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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엔진] 예술은 길을 묻고 길을 낸다

'문화엔진'은 우리 문화의 가치 재창출을 위해 칼럼니스트의 비평적 시각과 기자의 보도적 시각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시리즈입니다. 이 연재는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를 비롯한 현장 전문가와 지디넷코리아 기자가 함께 집필하며, 독자에게 문화정책·콘텐츠산업·예술현장에 대한 새 소식을 전하고 인사이트를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K-컬처가 미래산업의 엔진으로 재조명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예술은 질문으로 시작해 공감으로 이어진다. 11월 11일부터 12월 21일까지 천안시립미술관에 마련되는 이번 전시는 그 과정을 한 화면에 모아 놓은 문장이다. 또 지역의 기억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 언어를 시민의 경험으로 환류하려는 시도다. 화가이자 디자이너였던 문우식과 서예가 인영선이 남긴 궤적을 병치하며 한국 미술과 서예의 전환점을 점검한다. 두 예술가가 다른 매체로 구축한 시각 언어와 필묵의 문법은 현재의 제작 환경과 관람 경험 속에서도 유효하다. 여기서 행정은 지역문화의 토양이고 정책은 문화향유의 구조다. 전시는 그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는 장면을 사례로 제시한다. 지역에서 출발해 보편으로 확장하는 경로, 그 길 위에 오늘의 천안이 서 있다. 두 길의 교차, 하나의 화두 이번 전시는 천안문화재단의 '커넥트 인 천안' 흐름 속에서 자리 잡는다. 예술의 뿌리 연결이다. 지역 예술가의 유산을 동시대 관람 환경에 맞게 재맥락화하고 학술·아카이브·교육 프로그램과 연동해 시민 체감으로 환류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구조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전시-교육-아카이브-커뮤니케이션이 하나의 여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번 전시는 그 여정의 첫 화면을 비교적 명료하게 보여준다. 문우식은 전후 재건기의 공기를 통과해 산업화의 속도를 견디며 활동했다. 회화와 그래픽의 경계를 열어젖히며 시각문화의 현대화를 실험했다. 화면에 남은 색면과 선은 조형의 완결을 넘어 사회적 표정으로 읽힌다. 그의 작업군은 작품으로 남았을 뿐 아니라 공공 시각문화의 문법을 바꾼 사례로 기능한다. 드로잉과 디자인 원화, 수채의 축적은 예술이 기호 체계이자 노동의 기록임을 입증한다. 그는 예술이 공공의 언어로 전이될 수 있는가를 묻고 또 물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시대의 사용 설명서를 남겼다. 인영선은 전통의 격조를 토대로 현대적 조형을 개척했다. 서체 연구는 전서의 구조미와 행서의 유려함을 유기적으로 접속한다. 붓은 기록의 도구를 넘어 사유의 장치가 되고 먹의 번짐과 획의 호흡은 시간과 몸의 기억을 환기한다. 그는 법을 지키되 법을 넘어서는 길을 택했다. 이때 전통은 과거의 표본이 아니라 현재의 제작 환경이 된다. 그의 '전서의 행의서사'는 전통을 소환하는 기술이 아니라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제작 방식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전시는 작품과 더불어 습작과 노트, 아카이브를 배치해 과정의 층위를 드러낸다. 관람자는 결과물의 표면을 넘어 제작의 리듬과 사고의 흐름을 읽게 된다. 지역의 사례로 보편을 말하고 보편의 언어로 다시 지역에 응답하는 것. 이 균형이 확보될 때 지역성은 출발점이 되고 목적지는 동시대의 보편으로 확장된다. 〈길을 묻다, 길을 내다〉는 바로 그 균형을 전시장 안에서 구현한다. 예술행정은 지역문화, 정책은 문화향유 공공 미술관의 책무는 기획의 성실성에서 그치지 않는다. 접근성, 학습성, 지속성을 담보하는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이 지점에서 행정은 지역문화의 인프라이고 정책은 문화향유의 프로토콜이다. 전시는 이 두 축이 실제로 만나는 화면이다. 전시가 지역 자산을 보편 언어로 번역하고 보편의 독해를 지역의 생활권으로 되돌리는 과정이 곧 정책의 작동이다. 접근성은 물리적 동선이나 운영 시간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정보의 어휘와 해설의 깊이, 교육 연계, 디지털 접근 채널까지 포함한 경험 설계가 정책 품질을 결정한다. 공공 전시는 기획의 자율성과 행정의 공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요구한다. 특정 미감이나 취향의 우열을 가르기보다 동시대 관람 환경에 맞는 해석의 폭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번 전시는 그 기준선을 안정적으로 제시한다. 지역성에 매몰되지 않고 지역의 사례를 통해 보편적 질문을 끌어내며 보편의 언어로 다시 지역 현실에 응답한다. 큐레이션의 판단과 행정의 결정을 분리하지 않고 한 화면에 배치할 때 공공 전시는 사회적 의미를 획득한다. 이 경로는 도시의 문화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행정이 토양을 마련하고 정책이 경험을 설계할 때 전시는 시민의 생활권에서 작동하는 공공 서비스가 된다. 그때 예술은 도시의 정체성을 새로 쓰는 언어가 된다. 지역 미술관의 전시가 지역 정체성을 다지는 동시에 국가 문화정책의 현장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이번 사례는 시사한다. 지역문화가 곧 국가문화의 뿌리라는 전제 아래 향유의 폭을 넓히는 제도 설계와 교육·디지털 연동이 후속될 때 공공 전시는 도시를 넘어 국가브랜드의 문화적 신뢰로 환류한다. 질문으로 열고 공감으로 잇는 전시 두 예술가의 언어는 다르지만 도달점은 같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다. 문우식의 색과 선은 사회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숙고하게 만들고 인영선의 획과 공백은 우리 안의 호흡을 되돌린다. 전시는 관람 행위를 해석 행위로 확장한다. 보고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이 머무는 시간으로 치환한다. 이것이 공공 미술관에서 가능한 최선의 결과다. 전시가 지역문화의 자산을 새로 정리하고 시민의 문화향유를 실질적으로 넓힌다면 그 자체로 정책의 당위가 된다. 정책은 텍스트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사회에 안착한다. 경험은 곧 향유다. 최경현 천안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역을 넘어 한국 현대미술과 서예사의 중요한 지점을 되짚으며, 예술이 길을 묻고 또 길을 내는 행위임을 관람객과 함께 성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길을 묻다, 길을 내다〉는 지역에서 출발해 보편으로 확장되는 공공 문화의 경로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질문으로 열고 공감으로 잇는 길. 오늘의 천안은 그 길 위에 서 있다. 전시장을 나서는 관람객이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자문한다면 이 전시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글 = 이창근 예술-기술 칼럼니스트 & 미디어아트 디렉터

2025.11.06 17:00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가상의 게임 세계를 오프라인 융합콘텐츠로

세계가 한류(K-Culture)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은 매력적인 도시로,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문화기술과 융합해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광산업으로 구체화하며, K-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계와 만나는 무대에서, 문화는 곧 경제이자 미래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정책과 현장,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어떻게 K-컬처로 발현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탐색합니다. [편집자주] 시간이 지나면 몸의 기억이 대사보다 먼저 남는다. 코엑스 더플라츠의 공기, 객석에서 흘러나오던 탄성, 실루엣이 스크린의 원근과 포개지며 열리던 첫 프레임. 디지털 혁신 페스타 2024 with 제1회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 페어에서 선보인 주제공연 형식의 게임 퍼포먼스 〈조선의 여인〉은, 펄어비스 × 국가유산청 × 국립국악원 협업 뮤직비디오 '조선을 그리다'의 영상과 음악을 오프라인 안무·미장센으로 창작한 초연이었다. 안무 한유진, 무용수 3인과 함께 러닝타임 3′49″. 이 칼럼은 그 기록이다. 연출자였던 필자의 회고와 당시 작품 해설·분석을 통해 초연의 의도와 결과를 기록하는 일. 게임의 배경·캐릭터·오브젝트와 OST를 창작무용과 융합해 관객 앞에서 구현하는 '게임 퍼포먼스'는 또 다른 새로운 예술장르다. 그 가능성을 초연에서 어떻게 구성했고, 그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적어두려 한다. 디지털 IP와 현장 공연예술이 동등하게 만날 때 이 작업이 겨냥한 가치는 '동등성'이었다. 게임이 제공하는 세계관의 시각 문법(배경·오브젝트), 협업으로 제작된 OST의 리듬 문법 그리고 현장 공연(무용)이 같은 무대에서 동등한 축으로 서는가. 스크린을 세트의 확장을 넘어 관객이 무대로 진입하는 통로로 쓰고, 음악을 감정의 장식이 아닌 장면의 타이밍을 조직하는 엔진으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 무엇보다 무용이 보조적 연출 수단이 아니라 메인 테마로, 몸의 문장이 되어 내러티브를 밀고 나가야 했다. 이런 설계를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게임이 구축한 세계관을 현장 퍼포머의 신체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당시 작업의 핵심이었다. 게임 세계가 빚어낸 정신을 관객의 호흡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장치가 아니라 정교한 융합예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원전 '검은사막 - 아침의 나라 서울'의 세계관은 조선시대 미학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정적 속의 서사가 중심이다. 특히 국악기와 서양 오케스트레이션을 혼합한 OST '조선을 그리다'는 여백과 긴장의 리듬이 교차하며, 전통과 디지털 사운드를 결합한 완성도 높은 트랙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음악적 긴장 구조는 무대 위 신체 움직임과도 동일한 리듬 구조로 번역되었다. 무대에서 연출자가 할 일은 그 기반을 손상 없이 현존감으로 치환하는 것. 결과적으로 〈조선의 여인〉은 게임을 무대로 옮긴 행사 공연이 아닌, 게임배경·게임음악·창작무용이 동시에 중심이 되는 오프라인 장르 포맷의 프로토타입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게임 퍼포먼스'라는 이름이 필요한 명명임을 확인했다. 초연의 핵심은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스크린=통로, 음악=맥박, 몸=문장. 첫째, 스크린은 통로다. 스크린의 원근·수평·사선을 블로킹의 길로 읽어, 무용수의 등·퇴장과 전환이 그 길 위에서 일어나도록 했다. 관객은 바뀐 화면을 보는 상태에서 변하는 공간을 통과하는 상태로 감각을 전환한다. 둘째, 음악은 맥박이다. 국악 타악의 어택과 오스티나토(짧은 리듬 반복)가 만드는 리듬을 신체의 멈춤→가속 / 가속→정지로 대응시켜 장면의 박동을 세웠다. 피크 구간엔 한 박의 미세한 어긋남을 남겨 라이브의 숨을 살리고, 결정적 순간에 합으로 수렴시켜 장면의 중량을 높였다. 영상에서 모든 요소가 완벽히 일치하는 것이 정답이라면, 무대의 생동감은 오히려 미세한 어긋남에서 태어난다. 그 미세한 틈이 곧 무대의 호흡이다. 음악이 아닌 여백이 장면을 이어주는 순간, 스크린은 통로, 음악은 맥박, 몸은 문장이 된. 세 요소가 만나는 지점에서 관객은 '게임의 리듬'을 '무용의 호흡'으로 체험한다. 과잉 설명을 배제하고 신체 어휘로 이야기의 문장을 썼다. 특히 협업 MV 〈조선을 그리다〉의 영상과 무용수의 움직임은 프레임 단위로 정교하게 싱크되었다. 영상 속 '아침의 나라' 배경 전환(산수·정자·운무)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동작의 리듬을 지시하는 시각 신호로 작용했다. 무용수는 스크린 전환의 색 온도와 원근 변화에 맞춰 동작을 재조정했다. 실제 리허설에서는 영상의 프레임 타이밍을 세분화해 신체 움직임을 음악과 영상에 동시에 싱크시켰다. 그 결과, 무대 위 움직임이 영상 내부의 시공간과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실현했다. 이로써 스크린 안의 캐릭터와 현실 무대의 신체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고, 디지털 IP와 실연이 한 호흡으로 융합되는 '게임-무용 인터랙션'이 완성됐다. 4장 드라마투르기 : 환상-여정-미학-격조 한유진 안무가와 공동창작한 구성의 틀은 긴장→환기→중첩→정지라는 감정선 압축 구조다. 〈조선의 여인〉의 내러티브는 편집 없는 라이브를 전제로 4장의 흐름을 설계했다. 이 프레임은 러닝타임과 무대 크기가 달라져도 재현 가능한 장르로 기능한다. 1장 '환상'에서는 실루엣과 느린 호흡으로 시작한다. 움직임은 최소화하고 심도를 먼저 제시한다. 스크린의 원근과 얕은 측광이 한복의 결을 살리며 세계가 열렸다는 신호를 객석에 보낸다. 관객은 정보보다 먼저 공간의 두께를 체감한다. 2장 '여정'에서는 화면의 직선/사선과 신체의 곡선/회전을 일부러 엇갈리게 배치해 Z축 확장감을 키웠다. 포지션의 교차와 방향 전환만으로 장면을 넘기면서, 관객은 편집이 아니라 경로의 변화를 본다. 익숙한 게임의 선형과 살아 있는 신체의 곡선이 만나 관통감을 형성한다. 3장 '미학'은 캐릭터 레퍼런스 매화·우사·매구의 신체 어휘를 분명히 나누는 장면이다. 매화는 절제와 직선(시선이 한 박 앞서 끌고 가는 동력), 우사는 활선의 팔과 낮은 중심(공기를 가르는 궤적), 매구는 분절 박자와 신체 타악(타격감의 시각화). 상체의 선과 하체의 추진력이 교차하며 공연의 박동이 선명해진다. 짧은 리듬이 반복되며 화면의 움직임과 맞물려 장면의 긴장감을 높였다. 퍼포머 3인은 퓨전한복의 세 가지 실루엣으로 캐릭터를 시각화했다. 매화는 적색, 매구는 흰색, 우사는 남색으로 대비를 이루었다. 색의 리듬이 캐릭터 간 긴장과 조화를 동시에 형성했다. 마지막 4장 '격조'에서는 타악 피크에서 카논(동작 순차 겹침)을 전개하고 프리즈로 마감한다. 무대 위에 깔린 얕은 안개가 발의 움직임을 부각시켜, 관객이 동선의 리듬을 쉽게 느낄 수 있게 했고, 얇은 그림자는 무게 중심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정지의 품격이다. 2초 남짓의 고요가 이미지의 잔상을 길게 만들고, 그 잔상이 관객의 기억을 오래 붙잡는다. 이 네 장면은 관객에게 '도입-전개-절정-여운'의 질서를 명료하게 제공했다. 설명 없이도 방향을 잃지 않는 감상, 즉 호흡으로 읽히는 서사가 가능해지도록 말이다. 색·선·속도 - 간결한 대비로 입체 시야 만들기 무대 디자인은 색–선–속도의 세 축으로 정리했다. 색에서는 스크린을 고채도, 코스튬을 저채도 신한복으로 가져가 피사체를 분리했다. 관객의 시선이 강한 화면 시선을 잡아먹지 않도록 몸의 선에 시선을 정착시켰다. 선에서는 영상이 원근을 깔고 신체가 깊이를 채우도록 역배치했다. 수평·사선의 선형과 회전·호흡의 곡선을 교차시키면, 무대는 시야 안에서 한층 더 깊어진다. 속도에서는 정지–가속–정지의 변주로 서사의 고저를 세웠다. 과즙을 짜듯 밀어 올리는 가속 뒤에 찾아오는 정지의 순간이 의미를 응축한다. 조명은 프런트를 절제하고 측광을 얇게 사용했다. 직조와 주름의 질감이 살아나되 반사가 과잉되지 않도록 각도와 세기를 낮췄다. 바닥에는 그림자는 얇게 유지해 무게 중심을 시각화했다. 절정 부분에서도 소리가 찢어지지 않도록 여유 공간을 남겨 조정했고, 저역의 타격감이 신체의 추진력과 결합하도록 조정했다. 큰 장치 없이도 이 세 축만으로 충분한 입체 시야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초연의 가장 실용적인 수확 가운데 하나였다. 필자가 연출자로서 가장 집중한 지점은 감각의 이동이었다. 영상을 본다에서 무대를 통과한다로, 정보를 안다에서 장면을 느낀다로. 고채도 화면과 저채도 의상의 대비는 시선을 신체의 선으로 모으고, 측광은 직조·주름의 미세한 떨림을 드러내 물성의 호흡을 만든다. OST의 어택은 신체의 추진력과 결합해 객석의 몸에도 리듬적 압력을 전달했다. 그날 객석의 반응은 설명을 들었다가 아니라 전달됐다에 가까웠다. 자막도, 해설도 없지만 관객은 호흡의 문법으로 서사를 따라왔다. 마지막 프리즈에서 객석의 숨이 무대의 정지와 동시에 멈추고, 천천히 풀렸다. 그 짧은 구간이 전통은 정신, 무대는 경험. 이 만남이 관객의 호흡 속에서 감각의 기억으로 바뀌는 순간, 공연은 목적에 닿는다. 필자는 그 목적이 화려한 효과가 아니라 절제와 여백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덜어낼수록 관객의 상상은 멀리 간다. 게임과 공연예술이 융합한 새로운 장르 〈조선의 여인〉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르 포맷의 프로토타입이었다. 재현 가능한 서사 구조(소환–여정–성격화–귀결), 명확한 연출 키워드(스크린=통로 / 음악=맥박 / 몸=문장)는 이후 작업에도 적용 가능한 제작 표준으로 축적되었다. 게임 퍼포먼스란, 게임의 배경·캐픽터·오브젝트와 OST를 통로와 맥박으로 삼고, 창작무용의 신체를 서사의 문장으로 세워 오프라인에서 완성하는 공연 장르다. 최종 목표는 설명이 아니라 체험, 결과는 정보가 아니라 감각의 기억이다. 이 만남이 관객의 호흡 속에서 설득력을 얻는 순간, 게임 퍼포먼스는 공연예술·게임업계가 함께 쓸 수 있는 보편적 무대 언어가 되리라 본다. 당시 초연은 장르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게임 IP와 무용의 실시간 인터랙션, 조명·음악·신체가 만드는 다층의 몰입 구조는 향후 디지털 헤리티지 콘텐츠가 나아갈 미디어퍼포먼스의 방향을 예고했다. 당시 작업은 단일 공연을 넘어, 게임 IP의 새로운 모델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게임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전통과 기술, 예술을 매개로 한 디지털 헤리티지 산업의 핵심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는 K-헤리티지 → K-콘텐츠 → K-컬처 선순환 구조와도 맞닿는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활동하며, 융합예술과 디지털콘텐츠를 설계·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지역문화재단과 지역콘텐츠거점기관,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 공공기관에서 임원을 지냈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고정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11.06 10:03이창근

