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첫 단추부터 잘 못 꿴 전경련 쇄신
2016년 대한민국을 떠들석하게 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은 7년이 지났지만 그로인한 우리 사회의 상처와 불신은 쉽사리 씻겨지지 않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폐해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헌정 초유의 대통령 탄핵뿐만 아니라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의 총수가 옥고를 치르는 등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국내 제일의 경제단체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정농단 사건과 얽히고설키며 존폐기로로 내몰렸다. 4대그룹(삼성·LG·SK·현대차)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줄줄이 탈퇴 선언을 하며 '손절'을 택했기 때문이다. 양팔과 두 다리를 잃은 전경련은 재계를 호령하던 큰형님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 이제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제계 맏형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보니 전경련이 옛 위상을 다시 회복하기에는 명분도, 대내외적 여건도 만만치 않다. 정권이 바뀌어도 전경련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경련을 이끄는 수장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고, 결국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이 수년째 자리를 지키다 얼마 전 결국 백기를 들었다. 회장직을 내려놓겠다고 이번엔 아예 못을 박았다. 재계에서 잔뼈가 굵은 회장님들도 눈치를 보면서 흔쾌히 회장직을 수락하기를 꺼리고 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임기는 이달 23일까지다. 통상적으로 총회가 열리기 한달 전쯤인 1월에 이미 차기 회장이 하마평에 오르고 내정자가 정해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다보니 결국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 '회장직무대행'이다. 전경련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을 맡은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정치인'이다.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6개월간 전경련 회장 직무를 대행하기로 했다. 김병준 회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보 등을 역임했다. 2018∼2019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캠프에 몸담았으며 윤 대통령 당선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지냈다. 정치 풍랑 속에 멸문지화의 고초를 겪었는데 정치인을 앞세워 다시 새 길을 모색하겠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재계에서 나서는 인물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것이 심정적으로 이해는 가나 이성적으로 물음표가 붙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물론 김병준 회장은 학자 출신이자 여야 진영을 오간 정치인이기에 특정 진영의 정치색이 짙지 않긴 하다. 하지만 엄연히 현 정부의 선거캠프에서 활동을 한 사람이며, 그가 도운 인물이 대통령이 됐다. 그가 대통령과 연이 닿아있다는 것이 이번 결정에 정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정경유착의 불신을 씻어내야 하는 전경련이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에 갇힌듯해 안타깝다. 이쯤 되니 전경련의 존재 이유조차 희미해진다. 이렇게까지해서 명맥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4대그룹도 명분이 있어야 전경련에 복귀할 수 있다. 그 쇄신을 이제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어째 첫 단추부터 어긋난 느낌이다. 전경련이 국민들에게 그리고 재계에서 존재 이유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재계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역할만으론 부족하다. 그 역할은 이미 대한상의와 경총이 하고 있다.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기후 변화, 탄소 감축, ESG 경영 등 새로운 국제 정세와 기업 환경에 맞게 그 역할과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소의 기능을 잘 살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국민의 신뢰를 얻는 돌파구일 수 있다. 국민들을 설득하기에 6개월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 존립의 이유를 찾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