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직장인 모두 다 쓰는 앱이 될 겁니다"
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편집자주] “대한민국 직장인 모두 다 쓰는 앱이 될 겁니다” 현대 도시인은 명함 없이 살 수 없다. 살 수 없다기보다는, 명함으로 자신을 표현한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사람을 만날 때 명함을 주고받는 행위는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자신을 즉각적으로 알리는 방법이다. 명함은 그러나 그 사람을 충분히 표현해주지 못한다. 인간은 누구나 긴 서사(敍事)를 갖고 있다. 명함은 긴 서사의 현재적 단면일 뿐이다. 단면만으로는 서사의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단면은 반드시 시간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서사가 완성되고 인간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는 명함의 이 두 속성을 제대로 통찰한 사람이다. 명함의 껍데기만 보는 사람이 사업을 했다면 아마 명함을 제작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최 대표가 꿈꾸고 현재 해나가는 일은 그보다 훨씬 깊고 넓다. 명함으로 현대 도시인의 서사를 기록하고, 그 서사를 통해 인간과 인간, 또 인간과 기업을 연결하려고 한다. '명함을 통한 현대 도시인의 비즈니스 플랫폼'이 그것이다. ■한국에는 왜 '링크드인'이 없는 것일까 링크드인(LinkedIn)은 2002년에 리드 호프먼 주도로 만든 세계 최대 비즈니스 전문 소셜 미디어다. 페이스북 등의 일반적인 소셜 네트워크와 달리 특정 업계 사람들이 구인 구직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다. 2021년 기준 약 7억 명의 회원을 보유 중이며, 미국에서는 경제활동 인구의 거의 100%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일을 하는 미국인이라면 링크드인부터 가입한다고 볼 수 있다. KAIST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일하던 최 대표는 2013년 미국 출장길에 현지인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링크드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한국판 링크드인을 만들면 어떨 것인가. 최 대표는 그러나 의심스러웠다. 이미 미국에서 10여년에 걸쳐 성공한 서비스가 있는데 왜 한국에서는 아직 그런 서비스가 없는 걸까. 최 대표가 내린 결론은 문화 차이였다. 미국인과 달리 우리 국민은 이력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공개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한다. 이 차이를 메울 특별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명함 관리 앱으로 우회해 나아가자 독자들께서 짐작하듯 그 우회로는 명함이었다. 명함은 위에서 쓴 두 가지 속성 외에 다른 한 가지 속성이 더 있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반드시 지니고 다녀야 하기도 하지만 받은 명함을 꼼꼼히 정리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는 것이다. 명함 관리 중요성이 자기계발서의 한 부분이 될 만큼 그 일은 번거롭다. 그 번거로움이 사업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2014년 1월 명함 관리 앱 '리멤버'는 그렇게 탄생했다. 링크드인이 자발적으로 기록한 이력서를 기반으로 세계 최대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성장했다면, 리멤버는 한국적 정서를 감안해 명함을 기반으로 한국형 링크드인이 되면 된다. 돌아가겠지만 가야 할 목표는 같다. ■찍기만 하면 사람이 입력해주자 그 번거로움은 그런데 생각보다 더 지독한 것이었다. 리멤버에 앞서 다른 명함 관리 앱이 여럿 있었지만, 광학문자인식(OCR)으로 정보를 처리하다보니 오인식된 글자가 많았고 유저가 일일이 수정해야 하는 불편이 계속되었다. 또 촬영하는 것도 귀찮아 수백 장의 명함을 쌓아놓고 있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다른 명함 관리 앱처럼 하면 길은 열리지 않는다. 최 대표는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방법이 촌스러운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감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휴대폰으로 찍기만 하면 사람이 정확하게 다시 입력해주는 서비스다. 현실의 비서가 명함을 대신 관리해주듯 리멤버가 타이피스트를 고용해 명함을 관리해주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수백 장씩 쌓아놓은 명함을 수거해 대량으로 스캔해주는 서비스까지 내놨다. “번거로운 건 번거로운 겁니다. 번거로운 걸 고객한테 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가능한 한 모든 걸 우리가 대신하려 했던 거죠. 명함 보내는 걸 번거로워하는 분을 위해 심지어는 방문 수거까지 했죠.” ■돌아가는 만큼 마음은 조급해지고... 비즈니스를 하며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객의 요구와 시장의 트렌트가 언제까지든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IT 업종에서는 더 그렇다. 속도 경영은 지상과제이고 선점하는 자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 이 사실은 경영자를 늘 조급하게 만든다. 