집한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당시 전시를 직접 관람했던 가족들은 방대하고 다양한 전시품에 꽤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손영옥의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을 받아들면서, 작년 이맘때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당겼던 '어느 수집가'의 작품들을 친절하고도 세심하게 톺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은 이건희, 홍라희 부부가 30여 년에 걸쳐 모은 보석 같은 작품과 예술가에 대해 친절하게 해설해주고 있는 책이다. 수집 과정 뿐 아니라 세기의 기증에 얽힌 이야기까지 담아내고 있어 미술 애호가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이중섭부터 폴 고갱까지 38명 화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에 기증된 한국의 근현대, 서양의 근대 작가들에 집중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고미술품은 제외했다. 국가에 기증되지 않은 서양 현대미술 작품도 다루지 않았다. 책에는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백남순을 비롯한 한국 화가부터 피카소, 고갱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들의 일대기와 미술 세계가 빼곡하게 담겨 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화가부터 미술사에 남을 작업을 한 화가,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단명한 화가 등 다양한 화가의 예술적 면모를 찾아 담았다. 이 책을 손에 잡은 독자들은 “왜 이건희 컬렉션이 아니고, 이건희-홍라희 컬렉션이지?”란 질문을 던질 것 같다. 저자 역시 이런 질문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 질문 속에 이 책 집필의 중요한 동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삼성가에서 호암미술관장, 리움미술관장을 맡으며 미술 전문 경영인으로 일해 온 이는 이건희가 아니라 아내 홍라희였다. 그런데 이건희 사망과 천문학적 규모의 상속 미술품 국가 기증이라는 사건이 갖는 파급력으로 인해 미술 전문인이자 미술 컬렉터였던 홍라희의 이름이 아예 논의에서 실종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저자는 서문에서 “기증 이슈에 들떠 우리가 잊고 있는 삼성가 컬렉터 홍라희의 이름을 이 책에서 불러내고자 한다”(15쪽)고 선언한다. “관습에 젖어, 의식하지 못하고 부르는 '이건희 컬렉션' 대신 '이건희·홍라희 컬렉션'으로 부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장점은 저자가 이 책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이건희·홍라희가 어떤 작품을 모았는지 말해주기보다는, '컬렉터 이건희' '컬렉터 홍라희'가 작품을 모아온 방식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렇게 모은 그림 한 점이 마음을 두드리며 행복을 주었는지, 위작을 사는 등의 실수가 있지는 않았는지 등을 여러모로 탐색하며 세기의 컬렉팅 뒤에 숨은 노력들을 들여다본다. 저자 손영옥은 현직 기자이면서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 겸 미술평론가이기도 하다. 이 책 곳곳에서 미술사적 지식과 뛰어난 작품 비평 뿐 아니라 탁월한 이야기 솜씨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저자의 이런 이력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