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에 'K-모빌리티'를 심고 싶습니다"
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편집자주] “유럽 대륙에 'K-모빌리티'를 심고 싶습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조직 내에서 성가신 존재로 여겨질 때가 있다. 창의적인 일은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이 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손실회피성(loss aversion)'은 그래서 관료화된 조직의 문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태원 원더무브 대표는 그런 의미에서 '성가신 존재'다. 이미 주어진 일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 일을 만들어낼 때 신이 난다. 그것이 조직의 선임한테는 늘 부담이 됐다. 반대로 김 대표는 그것이 항상 답답했다. 15년 대기업 생활을 마감하고 창업을 한 계기가 그것이다. “모빌리티 사업을 IT 기반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체계에서는 복잡한 의사결정 프로세스 때문에 막히는 게 많았어요.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그런 절차를 두기도 하겠지만 때론 두려움과 귀찮음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막기도 했었죠.” ■ 창업 첫 아이템에 쓴맛을 보다 김 대표가 원더무브를 창업한 것은 지난 2020년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2년간의 사내 인큐베이이팅 과정을 거쳐 독립했다. 당시 사업 아이템은 '직장인 전용 카풀 서비스'였다. 원더무브(wondermove)라는 사명에서 느껴지듯, 김 대표가 하고 싶은 일은 IT를 기반으로 첨단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첫 아이템이 '원더풀(wonerpool)'이란 이름의 카풀 서비스였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시작과 함께 끝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카풀 서비스는 이해집단 사이의 다툼으로 격렬한 갈등의 현장이었어요. 우리는 '현대자동차'라는 큰 브랜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불법은 물론 편법을 쓸 수는 없었죠. 철저히 현행법 테두리를 지켜야 했어요. 직장인을 상대로 오전 7~9시, 오후 6~8시 등 하루 4시간만 운영해야 했던 거죠.” 그것은 애초 손발이 묶인 채 해야 하는 싸움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 '몸을 팔아' 직원 월급을 대다 원더풀을 접어야 했던 것은 당연히 기술력이나 서비스 품질 등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제도가 갖는 한계 탓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결과는 상처로 남는다. 다만 초기 단계였고 그런 만큼 몸집이 너무 커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 상처가 회생불능 상황까지 확대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도의 한계도 사업을 진행하면서 따져봐야 할 중요한 리스크 요소임에 분명한데 그땐 솔직히 '어떻게 되겠지' 했던 것 같아요. 또 창업 아이템이 그것이었으니 그냥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김 대표는 “그 위기를 몸을 팔아(?) 넘겼다”고 한다. 그는 '외부 IT 프로젝트 컨설팅'을 그렇게 표현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외부 IT 프로젝트 컨설팅' 사업은 한 건에 수 천만 원 하는 경우가 있고, 거기서 번 돈으로 직원 월급을 충당했다는 뜻이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대학 때부터 프로그래밍에 두각을 나타냈다. 공모전에 여러 번 입상했고, 프리랜서로 일하다 결국 대기업에 스카웃 됐다. ■ '화이트 라벨 솔루션'에서 출구를 찾다 원더풀 실패로 인한 출구는 독일에 있었다. 지인 방문차 독일에 갔다가 현지에서 펼칠 수 있는, 자동차와 IT를 연계한, 다양한 사업 구상이 떠올랐다. '온라인 라이브 컨설팅' 서비스도 그중 하나다. '라이브 컨설팅'은 고객과 판매자(딜러.dealer)가 온라인 라이브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앱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에 대한 구상과 개발 계획이 우연찮은 기회로 현대차 고위층에 알려진 모양이에요. '거, 좋네. 해보지' 하셨구요. 이 일을 계기로 현재는 B2C(기업대 소비자간 거래)보다 B2B(기업간 거래)를 하고 있죠.” '라이브 컨설팅'은 그리고 더 넓은 서비스로 확대됐다. 원더무브가 현재 하는 비즈니스 형태를 전문용어로 화이트 라벨 솔루션((White Label Solution)이라 한다. 개발은 A사가 했지만 외부에는 B사의 서비스나 상품으로 인식되는 솔루션을 뜻한다. 