[문화엔진] 세계유산강국, 부산에서 증명된다

'문화엔진'은 우리 문화의 가치 재창출을 위해 칼럼니스트의 비평적 시각과 기자의 보도적 시각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시리즈입니다. 이 연재는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를 비롯한 현장 전문가와 지디넷코리아 기자가 함께 집필하며, 독자에게 문화정책·콘텐츠산업·예술현장에 대한 새 소식을 전하고 인사이트를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K-컬처가 미래산업의 엔진으로 재조명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내년 7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린다. 이 회의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이자, 유네스코(UNESCO)가 문화·자연유산의 보존과 등재를 논의하는 가장 권위 있는 글로벌 무대다. 이건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다. 한국이 스스로를 세계 앞에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자리이자, '글로벌 소프트파워 유산강국'이라는 국가이미지가 어떤 품격과 책임을 갖추었는지를 증명할 시험대다. K-헤리티지를 국가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한국 문화외교의 분기점이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지난 7월 15일, 부산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차기 개최지로 공식 확정됐다. 10월 16일 국회 문체위 국정감사에서 정연욱 의원은 국가적 준비의 실효성을 짚었다. 내년 행사를 앞두고 올해 미리 준비할 예산이 사실상 '0원'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점, 중앙정부 행사임에도 부산광역시가 선제적으로 재정을 부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전담조직의 가시적 출범이 늦어 유네스코 실사와 국제협의 일정이 불투명해졌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국가적 위상에 걸맞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이었다. 정연욱 의원은 '예산 한 푼 없이 유네스코 실사단을 맞을 거냐', '제때 컨트롤타워를 세우지 못해 국제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라고 공개적으로 물었다. 이건 준비 부실 재발을 막자는 요구였다. 국회는 준비 상황을 점검했고, 바로 그다음 날 행정은 구조로 응답했다. 하루 만에 나온 답, 구조로 응답한 행정 국가유산청은 10월 17일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준비기획단'을 공식 출범시켰다. 겉으로는 하루 만에 꾸려진 조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8~9월부터 '회의 준비기획단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마련해 법제처 심사와 대통령훈령 근거를 확보해 온 결과다. 이 말은 곧, 이 기구가 국가유산청 내부의 임시 TF가 아니라 정부 차원의 공식 전담조직으로 설치됐다는 뜻이다. 준비기획단은 출범 단계부터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부산광역시 등과의 범정부 협력 체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산 개최 준비팀'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브랜드를 대표해 세계유산위원회를 책임지는 컨트롤타워로 선언된 셈이다. 단순히 사업집행 창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한목소리로 준비할 수 있는 조정 플랫폼을 세운 것이다. 조직 구성을 보면, 유산정책국장이 단장을 겸임해 총괄하고, 부단장이 실무를 총괄한다. 그 아래에 기획·운영·홍보 등 핵심 기능이 한 축으로 묶였다. 현재는 초기(1단계) 체계지만, 개최 시점이 다가올수록 인력과 기능을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전제를 두고 있다. 이건 지금 당장 회의만 치르는 팀이 아니라 국가적 행사 전체를 점차적 감당할 수 있게 키우는 플랫폼이라는 의미다. 결국 준비기획단은 한 부처가 알아서 하는 행사 준비 모델에서 벗어나, 정책 수립과 현장 집행의 역할을 분리하고 동시에 굴리는 구조를 공식화했다. 초기에는 국가유산청이 중심이지만 향후에는 외교부, 문체부, 부산시까지 묶는 범정부 거버넌스로 확장될 것이 예고돼 있다. 국회가 준비 상황을 점검했고, 행정부는 그 질문에 책임 구조로 답했다. 정책과 현장, 두 축의 유기적 리더십 이제 중요한 건 이 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이번 준비 체계의 핵심은 두 축의 정교한 협력이다. 기존 유산정책국 내 세계유산정책과는 여전히 이 구조의 두뇌다. 전체 의제를 기획·조정하고, 회의 본안(상정 의제와 표결 대응)을 관리하며,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지 전략적 스피치라인을 설계·지원한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개최국 의장으로서 어떤 메시지를 내야 하는지 역시 이 라인에서 다듬어진다. 즉 우리는 어떤 나라로 보일 것인가라는 국가 서사를 짜는 곳이 바로 정책 라인이다. 준비기획단은 실행의 허브이자 현장의 매니저다. 정책 라인에서 설계한 방향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꾼다. 한쪽이 방향을 세우면, 다른 한쪽은 그것을 실제 경험으로 완성한다. 다시 말해, 준비기획단은 국가 어젠다를 '말'에서 '행동'으로 전환하는 엔진이다. 허민 청장은 이 두 축을 연결하는 지휘자 역할을 맡는다. 정책과 현장을 한 덩어리의 서사로 묶어, 세계유산위원회의 준비·운영·의제관리를 동시에 이끌어가는 '정책-현장 복합 리더십'을 발휘하는 구도다. 이것은 세계유산위원회를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브랜드의 무대'로 전환하는 운영 방식이다. 정책이 구조가 되고, 구조가 메시지가 되는 순간이다. 부산은 장소가 아니다, 장면이다 부산 회의에는 196개 협약국 대표단과 유네스코 측 고위 인사, 해외 언론이 집결한다. 공식 대표단만 약 3천 명, 지원 인력까지 포함하면 최대 1만 1천 명 수준까지도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유산위원회 본회의만 해도 7월 19일부터 29일까지 11일간 이어지는 장기 일정이다. 여기에 사전행사(7월 12일 시작)까지 더하면 도시 전체는 2주 이상 세계유산위원회 체제로 운영된다. 통상적인 국제행사(3~5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와 밀도다. 그들은 단순한 의제만 보지 않는다. 도시의 표정, 시민의 참여, 문화예술·야간경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현재가 유산이라는 국가브랜드로 구현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부산은 단순한 개최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품격이 투사되는 거대한 스크린이다. 중요한 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유산위원회가 다루는 것은 등재와 보존의 절차지만, 방문객이 실제로 기억하고 돌아가는 것은 '이 나라가 어떤 정신(Story)을 갖고 있고, 그 정신이 현장에서 어떤 경험(Impact)으로 전달되며, 그 경험이 어떤 미래(Dream)를 약속하는가'라는 흐름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이 무대가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라 국가 단위 마이스(MICE) 전략이라는 점이다. MICE는 회의(국제 의사결정), 도시 브랜드(현장 체험), 산업 전시(비즈니스 접점), 글로벌 네트워크(외교 인프라)가 한 번에 맞물리는 구조다. 부산 개최는 'K-헤리티지'를 소재로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문화 자산과 도시 역량을 한 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는 계기다. 정신과 경험, 메시지와 장면을 하나의 서사로 엮는 순간, 이 회의는 단순한 외교 절차를 넘어 '경험하고 싶은 국가브랜드', 다시 말해 수출 가능한 국가이미지로 축적될 수 있다. 그것이 한국이 K-컬처 문화강국으로 가는 과정의 실제 무대다. 이제 중요한 것은 메시지와 장면을 얼마나 정교하게 일치시켜 하나의 액션플랜으로 만들 수 있느냐다. 메시지와 장면의 정합성이 곧 국격이며, 부산은 그 품격을 검증받는 첫 시험대다. K-헤리티지에서 K-컬처로, 유산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나라 한국은 현재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많이 가진 나라가 아니라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한 유산강국이다. 우리는 왜 이 유산을 지키는가, 그리고 그 유산으로 어떤 미래를 제안하고 있는가? 바로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나라만이 진짜 경쟁력을 가진다. K-헤리티지는 우리의 뿌리다. 그 뿌리에서 스토리가 태어나고, 그 스토리가 사람들의 경험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콘텐츠가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이 세계의 감성과 교감하는 순간, 문화의 꽃이 활짝 핀다. 이것이 바로 K-헤리티지->K-콘텐츠->K-컬처로 이어지는 한국형 선순환 구조다. 이번 부산 회의는 그 순환 구조를 세계 무대에서 실증하는 무대다. 국가유산청은 이 기회를 통해 한국이 등재한 17건의 세계유산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회의 기간 중 K-헤리티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문화행사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의 리더십 아래, 보존을 넘어 산업·콘텐츠·외교로 확장하는 문화국가 전략이 실제로 가동되고 있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유산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한국'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있다. 경주의 오늘에서 부산의 내일로 지금 경주에서는 에이펙(APEC)이 열리고 있다. 세계의 시선이 한국으로 향한다. 그 열기를 부산으로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다음 과제다. 경주는 오늘의 한국을 보여주는 무대라면, 부산은 그 한국의 근거를 증명하는 무대다. 경주는 현재를 말하고, 부산은 미래를 설계한다. 정연욱 국회의원의 질의는 국가 행정부의 준비를 촉구한 입법부의 경고였고, 허민 국가유산청장의 대응은 그 제언을 제도와 구조로 바꾼 해법이었다. 정치는 문제를 제기했고, 행정은 해답을 제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체계 위에 '경험 가능한 국가브랜드'를 실제로 구현하는 일이다. 그것은 회의장 바깥의 도시, 시민, 야간경관, 공연, 전시까지 하나의 메시지로 엮는 일이다. 부산 개최 세계유산위원회는 그 응답을 직접 보여줄 첫 무대다. 글 = 이창근 예술-기술 칼럼니스트 & 미디어아트 디렉터

2025.10.29 09:26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AI 스펙터클 시대, 감정으로 복원한 서사

세계가 한류(K-Culture)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은 매력적인 도시로,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문화기술과 융합해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광산업으로 구체화하며, K-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계와 만나는 무대에서, 문화는 곧 경제이자 미래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정책과 현장,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어떻게 K-컬처로 발현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탐색합니다. [편집자주] 기록은 사실을 남기지만, 감동은 기억을 남긴다. 국립공주박물관이 공개한 단편영화 〈한성 475〉는 그 단순한 명제를 다시 입증한다. AI가 전투신을 만들고, 합성 기술이 리얼한 캐릭터를 생성하는 시대에 이 작품은 오히려 인간의 감정으로 돌아갔다. 475년 백제 개로왕과 고구려 장수왕의 전쟁을 다루지만, 영화의 중심은 전쟁이 아니라 결단이고, 기술이 아니라 서사다. 〈한성 475〉는 국립박물관이 제작한 사극 단편영화이자, 감정으로 복원된 역사다. AI의 정밀함이 고도화되는 이 시점에 인간의 감정이 왜 여전히 중요하고, 왜 그것이 곧 콘텐츠의 미래인지를 보여준다. 기록에서 경험으로, 전시의 언어가 영화로 바뀌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지난 10월 11일, 특별전 〈한성 475 - 두 왕의 승부수〉와 연계한 단편영화 〈한성 475〉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전시는 유물로 시대를 복원하고, 영화는 감정으로 역사를 되살린다. 이 두 축의 결합이 곧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한성 475〉는 475년 한성 함락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 고구려 장수왕이 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 수도 한성을 포위하고, 개로왕이 끝내 포로가 되어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다. 교과서에서는 “백제가 한성을 잃고 웅진(공주)으로 천도했다”는 한 줄로만 남아 있는 사건을, 박물관은 30분짜리 감정 서사로 재해석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고증 기반의 서사 복원'이다. 김명훈 학예연구사가 기획하고 〈화력조선〉 제작진이 연출했다. 전쟁고고학·성곽고고학·복식사 전문가 자문을 거쳐 세밀한 시각 고증이 완성됐다. 고구려의 찰갑, 백제의 환목궁, '백잔(百濟)'과 '박적(高句麗)' 같은 고대 어휘를 되살렸으며, 전투의 무대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실제 발굴 구조를 반영했다. 전쟁의 기록이 시각의 언어로, 시각이 감정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완성형 구조다. 화면의 톤은 황혼빛 흙색으로 눌려 있다. 불길, 먼지, 매연, 철의 질감이 중심을 이루며, 빛보다 그림자가 많다. 이 어두움은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기억의 무게를 드러낸다. 화려한 전투 장면 대신 인물의 호흡과 시선을 따라가는 연출은, 공공기관이 만든 영상에서도 영화적 감정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국립공주박물관이 교육용 영상의 틀을 벗어나 완결된 콘텐츠 IP로 진화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제 박물관은 단순한 유물 전시기관이 아니라, 역사문화 IP를 직접 기획·연출·유통하는 '콘텐츠 스튜디오'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는 보존의 공간에서 창작의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뮤지엄 혁신의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왕의 전쟁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내러티브 〈한성 475〉는 제목처럼 '두 왕의 대결'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실제 중심에는 다른 인물들이 있다. 바로 백제 출신으로 고구려군의 선봉에 선 재증걸루(김태훈)와 고이만년(김해준)이다. 그들은 조국을 떠나 적이 되었고, 적의 편에서 다시 조국을 향한다.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내적 서사가 영화의 감정선을 지배한다. “내 몸엔 백제의 피가 흐른다. 백제장수 재증걸루는 죽었다.” 이 대사는 단순한 배신의 독백이 아니라, 정체성과 양심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절규다. 이 영화는 전쟁의 원인보다 '전쟁을 견딘 사람들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백제의 몰락은 왕의 패배가 아니라 인간의 고뇌로 그려진다. 재증걸루는 싸움 속에서도 흔들린다. 왕의 명령보다 인간의 양심이 먼저인 순간, 그는 이미 전쟁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런 내면의 흔들림을 배우 김태훈은 거의 대사 없이 눈빛으로 표현한다. AI 합성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미세한 근육의 떨림, 시선의 망설임, 호흡의 끊김이 감정의 리얼리티를 완성한다. 장수왕(서명찬)은 냉철함으로, 개로왕(박경주)은 품격으로 맞선다. “왕이 무릎을 꿇는다면 나라가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닌가.” 개로왕의 대사는 몰락한 왕의 존엄을 지켜낸다. 마지막 대면 장면에서 두 왕은 권력으로 싸우지 않는다. 침묵으로 싸운다. 이 절제된 연출은 사극의 클리셰를 벗어나, '침묵이 가장 강한 언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결국 〈한성 475〉는 왕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서사다. 역사를 영웅담으로 소비하지 않고, 개인의 감정과 결단으로 환원한 작품이다. 이건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국립박물관이 만든 역사 영화의 새로운 문법이다. AI 합성의 시대에 던지는 역설 오늘날 유튜브와 SNS에는 수많은 'AI 역사 영화'가 올라온다. 생성형 알고리즘이 만든 장군의 얼굴, 복제된 병사, 자동 생성된 전투신. 속도는 빠르고 화질은 균일하지만, 감정은 없다. 정확한 픽셀은 있지만, '진짜 인간'은 없다. 〈한성 475〉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기술의 정밀함보다 감정의 진실을, 속도의 효율보다 이야기의 온도를 선택했다. 이 영화의 콘트라스트와 미장센은 '합성이 아닌 실연의 미학'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피가 튀는 전장을 멀리서 담지 않는다. 방패 뒤에 숨은 병사의 시점에서 전쟁의 숨결을 포착한다. 광각보다 근접, 서사보다 감정, 대규모 합성 대신 배우의 숨결이 있는 실사. AI는 감정을 묘사할 수는 있지만, 감정을 창조하지는 못한다. 〈한성 475〉는 이 차이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기술 발전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비(非) 기술의 가치를 일깨운다. 역사문화 콘텐츠의 역할은 감정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AI 시대에 콘텐츠 업계가 가져야 할 방향이다. 기술의 경연장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서사를 주도하는 무대. 그곳에서 '디지털 헤리티지'는 단순한 가상 복원이 아니라, 기억의 재현이 된다. 수사에서 서사로, 감정의 진정성이 곧 유산의 미래 〈한성 475〉는 단순한 박물관 영상이 아니라, 신기술융합콘텐츠의 혁신적 모델이다. 국립공주박물관이 유물의 전시를 넘어 '감정의 서사'를 담아낸 작품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박물관 서비스가 보존과 전시의 차원을 넘어, 디지털 헤리티지 시대의 콘텐츠 제작소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가 영상을 생성하고, 플랫폼이 서사를 소비하는 시대에 〈한성 475〉는 인간의 감정으로 역사를 재현했다. 국립박물관이 감정의 설득력을 갖춘 영화를 직접 기획하고 서비스했다는 점에서 뮤지엄 콘텐츠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한편, 전국의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유적지의 밤을 화려한 빛과 3D 영상으로 수놓고 있다. 유산의 외형은 눈부시게 연출되었지만, 그 안의 이야기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재현되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지 본질적으로 돌아볼 시점이다. 기술은 완벽하지만 감정은 흐릿하고, 장비는 정밀하지만 이야기는 비어 있다. 그 반대편에서 〈한성 475〉는 감정의 설득력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현란한 기술보다 유산의 본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심금을 울린다. 문화유산을 기억하게 하는 힘은 이야기다. 기술은 그 감동을 전달하는 파트너일 뿐이다. 〈한성 475〉가 보여준 한 줄기 빛은 바로 그 서사의 복원이다. 디지털 헤리티지 시대, 우리는 이제 현란함의 시대에서 '이야기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기술로 기억을 남기지 말고, 감정으로 유산을 잇는 것. 그것이 곧 K-헤리티지가 K-콘텐츠로, K-컬처로 확장되는 진짜 길이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활동하며, 융합예술과 디지털콘텐츠를 설계·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지역문화재단과 지역콘텐츠거점기관,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 공공기관에서 임원을 지냈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고정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10.27 15:09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디지털 헤리티지, K-컬처를 움직이는 소프트파워

