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해시계 '원구일영'은 '휴대용'이었다
조선 후기 해시계 '원구일영(圓球日影)'은 관측 장소에 상관 없이 시간을 알 수 있는 '휴대횽 해시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구일영은 조선 후기 중추원 1등의관을 지낸 상직현이 1890년 제작한 원구형 해시계로, 부품 유실과 고장으로 그간 작동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국립과학박물관(관장 이석래)은 원구일영을 복원하고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진은 원구일영이 기존 해시계와 달리 관측 지점에 따라 위도가 달라지더라도 수평을 맞추고 그 지점의 북극고도를 조정해 사용한 것임을 확인했다. 또 T자형 영침 그림자가 남반구의 긴 홈 안으로 들어가게 맞추고, 동시에 영침 끝이 지시하는 북반구의 시각 표시를 읽는 방식임을 확인했다. 어디서건 쓸 수 있는 '이동가능한 해시계'였던 셈이다. 일영은 남북 극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원구형 해시계로, 지름 9㎝ 크기의 원구는 상단과 하단 2개의 반구를 조립해 하나의 원구를 구성한다. 원구일영 표면에는 시각 표기인 시각선(時刻線)과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하루를 96각법으로 등분하는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원구일영 작동 원리를 밝히기 위해 제주, 대전, 서울 경복궁 등 세 지역을 선정하고, 이 복원 모델로 시간 측정 실험을 수행했다. 유물의 위도조절장치에 표시된 2개의 선을 분석한 결과,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된 지역은 서울을 기준으로 표시한 것임을 밝혀냈다. 복원 모델로 관측한 결과, 시간 측정 오차는 ±7.5분 이내였다. 원구일영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원구형 해시계로, 지역에 상관 없이 어느 곳에서도 시간 측정이 가능하고 앙부일구와 혼천시계의 시각 표기법 전통을 따랐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 연구는 국립중앙과학관 기본연구과제사업으로 진행됐다.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한국과학기술사과장을 비롯해 고천문 분야 한국천문연구원 김상혁·민병희 박사, 시계 분야 이용삼 전 충북대 교수, 고문헌 분야 문화유산연구소 길 기호철 소장 등이 함께 연구했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유물의 3D 스캔과 X선 촬영, 성분 분석 등을 맡았다. 국립중앙과학관은 내년 6월 개관하는 국립중앙과학관 한국과학기술관 시계특화코너에 보원한 원구일영을 전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