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에서 단점으로 돌변한 카카오의 기동성(2)
'장점에서 단점으로 돌변한 카카오의 기동성'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쓴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카카오모빌리티 매각설이 나돌 때였다. 내부 반발로 끝내 무산되기는 했지만 모빌리티 매각 시도가 카카오 경영에 중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봤었다. 계열사 쪼개기 상장 및 몇몇 경영진의 '먹튀 논란'으로 먹칠된 그룹 이미지를 크게 쇄신해야만 한다고 카카오 수뇌부가 판단했으리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칼럼 요지는 카카오의 급성장 동력이었던 기동성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카카오의 최대 무기는 몽골 기병 같은 기동성이었다. 스타트업이 갖는 뾰족한 아이템과 빠른 의사 결정을 성장의 배경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카카오는 엄청난 선단을 거느린 항공모함이 되어버렸다. 기동성을 살리려면 몸집을 줄여야 하고, 몸집을 유지하려면 새 전략이 필요했다. 카카오 수뇌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카카오모빌리티 매각 시도 배경을 그렇게 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칼럼에서 놓친 팩트가 있었다. 전체적인 지적은 그르지 않았지만 이미지 쇄신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내부 경영지표가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카카오 수뇌부는 이미지 개선보다 재무적 경영지표에 들어온 빨간불에 대한 고민이 더 컸을 수 있다. 카카오가 1년 전보다 지금 더 어수선해 보이는 문제가 그것이다. 지난해 카카오 주요 계열사 상당수가 큰 폭의 적자를 봤다. 엔터테인먼트(-4천381억원) 모빌리티(-688억원) 엔터프라이즈(-1천612억원) 페이증권(-480억원) 등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 여파로 여러 계열사에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고, 노조는 “경영 실패를 임직원에게만 떠넘긴다.”고 반발하면서 처음으로 장외집회까지 열었다. 카카오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네이버를 제치고 국내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3위까지 올랐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쪼개기 상장과 '먹튀 논란'으로 시끄러울 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새 대표이사가 취임 일성으로 “주가 15만원”을 장담하던 것도 그 즈음이다. 그것은 분명 호기(豪氣)였다. 기동성을 기반으로 급성장해오며 실패를 모르던 사람들만이 보여주던 특유의 배짱과 자신감의 표시였었다. 호기는 그러나 호기였을 뿐이다. 일시적일 수도 있는 적자를 '경영 실패'로 단정하는 것은 분명히 섣부를 수 있다. 성장을 위한 투자의 시기에는 적자가 불가피하기도 하다. 메모리 분야 세계 1위인 삼성 반도체도 경기에 따라 분기에만 4조~5조원의 적자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카카오가 지금 성장통을 앓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성장통이라고 하기에 카카오는 이미 너무 컸다는 데 있다. 내부 사정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그러나 김범수 창업자를 비롯해 수뇌부가 다음 두 가지 문제만은 깊이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첫째는 규모와 속도의 문제이고, 둘째는 대리인의 문제다. 사실 이 두 가지 문제는 창업자가 대표를 맡고 있는 단일 기업이 아닌 계열사를 선단으로 거느린 그룹 형태의 모든 대기업이 생각해봐야만 할 문제다. '규모의 경제'와 '속도 경영'은 비즈니스의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비즈니스의 일면일 뿐이다. 상승국면에 있을 때는 그 법칙이 통한다. 그러나 하강국면에서는 반대로 작동한다. 국면은 주체가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문제는 성장만 하다보면 하강국면의 리스크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성장의 동력도 규모와 속도지만 망하는 이유 또한 그것이다. 카카오는 규모를 키우고 빠른 의사결정을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상승 국면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승국면의 파도타기에만 심취하다보면 방향을 잃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방향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재점검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규모와 속도에서는 유연해져야 한다. 이 이야기는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이지만 그 추상을 구체적으로 풀어내야만 답이 나온다. 대리인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카카오 계열사가 작년 말 기준으로 127개라고 한다. 그중 상당수의 대표가 전문경영인일 것이다. 그들은 창업자와 달리 목숨을 건 최종 책임자일 수 없다. 분투하고 그로 인한 과실을 나누는 동지일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대리인일 뿐이다. 영원히 함께 가지 않는다. 믿으면서도 의심해야 할 존재이다. 먹튀와 전 대리인과의 불편한 소송이 이를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지금의 대기업을 일군 한 창업 1세가 임원을 뽑을 때 점쟁이를 숨겨놓고 조언을 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오랫동안 살아남았고 쉽게 부정될 수 없는 이치다. 대리인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재경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대리인 숫자가 많을수록 그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