세계가 한류(K-Culture)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은 매력적인 도시로,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문화기술과 융합해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광산업으로 구체화하며, K-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계와 만나는 무대에서, 문화는 곧 경제이자 미래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정책과 현장,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어떻게 K-컬처로 발현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탐색합니다. [편집자주] 문화유산을 경험하는 방식은 이미 달라졌다. 더 이상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지 않는다. 오늘의 기술은 어제의 기억을 불러내고, 내일의 산업은 그 기억을 다시 세계로 확산시킨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헤리티지(문화유산디지털콘텐츠)다. 단순한 기록이나 전시가 아니라, 산업과 외교, 정체성과 미래를 동시에 연결하는 국가 전략 자산이다. 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살아 있는 이야기를 디지털이라는 언어로 되살려냈기에, 그것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닌 오늘의 경험이자 내일의 힘으로 작동한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두 갈래 길을 걷는다. 하나는 오늘의 디지털 환경 속에서 태어난 기록과 창작물이 내일의 문화유산으로 남는 '디지털 문화유산'이고, 또 하나는 이미 사라진 유산을 사료와 고증을 통해 다시 불러내는 '디지털 복원'이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눈앞의 모형이 아니다. 시간을 건너온 원형 데이터다. 정밀한 고증으로 축적된 이 데이터는 단순한 3D 모델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연구하고 배우며, 산업과 관광이 공유할 수 있는 국가적 공적 자산이다. 그 원형이 켜켜이 쌓일 때 비로소 AI가 학습하고, 글로벌 플랫폼이 확산되는 토대가 마련된다. 디지털 헤리티지의 3대 효과 : 보존·활용·확산 국제사회는 이미 이 흐름을 인류의 약속으로 정리했다. 2003년 유네스코 「디지털 유산 헌장」은 디지털 기록을 '세계 공동의 자산'이라 선포했고, 2017년 「세비야 헌장」은 학술적 진정성과 투명성, 데이터 보존과 활용의 원칙을 제시했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더 이상 기록의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미래의 언어가 된 것이다. 한국은 이 물결에 가장 먼저 뛰어든 나라 중 하나였다. 1991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3D 복원, 2000년 경주 황룡사 목탑 VR 재현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라이다 스캔과 포토그래메트리, BIM, XR, AI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진화가 더해지면서, 한국의 디지털 헤리티지는 보존에서 산업으로, 그리고 세계 확산으로 이어지는 선도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디지털 헤리티지의 가치는 보존·활용·확산이라는 세 갈래 효과로 구체화된다. 첫째, 보존이다. 자연재해나 전쟁, 도시 개발로 실물이 훼손되더라도 디지털 원형은 남는다. 발굴이 한순간의 성과에 머물지 않고, 학술 기록으로 영구히 계승되는 것이다. 실제로 석조물이나 고건축은 시간이 흐르며 균열과 풍화로 손실되지만, 디지털 복원 데이터는 원형을 담아 후대 연구와 교육, 복원 기술에 다시 쓰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기록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화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과 다름없다. 둘째, 활용이다. 교실에서는 교과서 속 삽화를 넘어 AR·VR 기반의 실감형 학습 자료로 변모하고, 박물관과 관광지에서는 체험형 콘텐츠로 재탄생한다. 연구 현장에서는 국제 공동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공유 데이터로 작동한다. 특히 지난해 5월 개통한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표준화된 DB가 공개되면서, 게임·영화·XR·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산업에서 즉시 응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학문적 성과를 넘어 콘텐츠산업 전반의 촉매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셋째, 확산이다. 디지털 복원은 K-콘텐츠와 결합해 K-컬처의 원천이 된다. XR 공연이나 실감 전시, 영화 VFX처럼 현장에서 만나는 감각적 체험은 물론, 글로벌 OTT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세계인과 공유되며 국가브랜드를 강화한다. 한 도시의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재현한 프로젝트가 지역 경제를 살리고, 동시에 한국의 문화외교 자산으로 확장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이제 단순한 관리 차원을 넘어, 산업·관광·외교를 아우르는 '소프트파워 엔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향유·학술, 세 축의 전략 체계 오늘 한국의 디지털 헤리티지는 산업 기반·국민 향유·학술 복원이라는 세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필자는 본다. 산업 기반 : 국가유산청 차장 직속 국가유산산업육성팀은 국가유산 원형 DB와 3D 에셋을 구축·보급하며, 2024년 5월부터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공개·개방을 시작했다. 데이터가 유니티·언리얼 등 글로벌 제작 환경과 연동되면서 게임·영상·전시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동시에 국립국가유산디지털센터 건립 및 전시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 향유 : 유산정책국 교육활용과가 주관하는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국민이 생활 속에서 유산을 새롭게 체감하도록 이끌었다. 기존 성과는 관광객 유입과 상권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 효과를 입증했지만, 아직은 행사 중심에 머무른다. 향후에는 IP를 통해 OSMU를 강화하고 체류형 관광과 연계해 지속 운영이 가능한 모델로 발전시켜야 한다. 학술 복원 : 청 소속기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황룡사지·미륵사지 등 소실 건축유산의 디지털 재현을 통해 학술적 고증과 기록 보존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가 교육기관·국제연구·XR 콘텐츠 제작사와 공유될 때, 학술 복원은 곧 산업 자원과 교육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다. 세 축은 각각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따로 움직인다. 산업은 구축사업, 향유는 행사체험, 연구는 재현작업 중심으로 분리돼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단순 병행이 아니라, 연결과 융합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개방된 원형 DB 및 3D 에셋은 API 표준화와 맞춤형 제공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하고, 미디어아트는 야간경제와 관광을 연결하는 체류형 모델 '헤리티지 나이트 투어'로 발전해야 하며, 학술 복원은 교육기관·제작사·스타트업이 참여하는 협업 생태계로 확장돼야 한다. 즉, 산업·향유·학술을 묶어내는 '통합 플랫폼 전략'이 절실하다. 이 세 갈래 축이 연결될 때, 한국형 디지털 헤리티지는 보존을 넘어 산업화, 세계화, 지역화의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는 국민이 직접 체감한 대표적 정책 성과다. 군산·진주·고령·제주·철원·통영에서 도시는 유산-예술-기술 융합콘텐츠로 재해석되었고, 관광객 유입과 도시 브랜딩 효과가 확인됐다. 특히 야간 경제와 연계해 지역 상권 매출을 끌어올린 수원·익산 등 역대 사례는 디지털 헤리티지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산업화 모델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다.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며 지역 정체성과 문화적 자부심을 공유한 점은 '생활 속으로 들어온 디지털 헤리티지'라는 표현에 걸맞다. 또한 '서라벌 천년 시간여행'은 신라왕경 복원을 디지털로 시도한 첫 사례다. 현재는 3개년 사업의 막바지 단계로, 상설 체험공간 조성과 콘텐츠 서비스 개통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구축된 데이터 개방과 확산이다. 이 모델이 전국 9대 역사문화권(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탐라, 마한, 중원, 예맥, 후백제)으로 확산된다면, 한국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디지털 박물관'으로 진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는 이러한 국내 성과를 세계 무대에 선보일 절호의 기회다. 한국의 디지털 헤리티지가 국가 브랜드를 강화하고, 문화외교 자산으로 기능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산업화·세계화·지역화·AI, 실행의 조건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이제는 비전을 선언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첫째, 산업화다. 디지털 원형 DB와 3D 에셋 개방은 이미 시작됐지만, 이를 산업·관광·교육과 실질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는 이제 막 단계적 구축에 들어섰다. 따라서 데이터의 공개를 넘어, 민간이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데이터 공개가 아니라, 기업과 창작자들이 이를 안정적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산업 생태계 조성이다. 둘째, 세계화다.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와 2026년 부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형 디지털 헤리티지를 국제 사회에 선보일 결정적 무대다. 이 자리에서 디지털 복원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쇼케이스를 구현한다면, 한국은 '유산 강국'을 넘어 '디지털 문화 선도국'으로 브랜드를 확장할 수 있다. 셋째, 지역화다. 전국 9대 역사문화권을 거점으로 한 '디지털 유산 클러스터'는 각 시대 유산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지역 균형 발전과 체류형 관광을 아우르는 국가적 모델로 성장할 수 있다. 단순한 행사 개최를 넘어, 지속 가능한 거점 공간을 마련하고, 지역 대학과 기업이 참여하며, 주민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결합해야 한다. 그래야 디지털 헤리티지가 지역 경제와 문화 활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넷째, AI 헤리티지다. 방대한 디지털 원형 DB를 AI와 연계하면, 다국어 번역·자동 해설·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 연구자·산업계·대중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지능형 플랫폼으로 발전할 때, 디지털 헤리티지는 K-헤리티지를 K-콘텐츠로, 다시 K-컬처로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K-헤리티지는 뿌리, K-콘텐츠는 줄기, K-컬처는 꽃이다. 뿌리가 디지털 원형과 복원으로 되살아날 때, 줄기는 산업으로 뻗어가고, 꽃은 세계 무대에서 피어난다. 보존에서 산업으로, 지역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이 선순환이야말로 한국 문화산업의 전략 공식이다. 이제 과제는 분명하다. 실질과 성과로 답해야 한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더 이상 보존의 수단이 아니라 산업·외교·관광을 움직이는 성장 엔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원형의 축적, 활용의 확산 그리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다. 이 세 갈래가 맞물릴 때 한국은 단순한 보존국가를 넘어 디지털 헤리티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결국 성패는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감동과 변화에 달려 있다. 그 성과가 확인될 때, K-헤리티지는 K-콘텐츠를 거쳐 K-컬처로 이어지며 세계와 만나는 가장 강력한 문화엔진이 된다. 지역에서 검증된 국가유산 미디어아트처럼, 디지털 헤리티지가 일상 속에서 감동과 경제를 동시에 만들어낼 때 비로소 K-컬처의 내일은 열린다. 그 순간, 한국은 세계와 미래를 여는 가장 강력한 소프트파워 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활동하며, 융합예술과 디지털콘텐츠를 설계·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지역문화재단과 지역콘텐츠거점기관,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 공공기관에서 임원을 지냈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고정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10.01 18:00이창근

