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와 KT는 어떤 '가을의 전설' 쓸까
LA다저스와 탬파베이 레이스가 맞붙었던 2020년 월드시리즈를 맘 편하게 본 기억이 있다. 호감을 갖고 있던 두 팀이 맞붙은 덕분이었다. 많은 한국 야구팬들처럼, 나도 LA다저스를 좋아했다. 동시에 대다수 한국 사람들과 달리, 탬파베이 팀도 많이 응원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손 꼽히는 고효율 혁신구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탬파베이 팀의 혁신을 다룬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는가'란 책을 번역했던 인연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올해 한국 시리즈도 그 때와 비슷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LG와 KT 모두 많은 호감을 갖고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 초기 한국 야구 지탱한 LG, 시련기에 큰 역할한 KT 두 팀 모두 한국 프로야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형님격인 LG 그룹의 유별한 야구 사랑은 유명하다. LG의 야구 사랑은 한국 프로야구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고(故) 구본무 회장은 야구를 참 많이 사랑했다.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뒤엔 초대 구단주를 맡았다. 우수 선수 영입을 위한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수시로 경기장을 찾으면서 선수들을 격려했다. 덕분에 LG는 창단 첫해부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구광모 회장의 야구 사랑도 유명하다. LG 트윈스 뿐 아니라 야구 자체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여자 야구 지원이다. LG전자는 2012년부터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여자야구 대회로는 국내 첫 스폰서다. KT는 한국 프로야구 시련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때 한국 프로야구는 기형적인 '9구단 체제'로 운영됐다. 어쩔 수 없이 한 팀은 경기를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 비어 있는 한 축을 기꺼이 채워준 것이 KT 구단이다. KT 덕분에 한국 프로야구는 10구단 체제로 안정적인 리그 운영을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다. KT는 신생구단답지 않게 빠르게 강팀으로 떠오르면서 리그의 재미를 더해줬다. 창단 8년만인 2021년 첫 우승을 이뤄내면서 대다수 선배 구단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줬다. (리그가 흥행하기 위해선 1위 팀은 6할 승률을 넘지 말고, 꼴찌팀은 4할 밑으로 내려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신생팀 창단 때면 이 공식이 무너져 리그의 흥미가 떨어진다. KT는 그 과도기를 최소화했다는 점만으로도 한국 프로야구에 큰 기여를 했다.) 영광의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다. LG 구단의 최근 30년은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창단 첫 해인 1990년 바로 우승하고, 4년 뒤인 1994년 류지현, 김재현, 서용빈 신인 3총사가 신바람 야구를 펼치면서 우승한 이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려 29년 동안 찬바람이 불면 쓸쓸히 돌아서야만 했다. 팬들은 늘 '유광 점퍼'를 외쳤지만, 경기장에 입고 갈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정규 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올해 한국시리즈에 더 많은 기대를 갖게 된다. ■ LG 출신을 CEO로 영입한 KT…한 때 염감독 보좌했던 이강철 KT 감독 물론 이런 이유 만으로 IT 기자인 내가 야구 관련 칼럼을 쓰는 건 아니다. LG와 KT 두 기업과 구단 수장의 흥미로운 관계 때문에 이번 한국시리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잘 아는대로 KT를 이끌고 있는 김영섭 대표는 LG 출신이다. LG CNS에서 경영관리본부, 하이테크사업본부, 솔루션사업본부를 두루 거쳤다. 2014년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LG CNS 대표직을 역임했다. 누구보다 LG 그룹의 사정을 잘 아는 경영자다. 두 팀 감독의 인연도 남다르다. KT 이강철 감독과 LG 염경엽 감독은 야구 명문 광주제일고 동문이다. 이 감독이 2년 선배다. 그 뿐 아니다. 둘은 한 때 넥센에서 '원팀'으로 함께 뛴 인연도 있다. 넥센 팀을 이끌게 된 염경엽 감독의 SOS에 이 감독이 화답했다. 선배인 이 감독이 후배 밑에서 흔쾌히 투수 코치를 맡았다. 프로야구에서 선배가 후배 밑에서 코치를 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엔 대개 '백수' 선배가 후배를 도와주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다. 그런데 당시 이강철 감독은 기아 투수코치로 활약하고 있었다. 기아 '차기 감독'으로도 거론됐던 이 감독은 후배의 요청에 두 말 없이 달려가 힘을 보탰다. 물론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제 아무리 친분관계가 두텁다고 해도, 그라운드 위에선 한 치 양보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두 감독은 '염갈량'과 '강철 매직'으로 불릴 정도로 지략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분위기로는 LG가 많이 유리한 편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선 한국시리즈 직행팀의 프리미엄이 굉장히 큰 편이다. KT가 엔씨와 5차전까지 격전을 치르면서 휴식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게다가 '오랜 공백 끝 우승'은 올해 세계 프로야구를 아우르는 '글로벌 트렌드'다. 미국 프로야구에선 텍사스 팀이 창단 62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에선 명문구단 한신이 38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LG 입장에선 내심 한국에서도 '글로벌 트렌드'가 통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KT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엔씨와 플레이오프에선 탈락 위기까지 내몰렸다가 '리버스 스윕'에 성공했다. 이런 흐름을 꺾지 못할 경우엔 LG도 많이 힘들 수 있다. ■ IT 기업의 야구 석권-형님 리더십 재현 모두 관심 한국 프로야구에선 최근 몇 년 동안 IT 기업과 '형님 구단주'가 화제가 됐다. 2020년 IT 강자 엔씨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할 때 '택진 형님'의 겸손한 리더십이 많은 화제가 됐다. 이듬해엔 막내구단 KT가 역시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2년 연속 IT 기업이 야구계를 석권했다. 지난 해 SSG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할 땐 '용진 형님'의 톡톡 튀는 행보가 많은 재미를 줬다. LG와 KT가 맞붙을 올해 한국시리즈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LG가 29년만의 우승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트렌드'를 그대로 이어갈까? 그래서 '광모 형님'의 조용하지만 내실 있는 지원이 화제가 될까? 아니면 막내구단 KT가 2년만에 또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김영섭 새 구단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까? 흥미진진한 두 팀의 대결은 7일 오후 6시30분 잠실 구장에서 막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