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없는 지네, 빛이 아니라 '열'로 본다
지네는 눈이 없다. 빛을 감지하는 유전자도 없다. 하지만 돌을 들춰 빛이 비취면 지네는 숨을 곳을 찾아 움직인다. 중국 연구진이 눈이 없는 지네가 빛을 감지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더듬이가 적외선을 감지하면 더듬이 일부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이 열을 느껴 빛이 비춤을 알게 되는 간접적 방식을 쓴다는 것이다. 빛을 열로 전환해 빛을 감지하는 메커니즘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최근 실렸다. 대부분 생물은 비슷한 방식으로 빛을 감지한다. 빛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빛을 흡수하면 이온 채널을 열어 이온이 세포막 안팎을 들고 나게 해 신호를 전달한다. 동물은 빛을 감지하는 정교한 기관을 갖고 있고, 단세포 생물도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을 가진 경우가 많다. 반면 지네는 이런 식으로 빛을 감지하지 않는다. 지네는 눈이 없는 경우가 많고, 눈처럼 보이는 기관을 가진 경우에도 빛에 대해 반응하는 역할을 거의 하지 않는다. 빛 감지 단백질을 발현하는 유전자도 없다. 중국 동북임업대학 연구진은 지네에게 빛을 쬐여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 장치를 만들었다. 그 결과, 지네의 더듬이가 적외선에 반응해 몸의 다른 부위보다 빠르게 온도가 올라감을 확인했다. 더듬이 온도는 10초 안에 8℃ 이상 올라갔다. 포일을 씌워 더듬이를 가리자 빛을 피해 어두운 곳으로 가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연구진은 더듬이에 있는 유전자를 조사, 열 수용체인 'BRTNaC1'을 발견했다. 이 수용체는 33-48℃ 사이의 열을 감지한다. 빛이 지네의 더듬이에 닿아 광열 효과를 일으키고, BRTNaC1이 올라간 온도를 감지한다. 또 체액이 pH 6.1 정도의 약한 산성을 띌 때 열 감지 감도가 높아지며, 테스토스테론 성분은 이 수용체의 활성화를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네는 통상적인 시각 기능을 갖고 있지 않지만, 빛을 직접 받아들이지 않고도 빛을 열로 바꾸는 간접적 방식으로 빛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생물이 빛을 감지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