[문화엔진]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2.0

'문화엔진'은 우리 문화의 가치 재창출을 위해 칼럼니스트의 비평적 시각과 기자의 보도적 시각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시리즈입니다. 이 연재는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를 비롯한 현장 전문가와 지디넷코리아 기자가 함께 집필하며, 독자에게 문화정책·콘텐츠산업·예술현장에 대한 새 소식을 전하고 인사이트를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K-컬처가 미래산업의 엔진으로 재조명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어둠이 내린 성곽과 고분 위로 빛이 피어나면, 유산은 다시 살아 움직인다. 대형 프로젝션매핑에 역사 장면이 되살아나고, 전통 서사가 첨단기술과 만나 감각적 울림을 만든다. 지난 5년간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는 단순한 야간 행사가 아니라, 유산을 경험으로 되살린 플랫폼이자 지역과 도시브랜드를 바꾼 기폭제였다. 그러나 성과가 현장에만 머물면, 매년 새로운 프로그램으로만 소비되고 사라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페스티벌의 감동을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콘텐츠와 데이터가 기록-축적-재활용돼 글로벌 지식재산권(IP)과 원소스멀티유즈(OSMU, 하나의 원천을 여러 장르로 확산하는 전략)로 파급될 때,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비로소 행사 → 산업 → 국가브랜드라는 성장 사다리를 완성한다. 2026년, 12개 도시가 함께 여는 무대가 2.0의 출발점이다. 이 사업은 2021~2022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 2023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 2024~현재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로 확대·개편돼 왔다. 2021~2025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 성과와 평가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는 2021년 첫선을 보인 이후 5년간 전국 각지에서 이어졌다. 초기에는 수원화성, 부여 정림사지, 익산 미륵사지 등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이 중심이었고, 2023년에는 국가 지정 문화유산으로 확대, 2024년에는 강릉 대도호부 관아, 고흥 분청사기 요지, 수원·공주·부여·익산·진주 등 7개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2024년 공식 집계 기준 관람객은 148만 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우며, 국가유산 기반 야간 프로그램이 대중적 흡인력을 확보했음을 입증했다. 특히 '헤리티지 나이트 투어' 개념은 단순 관람을 넘어 체류와 소비를 동반한 도시경제 모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25년은 군산(구 군산 세관 본관)과 진주(진주성)를 시작으로, 고령(대가야 지산동 고분군)이 지난주 문을 열었다. 이어 제주(제주목 관아), 철원(철원 노동당사), 통영(삼도수군통제영)이 차례대로 이어지고, 양산(통도사)과 경주(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가 10월 무대를 장식한다. 올해 총 8개 도시가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로 헤리티지를 새롭게 경험하도록 한다. 성과는 문화·산업·사회 세 축에서 확인된다. 문화적으로 유산의 고유성을 디지털로 재해석해 체류형 매력을 높였고, 산업적으로 K-콘텐츠 개발 생태계와 지역 소상공인 참여가 확대됐으며, 사회적으로 지역 자긍심과 시민 향유가 넓어져 야간 특화 콘텐츠가 정착됐다. 하지만 동시에 한계도 드러났다. 대부분의 효과가 행사 기간에 집중되고, 종료 이후에는 사후 활용 및 확산 체계가 부족했다. 콘텐츠의 자산화와 산업적 확장은 미흡했고, 지역별 성과가 개별 사례로 흩어졌다. '행사가 끝나면 무엇이 남는가?'라는 이 질문이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2.0의 출발점이다.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2.0의 실행 전략 2.0은 볼륨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PDCA(Plan-Do-Check-Act)를 고도화하는 일이다. 현장의 감동을 데이터와 콘텐츠로 축적해 다음 도시로 전이시키려면, 유산×기술, 유산×지역, 유산×콘텐츠의 사후 확산 제도화가 동시에 굴러가야 한다. 그 첫 단추가 바로 '미래 경험 플랫폼'으로의 기획 전환이다. 1) 유산 × 기술 : 미래 경험 플랫폼 국가유산 미디어아트의 본질은 화려한 기술 시연이 아니다. 핵심은 장소특정적 유산의 의미를 예술적 창의성과 디지털 기술로 경험형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것이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대가야, 열두 개의 별', 철원 노동당사의 '모을동빛: 걷히는 구름, 비추는 평화'는 단순 매핑을 넘어 설화, 기억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각인시킨다. 핵심은 전시를 넘어 '독특한 경험'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2) 유산 × 지역 :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 진주성의 야간 프로그램이 숙박률을 끌어올리고 군산세관 일대가 상권 활력을 회복했듯, 개별 성과를 전국 모델로 확산하려면 도시별 '헤리티지 나이트 투어'의 가이드라인을 기본 요건으로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20~40분, 60~90분 두 코스 체계 이상, 안내·안전·동선·관람서비스에 대한 운영 체크리스트, 로컬 푸드·상점·숙박·교통의 연동 구성, 체류시간·지출·재방문율을 공통 지표로 수집·분석하는 데이터 체계를 갖추고, 이를 다음 연도 기획과 평가에 환류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지자체 공모 선정과 사업 교부, 평가 및 환류 과정에 반영하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생활문화 기반 지역경제 모델로 정착할 수 있다. 용어도 야간관광 대신 '헤리티지 나이트 투어'로 특화해 정책 목적과 사업 정체성을 선명히 할 필요가 있다. 3) 유산 × 콘텐츠 : 글로벌 확산 전략 행사가 끝난 뒤에도 성과가 살아 움직이려면 사후 활용-확산 모델이 필요하다. 핵심은 현장에서 구현된 디지털콘텐츠를 표준 메타데이터와 디지털 IP로 자산화하고, 이를 교육·굿즈·공연·전시·게임·음악 등으로 OSMU 확장하는 일이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지자체 공모 단계에서 사전 IP·OSMU 계획을 의무화하고, 선정 배점에 '사후 확산' 가중치를 명시하면, '행사 → 산업화 → 글로벌화'의 사다리가 구조화된다. 2026년, 12개 도시가 여는 2.0의 시작 국가유산청 공모 결과에 따르면 지난 7~8월 진행된 공모에는 전국 28개 지자체가 신청했고, 치열한 심사를 거쳐 17개가 경합해 최종 12개 도시가 선정됐다. 이번 결과는 단순한 지역 확대가 아니라,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2.0 체계로의 전환이라고 본다. 사업 규모와 예산의 확대 기조 속에서 전환이 가속될 여지가 크다. 2026년 개최 지역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연속 개최 지역 = '심화' 이미 성과를 입증한 도시들은 완성도를 높이고 확산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단순 반복이 아닌, 서사 고도화, 연출 차별화, OSMU 확산으로 모델을 공고히 하는 단계다. 2) 재도전 지역 = '개선' 2021~2024년 참여 경험이 있는 도시들은 콘텐츠 업그레이드와 운영 역량 강화를 과제로 삼는다. 과거의 시행착오를 보완하고, 시민 참여와 관광 연계성을 보완하는 진화형 모델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3) 신규 지역 = '실험' 처음 참여하는 도시들은 장소특정성을 살린 실험적 기획과 신기술 접목에 도전할 수 있다. 이들이 만드는 새로운 포맷은 향후 국가유산 미디어아트가 확장할 미래의 새로운 도전이 된다. 여기서 국가유산청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공동 마케팅‧브랜딩을 통해 전국적 네트워크화를 가속해야 한다. 이는 지역별 성과를 단순히 합산하는 수준을 넘어, 전국적 브랜드 벨트를 형성하는 전략이다. 더욱 직관적인 캠페인 액션플랜이 필요하다. 연속-재도전-신규 지역이 함께 열리는 2026년은, 성과의 심화와 혁신의 실험이 동시에 작동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다. 이는 브랜드화로 이어질 수 있는 분기점이다. 페스티벌을 넘어 국가브랜드로 세계유산도시들은 이미 야간 콘텐츠와 디지털 헤리티지를 방법론으로 도시 브랜드를 확장하고 있다. 프랑스 아를은 폐산업 공간을 '빛의 채석장'으로 전환했고, 일본 나라는 신성 공간의 경외감을 미디어로 재현했으며, 로마는 도시사(史) 전체를 내러티브로 엮어 글로벌 관광 허브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강점은 다르다. 전국에 촘촘히 분포한 국가유산과 도시별 원형 서사다. 이를 '장소특정 서사 × 디지털 공감'이라는 한국형 모델로 정립하면, 글로벌 소프트파워로 직결될 수 있다. 올해까지 지난 5년, 우리는 유산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이제는 2.0이다. 핵심은 현장에서의 감동을 어떻게 IP와 OSMU로 이어가느냐다. 성과를 축적-확산하는 제도화가 이루어질 때,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는 단순한 행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국형 유산 정책의 대표 브랜드로 도약한다. 문화는 소비가 아니라 전략이며, 유산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엔진이다.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2.0은 현장의 성과를 IP로, 도시를 브랜드로, 한국을 세계로 연결하는 실행 전략이다. 따라서 핵심 과제는 분명하다. 행사 운영뿐 아니라 사후 확산 계획(IP·OSMU)을 중점적으로 고려해 헤리티지 기반 K-콘텐츠를 개발해 K-컬처로 도약하는 것이다. 페스티벌에서 국가전략으로, 현장에서 미래산업으로.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2.0은 그 길 위에 서 있다. 글 = 이창근 예술-기술 칼럼니스트 & 미디어아트 디렉터

2025.09.29 18:05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AI 페스타, 미래의 맥박을 느끼다

세계가 한류(K-Culture)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은 매력적인 도시로,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문화기술과 융합해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광산업으로 구체화하며, K-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계와 만나는 무대에서, 문화는 곧 경제이자 미래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정책과 현장,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어떻게 K-컬처로 발현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탐색합니다. [편집자주] 다가오는 'AI 페스타 2025'는 단순한 박람회를 넘어선다. 인공지능(AI)이 기술의 언어를 넘어 사회 전반의 구조를 바꾸고 있는 지금, 이 행사는 산업과 정책, 생활 전반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현장이다. 금융에서 의료, 유통에서 엔터테인먼트까지, AI는 이미 모든 산업의 서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 현장을 곧 우리는 만나게 된다. 산업의 심장, AI의 맥박 178개 기업, 480개 부스. 올해 AI 페스타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다. 그러나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전시와 솔루션이 보여주는 산업 현황과 미래 가능성이다. '초거대 AI 서밋'에서 글로벌 전략이 오가고, 퓨처테크 컨퍼런스와 헬스케어 포럼, HR 테크 데이, 보안 컨퍼런스까지, 산업과 정책, 학술이 함께 맥박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기술이 어떻게 정책을 만나고, 산업이 어떻게 사회적 수요를 받아들이는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본부와 소속기관, 공공기관 전체의 디지털 혁신 총괄기관인 한국문화정보원의 참여는 눈길을 끈다. 국가 문화데이터를 집적·활용해 온 기관으로서, 이번에는 공공 문화데이터와 AI를 결합해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내놓는다. 단순한 개방을 넘어, 생성형 AI와 연결해 문화적 경험을 확장하는 실험이다. 2021년부터 올해 초까지 기관 임원으로 참여했던 경험을 비춰보면, 강점은 방대한 데이터와 이를 산업-민간으로 연결하는 플랫폼 역량에 있다. 이번 출품은 그 역량이 AI 생태계 속에서 어떻게 확장되고, 문화의 미래와 만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AI 페스타는 중소기업에게는 투자자와 파트너를 만나는 기회이고, 스타트업에게는 도약의 사다리, 대기업에게는 글로벌 전략을 점검하는 전초기지다. 동시에 대중에게는 AI가 삶을 어떻게 바꿀지를 미리 경험하는 체험장이 된다. 산업과 사회의 변화가 한 공간에서 교차하는 자리, 그것이 AI 페스타다. 헤리티지와 AI, 남겨진 과제 AI와 문화가 만나는 지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디지털 혁신 페스타 with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 페어'에 등장한 국가유산청의 디지털콘텐츠는 그 실마리를 보여주었다. 헤리티지 원형을 디지털로 구현하고, 콘텐츠화하는 과정은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접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올해의 선택은 달랐다. 국가유산청 차장 직속 국가유산산업육성팀은 상반기 경주에서 세계국가유산산업전을 주관했다. 그리고 지난 8~9월 DDP 예술 전시와 오스트리아 해외 무대에서 국가유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길을 택했다. 국제 홍보라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크지만, 산업과 기술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비워진 공간은 미래 과제를 남긴다. 허민 청장은 국가유산을 AI와 연결해 서비스화하겠다는 계획을 통해, 단순한 보존을 넘어 산업 생태계의 원천자원으로 확장하려는 시각을 보여준 바 있다. AI와의 접목, 디지털 기술과 예술의 실험 그리고 국제적 어젠다 참여는 그 철학을 구체화하는 장면들이다. 다만 실무진의 선택은 때로 외형적 성과에 집중하며, 산업화로 이어지는 길은 여전히 흐릿하다. 산업화는 선언이나 단기적 전시 성과가 아니라, 축적과 누적의 과정이다. 디지털 헤리티지가 산업 생태계의 토양에 깊이 스며들 때, 비로소 국가유산은 미래 산업의 뿌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AI 페스타는 그 과정이 실험되고 확장될 수 있는 무대가 될 잠재력을 품고 있다. 산업과 일상이 만나는 자리 AI 페스타는 산업계와 대중 모두를 향해 열려 있다. 기업에게는 혁신의 각축장이자 협력의 시장이고, 시민에게는 미래를 미리 체험하는 축제다. 기술의 최전선과 사회적 감각이 동시에 구현되는 자리, 산업과 시민이 함께 호흡하는 무대다. 산업계의 눈으로 보면 이곳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협력 네트워크가 태어나는 실험실이고, 대중의 눈으로 보면 AI가 직장과 가정, 도시와 교육을 어떻게 바꿀지를 확인하는 학습장이 된다. 그래서 이 페스타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선택할 미래의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다. 현장에서 융합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온 제작자의 시선으로도, AI 페스타는 기술의 쇼케이스를 넘어선다. 산업 전략과 정책 방향, 예술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종합전시회이자, 한국이 준비하는 미래의 지도를 가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AI가 바꾸는 시대, 그 변화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무대. 산업계에는 협력과 혁신의 기회를, 시민에게는 내일을 미리 경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것이 AI 페스타다. 오는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코엑스 A홀에서 그 미래의 풍경이 펼쳐진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활동하며, 융합예술과 디지털콘텐츠를 설계·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지역문화재단과 지역콘텐츠거점기관,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 공공기관에서 임원을 지냈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고정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9.29 10:00이창근

[문화엔진] 성남페스티벌, '수사'는 넘쳤지만

'문화엔진'은 우리 문화의 가치 재창출을 위해 칼럼니스트의 비평적 시각과 기자의 보도적 시각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시리즈입니다. 이 연재는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를 비롯한 현장 전문가와 지디넷코리아 기자가 함께 집필하며, 독자에게 문화정책·콘텐츠산업·예술현장에 대한 새 소식을 전하고 인사이트를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K-컬처가 미래산업의 엔진으로 재조명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성남페스티벌이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성남시는 '도시 브랜드 축제'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매년 새로운 총감독을 위촉하고 대표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미디어아티스트가 차례로 지휘봉을 잡았고, 분당중앙공원과 탄천, 희망대공원 등 도심 공간이 차례로 공연장이 되었다. 3회를 맞은 지금, 남은 것은 장면의 잔상보다 도시가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물음이다. 축제란 본래 시민이 함께 즐기며 도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성남페스티벌은 매번 거대한 수사와 글로벌 선도라는 구호를 내세웠으면서도, 정작 시민과 지역을 중심에 두는 축제의 본령을 채우지 못했다. 2023년은 환경 훼손으로 논란이 있었다면, 2024년은 정체성 부재, 2025년 올해는 개념 과잉과 성남다움 부족이라는 문제로 이어졌다. 성남페스티벌의 출발은 2023년이었다. 영화감독 출신 총감독이 이끈 첫해의 대표 프로그램은 '대환영'이었다. 탄천 수상무대에서 펼쳐진 장대한 퍼포먼스는 스펙터클을 강조했지만, 곧바로 환경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탄천은 성남의 중요한 생태적 자산이자 시민의 일상 공간이다. 그곳에 무대를 설치하고 조명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 훼손은, '축제를 위해 환경을 희생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스펙터클은 있었지만, 시민적 설득력은 부족했다. 2024년에는 연극 연출가 출신 총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주무대에 오른 것은 디즈니 IP에 크게 의존한 'Immersive Emotions'였다. 해외 유명 콘텐츠를 끌어와 몰입형 공연을 만든 시도는 화려했지만, 지역 축제로서 성남만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했다. 드론라이트쇼가 연계 행사로 화제를 모았으나, 그것은 별도 사업일 뿐 시민 축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무대는 아니었다. 결국 두 해를 거치며 드러난 핵심은 환경을 거스른 무대 그리고 외부 IP 의존으로 인한 정체성의 공백이었다. 올해 대표 프로그램 현장 올해 성남문화재단은 뉴미디어 아티스트이자 현직 교수를 총감독으로 위촉했다. 대표 프로그램으로 내세운 것은 '시네 포레스트: 동화'였다. 재단은 이를 '세계 최초 숲극장'이라 홍보하며, '확장된 공감(augmented empathy)', '미디어 심포니'와 같은 개념어로 수놓았다. 성남시민인 필자는 지난 20일 현장을 찾았다. 분당중앙공원의 숲 전체를 캔버스 삼아 진행된 프로젝션매핑은 시각적으로 장관을 연출했다. 콘트라스트와 미장센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무와 지형, 나뭇잎 하나하나가 영상의 스크린이 되고, 바람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순간은 분명 흥미로웠다. 개념어는 기대를 높였지만, 현장 체감은 그 말에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 비 내리는 숲에서 합창단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민으로서 잠시나마 축제가 우리 도시의 이야기로 살아나는 순간을 느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70인 오케스트라와 1천명 시민합창단의 울림은 진정한 감동을 주었다. 합창단이 노래할 때 시민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무대의 일부가 되었고, 음악이 도시의 숲에 울려 퍼질 때 축제의 공동체적 의미는 확실히 살아났다. 이 장면은 '자연을 무대화하겠다'는 기획의 진정성이 시민 참여를 통해 현장에서 증명된 드문 성취였다. '도시의 자연을 무대화'하려는 발상 자체는 신선했고, 시민이 참여한 장면은 축제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공연 전체의 구성을 지탱하는 서사와 의미는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았고, 거창한 개념어와 현장의 실제 경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 숲·수목·지형을 투사체로 삼는 방식은 창경궁 후원 '물빛연화'(상설), 통영 '디피랑'(상설), 원주 간현관광지 '나오라쇼'(시즌제) 등 이미 전국에서 이어져 왔다. '서울라이트 DDP' 역시 대형 미디어파사드(222m 프로젝션매핑)를 시즌별로 선보여 왔다. 성남의 시도를 전례 없는 '세계 최초'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단은 이번 성남페스티벌 대표 프로그램의 연출을 '세계 최초'라고 말한다. 결국 표현은 거창했지만, 현장의 공감과 체험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성남문화재단은 지난해까지 대표 프로그램을 '메인제작공연'이라 불렀고, 올해는 이를 '메인콘텐츠'로 바꾸었다. '메인'이라는 표현은 대표작을 지칭하는데 자연스럽다. 그러나 '제작'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재단이 창작과 연출의 주체임을 과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주며, 축제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협소하게 만든다.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그니처 쇼'나 '대표 프로그램'과는 결이 다른, 기관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표현이었다. 결국 '메인콘텐츠'라는 용어로 전환했지만, 개념적 혼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성남문화재단의 축제 인식 올해는 용어를 바꿔 '메인콘텐츠'라는 표현을 썼다. 방향 전환은 긍정적일 수 있었지만, 리플렛 등에 사용된 잘못된 영문 표기는 또 다른 문제를 드러냈다. 프로그램북에 'Main Contents'라는 표기가 쓰였는데, 이는 부정확한 표현이다. Contents는 목차나 항목 나열을 뜻한다. 축제의 핵심을 지칭하려면 'Main Content'라 써야 한다. 단순 오탈자가 아니다. '콘텐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발음대로 인식한 조직적 기본기 결핍의 신호다. 글로벌 선도를 말하려면, 용어 하나도 정확히 써야 한다. 성남문화재단 임직원들이 '콘텐츠'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를 바로잡아주는 임원, 간부가 부재했다는 상징적 현실이다. 콘텐츠란 단순히 한 편의 쇼가 아니라, 이야기를 담고, 의미를 축적하며, 시민 경험을 기록하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이를 발음 나는 대로 옮긴 외래어 정도로만 이해했기에, 용어를 바꾸어도 결국 껍데기뿐인 결과에 머무른 것이다. 더구나 이 오류는 배포 홍보물 공식자료에서 반복되었다.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기본 개념 검증 시스템이 부재한 조직 문화를 드러낸다. 글로벌 선도, 세계 최초를 외친 재단이 정작 가장 기초적인 용어 하나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점은 기관의 기본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올해 성남페스티벌의 본질적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 최초 숲극장', '확장된 공감', '미디어 심포니' 같은 개념은 넘쳤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시민이 체감한 경험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즉 개념은 과잉이었지만, 구현은 추상적이었다. 성남페스티벌은 지난 3년간 매번 다른 총감독을 위촉해 색다른 축제를 만들려 했다.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미디어아티스트가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겉으로는 다채로웠으나, 결과는 공통적으로 성남만의 서사 부재였다. 영화적 스펙터클, 무대극적 연출, 뉴미디어의 개념어가 교차했지만, '성남의 이야기'는 부족했다. 수사(修辭)가 아닌 서사(敍事)로 성남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사실과 맞지 않은 '세계 최초'라는 홍보문구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시민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울림은 이번 축제에서 가장 값진 장면이었다. 숲을 무대화하려는 발상과 맞물리며, 축제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공동체적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을 단발성 이벤트로 소비하지 않고 도시의 문화자산으로 축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축제는 도시의 얼굴이자 시민의 무대다. 성남문화재단이 진정한 도시 축제를 만들고 싶다면, 표기는 정확히, 개념은 검증해, 경험은 자산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남페스티벌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도시의 서사를 남길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도시 브랜드 축제로 자리매김할 유일한 길이다. 결국 축제는 재단의 무대가 아니라 시민의 이야기다. 글 = 이창근 예술-기술 칼럼니스트 & 미디어아트 디렉터

