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픽 늘어도 수익은 뚝"…통신사, EU 'DNA'서 해법 찾나
데이터 트래픽 증가로 네트워크 투자 비용은 급증하는 반면, 정작 통신사들은 그에 걸맞은 수익을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AI와 6G 시대에도 통신사가 단순한 데이터 전송로(파이프라인) 역할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디지털네트워크법(DNA)이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할 방안으로 꼽혀 주목된다. 통신망을 단순한 데이터 전달 통로로 두지 않고 속도와 지연시간, 품질 등을 차별화해 하나의 서비스로 판매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법무법인 세종의 이종관 수석전문위원은 17일 프레스세터에서 열린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 세미나에 발제를 맡아 “통신사업자가 덤파이프에서 탈피해 고부가가치의 네트워크 서비스형 플랫폼 사업자로 전환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EU가 추진하는 DNA를 계기로 통신사의 사업모델과 규제체계가 함께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수석전문위원은 통신사가 처한 구조적 문제를 '트래픽과 수익의 디커플링'으로 진단했다.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망 증설과 고도화 비용은 커지지만, 그 증가분이 통신사의 추가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모바일 트래픽은 2019년 581만 7000TB에서 2024년 1325만 7000TB로 약 2.3배 늘었다. 반면 통신 3사 평균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은 2019년 3만1103원에서 2025년 2만8746원으로 7.6% 감소했다. 같은 기간 통신 3사의 누적 설비투자(CAPEX)는 약 51조원에 달했다. 네트워크 사업자의 본질적 경쟁력은 망에서 나오지만 트래픽과 수익, 수익과 비용의 디커플링으로 인해 네트워크로부터 창출되는 가치가 제한되고 있다는 뜻이다. 덤파이프 넘어 고부가 네트워크 서비스로 EU는 유럽 통신사의 낮은 수익성과 회원국별로 분절된 규제, 디지털 플랫폼 등장 이후에도 기존 틀에 머문 통신 정책을 네트워크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보고 대대적인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DNA에는 한 회원국에서 신고하면 EU 전체에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싱글 패스포트', 주파수 이용권 장기화, 구리망의 광케이블 전환 등이 담겼다. 자율주행이나 네트워크 슬라이싱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이 필요한 서비스에는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를 허용하는 방향도 제시됐다. 이 같은 제도 변화가 통신사의 사업모델을 바꿀 수 있다. 이 수석전문위원은 “통신사업자가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해 저지연 보장기능 등을 제공 또는 표준화된 API 형태로 개발할 수 있다”며 “기업 고객에게 스마트팩토리, 원격의료, 피지컬AI 등 용도별로 최적화된 네트워크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일반 이용자 시장에서도 프리미엄·혼합 요금제를 통해 수익을 확대할 수 있다고 봤다. 클라우드 게임이나 VR XR처럼 일정한 품질이 필요한 서비스 이용자에게 최적화된 네트워크 품질을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통신사와 플랫폼 간 협업 모델도 제시했다. 플랫폼이나 CP가 ISP에서 대역폭이나 특화 네트워크 서비스를 구매한 뒤 자사 서비스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재판매 구조다. 즉 통신망을 단순한 데이터 전달 통로가 아니라 속도, 지연시간, 품질, 용도에 따라 판매할 수 있는 하나의 서비스로 바꾸자는 것이다. “망중립성 원칙 재설정 필요” 이를 위해 국내 정책과 규제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수석전문위원은 “보편과 특화의 명확한 구분, 혁신기술이나 서비스에 대한 네트워크의 차등적 관리가 필요하다”며 “기업 간 거래에서는 사업자 계약에 따른 망 이용대가와 트래픽 관리를 인정하고, B2B2C 형태의 네트워크 이용에서는 관리형 서비스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망중립성 제도의 원칙을 새롭게 설정하자는 뜻이다. AI와 6G 시대에는 모든 서비스를 동일한 품질로 제공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초저지연과 고신뢰성이 필요한 새로운 서비스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형 플랫폼과 통신사의 협상력 차이를 조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 수석전문위원은 “B2B 망 이용계약에 대한 자율적·연성 규범 또는 협상력 조정장치 마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EU DNA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망 이용 관련 자발적 분쟁조정제도와 자율협의체 도입도 신중하게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모든 망 직접 구축하는 구조서 벗어나야” 6G에서는 통신사의 네트워크 구축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6G는 클라우드와 가상화, 오픈랜을 활용하고 기존 지상 중심의 2차원 커버리지를 위성과 드론 등을 통해 해상과 공중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AI 에이전트와 피지컬AI 확산으로 대규모 트래픽이 발생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초정밀 실시간 제어가 필요한 서비스도 늘어난다. 이 수석전문위원은 “이통사는 모든 망을 직접 구축하고 운영하는 폐쇄형 구조를 벗어나 오픈랜이나 빅테크, 위성 사업자와 협력하는 개방형 제휴형 구조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때 정부 역할도 필요하다. 인구 저밀도 지역이나 도서산간 지역의 네트워크 구축을 지원하고, 피지컬AI 등 국가 전략산업에 필요한 통신 인프라에는 정책적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EU DNA를 국내에 그대로 가져오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봤다. EU는 여러 회원국으로 나뉜 통신시장을 하나로 묶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하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