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 상온 동작 양자컴퓨터 소재 가능성 열다
상온에서도 대규모 양자 얽힘 현상을 구현할 수 있는 양자 소재 후보 물질이 나왔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첨단양자소재연구실 김재욱 박사 등 국제 연구팀이 터븀인듐산화물(TbInO₃)이 양자컴퓨터 소자 등에 쓰일 수 있는 양자스핀액상(QSL, Quantum Spin Liquid) 물질이 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8월 17일 게재됐다. 양자컴퓨터는 중첩과 얽힘을 이용해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온도 변화나 불순물, 외부 전자기장 등 미세한 자극에도 다양한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에 중첩과 얽힘의 구현이 어렵다. 절대영도(-273.15도)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을 구현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도 필요하다. QSL은 양자 오류를 해결할 후보 소재 중 하나로 꼽힌다. QSL은 새로운 자기 상태의 물질로, 양자 요동에 의한 대규모 양자 얽힘이 가능해 양자 오류를 대폭 줄인 양자컴퓨터 구현을 위한 후보 소재로 여겨진다. 2010년대부터 학계에선 이론상으로 QSL은 양자 얽힘으로 발생하는 스피논(spinon)이라는 준입자(quasi-particle)가 빛과 상호작용하며, 스피논에 의해 광학전도도가 빛의 주파수 제곱에 비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어떤 물질에서 광학전도도가 빛의 주파수 제곱에 비례하는 특성을 발견한다면, 이는 곧 그 물질이 QSL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제까지 많은 QSL 후보 물질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지만, 불순물이나 무질서한 물질 구성 등으로 인해 광학전도도-주파수 제곱 비례 현상을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공동 연구진은 최초로 QSL 후보 물질 중 하나인 터븀인듐산화물(TbInO₃) 단결정에서 이를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연구진은 레이저로 녹여 구조가 고른 단결정을 제조하는 레이저 부유 용융로를 사용해 고품질의 TbInO₃ 단결정을 합성했다. 이후 테라헤르츠 전자기파를 물질에 쪼여 광학전도도를 측정하는 분광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특정 영역에서 광학전도도가 정확히 주파수 제곱에 비례함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특히 영상 27℃ 수준의 실온에서도 광학전도도 비례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TbInO₃가 상온에서도 QSL 특성을 구현할 수 있음을 실제 확인한 최초 사례다. 앞으로 연구진은 TbInO₃을 무오류 양자컴퓨터의 소자로 응용할 수 있는지 등을 더 연구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양자역학적 현상을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는 하나로 중성자산란시설 및 100 MeV 양성자가속기 등 원자력연이 보유한 대형 양자빔 연구시설을 활용했다. 2021년부터 양자소재 개발 연구를 수행해 QSL을 비롯해 반데르발스 층상소재, 양자자성체 등 50여건 이상의 양자 자성 소재를 합성하고 국내외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무오류 양자컴퓨팅용 양자소재 개발 사업을 통해 무오류 큐비트 구현에 필요한 위상초전도 양자소재 개발을 추진한다. 김재욱 박사는 "이번 연구는 양자스핀액상 물질의 오래된 이론적 예측을 실험적으로 검증한 첫 사례로, 향후 양자컴퓨팅 및 양자 센서 소자의 설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