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전직 장관이 네이버와 피를 섞은 사연
1973년 9월4일 오전 6시 30분쯤 한 여자 아기가 서울 마포구 망원동 거리에서 버려진 채 길 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돼 마포 경찰서에 맡겨졌다. 이 아기는 홀트아동복지회로 옮겨졌고, 이듬해 3월1일 9시5분에 프랑스 르부르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아기의 이름은 김종숙이었다. 이 아기를 입양한 프랑스의 펠르랭 부부는 아기에게 플뢰르(프랑스어로 '꽃'이라는 뜻)라는 예쁜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플뢰르는 2012년에 프랑스의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특임장관이 됐다. 당시 38세였다. 2002년 사회당 연설문 작성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당선되자 10년 만에 입각한 것이다. 그가 지난해 말 자신의 스토리를 엮어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이 눈길을 끈 까닭은 책 뒷표지에 적힌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추천 글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사회가 이미 만들어놓은 여러 경계들 속에서 살아간다. (중략) 소수의 사람들은 이런 경계를 훌쩍 넘어서 살아간다. 그 경계를 넘는 일에 큰 아픔이 있을지라도 늘 유머와 환한 웃음으로 해내는 사람이 플뢰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만든 경계라는 게 사실 아무것도 아님을, 넘어설 수 있음을 깨닫는 데 큰 힘이 되는 책이다.” 이 멋진 추천 글보다 더 흥미를 끈 것은 두 사람의 관계였다. 네이버가 유럽 진출을 위해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를 전초기지로 삼았던 이유가 평소 궁금했었다. 단언할 수 없지만 플뢰르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플뢰르가 이해진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11월이었다. 올란드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수행했을 때다. 당시 플뢰르는 문화부 장관이었다. 플뢰르는 국빈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10월에도 방한했었다. 이때 네이버 주요 경영진을 먼저 만나게 됐다. 플뢰르가 이때 네이버를 만난 것은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포털 네이버에 프랑스 콘텐츠를 배치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외교부와 대사관의 요청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이때 김상헌 당시 대표와 한성숙 당시 서비스 총괄이사 그리고 한석주 네이버 프랑스 대표 등과 만났다. 김상헌은 이 만남 이후 이해진에게 플뢰르를 만나야 한다고 설득하였고 11월에 둘의 만남이 성사됐다. 경위와 어떻든 플뢰르에겐 이들과의 만남이 자신을 버린 한국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특히 네이버 경영진의 스마트함과 프랑스에는 존재하지 않은 빅테크 기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미래를 이해하고 예측한 뒤 그것을 사업 방정식에 녹여내는 방식 뿐 아니라 그의 강력한 리더십은 무척 놀라웠다.” 이해진에 대한 플뢰르의 평이다. 이 느낌이 특별한 건 다음 문장 때문이다. “그처럼 조용하고 나서기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장점이다.” 플뢰르가 특히 이해진을 남달리 생각한 것은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현재의 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의 세금 회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특임장관이었던 플뢰르도 당시 이 문제로 머리가 아팠던 당사자인 거다. 플뢰르에게 이해진과 네이버는 달라보였다. 이익이 나는 곳에서 세금을 내고 포털 기사에 대해 언론사에 저작권료를 지불했다. 유럽에서는 그런 곳이 없었다. 플뢰르가 네이버에 관심을 두게 된 직접적인 계기다. 플뢰르는 특히 정치적 이유로 미국 서비스를 차단한 중국과 러시아를 빼면 자국 검색엔진으로 구글에 맞선 유례가 없는 나라가 한국이고 그 주인공이 네이버라는 사실에 깊게 매료되었다. 플뢰르가 정계를 은퇴한 뒤(민간기업과의 이해충돌 이슈가 사라진 뒤)에 이들은 다시 홀가분하게 만날 수 있게 됐다. 네이버 쪽에서 비즈니스와 관련해 플뢰르를 만나기를 원했다. 사업 아이템은 프랑스 벤처기업 투자 펀드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코렐리아 캐피털(Korelyacapital)이고 플뢰르가 대표를 맡았다. 플뢰르는 새로운 방식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가교가 됐다. 코렐리아 작명 사연이 재밌다. 코렐리아(Corellia)는 원래 '스타워즈4:새로운 희망'에 나오는 행성이다. 이곳에서 제국에 저항하기 위해 제다이들이 반란 조직을 만든다. 플뢰르 이해진 김상헌 한석주 등 4명이 펀드 설립을 논할 때 사명(使命)으로 여긴 것이 미국 '빅테크'의 지배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코렐리아는 그런 사명을 담은 거고, 코리아와 발음도 비슷해 첫 글자를 'K'로 바꾼 코렐리아가 탄생했다. 책을 읽다 코렐리아란 이름을 지으며 했을 그들의 대화가 생생히 떠올랐다. 구글 검색에 맞서 한국 검색을 지키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들은 스스로를 레지스탕스로 여겼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이제 다시 그들은 또 한 번의 큰 전쟁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는 초거대 AI라는 싸움터다. MS에서 투자받은 챗GPT가 선방을 날린 상황이다. 플뢰르가 믿었던 네이버는 이번에도 훌륭한 레지스탕스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