2025.09.23 13:44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경주 APEC, 유산의 힘

세계가 한류(K-Culture)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은 매력적인 도시로,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문화기술과 융합해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광산업으로 구체화하며, K-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계와 만나는 무대에서, 문화는 곧 경제이자 미래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정책과 현장,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어떻게 K-컬처로 발현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탐색합니다. [편집자주] 정상회의는 국가의 정치·경제 협상장으로 주목받지만, 그 무대의 품격을 결정짓는 것은 문화다. 올해 경주에서 열리는 에이펙(APEC) 정상회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신라 천년 고도에서 세계 정상들을 맞이하는 자리는, 한국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자산인 K-헤리티지를 세계에 드러낼 기회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순간은 쉽게 지나간다. 보존-연구에서 얻은 성과를 어떻게 활용해 산업과 외교로 확장하느냐, 그것이 문화외교의 전략을 가르는 기준이다. 이번 경주 APEC은 그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30년의 시간, 세계유산에서 정상외교로 경주는 우리 유산의 상징적인 지역 중 하나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최초 등재되며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올해는 그로부터 30주년을 맞는 해다. 9월 21일 경주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최보근 국가유산청 차장이 기념사를 전한 것처럼, 세계유산의 가치는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한국의 문화·자연유산이 세계와 만난 역사가 30년을 채운 지금,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이자, 미래를 향한 전환점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유산청은 경주를 단순한 회의 장소가 아니라 세계에 한국의 문화정체성을 보여줄 무대로 준비하고 있다. 동궁과 월지, 월성, 황룡사지 등 신라왕경의 핵심유적을 정비하고, 성덕대왕 신종 타종, 발굴 성과 공개, 야간 미디어아트까지 연계하는 구상이다. 각각의 사업은 독립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정상회의라는 국제행사 속에서는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 경주의 유산은 과거의 자취를 넘어, 오늘의 경험이자 내일의 자산으로 새롭운 서사를 갖는다. 종소리와 빛, 체험으로 각인되는 문화외교 문화외교는 체험으로 각인된다. 그 대표적 장면이 될 것이 성덕대왕 신종 타종 행사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종을 세계 정상들이 직접 울리는 순간, 금속의 진동은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로 변환된다. 정치적 언어보다 강력한 상징이자, 한국만이 내놓을 수 있는 독특한 외교 장치다. 경주 대릉원에서 준비 중인 야간 미디어아트도 주목할 만하다. 고분이 빛으로 깨어나며, 과거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 움직이는 무대로 바뀐다. 유산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 움직이는 무대로 변한다. 고분 외벽의 3D 콘텐츠는 신라의 시간을 오늘의 감각으로 불러내고, 관람객은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 장면이 일회성 이벤트로 머문다면 아쉬운 일이다. 대릉원의 밤은 단발적 시도가 아니라, '경주의 밤'이라는 장기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세계인이 낮에는 유적을 답사하고, 밤에는 살아 움직이는 유산의 무대를 만나는 구조야말로 관광과 외교, 산업을 함께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될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APEC을 계기로 신라왕경 발굴 성과 공개도 준비하고 있다. 발굴은 더 이상 땅속 기록을 꺼내는 작업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 월성 개방행사 '빛의 궁궐'이 보여주었듯, 발굴은 이제 시민과 함께 나누는 경험이자 학습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흙 속에서 드러난 흔적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의 관람객이 직접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이야기로 바뀌고 있다. 세계 정상단이 이런 현장을 직접 보게 된다면, 경주는 '박제된 고도'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역사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땅속에서 드러난 기와 조각과 성벽 흔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와 미래 세대가 함께 이어갈 이야기로 바뀐다. 이처럼 발굴 성과를 어떻게 경험으로 변환하느냐도 정책의 성패를 좌우한다. 정상회의 현장에는 헤리티지 굿즈 팝업스토어도 마련된다. 각국 대표단이 한국의 유산을 기념품으로 손에 쥐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기억을 나누는 행위가 된다. 작은 물건 하나가 국제적 기억의 매개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메시지가 된다. 경주에서 부산으로, 세계유산 외교의 길 APEC에는 경주스마트미디어센터가 주관하고 콘텐츠기업 토즈가 제작하며, 박진호 박사(고려대 연구교수)가 자문한 XR모빌리티버스가 함께 달린다. 차량 내부 4면을 디스플레이로 꾸미고, 좌석마다 다국어 스마트 디바이스를 비치해 경주의 풍경과 신라의 역사를 50분 동안 몰입형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이동이 단순한 교통이 아니라 체험이 되는 순간, 문화외교의 상상력은 한층 넓어진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회의가 끝난 뒤 무엇이 남을 것인가. 성덕대왕 신종의 울림, 대릉원의 빛, 발굴 현장의 체험, 굿즈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작은 기념품. 그것들이 한순간의 장면으로 흩어질지, 아니면 한국 문화외교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지는 우리의 의지와 준비가 결정할 것이다. APEC 정상회의는 외교부와 경북도, 경주시가 틀을 마련하고, 문체부는 문화예술의 품격과 K-콘텐츠를 채워 넣는다. 이 무대에서 국가유산청이 맡은 역할은 단순한 보존이나 정비가 아니다.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고유한 힘, 곧 역사와 정신을 품은 K-헤리티지를 글로벌 소프트파워로 브랜딩하는 일이다. 이번 경주 APEC이 국가유산청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이 성과가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로 이어진다면, 경주의 경험은 한국 문화유산이 지닌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세계와 나누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주가 천년의 기억을 경험으로 되살려낸 무대라면, 부산은 바다를 배경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국제도시다.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부산은 유산의 가치를 국제 협력의 언어로 확장하는 자리이자, 한국이 세계와 만나는 문화외교의 관문이다. 유산의 힘이 경주의 땅에서 부산의 바다로 이어질 때, 한국은 역사를 품고, 현재를 새기며, 내일의 길을 열어가는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활동하며, 융합예술과 디지털콘텐츠를 설계·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지역문화재단과 지역콘텐츠거점기관,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 공공기관에서 임원을 지냈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고정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9.22 09:15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케이팝과 같은 한국적 컨템포러리 댄스를 만났다

세계가 한류(K-Culture)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은 매력적인 도시로,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문화기술과 융합해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광산업으로 구체화하며, K-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계와 만나는 무대에서, 문화는 곧 경제이자 미래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정책과 현장,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어떻게 K-컬처로 발현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탐색합니다. [편집자주] 결핍은 단순한 부족일까? 아니면 새로운 감각을 여는 문일까. 9월 1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무용단알티밋 제7회 정기공연 '시선 너머의 결핍'은 이 질문을 몸과 이미지, 사운드로 구현하며 관객 앞에 내놓았다. '관계의 심연'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무대는 윤효인의 '초상'과 남수빈의 '빙빙'으로 구성된 더블빌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프로그램북의 순서와 달리 실제 공연이 '초상'으로 시작해 '빙빙'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배열 변경이 아니라 응시에서 유희로, 정지에서 반복으로 이어지는 곡선을 그려내며 결핍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입체적으로 드러냈다. 관객은 두 작품이 연작처럼 이어지는 과정에서 긴장과 해방, 고요와 축제를 차례로 체험했다. 응시와 정지의 '초상' 윤효인의 '초상'은 암전 속에서 막을 열었다. 최소한의 조명만 비춘 무대에서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용수의 신체와 미세한 움직임에 응집되었다. 흰색에서 검정으로 스며드는 색의 스펙트럼과 마스크와 눈을 형상화한 오브제는 단순한 소품을 넘어 '시선이 곧 존재를 규정한다'라는 선언을 시각적으로 각인시켰다. 움직임은 최소화되었지만, 정지와 버팀, 응축된 호흡이 곧 언어가 되었다. 정지의 순간마다 관객의 호흡도 함께 멈추었고 그 멈춤은 결여가 아니라 감각을 깨우는 장치였다. 결핍은 결여가 아니었다. 오히려 존재를 드러내고 무대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프레임이었다. 응시가 무용수의 몸을 의미화하는 순간 무대는 단순한 장면을 넘어 관계와 정서의 심연을 포착하는 '정지된 초상'으로 확장되었다. '초상'은 단일 작품을 넘어 철학적 성찰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안무가는 '타불라 라사(깨끗한 석판)'라는 개념을 호출해 삶의 출발점과 결핍의 의미를 나란히 놓았다. 인간이 가진 한계와 시작의 가능성은 이 개념 속에서 동시에 드러났고, 관객은 결핍을 결여가 아니라 감각을 예민하게 세우는 통로로 받아들였다. 반복과 유희의 '빙빙' 남수빈의 '빙빙'은 앞선 정적 긴장을 단숨에 해방시켰다. 원형 동작을 반복하고 가속하며 끊임없이 변주하는 안무는 관계의 물리학을 무대 위에 선명하게 드러냈다. 무용수들은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충돌하며 다시 흘러가는 자리로 이동했다. 작품의 구조는 '반복의 원형 → 정지된 풍경 → 충돌과 수용 → 흐르는 자리'로 전개되며 결핍을, 관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제시했다. 무대의 첫인상은 패션쇼와 클럽 파티였다. 화려한 워킹과 리드미컬한 군무, 강렬한 사운드와 조명이 결합해 현란한 장면을 빚어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의상은 불완전한 질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아트디렉터를 맡은 백진주 무용단알티밋 공동대표의 말처럼 “멀리서 보면 세련되지만 가까이서 보면 온전치 않은 옷”이었다. 이 불완전함은 결핍의 미학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였다. '빙빙'은 단순한 유희의 장이 아니었다. 반복되는 놀이 속에서 권력의 기울기와 애정, 권태와 갈등이 교차했고 놀이가 지속될수록 균열은 깊어졌다. 그 틈 속에서 결핍은 새로운 관계를 생성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관객은 반복의 장치가 펼쳐내는 무대 속에서 인간관계의 모순과 생동감을 동시에 경험했다. 두 작품의 공명과 집단적 정체성 '초상'과 '빙빙'은 형식적으로는 뚜렷하게 갈라졌다. 전자는 응시와 정지의 언어를, 후자는 반복과 유희의 언어를 택했다. 그러나 두 작품은 결핍이라는 화두 아래 서로의 반향을 일으키며 하나의 전체를 이루었다. 이원지 기획자가 말했듯 “연작이라기보다 각자의 해석”이었지만 병치 되는 순간 결핍의 다층적 얼굴이 선명해졌다. 특히 '정지된 결핍(초상) → 반복되는 결핍(빙빙)'으로 이어지는 순서는 공연 전체의 내러티브를 형성했다. 관객은 고요에서 발산으로, 응시에서 유희로 이동하며 결핍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체험했다. 이는 단순한 작품의 병렬이 아니라 주제를 확장하는 치밀한 구조였다. 무용단알티밋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동문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창작과 출신들이 개인 중심의 활동을 펼쳐온 데 비해 실기과 동문은 집단적 창작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번 무대는 각 안무가의 개성이 뚜렷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핍'이라는 질문 아래 하나의 서사로 통합되었고, 이는 곧 알티밋의 집단적 정체성을 증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K팝과 K댄스, K-컬처를 향해 '시선 너머의 결핍'은 결핍을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존재와 관계를 새롭게 짜는 자원으로 제시했다. 응시와 정지로 구축된 '초상', 반복과 유희로 폭발한 '빙빙'은 서로 다른 어법으로 결핍의 역설을 드러냈지만, 결과적으로 상호 보완적이었다. 특히 절제된 조명과 미니멀한 움직임, 패션쇼와 클럽 파티를 연상시키는 시각적 감각은 한국춤의 경계를 넘어 대중문화와 교차했다. 이는 단순한 순수무용의 실험에 그치지 않았다. 케이팝 무대의 시각성과 에너지, K-댄스가 동시대 언어로 확장되는 현장, K-컬처가 세계적 문화 자산으로 전환되는 흐름과 직결되어 있었다. 무대 위의 결핍은 곧 한국적 동시대성을 창출하는 원천이었고 그것이 세계와 만나는 한국 춤의 언어임을 웅변했다. 결핍은 결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감각을 깨우고 존재를 드러내는 무대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프레임이었다. 그 프레임은 케이팝이 세계를 매혹하듯 한국적 컨템포러리 댄스가 나아갈 길을 환하게 밝혔다. 결국 이 공연은 이렇게 요약된다. “케이팝과 같은 한국적 컨템포러리 댄스를 만났다.” 무용단알티밋은 이번 무대를 통해 동시대 한국무용이 실험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품은 새로운 무대로 진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활동하며, 융합예술과 디지털콘텐츠를 설계·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지역문화재단과 지역콘텐츠거점기관,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 공공기관에서 임원을 지냈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고정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9.18 17:00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뿌리에서 꽃으로, K-헤리티지

