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글쓰기보다 중요한 '자제의 기술'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글쓰기를 할 때는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느 지점까지 쓰고 멈출 것인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후배와 유튜브 영상을 찍으며 던진 말이다. '기자들의 AI 활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글쓰기에 AI를 활용할 때는 '자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던 차에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의 공동 창업자 짐 밴더하이가 쓴 'AI로 글쓰기(Jim VandeHei: Writing with AI)'라는 칼럼이었다. (☞ 칼럼 바로가기) '맹탕뇌'가 될 것이냐 '초강력 뇌'가 될 것이냐 악시오스는 '똑똑한 간결함(Smart Brevity)'을 모토로 모바일 시대 글쓰기의 새로운 전범을 만들어낸 매체다. 이 매체의 기사는 정갈하다. 모든 기사가 '왜 중요한가(Why it matters)' 같은 핵심 질문들로 쪼개져 있다. 읽기 쉽고 기억하기 좋다. 군더더기는 빼고 핵심만 정확하게 짚어주는, 해당 분야를 깔끔하게 정리한 모범생의 필기 노트 같다. 밴더하이는 악시오스의 '글쓰기 혁신'을 이끈 인물이다. 그런 만큼 'AI 활용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밴더하이의 글은 생각할 거리가 꽤 많았다. 특히 글 서두에 던진 두 가지 경고에 흔쾌히 공감했다. 그는 “AI에게 무작정 글쓰기를 아웃소싱하지 마라”고 경고한다. 글쓰기의 모든 과정을 AI에게 맡기기 시작하면 뇌가 흐물흐물해지는 '맹탕뇌(blah brain)'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주도적이고 끈기 있게 활용할 때만 나의 사고와 표현을 확장하는 '초강력 뇌(bionic brain)'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경고도 새겨들을 만하다. AI는 정보를 전달하는 글쓰기에 탁월한 능력이 있지만, 그 유용성을 '영혼이 담긴 글쓰기(soul writing)'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삶을 이해하고 숨 쉬기 위해서는 인간의 숨결이 배어 있는 '영혼의 글쓰기'를 고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경고를 읽으며 소설가 김애란 씨가 한 방송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고 노회찬 의원의 별세 소식을 전하던 손석희 앵커의 '멈칫거림'에서 인간적인 숨결을 느꼈다고 말했다. AI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숨결'이 담긴 글쓰기 만이 진정한 생명력을 지닌다는 통찰이다. 밴더하이가 제시한 AI 글쓰기 실전 지침도 유용하다. 그는 우선 '나만의 규칙'을 설정하라고 권한다. AI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표준'을 주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AI에게 자신들의 원칙인 '똑똑한 간결함'을 유지하도록 늘 명령한다. 그래야 AI가 쓴 글이 아니라 '나의 글'이 되기 때문이다. 정확한 명령과 풍부한 사례 학습도 필수다. 문장 길이, 사실 강조, 핵심을 짚는 '왜 중요한가' 구성, 중요도 순으로 배치하는 '불릿 포인트' 등 구체적인 편집 규칙을 AI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여기에 자신이 쓴 가장 자랑스러운 결과물(일기, 메모, 저서 등)을 대량 입력해 AI가 나의 '글쓰기 어조와 문체'를 익히도록 해야 한다. AI의 성능이 무서운 속도로 향상되면서 글쓰기 영역을 빠르게 침범하고 있다. 젠슨 황 전기 '생각하는 기계'를 쓴 베테랑 언론인 스티브 위트조차 “챗GPT가 공개된 순간부터 내 경력이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물론 그는 “작가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은 개인적 비극이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은 과거 마부들이 자동차를 싫어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고백도 덧붙였다. 주체성 잃은 AI 활용은 지적 퇴화로 이어진다 밴더하이의 글을 읽으며 'AI 시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다듬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AI 시대에도 인간이 최종 편집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AI가 쓴 글은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결코 '최종 완성본'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AI는 나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밀어붙이는 '냉철한 편집장'으로 곁에 둘 때 최고의 시너지를 낸다. 더 중요한 점은 주체성을 잃은 AI 활용은 지적인 퇴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당장의 편리함 때문에 사고 과정까지 AI에게 통째로 넘겨버리면 인간의 사고 능력은 퇴화한다. 자신의 뚜렷한 주관과 문체, 비판적 사고력을 정립해야 AI를 '글쓰기 도우미'로 온전히 지배할 수 있다. 특히 '정보의 효율성'과 '영혼의 글쓰기'를 분리하라는 밴더하이의 충고는 오늘날 기자들이 가장 깊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기사는 상당 부분 실용적인 문장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단순 정보 전달 영역에서는 AI의 효율성을 따라가기 힘들다. 이런 시대일수록 '인간적인 관찰'과 '인간적인 감성'을 담은 글쓰기가 생명력을 가진다. 그만큼 더 발로 뛰면서, 맥락과 의미를 캐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김애란 작가가 '손석희의 멈칫거림'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밴더하이가 말한 '영혼의 글쓰기'란, 기자들에게는 '발로 뛰는 취재'를 통해 길어낸 '생동감 있고 맥락이 살아있는 정보'라는 말로 바꿔 읽을 수 있다. 글쓰기 영역에서 AI는 외면할 수 없는 파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 활용하고,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할 것인가"를 아는 일이다. 밴더하이가 제시한 원칙은 그 멈춤의 지점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