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시대의 노동은 수행이라기보다 지시다
역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사회구성체는 여러 단계로 변화 발전해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사회는 언제나 소수의 지시자와 다수의 수행자로 나뉘는 듯하다. 어느 사회든 인구 구성이 결국에는 피라미드 꼴을 닮아 있다. 이 구조를 혁파하기 위한 다양한 사상과 제도가 출몰하였지만 피라미드는 그 모양의 안정성 덕분인지 파괴되지 않고 있다. 피라미드는 그러나 거대한 하나의 형태인 것만은 아니다. 가정과 같은 아주 작은 피라미드부터 기업과 정부 조직에 이르는 큰 피라미드까지 무수한 피라미드가 끝없이 연결돼 있다고 보는 게 옳다. 나는 그것을 '피라미드 프랙탈 구조'라고 부르고 싶다. '피라미드 프랙탈 구조'는 사실 모든 사회 문제의 근원이다. 인간 사회의 대다수인 지시의 수행자들은 그 구조에서 탈출하기를 염원하지만 그건 그저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언제나 요원한 일로 치부된다. '피라미드 프랙탈 구조'를 깨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사실 가엾을 정도다. 때론 물거품처럼 보이고 바위에 던져지는 계란 같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존경할만한 분은 많지만 그들의 생전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후세를 사는 사람들이 그 희생정신을 기린다고는 하지만 당대의 고통을 어찌 필설로 말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숭고하지만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해서 '피라미드 프랙탈 구조'에서 탈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교묘하게 이 구조를 찬양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기업이다. 기업 사이의 경쟁은 자유주의 체제일지 모르나 기업 그 자체는 극단적 전체주의다. 정부기관도 사실 전체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외피를 두른 시장자본주의는 그 본질적 측면에서 '전체주의 프랙탈 구조'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실제론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까닭은 아무래도 그게 더 운영에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관건은 생산성이다. 소수의 지시자가 판단하고 결정한 뒤 다수 수행자가 거기에 일사분란하게 따르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는 셈이다. 수행자가 되는 순간 이 원칙에 암묵적 합의를 한 것이고 그러므로 이 구조는 계속 재생산될 수 있다. 나는 챗GPT 같은 생성 AI가 이런 지시와 수행에 따른 '피라미드 프랙탈 구조'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가하거나 아니면 약간이라도 완화시키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많은 수행자를 지시자로 만들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확보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를 진전시키는 것은 사상이기도 하지만 기술이기도 하다. 생성 AI는 기술 중에서도 '피라미드 프랙탈 구조'와 깊은 관계에 있다. 챗GPT 같은 생성 AI가 '피라미드 프랙탈 구조'를 균열시키거나 약화시키면서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생산성을 더 높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시자란 어떠해야한가'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지시는 본질적으로 역할이어야 마땅하나 실제로는 권력으로 혼동된다. 역할 그 중에서도 책임지는 역할이 지시자의 본질이어야 하지만 책임은 안 지는 권력도 많은 거다. 지시가 판단과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역할일 경우 지시는 인격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시가 책임지지 않는 권력으로 작동할 경우 수행자 인격은 수단화된다. 많은 사람이 '피라미드 프랙탈 구조'에 진저리를 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지식 노동자가 지시자가 되고 챗GPT 같은 생성AI가 수행자가 된다면 비인격 문제는 완화될 수 있다. 지식 노동자는 이제 수행자에서 지시자로 변해야 한다. 지시자의 역할이 책임자여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판단과 결정이야 말로 지시자와 수행자를 가르는 기준이다. 챗GPT 시대는 모든 지식 노동자에게 수행의 역할보다 판단과 결정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무엇인가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함으로써 챗GPT에게 지시하고 그래서 나온 결과물에 온전히 책임지는 것. 그것이 챗GPT시대의 노동이다. 관건은 판단과 결정이다.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챗GPT 시대 지식 노동자의 기본 소양이 될 것이고 그 역량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유의미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 노동자가 판단과 결정의 주체가 되는 사회야 말로 '피라미드 프랙탈 구조'를 균열시키고 더 자유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사회를 나는 '크고 작은 네모들의 모자이크 구조'라는 이름으로 부르련다. '크고 작은 네모들의 모자이크 구조'는, 다소 유토피아적 가설이지만, 판단과 결정의 주체들이 저마다 크고 작은 독립적인 네모가 되어 다른 네모들과 연결되는 사회다. 모두가 자기 책임의 크리에이터가 되는 사회. 네이버 블로그와 유튜브가 약간 맛을 보여줬다면 생성 AI를 부리는 판단과 결정의 주체들은 블로그 및 유튜브와는 차원이 다른 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그 시대를 모두가 준비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