최 대표도 이와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었다. “창업할 때부터 출발은 명함 관리 앱이었지만, 목표는 링크드인 같은 비즈니스 플랫폼이었는데, 가는 길이 너무 멀어보였습니다. 그래서 점차 조급해졌죠. 2017년, 4년에 걸쳐 모은 회원 수가 100만 명을 넘겼을 때, 이미 구상해놓았던 서비스를 붙이기 시작했죠. 하지만 회원 규모가 작다보니 통하지 않았습니다.” 급하더라도 무르익지 않은 열매를 딸 수는 없는 법이다. 최 대표는 2017년 경험을 시행착오로 여긴다. 반드시 해야 할 서비스지만 토대가 허약한 상황에서 될 일이 아니었다. 회원을 더 모아야 하는 것이 진짜 답이었다. ■400만 회원 보유한 직장인 필수 앱으로 최 대표와 리멤버의 모토는 '고객 WOW'다. 고객이 와우! 하며 탄성을 지를 때까지 놀라운 서비스 경험을 계속 제공하자는 것이다. 2017년의 시행착오는 다시 이 모토를 되새기게 하였고, 더 기본에 충실하도록 만들었다. 고객은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리멤버를 사용하는 국내 직장인은 이제 400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 목표는 국내 경제활동인구인 2500만 명입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이 모두 다 사용하는 비즈니스 포털이 우리 꿈이죠. 2017년과 달리 회원 수가 충분히 많아지고 여기에 서비스가 붙으며 시너지 효과가 커지고 있습니다. 회원 늘어나는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죠. 7~8년 길게 돌아간 효과가 이제 나오고 있어요.” ■채용의 트렌드를 크게 바꾸어 놓다 앱 리멤버는 명함 관리 서비스를 기반으로 채용, 커뮤니티, 데일리 경제 뉴스(전문가 브리핑) 등을 제공한다. 그 중 핵심은 채용이다. 채용 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일자리를 공개하면 구직자가 그걸 보고 지원하는 구조인 잡포털과 기업이 필요한 사람을 골라 개인적으로 뽑는 헤드헌팅이 그것이다. 최 대표에 따르면 후자가 전자보다 3~4배 크다. 리멤버는 후자 쪽을 겨냥한다. 리멤버는 그런 점에서 헤드헌팅 포털이다. 리멤버는 400만 명이 모인 인재 풀(pool)이고, 인재가 필요한 기업이나 헤드 헌터는 여기서 인재를 찾을 수 있다. “리멤버 채용의 핵심은 '경력직 스카웃'입니다. 기업 인사 담당이나 헤드 헌터는 리멤버에서 필요한 인재를 발굴하고 채용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리멤버 회원 정보는 오직 기업 인사 담당이나 헤드 헌터만 볼 수 있어요. 물론 회원이 소속된 회사의 인사 담당은 그 회원의 정보를 볼 수 없죠. 이 점이 리멤버가 링크드인과 다른 포인트입니다.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공개는 최소화하되 효과는 극대화한 것이지요.” '경력직 스카웃'이 주목되는 건 최근 채용 트렌드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신입 사원을 뽑아 육성하는 것보다 즉시 가동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하는 게 요즘 기업의 채용 트렌드다. 이 트렌드는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 확대를 위한 1600억원 규모 투자 유치 최 대표 사업 구상(명함 관리 앱으로 출발해 링크드인 같은 비즈니스 포털이 되는 것)이 제대로 인정받는 데는 족히 10년이 걸렸다. “명함을 모으고 수기로 입력할 때 링크드인을 이야기하면 투자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링크드인은커녕 그 이전 단계인 명함 관리 앱으로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본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리멤버는 지난 2021년 말 1600억 원을 투자받았다. 누적 투자 유치금액이 2000억 원에 달한다. 그 사용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제조업이 아닌 일반적인 모바일 앱 회사 치고는 투자 유치 금액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스케일 업을 해야 할 단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인수합병(M&A)이고요. 작년부터 4개 기업을 인수했습니다. 작년 4월에 전문가 네트워크 서비스 기업인 '이안손앤컴퍼니'를 인수했고, 7월엔 신입과 인턴 채용 전문 플랫폼인 '슈퍼루키'와 '자소설닷컴'을 인수했죠. 또 올 2월에는 임원급 전문 헤드헌팅 회사인 '브리스캔영'을 인수했습니다. 모두 리멤버와 시너지를 낼 회사죠.” 리멤버가 경력직원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인 만큼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인재 풀을 대학생과 취업준비생까지 확대하고, 고급 인력에 대해서는 헤드헌팅 사업까지 직접 하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또 각계 인재 풀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각 분야 전문가를 통한 리뷰 비즈니스(컨설팅 연계)도 본격화하겠다는 전략인 거다. 명함을 기반으로 현대 도시인의 커리어(노동 서사)를 관리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사람과 기업 사이의 오작교가 되는 것, 그것이 최 대표의 꿈이다. 덧붙이는 말씀: 드라마앤컴퍼니 최재호 대표가 다음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한 사람은 AI 기업 업스테이지의 공동창업자인 이활석 CTO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