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박스 재활용할 때 테이프 안 떼도 돼요"
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편집자주] “종이박스 재활용할 때 테이프 안 떼도 돼요”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택배 서비스가 가장 발전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종이 박스를 많이 쓴다. 종이 박스는 당연히 나무로 만든다. 박스를 쓰는 만큼 나무를 베야 한다. 나무를 지나치게 많이 베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대부분 안다. 필요하기 때문에 써야 하긴 하지만 아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종이 박스는 재활용할 수 있다. 재활용을 잘 할수록 나무를 덜 베도 된다. 그런 이유로 종이 박스 재활용은 이제 상식이 됐다. 하지만 종이 박스 재활용에는 여전히 애로가 있다. 종이 박스 포장에 쓰이는 테이프와 택배에 필요한 송장 때문이다. 이것들이 종이 박스에 붙어 있는 채로는 재활용이 쉽지 않다. 그것들은 재활용이 되지 않는 폐기물이어서 종이 박스를 재활용하려면 그걸 분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분리작업도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라 종이 박스 재활용 자체를 꺼리는 상황까지도 발생한다. 황용민 엠지케이 대표는 이 문제를 푼 사람이다. 기존 플라스틱 소재의 테이프(일명 OPP 테이프)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수해리 테이프'를 개발했다. 종이 박스에서 폐기물을 분리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버린 것. ■ OPP 테이프 폐기물은 연간 5만9천 톤 황 대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OPP 테이프 폐기물은 연간 5만9천737톤이라 한다. 이때 드는 비용만 147억 원이다. 이 자료가 수입품목을 포함해 2017년 기준이라 하니 지금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OPP(OPP(Oriented Polypropylene) 테이프는 PE 수지필름에 유성 점착제를 도포해 만든다. 종이 박스를 재활용할 때에 반드시 분리 배출해야 하는 폐기물이다. OPP 테이프 폐기물은 소각 처리해야 하는데 이때 유독가스인 다이옥신을 배출한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도 대기 오염 물질를 배출하게 되는 셈이다. “OPP 테이프는 값이 싸 사용해왔지만 기후변화위기로 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이 때문에 기업에서도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이 중요해지며 대체되어야 할 제품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지요.” ■ 종이 재질 '크라프트 테이프'의 한계 OPP 테이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제품이 이른바 '크라프트 테이프'다. 황 대표는 그러나 일부 크라프트 테이프의 경우 재활용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크라프트 테이프는 종이와 점착제가 완벽하게 해리(解離)가 되지는 않아요. 종이 박스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리펄프 공정이 필요한데 이때 종이 슬러지에 점착제가 잔존해 있거든요. 다시 쓰려면 리파이닝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에요. 그 점에서 이 과정은 진정한 리사이클(Recycle)이라 보기 어려운 거죠.” 다시 화학적 공정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물에 완전히 녹는 테이프가 필요했어요” OPP 테이프 문제를 극복하려면 결국 종이 박스와 함께 테이프를 리펄프 공정에 넣을 때 폐기 이물질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황 대표가 개발한 '수해리 테이프'다. 수해리(水解離)는 중성의 물에서 완벽히 해리된다는 뜻이다. “수해리 테이프의 장점은 신장력과 점착력을 높이면서도 중성의 물에서 완전히 해리된다는 점이죠. 종이 박스 등을 다시 펄프로 만들 때 아무런 이물질도 발생시키지 않아요. 그냥 종이를 다시 펄프로 만든다고 보면 되죠.” 이 기술은 그 덕분에 환경부로부터 녹색기술인증서와 녹색기술제품확인서를 받았다. “중성의 물에서 완전히 분해되는 수해리 테이프는 (제가 알기로는) 국내에는 우리 제품 말고 없습니다. 해외에서도 독일의 테사(Tesa)와 미국의 쓰리엠(3M) 같은 일부 기업만 있죠. 우리 경쟁 업체는 그만큼 드문 것이죠.”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유럽 시장에도 납품하기 시작했다. ■제지 분야 오랜 경험이 도움이 됐어요 황 대표가 수해리 테이프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무림 한솔제지 대한제지 한국제지 등 국내 제지사와의 오랜 인연 덕분이다. 황 대표는 2017년 엠지케이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전 직장에서 제지사와 협력해왔다. 이때 제지용 수해리 테이프를 개발했다. 이 테이프는 원지를 마감하거나 연결할 때 쓰인다. 테이프이지만 사실상 종이와 다름없는 것. “전 직장은 친인척이 설립한 회사였는데, 2011년에 입사해 얼마 뒤 그 회사 대표가 되어 수해리 테이프 사업을 주도했어요. 2017년에는 그 회사와 합의 하에 수해리 테이프 아이템으로 독립해서 엠지케이를 설립했지요.” ■“가격은 비싸지만 대기업들이 찾아요” 수해리 테이프는 OTT 테이프에 비해 아직 3.5배 비싸다. 비용을 생각하면 수요 기업으로서는 고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수요처에서 가격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기는 합니다. 높은 개발비와 아직 초기 시장인 탓에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탓이죠. 하지만 친환경 이슈와 ESG 경영에 민감한 대기업 중심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대기업일수록 친환경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고 탄소배출권도 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직 망설이는 기업도 있지만 적극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도 적잖아요.” 매출도 해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매출은 20억 원이었는데, 수해리 테이프 개량형 모델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하는 올해에는 100억원대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내년에는 250억원, 2025년에는 4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죠.” ■“파주공장 증설하며 볼륨 키우고 있어요” 엠지케이 직원은 현재 20여명이다. 올해 20억원을 투자 받아 파주 공장을 2공장까지 증설했다. 이에 따라 직원도 30여명 가량 더 늘릴 계획이다. 특히 새로 설립한 기업부설연구소에 일할 연구 인력도 충원할 계획이다. “친환경 사업은 돈이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라고 생각합니다. 환경과 사업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제지회사는 물론이고 박스를 사용하는 제조사와 물류기업이 우리 고객이고 수해리 테이프는 거의 개척되지 않은 시장인 만큼 성장 잠재력이 상당히 크다고 판단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제지 강국인 러시아와 북유럽 그 외 많은 제조회사들이 잠재적인 고객이죠.” 엠지케이가 해외영업팀 인력을 충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축구 선수에서 친환경 기업가로 황용민 엠지케이 대표는 학창시절 축구선수였고 지금도 스포츠를 즐긴다. 스포츠는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업도 스포츠와 일맥상통하다고 믿는 편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데 한 표를 주는 셈이다. 그가 존경하는 기업가는 故 정주영 회장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아가야 한다.” 황 대표가 늘 마음에 새긴다는 정주영 회장의 어록 가운데 하나다. 국내 유일의 수해리 테이프는 황 대표가 닦아나가고 있는 길이다. 덧붙이는 말씀: 황용민 엠지케이 대표가 추천한 다음 인터뷰 대상은 화장품 개발 스타트업 와이제이랩 박영조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