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 광풍 지속...탈중국 공급망 공허한 얘기"
원자재부터 정제련, 완제품에 이르는 제조업 공급망이 각국의 통상 정책과 맞물려 요동치고 있다. 미국이 촉발한 보호무역주의는 들불처럼 전세계로 옮겨 붙었고 정치, 경제 논리를 기반으로한 통상 정책은 하루가 멀다하고 변화하는 양상이다. 특히 배터리, 반도체, 스마트폰 등 유수의 제조업 기반을 갖춘 국내 산업계 역시 전 세계 통상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손익계산에 분주하다. 삼일회계법인(Pwc), 한국IBM 글로벌비즈니스 상무를 역임하는 등 통상 분야서 잔뼈가 굵은 권일명 커니 부사장은 보호무역주의는 앞으로도 지속할 문제라고 분석했다. 이와 맞물려 국내 산업계에 냉혹한 통상 광풍이 불어오고 있다는 경고도 함께 전했다. 다음은 권일명 커니 부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공급망 위기가 거세다. 가장 화두가 되는 건 단연 미국의 해외우려집단(FEOC) 가이드라인 발표다. 몇 차례 연기 되기도 했던 FEOC 향방이 어떻게 될 것 같나? "단언해서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통상 문제는 5년 10년만을 보며 달려가는 문제가 아니라서도 그렇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물밑에서 중국과 또 다른 거래를 할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이 벨류체인으로 연계가 돼 있는 한 FEOC의 향방을 단정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Q. 그 말인즉, 탈중국 공급망이 공허하다는 얘긴가? "중국이 과거부터 원자재를 비롯한 정제련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그 힘 자체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고 보는 거다. 다만 국내에서도 니켈, 코발트, 리튬, 망간을 채굴하는 광산을 신규로 많이 확보 중이다. 중국의 정제련이 미치지 않는 채굴 가능한 광산들이 전 세계에 아직 많이 남아있다. 쟁탈전은 벌어지겠지만 앞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원자재 등 외국에서 소재를 확보하는 전략도 지분확보, 혹은 장기계약 등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정제련과 광산을 다변화 하는 건 어찌됐든 선진국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요소라 인도네시아와 같은 신흥국 위주의 공급망 형태는 유지될 것이라 본다." Q. 미국부터 유럽에 이르기까지 보호무역주의 광풍이 분다. 지속할 것으로 보나? "지속될 거다. 현재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로 가는 이유는 결국은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 경제 성장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사실 이는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전지구화) 시대에 충분히 잘 먹히는 메커니즘이다. 근데 지금 소비가 늘어날 방법이 별로 없다. 많은 잉여자본이 축적된 상태고 상품 시장이 커지지가 않는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그렇다. 개별 국가의 시장이 축소되면 '우리만 먹고 살자'라는 헤게모니가 발동하지 않을 수 없다. 공급이 대폭 줄거나 폭발적인 수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보호무역주의는 계속 갈 수밖에 없다." Q. 프렌드쇼어링(동맹국 공급망 연대)이 미국의 통상 정책으로 보이지만 일본과 달리 인니는 IRA상 FTA 체결국에 준하는 지위를 받지 못했다. "프렌드 쇼어링은 다른 말로 하면 기준이 없다는 얘기다. 일본이 FTA 미체결국임에도 체결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받은 건 미국의 군사적 제1우방국이라는 이유다. 반면 인니는 정치·군사적으로 미국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국가가 아니다. 타 동남아 국가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대만 등이 그렇다. 향후 핵심은 인니가 미국과 군사적 이해관계를 얼마나 같이 하느냐다." Q. 인니를 포함한 대안적 아시아 공급망, '알타시아(Altasia)'가 부상 중인데 재편될 공급망 형태를 어떻게 보나? "과거의 시장을 볼 때 생산 자원이 굉장히 풍부하고 염가에 인력과 자원을 조달할 수 있는 국가가 많이 선호됐다. 하지만 현재의 통상환경을 이 방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알타시아는 시장에서 생산 기지 역할도 하지만 판매 수요처의 역할도 동시에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인니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시장으로서의 역할, 판매목적이 분명하게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2억 이상의 내수를 가진 인니를 비롯해 베트남, 필리핀 등이 주요 시장으로 부상할 거다. 과거 생산효율 중심으로 신흥국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시장으로도 보게 될 거라는 얘기다." Q. 그에 반해 국내 산업은 공급망 측면에서 약자다. 보호무역주의는 지속할 문제인데 국내 산업계에 치명적 리스크는 뭐라고 보나.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 수요 시장도 크지 않은 형태상 우리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보면 공급망 리스크는 두 가지다. 첫째 소비 시장에서의 규제, 둘째 원자재 시장에서의 공급 리스크다. 첫 번째는 이미 국내 기업들이 많이 하고 있다. 미국에 합작형태로 공장을 짓는 등 판매 시장에 접근 중이다. 문제는 원자재 공급 둔화인데 내가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상황이 생긴다는 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규 광산을 개발하지만 채산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부 기업이 광산에 직접 지분 투자를 하지만 그렇게 입도선매(立稻先賣) 형식으로 진행하면 원자재 측면에서 미래 필요한 수요량을 예측하지도 원자재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전망하지 못 한다. 이런 원자재 분야를 어떻게 유연하게 끌고갈지 민과 관의 심도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Q. 시야를 다시 넓혀보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야권 유력 후보로 부상하면서 IRA 전면폐기를 내세운다. 현실 가능하다고 보는지. "IRA와 같은 미국 자국의 보호 정책은 어떤 이름으로도 올라올 거다. '간단히 말해 기업은 미국에서 생산해서 자본을 창출해'가 트럼프의 기본적 노선이다. 즉 성질이나 형태는 바뀔지언정 IRA와 같은 보호무역주의 형태의 정책은 더욱 더 강하게 갈 것으로 본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과거 트럼프가 해왔던 보호무역주의 형태를 계승한 것이 이를 방증하는 요소다." Q. 미래먹거리인 국내 배터리 산업에도 대외 통상환경이 엄혹하다는 지적에 동의하나. "중국이 갖고 있는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은 상당하다. 미국과 같은 수요 시장에서 중국에 대한 빗장을 푸는 순간 국내 기업 가격 경쟁력은 확 떨어진다. 또 과거 CATL-포드와 같이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갈 여지도 충분하다. 문언의 특성상 입안 의도를 법안에 모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모두 종합해보면 국내 배터리 업계에 통상환경은 엄혹하기 그지없다." Q. 서방진영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탈중국 공급망 전략을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보나? "중국은 두 가지를 갖고 있다. 소재와 부품 또 자본을 쥐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레버리지해가며 전략화하는 것이다. 다만 중국만 유일하게 물가가 마이너스로 가고 있는 상태에서 경제 시황이 쉽지 않다. 국내 관점에서 중국은 공급망 측면에서의 파트너도 되지만 수요 시장 측면에서도 포기할 수가 없다. 반도체나 배터리가 화두가 돼서 탈중국을 외치지만 쉽게 얘기할 문제 아니다. 그래서 탈중국과 관한 담론도 산업별로 하나씩 따져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