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스마트폰 부품 국산화 속도..."韓기업 기술 초격차 필요"
"미국의 제재는 압력이자 동기 부여이며 애플은 화웨이의 교사(선생)다."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에 따르면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지난 20일 국제 대학생 프로그래밍 대회(ICPC)에 참가한 대학생과 교수 등 코치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애플 팬이냐'는 질문에 "배우고 비교할 기회를 준 교사가 있어 매우 기쁘다"면서 "그런 관점에서 나는 애플 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화웨이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애플도 긴장하게 만드는 업체다. 아이폰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의 절대강자이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14억 인구의 중국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애국 소비'를 앞세워 스마트폰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미국의 제재로 판매가 뒷걸음질 치며 주춤했지만 최근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화웨이가 선보인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에 '기린9000S' 칩이 탑재되면서다. 기린은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전문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칩이다. 중국 주요 파운드리인 SMIC가 7나노미터(nm)급으로 분류되는 'N+2' 공정을 활용해 만들었다. 미국의 규제로 극자외선(EUV) 등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를 도입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화웨이가 7나노 공정 기반의 칩을 자체 설계·생산하는 데 성공한 셈인데, 미국 정부도 당혹스러워한 기술 굴기였다.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화웨이는 중국 전역에서 비밀리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건설하는 등 미국의 수출 통제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으로 전해진다. ■ 화웨이 기폭제 됐나…中 기술업계 자체 개발 움직임 활발 화웨이의 기술 자립 성공은 다른 중국 기업들에 기폭제가 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가 자국산으로 미국산 반도체 핵심부품을 대체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화웨이 외에 다른 스마트폰 브랜드들도 자체 AP 개발에 다시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IT 팁스터 디지털채팅스테이션에 따르면 화웨이서 분사한 아너는 상하이에 칩 설계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만들었는데, 개발 자본금을 1억위안에서 9억4천위안으로 9배 이상 늘렸다. 또 중국 매체 IC스마트에 따르면 지난 5월 반도체 칩 설계 자회사 '제쿠'를 폐쇄하며 자체 칩 설계 사업을 접은 오포는 최근 사업 재개를 위해 제쿠 직원들을 다시 모집하고 있다. 비보 역시 기존에 개발하던 자체 ISP(영상처리)칩 개발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 막대한 정부 지원 등에 업은 中 첨단기술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중국의 끝없는 기술 굴기는 반도체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첨단 기술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제재가 상대적으로 약한 반도체 설계 분야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 일부 중국기업의 첨단반도체 설계 경쟁력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화웨이는 패키징, EUV, EDA 등 분야서 특허를 출원했다. 알리바바와 바이트댄스, 텐센트 등은 RISC-V 기반 AI 칩 설계에 착수했다. 바이렌은 고성능의 GPU 반도체 시제품을 공개했다. 2015년 중국 정부는 '제조 2025'에서 2030년까지 75%의 국산화 달성 목표를 설정한 바 있으나, 이후 미중 무역갈등이 고조되고 대중국 견제가 본격화되면서 반도체 국산화 전략을 재조정했다. 2021년에 발표한 '14차 5개년 규획'에서는 반도체를 국가안보 및 발전의 핵심 영역으로 규정하고, 병목지점으로 꼽히는 EDA, 소재, 첨단 메모리 등과 차세대 전력 반도체에 해당하는 SiC(실리콘카바이드), GaN(질화갈륨) 등 첨단기술 개발을 강조했다. 국제반도체산업협회(SEMI)에 따르면 2012~2022년 중국 반도체 장비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CAGR)로 27%씩 성장했으며, 지난해 중국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35%로 전년대비 14%p 상승했다.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노광장비는 중국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이자 국산화 수준이 가장 낮은 분야이지만, 상하이 마이크로전자(SMEE)를 중심으로 국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주요 제조공정에 해당하는 식각, 박막, 증착은 미국과 일본 기업이 중국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최근 국산화 수요 증가로 Naura(베이팡화창), AMEC(중웨이반도체) 등 현지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또 중국 반도체 팹리스 숫자와 매출액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관련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 반도체 업체인 SMIC, 화홍반도체, YMTC, 유니SOC, Naura, AMEC 등은 반도체 산업기금이나 지방 정부로부터 투자를 받아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스마트폰 부품 국산화도 시간 문제" 반도체뿐만 아니라 중국 스마트폰 부품도 국산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중국 업체의 기술 자립은 국내 부품업체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산 부품으로 모두 대체된다면 국내 부품 업체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이 그렇다. 메이트60 프로에 쓰인 부품 90% 이상을 중국 내에서 수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1만3천여 개를 중국산으로 교체한 것이다. 국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이미 시장에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와 경쟁하고 있는데 역시나 BOE는 화웨이에 디스플레이를 납품했다. BOE를 비롯한 비젼녹스, 창싱, 하이보드 등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메라는 오필림, 리안추앙, 코스타, GYZ 일렉트린, 도티 옵티컬 등을 비롯해, ▲칩의 경우 트리덕터 테크놀로지, 지안텍 세미, 밴칩, 윌 세미컨덕터, 맥시크 테크놀로지, ETEK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마이크로게이트 테크놀로지, 구딕스 테크놀로지 등이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기술 초격차로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재희 홍익대학교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반도체공학회 부회장)는 "중국에서 자체 공급망을 확보해 공급망을 블록화하려 한다면, 국내 기업들도 피해가 있을 수 있다"며 그 안에 낄 수 있도록 요소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 기술이 언젠가는 (한국을)따라올 것이라고 엔지니어들은 보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확실한 기술을 확보해야 중국 기업들도 우리와 협력하고자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