원더무브가 제공하는 화이트 라벨 솔루션의 이름은 '플러그(P-LUG)'인데, 이는 '모빌리티 포털' 기능을 갖고 있다. '플러그(P-LUG)'는 각종 모빌리티 앱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인 것이다. 현재는 주문, 구매, 테스트 드라이브, 수리, 중고차 판매, 레커 부르기 등 자동차 전주기와 관련해 8개 서비스가 탑재돼 있다. 이들 서비스는 원더무브가 개발한 게 있고 현대차 등에서 개발한 것도 있지만 모두 '현대차 멤버쉽'으로 제공된다. ■ 원더무브는 왜 유럽 대륙으로 갔을까 김 대표가 국내보다 유럽이 자신의 비즈니스를 확장하기에 더 낫다고 판단하게 된 것은 그가 본 유럽 시장의 두 가지 특성 때문이다. “유럽은 한국과 달리 자동차 교체 주기가 빠릅니다. 보통 2년에 한 번씩 자동차를 바꿉니다. 자동차를 자주 사고판다는 뜻이죠. 자주 사고팔아야 하는데 문제는 판매점이 너무 멀리 있다는 사실이죠. 그 간격을 IT로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다행히 유럽은 아직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많지 않고 그런 기업도 별로 없죠.” 자동차는 많고 자주 사고 팔리지만 그 시스템은 불편하다는 게 요지다. 우리의 앞선 IT 모빌리티 솔루션이면 매력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 현대차와 함께 유럽 10개국에 진을 치다 '플러그(P-LUG)'는 현대자동차의 멤버쉽 서비스인 마이현대의 유럽판에 적용된다. 독일 등 현대차가 직접 판매법인을 둔 10개국이 1차 공략지역이다. 또 현대자동차의 판매법인은 없지만 딜러들이 있는 3~4개국이 추가될 예정이다. 10개국에 있는 딜러만 현재 1400곳 정도 된다. “자동차를 판매할 때 딜러의 가장 큰 고민은 현재 소유주가 차를 매각할 경우 다음에 무슨 차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걸 알면 선제적인 컨설팅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지금까지는 직감이나 화술이 중요했다면 IT 서비스가 발전할 경우 데이터에 의한 대처가 가능해지겠죠. 유럽에서 그걸 하고 싶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건 B2C 모빌리티죠” 원더무브는 현대자동차에서 분사했고 아직도 현대자동차가 적절한 지분을 보유한 전략적 협력관계지만 김 대표의 꿈은 역시 B2C다. “생존은 해야겠지만, 꿈은 또 꿈대로 있는 거지요.” '플러그(P-LUG)'는 B2B 모델이다. 지금은 현대자동차와 하지만 다른 완성차 업체가 원할 경우 얼마든지 그 회사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화이트 라벨 솔루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CES2023에 출장 갔던 이유도 그것이겠다. 김 대표는 그런데 그 못지않게 '플러그(P-LUG)' 위에서 돌아가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더 진화시켜 B2C 모델로 만드는 데 관심이 크다. “'플러그(P-LUG)'에 들어간 8개의 서비스 가운데 세 가지는 우리가 직접 개발한 것입니다. 중고차 매매, 외장수리(exterior repair), 라이브 컨설팅 등이 그것이죠. 이런 서비스는 B2C로 발전시켜도 손색이 없는 아이템이라고 봅니다. 외장 수리나 중고차 매매의 경우 이미 국내에서는 훌륭한 서비스가 나와 있지요.” 김 대표는 그러나 B2C 모빌리티 서비스를 하더라도 국내에서 할 생각은 없다. “국내서 치고 박고하기보다 유럽이 낫지 않겠어요?” 그렇다. 김 대표가 가려는 최종 목적지는 유럽 대륙에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 모빌리티 서비스를 뿌리내리는 것이다. ■ “투자는 받았는데 한 푼도 쓰진 않았네요” 김 대표는 그러나 꿈 때문에 현실을 망각하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원더풀 실패 상처를 최소화한 것도 그런 성향이 반영된 것이겠다. “작년에 팁스(TIPS)에 선정돼 프리-A 투자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매출만으로도 사업 확장이 가능해 투자금은 한 푼도 안 썼습니다.” 팁스(TIPS)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하는 '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매출은 16억 원이고 영업이익율은 25%다. “원더풀 할 때만 해도 앞이 보이든 말든 일단 가야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가는 길이 어떨지 어느 정도 보이는 느낌이 됐습니다.” 그의 말은 항상 꿈을 꾸되 발은 현실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의 꿈은 회사 이름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인간의 이동의 자유를 위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을 만들어 뿌리는 것. 그것도 유럽에서. 덧붙이는 말씀: 김태원 원더무브 대표가 추천한 다음 인터뷰 대상은 바이오 소재 기업 마이셀의 사성진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