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기존 항암제 질소원자 치환 성공…신약개발 "새길"
기존 항암제 구조에서 질소 원자를 바꾸는 방법으로 새로운 신약 후보 물질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연구결과는 세계 3대 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네이처에 18일 0시(KST) 게재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홍승우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 직무대행 연구팀이 피리딘 구조 내 질소의 위치 변경(원하는 위치에 새 질소를 넣고 기존 질소는 제거) 방식으로, 주변 치환기의 상대적 위치를 조절하는 '질소 원자 전위' 합성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피리딘(Pyridine)은 탄소(C) 원자 5개와 질소(N) 원자 1개로 구성된 육각형 고리 구조 방향족 화합물이다. 의약품 등 다양한 화학물질의 기본 골격이다. 홍승우 단장 직무대행은 "신약 개발에서는 질소 위치 관계만 조금씩 다른 이성질체를 만들어 기능을 비교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며 "그러나 기존에는 피리딘 고리에 붙은 치환기가 위치를 바꾸기 어려운 고정된 요소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원하는 배치의 이성질체를 얻으려면 각각에 맞는 출발 물질과 합성 경로를 설계해 처음부터 따로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치환기를 하나씩 옮기는 대신 기준점인 질소의 자리를 바꾸는 역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치환기는 그대로 둔 채 질소의 위치를 바꿔, 여러 치환기의 위치 관계를 한꺼번에 변화시키는 새로운 합성법을 찾는데 성공했다. 외부의 질소 공급원으로부터 새로운 질소를 고리에 삽입한 뒤, 기존 질소를 제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6원자 고리가 일시적으로 7원자 고리로 확장됐다가 다시 재배열되며 질소의 위치가 달라진 새로운 피리딘이 형성됐다. 동위원소 추적 실험 결과, 새로 투입된 질소는 고리에 남고, 기존 질소는 질소 기체(N₂)로 배출됨이 입증됐다. ◇연구결과=연구팀은 치환기가 하나인 단순 구조부터 두 개 이상의 복잡한 구조, 화학적 성질이 각기 다른 여러 치환기를 가진 구조까지 질소의 위치를 자유롭게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반응 조건을 최적화했을 때 이성질체 합성 수율은 88%, 반응물의 양을 10밀리몰(mmol)로 크게 증량한 실험에서도 74%의 높은 수율을 유지해 대량 생산 및 실용화 가능성도 입증했다. 특히 실제 시판 중인 항암제(비스모데깁,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와 소염진통제(에토리콕시브)에 이 기술을 적용해 기존 약물의 복잡한 골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질소 위치만 다른 새로운 약물 후보 분자들을 합성해 냈다. 또한 연구진은 같은 출발 물질이라도 사용하는 용매에 따라 형성되는 위치 이성질체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계산화학 분석 결과, 이는 용매에 따라 화학반응에 필요한 최소 에너지인 '에너지 장벽'의 높이가 달라지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용매 조건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특정 위치 이성질체를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결과다. ◇ 의미=피리딘 고리는 상당수 의약품에 포함된 대표적인 구조다. 같은 치환기를 가진 피리딘이라도 치환기가 고리의 어느 위치에 붙어 있느냐에 따라 성질과 생물학적 활성이 달라진다. 이때 치환기의 위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고리 안의 질소 원자다. 예를 들어 전립선암 치료제 아비라테론은 치환기의 위치에 따라 효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대표 사례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일한 치환기를 가지면서 위치만 다른 여러 위치 이성질체를 만들어 비교하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이다. ◇ 어려웠던 점=기존 치환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위치 이성질체를 만드는 범용적인 방법을 구현하기가 어려웠다. 기존 골격을 유지하며, 일부 내용물만 바꿔치기 하는 일이, 원자 단위에서 이루어진다. 연구팀은 이를 특정 치환기를 이동시키는 대신 피리딘 고리 골격 자체를 편집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치환기들은 그대로 둔 채 고리 안 질소 원자의 위치를 바꾸는 '질소 원자 전위' 전략을 썼다. 치환기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치환기의 위치를 판단하는 기준점인 질소를 재배열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핵심이다. 연구팀은 피리딘 고리의 원하는 위치에 새로운 질소 원자를 도입하는 동시에, 기존 질소 원자가 안정한 질소 기체(N2) 형태로 고리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분자를 설계했다. 그 결과 새로 도입된 질소가 고리의 구성원으로 남으면서, 기존 치환기와 나머지 골격은 유지되고 질소의 위치가 달라진 새로운 피리딘이 만들어졌다. ◇ 향후 계획=연구팀은 이번에 확보한 고리 편집 전략을 피리딘 외의 다양한 질소 함유 헤테로방향족 고리(탄소 외 원자를 포한하는 안정한 구조)로 확장할 계획이다. 홍승우 단장(직무대행)은 "신약 개발에 필요한 위치 이성질체 라이브러리를 별도 전합성 없이 신속하게 구축하고, 구조-활성 관계(SAR) 연구를 가속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홍 단장은 또 "이 원리가 다양한 분자에 폭넓게 적용된다면, 의약화학과 유기합성 전반에서 새로운 화학 구조를 탐색하는 분자 설계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창의성이 새로운 연구 혁신의 길을 열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성과”라며, “연구자들이 기존의 틀을 넘어 새로운 개념 창출과 미지의 영역 개척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도록 지속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