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병원만 급성기 중증환자를 살리는 게 아니다”
원래 메디칼 테크놀로지(Medical Tech)는 질병 예방·진단·치료를 위한 의료기기 관련 산업을 뜻한다. 연재 '김양균의 메드테크'는 기존 정의를 넘어 디지털 헬스케어를 비롯한 신의료 기술에 도전하거나 이에 그치지 않고 창업까지 나선 의료인 및 의료기관에 대한 스토리를 담을 작정이다. 이번에 소개할 의료기관은 한일병원이다. 조용하지만 예사롭지 않는 '움직임'이 있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지역병원의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강북구와 도봉구, 노원구 지역까지 아우르는 한일병원은 지역 내 급성기 중증 환자의 최종 치료부터 나아가 재활까지를 맡을 예정이다. 지난 28일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한일병원을 방문해 조인수 병원장을 만났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민간병원으로는 처음으로 감염병전담병원 체제로 전환한 것이나 응급센터·심뇌혈관센터·화상센터를 새로 단장한 속사정, 중재시술센터와 심뇌혈관센터도 인력을 갖추고 규모도 확장하게 된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조 병원장은 “급성기 중증 환자 회복이 병원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전원할수록 환자의 목숨은 위험해진다” Q. 최근 중재시술센터와 응급센터를 확충했다. 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급성 중증 환자들에게 시간이 곧 생명이다. 전원을 할 때마다 환자는 위급해진다. 더 나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것은 전원을 안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지역민을 위해 심뇌혈관 포함 중증환자 치료가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Q. 정부도 필수 및 중증의료 분야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정부의 지원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한일병원은 태생부터 도봉·강북구에는 종합병원이 우리밖에 없다. 정책 방향을 의식하지 않고, 우리 할 일을 하다보면 추가적인 정책적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한다. Q. 관련 의료인력 확보가 녹록치 않았을 것 같다. 더 어려운 것은 각 센터장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아직 세팅이 완전하지 않지만 가능성을 믿고 따라와줬다. 실력 있는 전문의가 동참하니 이를 따르는 동료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확보될 수 있었다. 앞으로 좀 더 추가 인력 확보를 하려고 한다. Q. 급성기 중증의료 대응을 위해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전의료재단에서 기부금 수익으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 투자 여력이 상당히 있다. Q. 코로나19 당시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전환했다고 들었다. 의료진 호응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 2021년 12월 24일부로 지정이 돼 2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많은 희생이 있었다. 코로나19 환자들로 최대 99병상까지 채워진 적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하철민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중증 환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는데 전원도 안 되어 상황이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며 “환자를 응급실 격리실에 두고 2~3주간 환자를 치료했는데 가슴이 아프고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Q. 한일병원의 앞날은. 이 정도 규모의 병원이 살아남으려면 지역민들에게 급성기 중증질환에 대한 최종 치료를 하고, 앞으로 재활까지도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만 재활환자들은 간병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병원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빅5는 그들대로,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Q. 기존 화상 치료 분야는 어떻게 진행되나. 화상진료센터를 리모델링해서 병동을 오픈할 예정이다. 기본 인프라는 유지하면서 치료를 진행, 충분한 환자 치료 여력을 확보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에 비해 산업재해에 대한 의료적 접근은 떨어진 측면이 있다. 한일병원은 기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등과 함께 전국 발전소에서 건강검진 등 용역사업을 하고 있다. Q. 지역민에게 한일병원은 어떤 곳이길 바라나. 문턱이 낮은 응급센터였으면 한다. 누구든 접근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이곳에 오면 최종 치료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구급차 5대가 올 때가 있는데, 물어보면 '한일병원은 양반'이라고 하더라. 여기 오면 치료가 안되는 게 없다고 한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피와 땀으로 쓰이는 드라마 하룻밤 기자가 머물렀던 응급실의 풍경은 일 년 내내 비슷한 모양새로 반복된다. 그러나 매일의 풍경은 개별적이면서 보편적이다. 환자의 신음과 보호자의 눈물, 의료진의 다급한 손길이 뒤섞여 피와 땀으로 채워진 드라마는 매일 새롭게 쓰인다. 위는 수년 전 한일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과 하룻밤을 부대끼며 쓴 르포의 마지막 부분이다. 기사는 끝나도 응급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에도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이 병원에 실려 오고 있다. 조인수 병원장과의 인터뷰 말미 '디지털헬스케어' 등의 최신 보건의료 기류를 물었다. 조 원장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환자에 집중하는 게 먼저라고 했다. 더 위중한 환자를 더 원활히 받아서 치료와 재활까지 하는 게 병원이 지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그의 말에 기자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도봉구와 강북구, 나아가 노원구까지 아우르는 한일병원의 의료진은 오늘도 피와 땀에 범벅되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당장 치료가 시행되어야 하는 환자들에게 제때 의료진이 투입되는 것은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걸 해내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들에게 디지털보다 실존이 더 먼저였다. 오랜만에 병원 같은 병원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