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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술'통합검색 결과 입니다.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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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술 회장님, 당신은 '긱' 자체였습니다"

필자가 정문술 회장을 안 것도 30여년이 다 되어 간다. 현역 기자 중에 그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몇 안 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 때문인지 그의 별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단순한 슬픔을 넘어 기업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표상이 될만한 거목이 사라졌다는 회한이다. 사실 정회장만큼 드라마틱한 이력을 가진 이도 흔치 않다. 중앙정보부 출신의 늦깎이 창업, 자살 결심, 1세대 벤처 대부에 오르기까지 그의 사업 여정은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이력과 나이와는 다르게 일을 누구보다 한 발 먼저 벌이고 즐겼다. '미래산업'의 미래라는 말은 그냥 붙인 말이 아니었다. 그의 머리는 늘 미래의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로 꽉 차 있었다. 이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그가 2000년 초기에 스마트폰을 만들려고 회사를 세운 것이나, 당시 라이코스라는 세계 인터넷기업을 국내에 들여왔다는 사실은 그의 이력만 보고서는 상상할수 없는 일들이다. 기억 하나.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1990년대 초반은 미래산업이 반도체 검사장비인 핸들러로 시장에 명함을 내밀 무렵이었다. 당시 정 사장은 '정직한 경영'으로 돈을 번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물론 그때는 그냥 하는 얘기로 들었다. 기억 둘. 199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된다. 천안공장을 신축하고 그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작업장을 종업원들이 근무하기 가장 좋은 환경으로 만들고자 했던 평소의 꿈을 이뤘다는 표정이다. 공장 한켠에 대나무숲이 울창한 휴식공간까지 마련했다며 지은 함박웃음은 어린아이 그 자체였다. 부를 세습하지 않겠다는 말을 처음 꺼낸 것도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천안공장 식당에서 상추쌈을 먹으며 마치 큰 비밀이라도 얘기하듯 귓속말을 했다. "어제는 부의 세습의 원인이 되는 일가친척 경영참여 불가 방침 때문에 부부싸움을 했노라"고. 그리고 특유의 어린아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를 알 만큼 알 정도의 시기였지만 역시 또 그러려니했다. 우스개 소리지만 원래 유산이 없는 사람들이 부의 세습 불가운동에 가장 적극적이다. 유산 안물려주기 운동을 펼치는 분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인간사가 그렇다는 얘기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세습은 곧잘 땀을 흘리게 만드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자식에게는 고생을 안시키겠다는 한 아비의 소박한 기쁨이 일의 원동력이 된다는 얘기다. 더욱이 성직까지 세습하는 요즘 땀흘려 일해 돈을 번 이들에게 그 기쁨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우리나라 경영환경에선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아 보였던 소유와 경영분리 해법을 실천으로 보여줬다.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는 디지털 경제에 맞는 기부문화 시스템을 정착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돈을 버는 법과 쓰는 법 모두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욕심(?)이었다. 그답다. 기억 셋. 그 다음해에 "이제는 정말 그만하겠다"는 말을 유난히 자주 했다. 하지만 당시 기자는 큰 마음을 두지 않았다. 워낙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다. 앞서 얘기한 스마트폰, 라이코스사업 등이 한창 진행중인 시절이었다. 그래서 은퇴는 커녕 엉뚱하게 정치나 하지 말라고 타박까지 주었다. 물욕 다음의 인간욕구가 명예욕이라는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젊은 기자의 타박에 허허롭게 웃던 그는 "어차피 떠날 것, 후임이 가장 부담없이 일하기 좋은 시기에 가야 한다"는 말을 되뇌었다. 기자는 결국 큰 낙종을 한 셈이다. 정문술씨는 그렇게 무대에서 내려왔고 필자는 그때 칼럼을 통해 '정직경영을 아직도 우습게 아는 젊은 기업인들에게 얼마나 경종을 울릴지도 모르겠지만 배우고 볼 것 없었던 우리의 기업문화에 그는 분명 큰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기억 넷. 은퇴 후에도 그의 모습은 종로 파고다 공원 근처에서 종종 보였다. 전국의 긱(geek)한 사람을 모두 불러 밥사주며 오랫동안 후원했다. 은퇴는 했지만 또 미래를 못버린 것이다. 카이스트에 큰 돈을 쾌척한 것도 사실 이광형 총장이 교수치곤 긱한 면이 많아 이 총창에 반한 탓이 크다. 누구보다 긱한 이총장이라면 우리나라의 미래를 열 기술을 찾을 거라는 믿음이 정회장을 움직였다는게 필자의 판단이다. 기억 다섯. 카이스트 쾌척 이후 두 해 정도 지난 일인거 같다. 어느날 필자를 불러 밥을 사면서 "다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난 아직 멀은 거 같아" 하면서 그림 얘기를 해주는 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회장은 그림에 조예도 깊고 엄청난 수집광이다. 은퇴후 사모님과 일본 가서 골프를 치는데 별안간 회사와 집에 걸려놓은 그림 걱정이 그렇게 되더라는 거다. "그래서 오자 마자 그림도 그냥 기부해 버렸어"라는 말과 함께 고춧가루 낀 이를 보이면서 함박 웃었다. 그게 필자가 기억하는 정회장이다. 그런 그가 허망하게 갔다. 평생 미래라는 화두를 붙들고 살아온 그라면 아직도 보여줄 것이 남아 있을 것 같은데… 회장님! 이제 더 이상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지 마시고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당신은 충분히 하실만큼 하셨습니다. 그것도 생각이 아니라 온몸으로 다 보여주셨습니다. 영면하세요. 김경묵 드림.

