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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더 큰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더 빠른 현장이 필요하다

골드만삭스가 지난 6월과 7월 잇달아 내놓은 두 건의 분석은 겉보기에 다른 주제를 다룬다. 하나는 한국의 휴머노이드 공급망, 다른 하나는 AI 투자 지형의 변화다. 이 두 주제를 하나로 엮으면 AI 경쟁의 규칙이 바뀌고 있고, 그 전환기에 좀처럼 오지 않을 거대한 기회의 창이 한국에 열렸다는 것이다. 먼저 규칙의 변화다. 골드만삭스는 기업 AI도입이 티핑포인트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상위 5% 기업의 토큰 소비량이 중간값 기업의 세 배에 달하고 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AI의 무게중심이 모델을 만드는 '훈련'에서 모델을 실제로 쓰는 '추론'으로 이동하면서, 병목도 반도체에서 프로세서 간 통신으로, 데이터센터의 구리 배선에서 광섬유로 옮겨가고 있다. 훈련 컴퓨트의 시대에는 자본의 크기가 순위를 정했다. 추론과 배치의 시대에는 누가 실세계에서 사이클을 돌리는가가 순위를 정한다. 그 실세계의 정점에 휴머노이드가 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기업이 2035년 글로벌 휴머노이드 생산의 30%를 직·간접적으로 담당하고, 한국 공급망을 통한 생산이 2030년 7만 4000대, 2035년 41만 2000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전동 파워스티어링과 제동 시스템에서 축적한 자동차 부품 역량이 로봇의 근육인 액추에이터로 이어졌고, 제조 현장의 그리퍼 경험은 로봇 하드웨어의 최난제인 정밀 핸드 기술로 이어졌다. 미국 휴머노이드 개발사들의 레이더에 한국 부품사들이 올라 있다는 대목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최강국이지만 하드웨어 실행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낙관적 전망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휴머노이드의 진짜 병목은 모터도 반도체도 아닌 데이터다. 로봇이 현장에 깔릴수록 훈련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쌓일수록 능력이 향상되고, 능력이 향상될수록 배치가 늘어난다. 이 자기강화 사이클에서 중국은 이미 앞서 나갔다. 2025년 기준 중국에 배치된 휴머노이드는 1만~1만 5000대다. 미국과 한국은 수백 대 수준이다. 부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데이터 플라이휠을 남의 나라에서 돌리면, 우리는 사이클의 수혜자는 될지언정 주인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국가 전략의 핵심 지표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몇 대를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몇 대를 국내 현장에 배치하느냐'다. 정부가 2029년 연간 1000대 생산을 목표로 7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은 방향이 옳다. 그러나 사이클을 돌리기에는 규모가 부족하다. 제조업 밀집 지역을 휴머노이드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하고, 도입 기업에 세액공제와 리스 보조를 패키지로 묶어 배치 속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세계 최고의 산업용 로봇 밀도와 높은 기술 수용성이라는,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초기 조건을 이미 갖고 있다. 배치에서 나오는 데이터는 국가 자산으로 모아야 한다. 조작·작업 데이터를 개별 기업의 사일로에 가두면 국가 전체의 플라이휠은 돌지 않는다. 데이터를 표준화해 공유하는 기업에 연구개발 매칭과 컴퓨트 크레딧을 제공하는 '피지컬AI 데이터 커먼즈'를 만들자. 도메인 데이터를 확보한 특화 모델이 빅테크의 범용 모델을 능가하는 사례는 이미 관찰되고 있다. 제조 강국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제조 조작 데이터셋을 갖게 된다면, 이는 미국도 중국도 복제할 수 없는 자산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플라이휠이 돌아갈 무대는 수도권이 아니다. 휴머노이드가 처음 투입될 곳은 판교의 오피스가 아니라 천안·아산·창원·울산의 첨단 제조 공장이다. 인력난이 가장 절박한 비수도권 산업 현장이야말로 배치 속도전의 최전선이고, 그곳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국가의 다음 경쟁력이 된다. 피지컬 AI는 태생적으로 현장의 산업이며, 현장은 지역에 있다. 이 전략은 산업 정책인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지역균형 정책이다. 노자는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일어난다고 했다. 2035년 글로벌 생산 30%라는 골드만삭스 전망은 예언이 아니다. 조건부 시나리오다. 그 조건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지금 공장 한 곳에 로봇 한 대를 더 들여놓는 일에서 시작한다. AI 데이터센터가 경쟁의 입장권이라면, 현장의 배치와 데이터는 승부처다. 한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더 빠른 현장이다.