세계가 한류(K-Culture)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은 매력적인 도시로,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문화기술과 융합해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광산업으로 구체화하며, K-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계와 만나는 무대에서, 문화는 곧 경제이자 미래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정책과 현장,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어떻게 K-컬처로 발현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탐색합니다. [편집자주] 국가유산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는 박제가 아니다. 오늘의 일상을 비추는 거울이며, 내일의 미래를 여는 자산이다. 세계가 K-컬처로 한국을 기억하는 지금, 그 지속 가능성을 지탱할 근간은 바로 문화·자연·무형유산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8일 제시한 새로운 비전 '문화강국의 원천 K-헤리티지, 국민 곁으로 세계 속으로'는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관건은 그것을 어떻게 실행하고, 어떻게 산업·정책 구조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가유산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내고, 어떻게 경험으로 전환하며, 어떻게 희망으로 확장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정책과 산업의 성장 구조 속에 정착시킬 것인가. 이 두 축이 함께 작동할 때, K-헤리티지는 비로소 대한민국의 미래 전략이자 국가브랜드가 된다. SID 방법론 : Story - Impact - Dream 헤리티지를 콘텐츠로 바꾸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철학의 문제다. 필자는 이를 스토리-임팩트-드림(SID 방법론)으로 말한다. 이 방법론은 보존과 활용의 절차가 아니라, 창작의 방향과 Heritage Industry 비전을 제시하는 개념적 틀이다. 스토리(Story·정신) : 스토리는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다. 우리 유산에 깃든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해 창작과 산업의 출발점이 되는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단계다. 기록과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신이 살아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시장에서 힘을 얻는다. 임팩트(Impact·경험) : 임팩트는 충격이 아니라 '경험'이다. 이야기가 감각과 마음에 스며들어 체험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곧 임팩트다. 궁궐의 빛을 따라 걷는 경험, 자연유산과 마주하는 순간, 예술과 기술이 결합한 첨단 콘텐츠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몰입적 체감으로 확장된다. 유산은 그때 관람객의 눈과 몸, 감각과 기억 속에 각인된다. 첨단기술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 진정한 임팩트는 장소성과 서사에서 비롯된다. 드림(Dream·희망) : 드림은 막연한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희망'이다. 경험이 개인의 추억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로 확장될 때, 유산은 국가브랜드와 산업을 여는 성장 자원이 된다. 재방문율, 지역 정체성 강화, 청소년의 학습 효과, 세계적 확산은 모두 드림이 만들어내는 실질적 성과다. 결국 SID 방법론은 정신 → 경험 → 희망으로 이어지는 창작과 산업화의 길이다. 우리 유산이 살아 있는 이야기로 번역되고, 체험으로 확장되며, 미래로 이어질 때 비로소 콘텐츠와 산업으로 연결된다. K-헤리티지 성장 모델 : Heritage → Content → Culture 창작이 현장을 움직인다면, 정책은 그것을 제도와 산업 속에서 지속시키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K-헤리티지 성장 모델이라 정의한다. 단순한 보존을 넘어 유산을 원천 IP로 확보하고, 콘텐츠로 가공해, 글로벌 K-컬처로 확산하는 성장의 경로다. 이는 국가유산청이 최근 제시한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으며, 유산을 기록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브랜드이자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려는 흐름을 반영한다. K-헤리티지(뿌리) : 유산을 국가적 대표 문화브랜드로 정립하고, 디지털화와 해석을 통해 원천 자산을 확보하는 단계다. 이는 과거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콘텐츠의 씨앗을 준비하는 '뿌리'다. K-콘텐츠(줄기) : 헤리티지는 공연·전시·관광·교육 등 다양한 장르로 가공되어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전환된다. '줄기'는 산업적 확산과 경제적 효과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K-컬처(꽃) : 세계 무대에서 활짝 핀 '꽃', K-컬처는 다시 우리의 유산을 돌아보게 한다. 그 성과는 보존과 재창조로 이어지고, 새로운 뿌리를 키우는 힘이 된다. 이 모델은 현장에서 이미 입증되고 있다. 2024년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7개 지역에서 148만 명의 관람객을 모으며 약 925억 원의 경제효과를 기록했다. 올해는 8개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내년에는 12개 지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문화유산은 더 이상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역경제와 관광산업을 움직이는 실질적 문화 엔진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 선순환은 콘텐츠산업 전반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2024년 국내 콘텐츠산업은 매출 170.4조 원, 수출 139.3억 달러, 고용 69만 7천 명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문화기술과 콘텐츠가 국가경제의 거대한 성장 동력임을 증명한다. K-헤리티지가 원천 IP로서 콘텐츠산업과 결합할 때, 그 성과는 단순한 산업적 차원을 넘어 국가브랜드와 글로벌 소프트파워로 확장될 수 있다. 정책의 역할은 이 성장 모델이 끊기지 않도록 안정적인 연료를 공급하고, 산업·관광·교육을 잇는 플랫폼을 설계하는 데 있다. K-헤리티지가 뿌리라면 K-콘텐츠는 줄기, K-컬처는 꽃이다. 이 [뿌리-줄기-꽃]의 선순환이야말로 한국 문화산업이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문화적 성장 공식이다. SID 방법론과 K-헤리티지 선순환 모델의 이중 프레임 K-헤리티지는 보존의 언어를 넘어섰다. 창작의 철학과 정책의 구조가 만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가치가 싹튼다. SID 방법론은 유산의 정신을 경험과 희망으로 확장하는 길이고, K-헤리티지 성장 모델은 그것을 국가적 제도와 산업으로 이어주는 다리다. 뿌리 없는 꽃은 피지 못한다. 스토리 없는 콘텐츠는 시장에서 설 수 없다. 정신은 이야기로, 이야기는 경험으로, 경험은 희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희망은 다시 뿌리로 환류되어 또 다른 순환을 만든다. 이것이 K-헤리티지의 길이다. 철학과 구조가 함께 움직일 때, 문화·자연·무형유산은 더 이상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내일을 여는 힘이자, 세계 속에 한국을 각인시키는 브랜드 자산이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활동하며, 융합예술과 디지털콘텐츠를 설계·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지역문화재단과 지역콘텐츠거점기관,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 공공기관에서 임원을 지냈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고정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9.17 16:34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한국다움의 뿌리에서 K-컬처의 날개로

세계가 한류(K-Culture)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은 매력적인 도시로,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문화기술과 융합해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광산업으로 구체화하며, K-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계와 만나는 무대에서, 문화는 곧 경제이자 미래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정책과 현장,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어떻게 K-컬처로 발현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탐색합니다. [편집자주] 약 1조 4천600억원. 국가유산청의 2026년 예산이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보존의 비용에서 전략의 자산으로, 과거의 무게에서 미래의 날개로 옮겨가는 분기점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1조원 돌파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제는 세계화와 지역발전, 국가유산 원천 신규 콘텐츠 개발까지 포괄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국가유산이 미래 경쟁력을 여는 신호탄으로 다가온다. 유산이 콘텐츠가 될 때 이번 예산의 의미는 단순한 숫자에 있지 않다. 숫자 너머 우리가 주목해야 할 축은 바로 국가유산 기반 K-콘텐츠다. 최근 OTT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은 K-팝과 전통 무속 서사를 결합해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해외에서 제작됐지만, 한국의 전통적 심미성과 상징성을 전략적으로 담아낸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했음을 증명했다. 첨단 3D 애니메이션 기술에 K팝 공연 연출, 한국문화 감수성을 얹은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판소리와 탈춤, 석굴암과 조선왕릉, 갯벌과 제주 화산섬까지, 문화·자연·무형유산은 끝없는 이야기의 원천이다.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내고 디지털 기술로 확산할 때, 세계가 공감하는 K-콘텐츠로 다시 태어난다. 국가유산은 단순히 지켜야 할 과거가 아니라, 미래 콘텐츠 시장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뿌리다. 한국문화가 세계로 뻗어가는 힘은 결국 이 원천에서 비롯된다. 세계화와 지역발전, 헤리티지가 열어갈 길 내년에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다. 세계유산 등재와 보호 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회의로, 196개국 대표단과 국제기구에서 모인다. 한국이 처음으로 이를 개최한다는 사실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 무대는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할 기회이자, 한국다움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시험대다.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글로벌 소프트파워로 비상하며, 문화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은 이러한 세계화를 실질로 만드는 핵심 수단이다. 기록과 데이터를 남기는 차원을 넘어, 전 세계 누구나 우리의 유산을 경험하게 하는 보편적 언어다. 가상현실과 실감형 콘텐츠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외교의 도구가 된다. 이는 국가브랜드를 확장시키고, 글로벌 K-컬처의 토대를 강화한다. 문화가 국가경쟁력으로 작동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지역발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다. 유산은 지역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이다. 이를 K-관광으로 연결할 때, 지역은 단순히 '보존의 장소'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난다. 지역민이 체감하고 방문객이 몰려드는 순간, 국가유산은 경제적 활력을 만들어낸다. 지역이 체감할 수 있는 균형 발전이 유산을 통해 구체화 될 때, 진정한 문화강국의 기반이 마련된다. 결국 세계화와 지역발전은 따로 떨어진 길이 아니다. 국제 무대와 지역 현장이 동시에 움직여야 전략이 완성된다. 국가유산, 미래를 여는 힘 이제는 액션플랜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국제 무대에서 국가유산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디지털 전환을 산업과 생태계로 확장시킬 수 있을지, 관광 활성화를 지역발전의 성과로 연결할 수 있을지다. 허민 청장은 “국가유산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국민의 정체성이자 세계가 공감할 K-컬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예산은 그 선언을 시험하는 첫 무대다. 그래서 탄탄한 마스터플랜이 중요하다. 민간의 창의와 현장의 실행력이 결합할 때 비로소 정책은 성과로 이어진다. 이번 예산은 방향을 분명히 했다. 세계화, 지역발전 그리고 콘텐츠. 이 과제들은 하나의 목표를 가리킨다. 국가유산을 한국다움의 뿌리에서 K-컬처의 날개로 확장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 한국다움을 각인시키고, 디지털 전환으로 세계가 공감하는 콘텐츠를 확산하며, 지역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1조 4천600억원이라는 숫자가 진짜 의미를 가진다. 문화가 국가경쟁력이라는 사실을 국가유산이 입증할 때, 한국은 '빅5 문화강국'을 넘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소프트파워 유산강국의 저력을 발휘할 시간이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과 디지털콘텐츠를 설계·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9.08 15:41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글로벌 소프트파워 유산강국

세계가 한류(K-Culture)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은 매력적인 도시로, 문화는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문화기술과 융합해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광산업으로 구체화하며, K-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계와 만나는 무대에서, 문화는 곧 경제이자 미래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정책과 현장,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어떻게 K-컬처로 발현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탐색합니다. [편집자주] K-팝과 드라마, 영화, 게임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러한 성과의 지속 가능성은 국가유산이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세계유산, 인류무형유산, 세계기록유산은 국가이미지와 문화정책 실현의 전략적 기반이다. 한국은 문화강국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유산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한민국, 유네스코 등재 유산 종합순위 11위...헤리티지 글로벌 소프트파워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유산 17건(세계 공동 18위, 창덕궁 등), 인류무형유산 23건(세계 공동 4위, 판소리 등), 세계기록유산 20건(세계 5위, 훈민정음 해례본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60건의 등재로 세계 종합순위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가입국 196개국 가운데, 한국이 명확한 경쟁 우위를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등재 건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한국은 유형과 무형, 기록유산을 균형 있게 확보한 전 세계적으로 드문 국가다. 국제사회에서 문화산업의 원천자산을 다양하게 보유한 국가라는 점에 경쟁력이 있다. 이러한 구조적 강점이 한국을 '문화강국'을 넘어 역사문화를 기반으로 한 '유산강국'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유네스코 유산 등재는 상징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문화자산이다. 세계유산은 인바운드관광의 성장 동력으로, 인류무형유산은 세대 간 전승과 창의성의 자산으로, 세계기록유산은 지식과 기억을 이어주는 지구촌의 공공자산으로 기능한다. 경주 석굴암·불국사와 수원화성이 세계유산으로 도시브랜드를 강화된 것도, 김장문화가 국제교류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들이 직접 배우고 경험하는 대표 사례가 된 것도 모두 헤리티지의 힘이다. 결국 유산은 단순한 과거의 산물이 아니다. 문화산업의 원천이며, K-콘텐츠의 소재이자, 국가 외교력을 높이는 전략 자산이다. K-헤리티지를 가장 한국적인 K-콘텐츠로 제작해 전 세계에 확산하는 K-컬처는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만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핵심 솔루션이다. 대한민국, 유산 중흥 선도국...케데헌 이을 새 콘텐츠 창작 필요 지난 7월 울산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한국 선사문화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입증한 성과다. 이제 '한양의 수도성곽'이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올릴 차례다.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은 조선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역사도시의 상징이자, 오늘날 시민 생활과 공존하는 살아 있는 자산이다.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는 협약국 196개국 대표단과 관계자 3천여 명이 참석한다. 한국의 유산정책이 국제사회의 평가와 주목을 동시에 받는 무대다. 이제 한국은 보존을 넘어 유산의 가치를 산업과 외교로 확장해, 부흥을 이끄는 '유산 중흥 선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OTT 공개 융복합 애니메이션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은 K-팝을 오컬트·뮤지컬적 기법으로 확장해 세계적 호응을 얻은 성공사례다. 제작국가는 외국이지만, K-팝을 소재로 한 서사가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 작품은 한국문화가 글로벌 콘텐츠로 확장할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적 특성을 담아내는 구체적 내용과 방식이 앞으로 더욱 중요하다. 결국 이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의 유산과 전통은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문화강국을 넘어 유산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유산을 산업과 외교 자산으로 연계하는 전략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한국 문화정책의 미래 성장 경로다. 세계 속 대한민국 역사문화 경쟁력, 유네스코 등재 유산 대한민국은 이미 문화강국이자 유산강국이다. 세계유산협약 가입국 196개국 중 11위라는 성적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앞으로 국가 전략으로 확장해야 할 중요한 기반이다.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는 그 전략을 국제사회 앞에서 입증할 무대다. 보존과 활용을 넘어 유산의 중흥으로 확장하며, 유산을 관광·디지털·외교 자원으로 연결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유산을 미래 성장 전략으로 전환할 결정적 순간이다. K-헤리티지는 K-컬처의 원천이다. 대한민국이 이 토대를 국가 전략으로 삼을 때, 우리는 글로벌 소프트파워 유산강국으로 도약하며 21세기 문화시대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다. 부산은 그 도약을 전 세계가 지켜보는 첫 무대가 될 것이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과 디지털콘텐츠를 설계·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 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지디넷코리아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9.01 07:47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도시를 그리다

서울 동북권 창동역에 자리 잡은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이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이곳은 단순한 과학관이 아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이라는 미래기술을 전시와 체험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서울이 지향하는 미래도시 플랫폼의 정체성을 압축해 보여준다. 필자가 현장을 참관하고 느낀 인상은 분명했다. 과학관은 교육과 체험의 장을 넘어, 과학과 예술, 시민과 도시가 함께 호흡하는 새로운 K-컬처의 무대로 평가할 수 있다. 상설·기획전시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개관 1주년...로봇과 AI의 서사 2024년 8월 개관 이후 과학관에는 약 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가족 단위와 외국인 방문객까지 폭넓은 층이 이곳을 찾았다. 이유는 명확하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지고 대화하며 경험할 수 있는 참여형 전시였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과학관은 로봇 축제, AI 워크숍,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꾸준히 열어왔다. 그 과정에서 '과학관=교육 공간'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넘어, 시민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과학문화 거점으로서의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과학기술을 미래산업의 담론이 아니라 시민 일상의 경험으로 탈바꿈한 성과가 돋보였다. 상설전시는 과학관의 심장이다. 내부 전시는 1층부터 4층까지 테마별로 조성돼, 관람객이 로봇과 인공지능의 세계를 단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1층은 '로봇과 인공지능의 만남'이다. 아이볼, 전자 정원, AI와 모빌리티, 자율주행 3단계, 트롤리 딜레마 등이 마련돼 있으며, 시민들이 자유롭게 체험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은 '로봇·인공지능을 알아가다'이다. 자율주행으로 가는 길, 로봇과 코딩, 수술 로봇 등 주요 기술 전시와 체험이 이어진다. 관람객은 직접 보고 만지며 원리를 이해하는 학습형 전시를 체험할 수 있다. 3층은 '생각하는 로봇, 질문하는 인간'이다. 메타 휴머노이드 마스크봇, 인간과 로봇의 경계, 로봇-인공지능 포럼, 로봇 해부학, 인간을 닮은 로봇, 읽을 수 있는 도시, 얼굴 없는 초상화, 디지털 종의 출현, 인공지능 윤리의 결정, AI 페르소나, 로봇 싱잉볼, 미래투표, 푸드엔젤 등 다양한 전시물이 배치돼 있다. 이 공간은 단순히 기술을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인간과 로봇의 관계와 윤리, 미래 사회가 맞이할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 4층의 기획전시실은 한 발 더 확장된다. 현재 진행 중인 특별전은 '온 앤 오프: 일하는 로봇, 그리고 사람'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미 활용되거나 가까운 미래에 보편화될 로봇·AI 기술을 소개한다. 산업 현장부터 서비스, 돌봄까지 로봇이 차지할 자리를 다각도로 탐구하며, 인간과 기술이 함께 만들어갈 일과 삶의 풍경을 보여준다. 기획전시는 오는 31일 종료한다. 미디어파사드, 도시와 시민을 잇는 야간 무대 과학관 외벽은 디지털 캔버스로 변신해 올여름 가장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6일 개막한 미디어파사드는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오는 12월까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저녁에 선보인다. '공존의 형상: 인간과 로봇의 공생 플랫폼 서울'을 주제로 과학관의 밤 풍경을 거대한 갤러리로 바꿔놓는다. 세 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빛으로 새긴 인공지능의 기억'은 데이터와 시간, 기억의 패턴이 교차하는 시공간을 열어주고, '공존의 형상'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도시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RAIM TALK'는 시민이 남긴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외벽에 띄워 함께 완성하는 참여하여 전시를 구현한다. 백성지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큐레이터는 미디어파사드 기획의도에 대해 “서울이라는 도시 무대를 배경으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를 그려냈다”며 “인간이 쌓아 올린 도시의 기억 위에서 감정을 나누는 로봇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풍경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름밤 외벽을 밝힌 3D 영상은 시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족과 연인이 삼삼오오 모여 빛을 바라보고,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장면은 과학관이 전시관을 넘어, 도시의 새로운 무대가 되었음을 증명했다. K-컬처 클러스터, 창동의 도약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의 의미는 이 공간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로 옆에는 최근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창동 일대에는 대규모 공연장을 갖춘 서울아레나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과학·예술·대중음악이라는 세 갈래 문화 자원이 한 지역에 모여 창동은 곧 K-컬처 클러스터라는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학관의 상설전시가 미래 교육과 학습을 담고, 기획전시가 기술과 예술의 대화를 열며, 미디어파사드가 도시와 시민을 연결한다. 여기에 사진미술관은 기록과 시각예술을, 아레나는 대중음악의 파급력을 더한다. 세 공간이 퍼즐처럼 맞물릴 때, 창동은 서울의 변두리가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랜드마크로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은 지난 1년간 로봇과 AI 시대의 매개로 소통하며, 시민에게 미래사회의 풍경을 체험하게 했다. 이제 사진미술관과 아레나가 더해져 만들어질 K-컬처 클러스터 속에서 이 과학관은 더욱 빛날 것이다. 공존과 협력, 체험과 참여의 메시지를 품은 이곳은 서울이 지향하는 미래도시의 실험실이자, 시민 모두가 함께 완성해가는 우리 시대의 예고편으로 남을 것이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기획하고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8.26 08:55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사라지는 고향에서 다시 피어나는 문화의 힘

