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A로 유전자 조절해 질병 치료····"단백질 엔지니어링 시대 온다"
유전자 발현 조절 등 생명 현상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RNA 작동 원리의 비밀이 또 한겹 풀렸다. 암이나 유전병, 감염병에 대한 RNA 기반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전망이다. 20년 간 RNA를 연구하며 관련 세계 학계를 선도하는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연구팀의 성과다. 김 단장 연구팀은 마이크로RNA(miRNA) 생성과 RNA 치료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이서(DICER) 단백질'의 핵심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 또 노성훈 서울대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초저온전자현미경을 활용, 다이서의 3차원 구조를 최초로 밝혔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두 편의 논문은 23일 학술지 '네이처'에 나란히 실렸다. ■ 유전자 조절해 신체 기능 조절하는 RNA DNA나 RNA 같은 핵산은 뉴클레오타이드라는 작은 단위체로 구성되며, miRNA는 약 22개의 뉴클레오타이드로 이뤄잔 작은 RNA를 말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 메신저RNA(mRNA)가 DNA의 유전정보를 복제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데, 이때 miRNA가 mRNA와 결합하면 mRNA가 분해된다. 이같은 'RNA 간섭'은 불필요한 유전자 발현을 억제해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다. 유전자 발현을 조절함으로써 세포 증식과 분화, 면역, 노화와 질병 등 생명 현상의 모든 과정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암같은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miRNA가 원하는 기능을 갖도록 디자인하면 암이나 유전병, 바이러스 침입 등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사람 몸에는 수백 종의 miRNA가 있다. 이들의 재료인 기다란 모양의 miRNA 전구체가 드로셔(DROSHA)라는 단백질과 다이서에 의해 차례로 잘리면서 길이가 짧은 miRNA가 생성된다. ■ 손도끼와 꽈배기의 찰떡 궁합 RNA 연구단은 2015년 드로셔의 기능과 구성, 3차원 구조를 밝힌데 이어 이번에 다이서의 원리와 구조를 규명했다. 다이서는 드로셔에 의해 절단된 miRNA 전구체의 끝 부분을 인지하고, 그 위치에서 특정 거리를 자로 재듯 정확히 잘라 miRNA를 만든다. 10나노 크기의 손도끼 모양인 다이서 안의 정확한 위치에 꽈배기처럼 꼬여 있는 miRNA 전구체가 꼭 맞게 들어가 절단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miRNA는 아고넛 단백질에 장착되어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연구진은 다이서가 잘라내는 전구체 자리에 특정 서열이 있을 경우 절단이 잘 되는 것을 발견, 이를 'GYM 서열'이라 명명했다. 이는 다이서가 miRNA 전구체 절단 위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기존 알려진 것처럼 다이서가 드로셔에 의해 만들어진 말단만 인지해 절단하는 것이 아니라 miRNA 전구체 내부 서열을 인지함으로써 스스로 절단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 암 일으키는 유전자 조절해 치료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GYM 서열을 적용하면 RNA 간섭 효율을 높일 수 있음도 확인했다. 원하는 기능의 인공 miRNA를 대량 샌상,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억제하는 간섭 RNA 기반 치료의 효과를 높일 수 있으리란 기대다. 일부 암 환자에게서 다이서의 특정 부분에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는 것도 발견됐다. 이 돌연변이가 생기면 miRNA 전구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miRNA 생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확인, 암 발병 기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실마리를 붙잡았다. 김빛내리 단장은 "miRNA 생성과정을 이해하면 질병의 발병 원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RNA 간섭 효율을 높여 유전자 치료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RNA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통해 현재 근위축증이나 아밀로이드 유전자 억제를 통한 치매 치료 등에 적용된 RNA 치료제의 활용 범위를 더 넓힐 수 있으리란 기대다. 합성한 RNA를 원하는 때, 필요한 기관에 정확히 전달하는 제어 및 전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과제다. 원활한 산학 협력과 중개 연구가 이뤄지면 10년 안에 실제 의료 현장에서 혜택을 볼 수도 있으리란 기대다. ■ 전에 없던 발견 위해 새로운 기술 적용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것도 연구 성과를 얻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연구진은 방대한 RNA 관련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수의 조작 변수들을 한 번의 실험으로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대규모 병렬 분석법을 적용했다. RNA를 이루는 네 가지 염기가 무작위로 구성된 miRNA 전구체를 백만 종 넘게 합성했다. 이후 차세대 유전자 분석 기법으로 이 전구체들을 다이서로 한꺼번에 자르고 정량적으로 조사했다. 이를 통해 다이서가 전구체를 절단하는데 필요한 GYM 서열을 발견했다. 또 IBS와 서울대에 설치된 초저온 전자현미경으로 원자 수준에서 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해독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인간 다이서 단백질의 고해상도 3차원 영상을 최초로 얻었다. 초저온 전자현미경은 영하 180℃의 초저온 상태에서 시료를 촬영, 물질의 움직임을 화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장비다. 노성훈 교수는 "이렇게 획득한 3차원 구조를 통해 다이서가 어떻게 miRNA 전구체를 인지하는지, 어떤 서열이 다이서와의 결합에 중요한지 밝힐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