2026.07.12 12:16정주용 컬럼니스트

[시론] '8.4GW'는 입장권…'AI 공장 통째로 수출'하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지난 6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 지도를 바꿀 압도적인 숫자가 공개됐다. '8.4기가와트(GW)'. 정부가 빅테크와 대기업들과 손잡고 오는 2029년까지 구축하겠다고 선언한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규모다. 2035년에는 18.4GW, 누적 투자 1000조 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삼각축으로 삼은 이 메가프로젝트는 분명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러나 십수 년간 벤처 투자 최전선에서 기술의 명멸을 지켜본 투자자의 시선에서, 차갑고도 명확한 진실을 짚고 싶다. 'GW'는 결코 승부처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글로벌 인공지능 경쟁의 판에 끼기 위한 '입장권'일 뿐이다.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다. 우리가 세계 시장을 뒤흔드는 피지컬 AI 강국이 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두 가지 제약과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 번째 제약은 '무탄소 전원'의 현실적 방정식이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18.4GW의 초대형 연산 기지를 돌리는 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토의 산술이자 생존의 문제다. 태양광만으로는 상시 가동되는 데이터센터를 감당할 수 없다. 서울시 면적의 몇 배를 패널로 덮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최신 원전 15~16기에 맞먹는 무탄소 전원이 필요하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과 동해안 원전 계통 연계를 얼마나 빠르게 실행하느냐가 이 필요조건을 채우는 열쇠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제약은 데이터 주권이다. 전력이 필요조건이라면, 그 위에서 무엇을 학습시키고 실행할 것인가는 충분조건이다. 소프트웨어를 넘어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인 첨단 제조의 데이터를 현장에서 활용해야 한다. 로봇, 드론, 무인자율공장, 자율주행 등 물리 세계와 결합하는 피지컬 AI 시대에는 데이터 주권이 곧 산업의 생존줄이다. 우리의 핵심 제조 공정 도면, 첨단 제조의 현장 숙련공 암묵지, 배합 비율, 국가 기간시설 제어 데이터가 미국 빅테크의 클라우드로 흘러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기술 생태계의 하위 포식자로 전락한다. 해외 GPU 할당량 조절 한 번에 국내 기업의 AI 고도화가 올스톱될 수 있는 시대다. 이번 메가프로젝트를 단순한 'AI서버 창고 건설'이 아니라 '연산·데이터 주권 기지 확보'로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행히 무기는 이미 준비돼 있다. 그래비티벤처스가 극초기 단계부터 투자하고 육성 중인 축산 로보틱스 기업 '로보스(ROBOS)'가 그 증거다. 로보스는 세상에 똑같은 형상이 단 하나도 없는 '비정형 생체'를 로봇과 AI가 실시간으로 인식·판단·제어하는 기가팩토리를 짓고 있다. 이 난해함이야말로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핵심 해자다. 로보스가 축적하는 것은 로봇 기계 자체가 아니라, 물리적 세계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법에 대한 데이터 표준과 공장 운영 노하우 그 자체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 축산 바이어들이 로봇 한대가 아니라 공장을 통째로 구매하려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새로운 수출 방정식을 제시할 때다. 과거에는 로봇 팔 몇 대, 반도체 칩 몇 개를 수출했다. 미래에는 두뇌(AI)부터 팔다리(로보틱스), 운영 시스템과 데이터 표준까지 완결된 '살아있는 공장 시스템 전체'를 통째로 수출해야 한다. 로보스 같은 물리 AI 챔피언이 각 분야별로 탄생해서 글로벌 데카콘으로 성장하는 날, 대한민국은 단지 기술을 파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 제조 생태계의 두뇌와 뼈대를 공급하는 공급망의 정점에 서게 된다. 하지만 로봇과 공장이라는 '몸'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 쏟아지는 방대한 물리 데이터를 조직의 언어로 구조화하고 실행 가능한 지능으로 바꾸는 소프트웨어 레이어, 즉 '한국형 팔란티어(K-팔란티어)'가 결합해야 한다. 정부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과 '한국형 인큐텔' 전략은 반드시 이 피지컬 AI 버전으로 확장돼야 한다. 물리 AI 챔피언(몸)과 데이터 온톨로지 플랫폼(두뇌)이 국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안에서 융합될 때, 비로소 완벽한 연산 독립이 완성된다. 단, 이 데이터 기반은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철저히 개방형·경쟁형으로 설계돼야 할 것이다. 8.4GW라는 거대한 숫자의 환상에만 도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전력 인프라 위에 다수의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피지컬 AI 챔피언을 빠르게 길러내고, 첨단 제조 영역별 K-팔란티어 유니콘을 키워서 데이터 주권 방어선을 치는 두 개의 축이 동시에 굴러가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말잔치가 아니다. 전력 확보, 인허가, 실증 리드타임을 단 하루라도 줄이겠다는 평범하고도 끈질긴 실행력이다. 8.4기가와트는 거대한 서막일 뿐이다. 이 주권 기지가 완성되는 끝자락에서, 나는 전 세계의 생산 라인을 지배하며 '지능형 AI 공장을 통째로 수출하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도약을 확신한다. 이제 실행의 시간이 왔다.

2026.07.01 11:17정주용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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