대한민국 곳곳에 지방소멸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학교가 문을 닫고, 시장이 텅 비며,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난다. 인구 절벽은 단순한 수치의 변화가 아니라 공동체 해체와 문화적 맥락 단절의 위기다. 이때 다시 불려 나온 이름이 국가유산(문화·자연·무형유산)이다. 국가유산청이 지난 21일 발표한 '지방소멸 위기 국가유산 대응전략'은 이 거대한 파고 앞에서 유산을 단순한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 재생의 기폭제이자 K-컬처의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으로 느껴졌다. 활용, 주민, 디지털 이번 종합대책의 핵심은 세 갈래로 와닿는다. 첫째는 활용이다. 국가유산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보고 느끼는 공간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야간경관, 고택 스테이, 워케이션 같은 체류형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 인구를 유입하고, 무형유산을 특산품·관광·산업과 연계해 지역에 새로운 매력을 심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주민이다. 국가유산 마을기업을 육성해 주민이 보존과 활용의 주체로 서도록 하고, 공동체 기반 경제 모델을 만들어내겠다는 비전이다. 셋째는 디지털이다. 인공지능 모니터링과 디지털트윈을 활용한 스마트 관리체계는 보존의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실감기술과 데이터 기반 스토리텔링으로 유산을 새로운 K-콘텐츠로 확장한다는 목표다. 정책의 방향은 명확하다. 보존에서 활용으로, 지역의 자발적 참여로, 디지털 기반으로. 하지만 현재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시군구) 중 국가유산 전담조직을 갖춘 곳은 아직 23곳(약 10%)에 불과하다. 더구나 48곳(약 21%)은 국가유산 담당 학예연구사 등 전문인력조차 없어, 전략을 떠받칠 현장 여건은 여전히 취약한 현실이다. 살아 숨 쉬는 문화자산으로 우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략은 의미가 크다. 국가유산은 더 이상 박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산으로 재정의된다. 지난해 한 해에만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과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등으로 566만 명이 방문했고, 3천500억원이 넘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했다. 단순 관람에서 체류-소비로 이어진 이 성과는 국가유산이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확실한 동력임을 보여준다. 해외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프랑스의 퓌뒤푸 역사테마파크는 매년 250만 명을 모으며 유럽 최고의 문화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결국 유산은 기획력과 스토리텔링이 결합될 때, 소멸 위기를 돌파하는 성장의 기회로 변모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략은 지방소멸 완화(Mitigation)와 적응(Adaptation)이라는 이중 프레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산은 소멸을 늦추는 완화의 도구이자, 소멸이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기억을 보존하고 삶을 적응시키는 수단이 된다. 산업·교육·복지 중심으로 짜여 온 지방대응 전략에 문화유산이 독립 축으로 편입된 것이다. 국가유산정책이 경제·사회 문제 해결의 전면으로 나선 것이다. 여규철 국가유산청 지역유산전략지원단장은 “국민들이 가꿔온 국가유산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핵심 자산의 역할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유산 보존-활용의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행정안전부, 지방시대위원회,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지방소멸 위기 극복에 국가유산청이 기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성공 조건과 국가브랜드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컨트롤타워의 시스템화다. 한시조직인 청 차장 직속 '지역유산전략지원단'만으로는 추진에 한계가 있다. 안정성을 갖춘 정규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규제의 합리화다. 보호를 위한 제약이 주민의 삶을 옥죄는 규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지원으로 전환돼야 한다. 셋째, K-콘텐츠와의 접목이다. 유산이 음악, 게임, 영화, 드라마, 웹툰과 같은 산업의 원천 IP로 확장될 때, 정책은 산업적 파급력을 갖게 된다. 국가브랜드 차원에서도 국가유산의 전략적 활용은 절실하다. 울산 울주 '반구천의 암각화'를 포함한 17건의 세계유산, 23건의 인류무형유산, 20건의 세계기록유산은 한국이 자랑하는 자산이지만, 그 가치가 지역사회와 산업적 구조 속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세계적 경쟁력이 된다. 문화는 이제 소비를 넘어 국가 생존의 전략이며, 유산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미래의 자원이다. 소멸의 두려움에서 미래의 씨앗으로 지방소멸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고향의 학교가 사라지고, 오랜 가게의 불빛이 꺼지고, 세대를 이어온 축제와 노래가 잊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마을의 돌담과 고택, 선조의 지혜가 담긴 무형유산 그리고 함께 살아온 기억의 흔적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유산이다. 이제 우리는 유산을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숨 쉬게 해야 한다. 관광객이 머물고, 청년이 창업하며, 주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공동체가 그 속에서 태어날 수 있다. 문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람을 불러들이고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유산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 소멸의 두려움 속에서도, 유산은 우리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내일을 약속하는 씨앗이다. 국가유산청의 이번 전략은 대한민국이 세계유산 강국을 넘어, K-컬처 글로벌 소프트파워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정부의 과감한 정책 지원과 지역사회의 주도적 참여, 산업계의 창의적 투자다. 이 삼박자가 맞춰질 때, 국가유산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결정짓는 힘이 된다. 국가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세계 속 문화강국으로 이끄는 미래의 솔루션이다. 이번에 제시된 비전 '국가유산으로 살아나는 지역'이 선언을 넘어, 곧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현실이 되길 기대한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기획하고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8.25 09:24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차갑게 밝혀진 진실, 뜨겁게 남겨진 작별

소극장 무대 위엔 테이블 몇 개와 취조실을 투사한 이미지가 전부였다. 지난 17일 저녁, 건대입구역 인근 블라인드아트홀. 러닝타임 100분의 연극은 관객을 차갑고 정돈된 블랙박스 공간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진짜로 불타오른 건 조명이 아니었다. 감정이었다. 조경아의 원작을 박이현이 각색한 연극 '뜨거운 안녕'이 막을 올리며 관객을 이 냉정한 세계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뜨겁게 타오른 것은 무대 조명이 아닌, 배우들이 쏟아낸 감정이었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추리극의 외양을 하고 있다. 빨간 텀블러, 치명적인 복어독, 여러 사람의 지문. 모두가 전형적인 추리극의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장치는 곧 무너지고, 예상치 못한 고백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결정적 반전은 한 형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한 달 뒤 예약 발송된 편지. 그 편지에는 극중인물 서윤경이 말기 암 환자였음을 고백하는 절절한 사연이 숨어 있었다. 추리는 더 이상 범인을 찾는 퍼즐이 아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자의 자기 고백으로 전환된다. 관객이 살인극이라 믿었던 이야기는, 결국 자기 고백에 의한 이별의 이야기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이 전환의 한가운데에는 연출자의 단호한 의지가 자리한다. 공연이 끝난 뒤 만난 조아윤 프리지아 대표는 “관객이 단순히 범인을 맞히는 쾌감에 머물지 않고, 인물 관계 속에 숨어 있는 '무심'과 '책임'의 온도를 느끼길 바랐다”고 밝혔다. 이 말은 곧 이 작품이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인간관계의 온도를 묻는 철학적 실험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극의 중심에 놓인 서윤경의 고백은 이 연극의 심장이다. 그녀의 말은 잔잔하지만, 무너질 듯 강렬하다. “나는 왜 이런 식으로 내 죽음을 그들에게 알리고 싶었을까? 분명한 건 그들 앞에서 내가 서서히,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거야. 차라리 이렇게 마지막 순간을 단호하게 던져버리는 것이 더 내 모습답다고 생각했어. 내가 세상에 살다 간 흔적을, 그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남기고 싶었어. 그 흔적이 비록 고통의 기억일지라도, 순간만큼은 뜨겁게 타올라 오래 머물기를 바랐어. 나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나 자신조차 놓아버린 이 선택이, 그들 곁에서 가장 뜨거운 안녕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대사는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로서의 '안녕', 즉 작별의 마지막 빛을 드러낸다. 고독하고도 단단한 그의 선택은, 관객의 심장에 잔잔하면서도 오래 남는 잔상을 만들었다. 무대는 과감히 비워낸다. 소품은 최소화되고, 배우의 표정과 시선, 정적과 생활 소리만이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절제된 조명과 소리의 결합은 '비움으로 채우는 연극'의 미학을 증명했다. 거대한 장치 대신 절제된 조명과 미세한 생활 소리가 긴장감을 유지했다. 형사 역의 배우들은 차분한 음색으로 증거를 나열하며, 사건을 공식적인 언어로 기록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곧 유기적인 인간의 흔적, 고통, 분노, 체념으로 이행된다. 형사들의 존재는 사회의 시선과 제도적 언어를 대변하면서도, 그 목소리를 통해 관객은 더 깊은 공감의 문을 열게 된다. 무대에 남겨진 인물들 가운데 절대적 가해자도, 완전한 피해자도 없다. 작은 무심, 자존심의 그림자, 욕망의 흔적이 모두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원인이 된다. 연극은 결국 '우리 안의 무심'을 성찰하게 한다. 무심코 흘린 말, 욕망의 작용, 자존심의 그림자 같은 요소들이 휴먼 드라마의 중심으로 밀려 나온다. 이 작품은 범인을 쫓는 대신, 우리 안의 무심을 성찰하게 한다. 형사의 마지막 경고처럼, “진범은 따로 있을지 몰라도, 그를 죽인 건 여기 너희 모두일 수도 있다.” 이 말은 법적인 책임을 넘어 윤리적 각성을 요구한다. 예술의 위로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것은 차갑게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앉은 무대 위, 배우들의 호흡과 시선에 담긴 작은 떨림이었다. 관객은 그 떨림 속에서 오래 남는 공감의 흔적을 받는다. 이날 만난 연극 '뜨거운 안녕'은 화려한 치유가 아니라 가만히 곁에서 흔들리지 않는 공감의 손길을 전했다. 이루니, 백지안, 탁홍주, 김한석, 이지연, 김성환, 김광현, 조정석, 이동열까지. 9인의 배우가 고백의 한 문장, 시선 하나에도 숨을 담아 관객에게 감정의 잔향을 건넸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차갑지만, 그 속에서 나온 말과 호흡은 뜨거운 온도를 남긴다. 그리고 그것이 이 공연의 가장 작은 승리이자, 우리가 예술에 기대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뜨거운 안녕' 작품은 스릴러의 외피를 입었지만, 그 본질은 이별의 예의와 관계의 책임을 묻는 인문적 단상이다. 죽음이 차갑게 드러난다 해도, 그 작별의 순간이 뜨겁다면, 그 존재는 살아 있는 것이다. 공연은 '진실은 차갑지만, 안녕은 뜨겁다'라는 역설을 남긴다. 그리고 그 온도를 견디는 것은 이제 관객, 즉 우리 각자의 몫이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기획하고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8.23 07:52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전통에서 태어난 K-컬처

K-컬처는 이제 하나의 문화 흐름을 넘어, 대한민국의 핵심 국가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콘텐츠산업 수출액이 이차전지와 가전 산업을 앞지르고, 관광과 소비재 수출(뷰티, 푸드)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팬덤 경제가 국가브랜드를 견인하는 지금, 문화는 곧 국부이며 국격이다. 문화정책 역시 이에 걸맞게 전환돼야 할 시점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세 개의 축이 있다. K-헤리티지, K-콘텐츠, K-컬처. 이들은 단순한 분류 개념이 아니다. 서로를 토대로 촉매가 되며, 확장과 순환을 이끄는 창조적 구조다. 한국의 문화정책은 이제 예술 창작 지원과 문화 향유권 확대를 넘어, 기술·산업·전략과 연결되는 입체적 마스터플래닝이 필요하다. 전통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창조의 자산이다. 한국의 문화유산과 전통문화가 디지털로 진화하며 콘텐츠로 피어나고, 세계 팬덤의 감성과 호흡하며 대한민국은 문화강국의 내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K-헤리티지, K-콘텐츠, K-컬처는 하나의 생태계 오늘날 한국문화는 단일한 장르나 산업이 아니다. 유산과 전통을 기반으로 창작되고, 디지털 기술과 산업을 통해 구현되며, 글로벌 팬덤과의 감성 교류를 통해 유통되는 입체적 문화 생태계다. 이 흐름의 출발점은 바로 K-헤리티지다. 훈민정음, 판소리, 김장, 한복, 한옥, 세계유산… 이 모든 유산과 전통은 '한국다움'의 정수이자 콘텐츠의 원천이다. OTT 드라마 의 궁궐 배경, 의 한옥과 한글, 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은 모두 K-헤리티지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전 세계가 공감한 콘텐츠다. 그렇다면 K-헤리티지와 K-컬처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는 무엇일까? 바로 K-콘텐츠다. 콘텐츠는 유산을 스토리로 전환하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세계로 확산시키는 문화적 가속장치다. 단순히 드라마·음악·게임의 집합이 아니라, 기술과 창의력, 산업 전략이 결합한 복합문화산업으로 작동한다. K-콘텐츠는 문화정책의 교차로이자, 창조성과 유통을 잇는 실질적 플랫폼이다. 이 세 축이 만들어내는 유기적 순환이야말로 한국문화의 지속가능성과 글로벌 소프트파워의 핵심 엔진이다. 콘텐츠의 본질에서 출발하는 문화전략 7월 31일 최휘영 신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공식 취임했다. 그는 국민 삶과 가까운 문화를 강조하고, 전통문화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문화의 감성적 가치와 산업적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감 있는 접근을 시사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신임 장관의 취임 메시지 전반에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강하게 내포돼 있다는 점이다. 콘텐츠의 본질은 결국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으며, 이는 문화정책이 창작자 중심 생태계, 유산 기반 서사, 감성 중심의 콘텐츠 가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단순한 산업 진흥을 넘어, 한국문화의 정체성과 감성을 세계와 연결하려는 방향성이 분명히 읽혔다. 특히 그는 플랫폼 기반 산업 현장을 두루 경험한 민간 전문가로, 콘텐츠·관광·유통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K-컬처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 바로 그 본질을 정확히 짚었다는 점에서 최휘영 장관의 철학은 정책적 설득력을 갖는다. 문화정책, 이제 총체적 시스템 구축으로 문화정책은 창작자 지원이나 시설 인프라 구축을 넘어, 감성과 전략이 함께 작동하는 총체적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문화는 콘텐츠를 통해 세계로 유통되지만, 그 뿌리는 유산과 전통에 있고, 그 확장은 글로벌 정서적 교류에 있다. K-헤리티지는 뿌리이고, K-콘텐츠는 열매이며, K-컬처는 그 향기다. 이 세 축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선순환의 한류는 대한민국을 문화경제 강국으로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전통을 디지털로 확장하고, 정체성을 콘텐츠로 구현하며, 감성을 세계와 공유하는 지금,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문화정책의 전략적 전환점에 서 있다. 문화는 곧 경제이며, 미래 경쟁력을 가늠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기획하고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8.01 10:38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문화정책 CEO를 바란다

