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대표의 연임 포기가 안타까운 이유
구현모 KT 대표가 지난 23일 연임을 포기함에 따라 이제 관심사는 누가 새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이냐의 문제로 옮겨간 듯하다. 또 향후 KT의 경영 슬로건이 어떻게 바뀔 지도 관심거리인 듯하다. 결국 공허한 소리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일부에서는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관치의 폐해를 당분간 더 지적하기도 할 것이다. 이러저러한 소란 속에서 구현모 KT 대표는 점점 잊힐 것이다. 그는 그런데 왜 연임을 포기한 걸까. 언론 보도를 보면 그 이유는 간명한 듯하다. 다음 기사들의 제목을 보라. KT 구현모 연임 포기, '외압' 논란 또 불거져(동아일보). 여권 전방위 압박에 결국…구현모 KT 대표 연임 포기(경향신문). 정권 압박에 흔들렸나… 구현모 KT 대표 '연임 도전' 포기(세계일보). 이런 식의 제목을 단 기사는 아주 많다. 한 마디로 키워드는 외압이고 그 주체는 정권이다. 다음 제목들도 보라. '외풍'에 무릎 꿇은 구현모…'디지코 KT' 안갯속으로(매일경제). '국민연금 입김에 떠나는 구현모 대표…KT, 52주 신저가 경신(조선비즈)'. 부활한 'CEO 잔혹사'에 KT 시총 2조 증발…外人 외면(뉴스1). 언론은 물론 시장도 그렇게 봤다는 뜻이다. 다음 기사들은 어떤가. [단독]KT 새 대표 윤진식 유력(서울신문). KT 차기대표에 윤진식-김기열 등 '尹캠프' 출신 부상(동아일보). 언론들은 정권이 유력자를 KT 대표 자리에 앉히기 위해 구 대표에게 연임 의사를 포기하도록 외압을 행사했다고 해석하는 셈이다. 그 해석에 주식시장도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은 해석일 뿐이고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뒤에 보겠지만 구 대표조차 외압으로 해석된 몇몇 언어들을 진짜 외압으로 느낀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당장은 증명할 수 없는 외압'이라고나 할까. 조선일보는 용기 있게도 이미 두 달 전에 이것을 외압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31일 사설 '국민연금이 지금 정치에 정신 팔고 있나'를 통해 “새 정부도 국민연금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본 거다. 국민연금은 단지 CEO 선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했을 뿐인데 조선일보는 이를 왜 “정치”라고 본 걸까. 구 대표의 연임 포기와 '尹캠프' 출신 부상의 수순을 예상했던 걸까. 주목되는 건 구 대표 행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12월8일 처음으로 '투명성과 공정성'이라는 사인(결과적으로 외압)을 넣은 뒤 한두 차례 이를 더 반복하고 조선일보가 이에 대해 '정치(적 외압)'라고 친절하게 통역까지 해줬지만 구 대표는 이를 순전히 외압으로만 여긴 것 같지는 않다. 차기 CEO 선임 절차를 두 차례나 번복하면서까지 연임 의사를 거듭 재확인했다는 점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구 대표는 그만큼 순수(혹은 순진)했다고 볼 수 있다. 본인에게 CEO로서의 능력이 있고 그것이 이미 입증됐으며 임직원과 투자자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믿은 듯하다.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강화된다고 해서 이 사실은 바뀌지 않고 오히려 그의 연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조선일보를 비롯해 다들 '퇴진 외압'으로 해석하는 발언을 '절차 변경'으로만 보게 한 거다. 구 대표도 물론 이를 외압으로 봤을 수도 있다. 외압이지만 그래도 뚫고 나가자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건 곧 '투쟁의 길'인데 구 대표에겐 투쟁을 해야 할 가치(대의 혹은 지분이 걸린 경영권)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가치를 'KT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그것에 목숨을 걸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것이다. 구 대표는 그나저나 왜 느닷없이 포기 입장을 밝혔을까. '투명성'과 '공정성'이란 어휘에 대해 조선일보와 다른 방식의 통역을 통해 이 흔한 한국말에 그가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새로운 뜻이란 어쩌면 '힘이 곧 진리이자 정의'라거나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물 흐르듯 살자'일 수도 있겠다. 구현모 대표가 KT CEO로서 최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누가 됐든 차기 CEO가 구현모 대표보다 더 유능하다는 보장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안타까운 것은 구현모 대표가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CEO 선발 경쟁에서 물러나야 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구현모 대표가 아니라 누가 당해도 보기에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일이 '투명성'과 '공정성'이란 명분 속에서 벌어졌다면 더욱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