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구글, 한국엔 '네카오' 있다…"DMA 유사 플랫폼 규제 안 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유럽연합(EU)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 마련을 예고한 가운데, 글로벌 플랫폼 전문가들은 DMA를 놓고 현 산업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 제재안으로 보고 한국이 EU 행보를 답습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크리스토퍼 유 펜실베니아대학교 로스쿨대학교 교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고려대학교 ICR센터가 10일 공동주최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 세미나'에서 “DMA는 빅테크 GAFA(구글·애플·메타·아마존)를 한 그룹으로 묶어 일원화된 시장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DMA는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플랫폼 기업들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문지기)'로 지정해, 사전 규제를 적용하는 법안이다. DMA상 게이트키퍼는 시가총액 750억유로(약 107조원) 이상이거나, 최근 3년간 EU 내 연매출이 75억유로(약 10조원)를 웃돌며 월간활성화이용자수가 4천500만명를 넘어선 플랫폼을 뜻한다. 적용 플랫폼 분야는 온라인 ▲중개 ▲검색 엔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동영상 공유 ▲메신저 ▲운영체제 ▲웹브라우저 ▲가상비서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다. EU 3개국 이상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곧 제재 대상에 오른다. 내년 1분기부터 시행된다. "DMA 양적 기준에 쏠려…글로벌 표준 법안 자리매김하기엔 부족" 크리스토퍼 유 교수는 “DMA는 기존 경쟁법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토대로 하는데, 이는 온라인 사업에 대한 충분한 산업 지식과 이해도를 수반하지 않는 것”이라며 “빅테크 간에도 경쟁 사업과 비즈니스모델(BM)이 상이한 만큼, 반경쟁행위를 제재할 해결책 역시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DMA가 겨냥하고 있는 게이트키퍼로는 미국 빅테크뿐만 아니라, 국내 삼성전자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EU 자체 토종 플랫폼 기업 대신, 해외 기업에 칼을 겨눈다는 점에서 주세페 콜란젤로 바실리카타대 교수는 “질보다 양적인 기준에 쏠려있다”며 “실제 사이즈(기업 규모)에 중점을 두며 게이트키퍼를 정의하고 규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게이트키퍼 문지기 효과를 책정할 때, 질적 기준을 고려해 시장 경쟁 저하 요인을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세페 콜란젤로 교수는 “DMA를 표적으로 삼아 가해진 규제들이 정말 미래에도 지속해서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며 “DMA는 글로벌 표준 법안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부족하며, 타국 역시 차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자의적 규제 성향 강해…사이즈(기업 규모)에 연연" 앤디 첸 대만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 공정위에서 1월 내놓은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 내 제재 행위로 삼은 자사우대, 끼워팔기 등 비슷한 내용이 담긴 자국 공정거래법을 소개했다. 이어 그는 “플랫폼 제재 관련 이슈를 중심으로 (규제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며 “국제기관 간, 때론 국내 기관들끼리 협력하는 게 사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변화를 꾀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DMA가 플랫폼 시장 공정성보다는 기업들에게 비용 부담을 짊어지게 하는 등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로버트 앳킨슨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회장은 “스포티파이가 애플(뮤직)보다, 아울러 구글(플라이트)이 익스피디아보다, 각각 시장 점유율이 높은 데 반해 DMA는 특정 빅테크만을 쏘아붙이고 있다”며 “자의적인 규제 성향이 강하고, 규모에 연연하고 있다”고 했다. 혁신 저해도 우려했다. 앳킨슨 회장은 “EU가 디지털 시장 규제에 있어 전 세계를 주도하고 있지만, 혁신 측면에서는 뒤처져있다”며 “이 관점에서 DMA는 잘못 설계된 규정”이라고 했다. 또 “한국 공정위가 EU와 같은 움직임을 당장 보이지 않아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며 “DMA 도입 후 2년간 규제 효과와 이용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고 시행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DMA 유사 법안 시행되면…"네카오 모래주머니 차고 경주하는 꼴" 현재 국내에서는 20개 가까운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윤 정부 공정위에서도 '플랫폼 독과점 규율 개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최근까지 플랫폼 제재 방안을 논의, 조만간 주요 방향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 플랫폼 특수성을 이유로 함부로 규제해선 안 된다는 기류가 흘렀는데, 지금은 플랫폼이 특수하니까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한다"며 "글로벌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유의미한 경쟁 사업자가 존재하는, 경쟁성을 확보한 유일한 국가"라고 했다. 규제 균형성을 갖춰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변호사)는 "독점이 혁신을 저해할 때, 또는 지속 가능한 혁신이 중단되는 상황들을 모두 균형 있게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박지연 변호사는 "구글이 검색 시장을 공략하고자 내수 시장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데, (DMA 유사 법안이 시행되면) 이 경우 100m 달리기 경주하던 한국 플랫폼들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경주하는 꼴이 된다"며 "플랫폼 규제 전 자국 내 경쟁력 있는 사업자(네이버·카카오·쿠팡) 유무, 또 기술 혁신 여부 등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