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식물분류학자들 한 자리에...제2회 '죽파상' 수상자는 김승철 교수
2일 수원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식물분류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부터 분류학 학위과정의 젊은 연구자들까지 200여석의 대강당은 열기로 가득했다. 이 날은 한국식물분류학회(회장 현진오)의 제54회 정기학술발표회 개막일이면서 '제2회 죽파식물분류학상(이하 죽파상)' 시상식이 함께 열렸다. 죽파상은 지난 해 작고한 식물분류학계의 거목 고 이우철(1936~2022) 교수의 아호 죽파(竹波)를 딴 학술상이다. 식물분류학계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학술상이라는 점에서, 수상자는 오랜 세월에 걸친 연구업적을 인정받는 동시에 미래를 이끌어갈 학자로서 권위와 영예도 따르게 된다. 올해 수상자 성균관대학교 김승철 교수(55)다. 학회는 김 교수에게 상패와 상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김 교수는 1989년 성균관대 생물학과를 나와 미국 켄트주립대학 석사,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1년부터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캠퍼스 교수로 일했다. 2009년부터 모교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35여 년간 국내·외 전문학술지에 100여 편의 우수한 논문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김교수는 “평생 학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고 이우철 박사의 유지로 제정된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다. 죽파선생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 논문발표와 학문연구에 더욱 매진하고, 교육자로서 후학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한편 죽파이우철 교수는 '원색한국기준식물도감', '식물지리', '한국식물의 고향' 등을 집필해 식물분류학 발전에 큰 획을 그은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식물분류학을 태동시킨 선각자 정태현(1882~1971) 교수의 제자로, 지난 1968년 한국식물분류학회 출범에도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고 이우철교수는 평생 수집한 식물의 원기재문과 문헌 자료를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기증해 생물주권 확보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국립수목원 산림생물 표본관의 3번째 '명예의 전당' 주인공으로 선정된 바 있다. 죽파상은 이우철박사와 가족이 사단법인 한국식물분류학회에 기증한 기금을 바탕으로 지난 해에 제정되었으며, 김영동 한림대학교 교수가 첫 번째 수상자였다. 유튜브로 중계된 1회 시상식에서 김영동교수는, 당시 와병으로 참석하지 못한 이우철 교수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눈시울을 붉혀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번 행사를 끝으로 2년의 임기를 마치는 한국식물분류학회 현진오회장은 “1968에 창립된 식물분류학회는 현재 동물분류나 미생물분류보다 훨씬 많은 55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큰 규모의 학술단체다.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학회지를 발간해 논문을 발표하며, 야외 관찰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임기중에 죽파식물분류학상을 제정할 수 있게 되어 무척 보람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현회장은 “식물분류학은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당장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과 연계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전공자들이 늘어나지 않고 있어 평소 죽파선생께서 안타까워 했다. 식물의 뿌리가 깊어야 때가 되면 꽃을 피우듯, 식물분류학은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자양분을 만들어줄 뿌리과학이자 기초과학이다. 이 상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도로 관심가져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족대표로 행사장을 찾은 고 이우철박사의 장녀 이선기씨(60세)는 “병세가 심각해져 기억이 흐려질 때에도, 정원에 손수 심었던 꽃의 이름을 잊어버릴까봐 걱정하셨다”고 부친을 회고하면서 “식물의 족보를 연구하는 분류학자들은 우리꽃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사람들이다. 무거운 야책을 메고 산을 오르듯, 식물의 계통과 이름을 찾아 한 평생 고단한 학문의 길을 걷는 연구자들에게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열린 정기총회에서 제 28대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장으로 유기억 강원대학교 교수가 선임됐다. 죽파 이우철교수의 제자이기도 한 유기억 교수는 한국식물분류학회 부회장, 편집위원, 학술위원회 위원,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식물분류학회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