K-컬처는 국가브랜드이자 미래전략 핵심 자산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 시대에 걸맞은 문화정책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휘영 문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은 단지 파격 인선이 아니라, 문화강국 도약을 위한 문화정책 방향 전환의 시그널로 읽힌다. 문화정책의 본질은 문화를 어떻게 중흥시키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주요 국가의 문화정책 구조를 보면, 예술가 지원(문화창조력 제고), 문화향유권 확대(문화복지 증진), 문화산업 활성화(문화의 경제적 가치 창출)라는 세 축이 기본을 이룬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 중에서도 문화산업 중심의 전략 전환이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기술·시장·감성을 통합적으로 보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플랫폼, 기술, 마케팅의 언어 최휘영 장관 후보자는 NHN(네이버), 인터파크, 놀유니버스 등에서 콘텐츠, 플랫폼, 관광, 커머스를 두루 경험한 민간 출신의 현장형 경영인이다. 단순히 '산업계 출신'이라는 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력이다. 콘텐츠 유통과 플랫폼 전략, 디지털 기술과 사용자 경험, 관광 소비까지. 후보자의 경력은 지금 문화체육관광부가 시급히 펼쳐야 할 산업의 언어와 맞닿아 있다. 특히 플랫폼 기반 콘텐츠 생태계, 글로벌 팬덤 경제, 지역 기반 관광과 공연산업 마케팅 같은 이슈에 있어 그 전략적 감각이 정책과의 융합으로 이어져야 할 시점이다. 현장의 시각도 콘텐츠산업의 글로벌 유통 감각을 겸비한 유연한 실무형 리더로, 문화계와 산업계를 조율할 수 있는 통합형 전문가라는 기대가 감지된다. 문화는 감성으로 설득되고, 전략으로 확장된다 이제 문화는 기술로 구현되고, 시장에서 유통되며, 세계 팬덤과의 감성 교류를 통해 작동한다. K-팝, K-드라마, 영화, 게임, 공연, 관광 등 모든 장르를 관통하는 것은 디지털 플랫폼과 글로벌 유통망이다. 그리고 그 흐름을 이끄는 건 창작만이 아니라 기술, 마케팅, 소비자의 인식과 경험이다. 문화는 단지 국내의 가치가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국가 이미지를 구축하는 글로벌 소프트파워다. 국제문화교류는 K-컬처의 연장선에서 정책적 동력이 되고 있다. 문체부는 창작자 지원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산업을 견인하며, 국제문화교류를 통해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한다. 이런 복합적 임무에는 무엇보다 기술·콘텐츠·관광·플랫폼의 현장 언어를 이해하는 전략형 리더십이 요구된다. 예술을 살리는 힘은 산업 문화는 연결의 힘이다. 산업과 감성, 기술과 철학을 매개로 창작자와 시장, 대한민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예술의 가치도 살아난다. 예술은 작품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 안에서 실현될 때 더 큰 의미가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문화정책은 감성과 전략이 함께 작동해야 하며, 그 중심에 CEO형 리더십이 자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계 일각에서는 후보자의 예술현장 경험 부족을 지적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산업을 이해하고 예술을 존중하며 감성과 전략을 조화롭게 설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콘텐츠와 기술의 최전선에서 기획과 실행을 경험해 본 리더는, 오히려 예술을 산업적으로 살릴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고 본다. 문화가 국부가 되는 시대, 산업 마인드 장관을 기대하며 우리는 그간 언론인, 예술인, 정치인, 관료, 학자 등 다양한 장관을 경험해 왔다. 성격별 시대적 소명과 성과가 있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2023년 기준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133억 달러(약 18조원)에 달하며, 이차전지(98.3억 달러), 가전(79.5억 달러)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국관광은 여전히 지역을 살리는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이제는 문화가 국부가 되고, 국격이 K-컬처로 평가되는 시대가 됐다. 문화는 대한민국의 미래산업 솔루션이며, 세계와의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이다. 그런 흐름을 실질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감성과 기술, 창작과 산업을 통합적으로 보는 시선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K-컬처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생활양식과 창의력을 글로벌 플랫폼으로 세계와 공유하는 국가 문화경제의 총체다. 최휘영 후보자는 그 전환기에 혁신적 리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창작과 소비, 정책과 산업, 예술과 경제, 지역과 세계를 잇는 문체부 CEO로서 '문화가 경제가 되는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장관의 모습일 것이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기획하고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7.29 09:29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세계유산강국, K-컬처 국가브랜드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세계유산강국임을 증명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반구천의 암각화'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며, 우리나라는 총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올해 경주에서는 한국의 세계유산 등재 30주년을 기념하는 국가적 행사가 펼쳐지고, 내년 부산에서는 세계유산위원회가 국제적으로 개최된다. 이 일련의 흐름은 대한민국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나라를 넘어, 세계유산을 지역 성장과 국가 이미지 및 브랜드로 승화시키는 전략적 강국임을 보여준다. 세계유산, 지역을 바꾸고 미래를 여는 힘 세계유산 등재는 과거의 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경주 석굴암·불국사, 수원 화성, 조선 왕릉, 백제역사유적지구 등 17건의 등재 유산은 각각 한 도시, 한 지역의 정체성을 국제사회에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상징이다. 유네스코 등재 이후 실제로 등재 지역 관광객이 25% 이상 증가하는 등 관광산업이 활성화되고, 지역 청년들에게 새로운 문화산업의 기회가 창출되고 있다. 특히 '반구천의 암각화'는 울주 대곡리와 천전리 일대를 아우르는 선사시대 유산이다. 고래잡이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유산은 6천 년에 걸친 암각화 전통을 증명하며, 인류 예술성의 기원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이번 등재는 단순한 보존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가치로 세계와 연결할지를 보여 주는 '문화주권' 실천의 대표 사례다. 더 나아가 세계유산은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제고의 결정적 자산이다. 한국의 유산은 단지 '전통'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드라마·게임·웹툰 등 K-콘텐츠의 원천이자, 글로벌 콘텐츠 IP로 확장된다. 세계유산 등재 그 자체가 곧 국가브랜드이며, 세계유산을 가진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신뢰와 영향력을 확보한다. 특히 '반구천의 암각화' 등재는 선사시대 유산이라는 새로운 층위를 더했고, 한국 유산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세계유산 등재 파급효과와 대한민국의 문화전략 세계유산 등재는 문화적 자긍심을 넘어, 실질적 국가브랜드 효과를 가져온다. 첫째, 유산은 K-컬처 확산의 뿌리다. 방탄소년단이 경복궁에서 공연하고, 넷플릭스가 '조선왕릉'을 다큐로 다루는 것처럼, 세계유산은 한국적 정체성을 세계가 공인한 창작 소스이자 K-컬처의 세계관을 이루는 핵심축이다. 둘째, 등재 유산은 외래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폭제다. 세계유산은 세계인의 여행 버킷리스트다. 유네스코 등재 유산은 일반 관광지보다 평균 30% 이상 외국인 관광객 증가 효과를 나타낸다. 이번 '반구천의 암각화' 등재 역시 울산 지역에 체류형 관광 모델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셋째, 세계유산은 국가이미지와 외교력의 지렛대가 된다. 세계유산 등재는 국제 사회와 신뢰 및 가치를 공유하는 증표다. 문화유산을 잘 지키는 평판은 환경·인권·민주주의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이 점에서 내년 부산 세계유산위원회 유치는 대한민국 국격을 보여주는 전략 플랫폼이자, 글로벌 문화외교의 전진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올 가을 경주에서는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첫 등재(1995년) 30주년을 맞아 국가유산청과 경주시가 공동주최하는 기념식이 열린다. 석굴암·불국사, 경주역사유적지구 등 신라 유산을 무대로, 유네스코와 국제기구, 유산 전문가, 국민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의 유산가치를 논의한다. 첨단기술과 유산이 결합한 국제포럼, 미디어아트, 실감형 홍보영상 등은 '기억하는 유산에서 경험하는 유산'으로의 전환을 보여 준다. 특히 국가유산청이 초고화질 영상으로 제작 중인 세계유산 홍보 영상은 17개 유산 스토리를 담아 경주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 경주 기념행사는 내년 부산에서 열릴 세계유산위원회를 향한 세계유산 문화전략의 전초전이자, '모범적 유산강국' 대한민국의 역량을 세계에 선포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유산은 과거가 아닌 미래다 내년 부산에서 개최되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이 1988년 세계유산협약 가입 이후 38년 만에 의장국이자 개최국이 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단순 보존을 넘어, 유산의 미래와 활용 전략을 제시하는 '행위자'임을 세계에 천명한다. 부산은 이미 K-콘텐츠와 문화산업의 허브로 성장했으며, 이번 개최는 유산을 기반으로 지역발전과 국가브랜딩, 문화외교의 모든 영역을 연결하는 절호의 기회다. 이 모든 흐름은 이재명정부의 문화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국민주권정부'를 천명한 새 정부는 디지털 대전환과 글로벌 문화주권을 양축으로, 소프트파워 문화국가를 지향한다. 국가유산을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산업화까지 뒷받침하는 정책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와 국제행사 유치는 그 상징적인 출발점이다. 특히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대한민국 'AI 디지털 헤리티지'를 선보일 무대가 돼야 한다. 단순한 국제회의가 아니라, '경험하는 유산', '참여하는 세계유산'의 가치를 구현하는 콘텐츠 기반의 마이스(MICE) 문화플랫폼으로 설계해야 한다. 복원된 유물 데이터베이스, 미디어아트와 XR 등 신기술융합콘텐츠는 유산이 전하는 메시지를 확장하고, 국제사회에 새로운 미래형 문화정책의 스탠다드를 제시한다. 오늘날 세계는 유산을 통해 국격을 논한다. 한국은 이미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강국이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억되고, 어떻게 활용되는가?'다. 세계유산은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자, 국가의 브랜드파워와 신뢰도를 높이는 글로벌 소프트파워의 플랫폼이다. 유산이 기술과 산업의 언어로 번역될 때, 미래세대의 자산이 된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AI 대한민국'의 문화적 근거 역시 바로 이 유산에서 나온다. 2026년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는 대한민국이 '기억의 강국'을 넘어 진정한 문화전략국가로 도약하는 시험대다. 그 여정은 올해 경주에서 시작해, 내년 부산에서 대한민국 유산강국의 이름으로 세계 무대에 오를 것이다. 문화는 국경을 넘어선다. 하지만 국격은 준비된 전략에서 탄생한다. 국가유산을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과 기술, 산업, 외교로 확장하는 통합적 시각이야말로 유산강국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제 정책이 유산의 의미와 활용 방식을 새롭게 정의해야한다. 그리고 그 무대가 부산이 되길 바란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기획하고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7.24 09:31이창근

[이창근의 헤디트] AI 시대, 유산을 콘텐츠로 만드는 나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의 시작은 곧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내건 '국민주권정부'는 글로벌 소프트파워 문화강국 실현을 국정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그 중심에 유산과 기술, 산업이 교차하는 '디지털 헤리티지'가 있다. 허민 신임 국가유산청장은 지난 17일 취임사에서 “국가유산을 단순한 문화재가 아닌 국민의 정신과 정체성”이라 규정하며 AI 기반 기록화, 스마트 도슨트, 가상현실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유산 보존과 확산을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다. 또 허 청장은 “우리는 AI 대한민국이라는 전환점 앞에 서 있다”며 “세계인이 언제 어디서든 K-헤리티지를 체험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는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지만, 감성과 세계화를 통합하는 새로운 국가유산전략의 선언이기도 하다. 디지털 헤리티지를 둘러싼 정책-제도-현장 동시 진화 입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김윤덕 국회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국가유산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AI·XR 기반 유산 콘텐츠 산업화, 원형 데이터베이스 구축, 창의 산업 융합 지원 등을 명문화했다. 이는 디지털 기술과 콘텐츠 산업이 융합하는 유산 생태계 구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행보다. 현장의 변화는 더 빠르다. 펄어비스의 글로벌 게임 검은사막은 '아침의 나라: 서울'에서 경복궁을 고해상도 실사 기반 3D로 정밀 구현해 글로벌 게이머의 호평을 받았다. 전국 박물관의 AR·VR 콘텐츠, 지역의 테마관광 미디어아트 전시관도 유산 감상의 '몰입형 체험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 역시 국가유산정책을 글로벌 소프트파워 실현의 핵심 축으로 강조하고 있다. '반구천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한국 유산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신호다. 이제 유산은 감상과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인의 체험과 공감을 이끄는 확산의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감상이나 보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창조적 재해석과 산업화, 세계화로 확장되는 '문화의 미래형 가치사슬'이다. 우리는 이제 유산을 보존하는 나라를 넘어, 유산을 콘텐츠로 만드는 나라, 그 콘텐츠를 세계인이 체험하게 만드는 나라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2021년부터 문화재청이 추진한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디지털 헤리티지를 활용한 대표적 공공문화 프로젝트다. 초기 '세계유산 미디어아트'에서 현재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로 브랜딩됐다. 이 사업은, 수원화성, 백제역사유적지구, 강릉대도호부관아, 경주 대릉원 등 전국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무대로 예술과 기술을 융합해 대형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을 선보여왔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유산을 활용한 문화산업이 매력관광, 지역경제, 도시이미지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성공사례로 꼽힌다. 디지털 헤리티지의 산업화, 창작 생태계의 기폭제 디지털 헤리티지는 선언을 넘어 실질적 산업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코엑스에서 '디지털 혁신 페스타'와 함께 열린 '제1회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 페어'는 문화유산-디지털을 결합한 새로운 시장 개척과 대중 확산을 입증하기도 했다. 특히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이 공개되며 데이터 개방을 통해 콘텐츠 창작을 지원하고, 민간 플랫폼과의 연계를 통해 디지털 헤리티지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올해도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 원천자원 제작·보급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이 사업은 전국 주요 유산을 대상으로 3D 에셋 1,023개를 제작해 유니티, 언리얼, Sketchfab 등 글로벌 콘텐츠 마켓에 무상 등록해 민간 창작자에게 자유롭게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창경궁, 덕수궁, 진주성, 광한루 등 역사적 상징성이 큰 유산을 중심으로, AI 학습데이터, 게임 배경, VR 시뮬레이션, 교육 콘텐츠 등 다양한 산업적 활용을 가능케 하는 고품질 원천소스를 제공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디지털콘텐츠 산업이 유산 기반 데이터로부터 영감을 받는 창작의 원천자원을 제공하는 부분이다. 둘째, 유산 보존이 공공의 영역에 머물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유산이 민간 콘텐츠 산업의 IP로 재창조된다는 점이다. 즉, '유산의 산업화'는 콘텐츠 창작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유산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며, K-콘텐츠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산업, 교육, 관광, 국가이미지 등 모든 분야로 확장 가능하다.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는 단지 '우리 것'이라는 이유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이 공감하고 매혹당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기술, 이야기와 몰입감을 품은 K-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다. AI 시대, 그것은 K-콘텐츠의 원천 데이터이자 창작 자산이다. 유형과 무형, 자연과 왕실, 민속과 해양을 아우르는 한국의 유산은 그 자체로 수천 년의 서사 구조를 가진 거대한 세계관이다. 이제 이 세계관을 디지털로 구현하고 산업화하는 것이 '디지털 헤리티지'라는 이름의 국가유산전략이다.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웹툰, 미디어아트 등 모든 K-콘텐츠가 국가유산을 매개로 연결될 때, 그것은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세계적인 문화가 된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기록의 종착지가 아니라, 상상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 K-컬처를 움직일 가장 강력한 동력이자, AI 시대 대한민국의 문화주권을 증명할 국가유산청의 새로운 미션이다. 기술로 확장되지 않은 유산은, 경쟁력 없는 자산에 머문다. 이제 유산은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며, '보존'을 넘어 '확산'이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우리의 뿌리이자, 미래 산업의 원천이다. 그것이 바로 K-컬처의 다음 엔진이며, 대한민국 문화전략의 가장 강력한 카드일 것이다.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이창근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기획하고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2025.07.21 10:48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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