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왜 KT 대표 선임에 간섭할까
KT 차기 대표 선임에 국민연금이 개입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다. 그중에서도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 상황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지금 정치에 정신 팔고 있나'는 제하의 사설에서 “전 정부 기간 중에 선임됐다는 이유로 현 대표를 밀어내는 데 국민연금이 동원된 것이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면서 “간부들이 정치에 정신을 팔고 있는가”고 지적했다. 조선일보가 분노한 까닭은 국민연금 스스로 중차대한 개혁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투자 성과를 올리는 데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정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특히 (문재인 정부와 달리)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면서 등장한 새 정부도 국민연금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데에 큰 배신감을 느낀 듯하다. 국민연금 주장에 전혀 공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장 자체는 사실 일리가 없지 않다. 소유분산기업(KT나 포스코처럼 민영화 이후 특정한 주인이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는 언제든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의 경영진이 권한을 남용해 실질적으로 기업을 사유화할 가능성과 이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마저 허수아비나 말 잘 듣는 거수기로 만들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갖게 한다. 첫째 국민연금은 기업 경영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연금사회주의라는 말이 있다. 정부가 연기금을 동원해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보수진영은 당연히 여기에 반대한다. 조선일보는 “이런 일에 왜 국민연금이 나서나”며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오로지 온 국민의 노후 자산 수익률 제고에 도움 되느냐의 투자 관점만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안은 세계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찬반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여기서 의아한 점은 지금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연금사회주의와는 너무나 먼 윤석열 정부이고 논란에 불을 지핀 국민연금 이사장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지난해 하반기 윤석열 정부에서 선임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현 정부와 반대되는 생각을 한다는 뜻이 되나. 조선일보 사설에서 '정치'라는 용어는 그래서 한 번 더 되새김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이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게 아니라면 여기서 '정치'는 정권이 갖고 있는 세계관과는 무관한 의미로 쓰여야 마땅하다. 그게 뭘까. “전 정부 기간 중에 선임됐다는 이유로 현 대표를 밀어내는”. 결국 자리 하나 차지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했다는 뜻이 되나. 조선일보가 그런 의미로 '정치'라는 용어를 쓴 것인지는 물론 확실치 않다. 하지만 사설의 맥락을 따져보면 국민연금 간부들이 했다는 '정치'는 그것 말고는 찾기 쉽지 않다. 둘째 질문은 일부의 주장대로 국민연금이 필요할 경우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도 있다고 본다면 언제 그렇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어쨌든 민간기업 경영에 개입하려면 어느 정도의 조건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연금사회주의 정권이라 하더라도 민간기업 경영에 개입하려면 해당 기업에 '긴급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라는 조건 정도는 달 듯하다. 또 그 긴급한 문제는 일반 투자자 정도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사안이 될 것이다. 그런 상식에 기대어 봤을 때 국민연금이 '정치'를 할 만큼 KT에 발생한 긴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특히 구현모 차기 대표 최종 후보(현 대표이사)와 관련해. 조선일보 생각은 이렇다. “지난 3년 사이 KT 영업 이익은 41% 증가했고, 인공지능·데이터·클라우드 등의 신사업 다각화를 이뤘다. 콘텐츠 분야에도 진출했고, 무엇보다 KT의 시가 총액이 3년 새 90%나 불어났다. 투자 기업의 주식 가치가 올라가야 이익인 국민연금 입장에선 손해가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 생각대로라면 구현모 KT 차기 대표 최종후보는 뛰어난 경영자다. 되레 연임을 해야 하는. 국민연금이 조선일보 보기에도 이래저래 설득력 없는 행동을 하는 데는 아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뭉뚱그려 조선일보는 '정치'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중에는 전 정부에서 선임된 사외이사에 관련된 것도 있겠다. 정치는 선택이고 행동이어서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선택과 행동이 난무할 때 사람들은 절망한다. 조선일보는 그걸 정치라 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