2024.06.14 17:03김경묵

정문술 회장 별세…"이 돈 모방하는데 쓰지 마세요"

"이 돈을 모방하는데 쓰지 마십시오, 비범한 사람들이 모이게 하세요. 이 돈으로 화합을 추구하지 마시오." 지난 2001년 고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이 KAIST에 300억 원을 기부하면서 신신당부한 말이다. 이 문장은 지금도 KAIST 정문술 빌딩 1층 기념 동상 벽에 새겨져 있다. 정 회장은 당시 "국민을 먹여살릴 인재를 기르고 기술을 개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는 당부와 함께 3가지를 꼭 지켜달라고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홍창선 총장에게 부탁했다. 정문술 회장이 1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 정 회장은 우리나라 벤처 1세대다. 193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중앙정보부에 특채돼 다니다 원광대 동양철학과에 들어갔다. 1983년 천안에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미래산업을 창업한 정 회장은 우리나라 벤처 산업을 일궈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도체 장비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로 자리를 잡은 뒤인 1999년 11월에는 국내 최초 나스닥 상장으로 전국적인 주목 받았다. 2001년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말을 남기며 퇴역한 뒤에는 KAIST와 인연이 끈끈하게 이어졌다. 이광형 총장과 막역한 사이였다. KAIST는 당시 기부금 300억원 중 100억원을 들여 2003년 연면적 9038㎡, 지하 2층 지상 10층의 규모로 정문술빌딩을 완공했다. 지금은 바이오및뇌공학과라는 간판이 달렸지만, 당시엔 바이오시스템학과로 출발했다. 이곳에는 이수영 교수와 최철희 교수, KAIST 총장인 이광형 교수 등이 둥지를 틀었다. 고 정문술 회장은 이후 2007년 KAIST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연구와 공부에 방해된다면서 KAIST를 찾지 않다가 2009년에야 다시 방문했다. 2009년 방문 당시에도 "정문술 빌딩에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신기술이 나오기 전에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됐다. 고 정문술 회장은 2014년 KAIST에 215억 원을 추가 기부했다. 바이오및뇌공학과는 현재 1500여 명의 석, 박사 학위 수여자를 배출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는 이겼다. 기쁘다"고 하셨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고 정문술 회장의 강인하고 의로운 정신에 대해 회상했다. 고 정문술 회장은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 2009∼201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장을 지냈다. 2014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아시아·태평양 자선가 48인'에 선정됐다.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받았다. 빈소는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02호. 발인 15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 광주시안이다. (02)2030-7900.

2024.06.13 15:16박희범

한국벤처 1세대 정문술 회장(전 KAIST 이사장) 별세

KAIST 제12대 이사장 및 미래산업 사장을 역임한 정문술 회장이 13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 정문술 회장은 1938년생이다. 1983년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해 한국의 벤처 1세대를 리드했다. 국내 최초로 개인 고액 기부액(515억원)을 KAIST에 기부하며 바이오및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설립에 기여했다. 국민은행 이사회의장, KAIST 이사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수상했다. 유족은 배우자 양분순 씨와 2남 3녀가 있다.빈소는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02호, 발인은 15일 09시 정각. 장지는 서울추모공원-광주시안이다. (02)2030-7900

2024.06.13 10:47박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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