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KT 대표 후보가 주총에 앞서 해야 할 약속
KT 이사회가 7일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을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선발했다. 이달 말 열릴 KT 정기 주주총회에 이와 관련된 안건이 상정되고 찬반 표결이 진행될 예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이번 주주총회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역사에서 새롭고도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주주총회에서 윤 후보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성중 의원을 비롯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이 KT 대표 후보로 선임된 4명이 모두 KT 전·현직 임원이란 점을 문제 삼아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판하며 반대했던 데는 일리가 있다. 문제는 이들이 공정성 투명성 혁신성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사욕을 챙기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데 있다. 그보다 문제의 본질을 찾아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여야 했다. 이들의 의도가 의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거의 모든 언론이 KT 대표 선임과정에 관한 뉴스를 생산하면서 '외압'을 키워드로 사용했다는 걸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외압의 주체는 국민연금, 여당의원, 대통령실 등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당과 관련이 깊은 다수의 정관계 인사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던 사실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을 KT 대표 자리에 앉히려 한다는 의심이 팽배했다. 박성중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이 지적한 것처럼 KT 대표 선임 과정이 “그들만의 리그”로 흘러가는 게 문제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법제도로 풀 생각을 했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처럼 구조적 문제보다 당면한 사안에 매달리면 근본적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매번 같은 일이 재발한다. KT의 경우 20년간 그러고 있지 않나. KT 대표 자리는 중요하다. 재계 순위 12위, 계열사 49개, 본사 임직원 2만 700여 명이 일하는 공간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규모가 그 이상 되는 기업도 있고, 그 이하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KT 대표 자리가 진짜 중요한 까닭은 그의 역할에 따라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새로운 모범을 창조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이 그래서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KT 구성원들은 이번 대표 선임과정에서 보여준 정치권의 압박에 심한 모멸감과 함께 자괴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소액주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분노마저 느끼는 듯하다. 오죽하면 포털 사이트에 카페를 만들어 단체행동에 나섰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여권의 압박이 세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거다. 윤 후보가 정치권의 압박에도 끝내 사퇴하지 않고 결연함을 보여준 것은 사회적으로 볼 때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연찮게 찾아온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선진화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리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살려 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대표 최종 후보로 선임된 뒤 그의 발언을 주목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이슈와 과거의 관행으로 인한 문제들은 과감하게 혁신하겠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후보자로서 주주총회 전까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맞춰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 문제의 본질을 알고 있고, 그것을 피하지 않을 것이며, 그걸 개선하는데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소통하겠다는 뜻이다. 이제 남은 건 방법론이다.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혁신이라 생각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속히 찾아내고 그 안(案)을 공개해 여러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핵심은 사외이사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거다.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실질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사외이사 조직을 꾸리는 것이다. 주지하듯 현재 한국 기업 대부분의 사외이사는 경영진의 거수기에 불과하다. 여당의원들이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판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이는 KT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모든 기업이 갖고 있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한계라 봐야 한다. KT가 그 구조를 깼으면 한다. 그러려면 작은 이해가 걸려있지만 수적으로 다수인 자를 대표할 수 있는 사외이사가 꼭 포함돼야 한다. 소액주주 대표, 노동 대표, 소비자 및 시민사회 대표 등이 그렇다. KT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수적으로 다수자지만 경영진의 의사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에 넣어야 한다. KT는 8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5명을 새로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때 누구를 뽑을 것이냐의 문제가 지배구조 이슈의 구체적인 사안이다. 사외이사 조직이 건전한 방식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 “그들만의 리그”는 서식할 공간이 좁아진다. 윤 후보가 이번 주주총회 전에 그와 같은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약속하고 주주의 심판을 받는다면 이번 주주총회를 눈여겨볼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