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용 초거대AI 수출 물꼬 튼다...구축 선봉에 선 '디·플·정'
“대통령이 이해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맞지 않다.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를 물어보는 것이 맞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디지털 분야 첫 공약이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부혁신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 시스템 전체의 혁신을 꾀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행복 플랫폼, 기업에게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성장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큰 그림이다. 때문에 검사 출신인 대통령의 디지털 정책 이해도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디지털플랫폼이란 이름을 꺼낸 것은 모 교수님이었지만 문제의식을 갖고 이런 정부를 만들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은 대통령이다. 정부 정책 수립은 사실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지난 정부에서 현실을 무시하고 정치적 소신이 앞선 결정들이 있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학적 정책 수립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의 이런 고민이 있었고 디지털플랫폼정부는 이 같은 시스템을 혁신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지디넷코리아는 창간 23주년, 윤석열 정부 1년을 맞아 정부혁신 플랫폼 마련에 열중하고 있는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이하 디플정) 위원장과 김태진 편집국장의 특별 대담을 마련했다. 디플정 위원장 사무실에서 진행된 이번 대담 내용은 박수형 기자가 정리했다. ■ “대통령, 챗GPT 3.5 발표 당시 직접 써보기도” 고진 위원장은 대통령이 AI나 데이터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을 지니고 있는지 일화도 소개했다. “대통령이 굉장히 빠른 편이다. 잠도 많이 안 자는 것 같고. 챗GPT 3.5가 발표됐을 때 새벽에 참모진들에게 지시를 했다고 한다. 한번 써보라고. 그 정도로 빠르게 뭔가를 해보려고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업무 보고였는데 마무리 발언에서 참석자들에게 챗GPT로 일하는 방식을 바꿔보라는 권유도 했다. 당시 3.5에서는 영어로 명령하고 이를 한글로 옮기면 문장이 부드럽게 바뀌었는데 연설문 작성 비서관이 써준 것보다 낫다는 농담도 했다. 요지는 부처에서 AI를 활용해 업무효율을 높여 일하는 자유를 높이자는 것이었다. 저도 챗GPT 3.5로 한글로 된 인사말이나 축사는 쓰지 않지만 영어로는 활용하곤 한다. 가끔 기본을 잃어버릴 때가 있는데 이를 잘 챙긴다. 챗GPT로 서너 번 수정하면 쓸만하다. 환영사든 축사를 챗GPT를 썼다고 고백하면 듣는 이들도 재미있어한다.” ■ “민간위원들이 싸움하듯 회의하며 정책 방안 만들어” 지난달 14일 디플정은 출범한 지 약 반년 만에 세부 청사진과 구체적 이행계획을 공개했다. 당시 디플정은 민간위원과 전문가, 관련 부처가 162차례의 열띤 논의와 현장 방문 끝에 이를 구체화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시점이다. 왜 오래 걸렸을까. 고 위원장은 대통령으로부터 6개월의 시간을 허락받았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가 새 제도를 시행할 때 조그만 사례를 모아 틀을 만드는 과정이 있고, 틀을 먼저 만들고 계속 혁신이 일어나도록 생태계를 구성하는 접근방식이 있다. 지난 정부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산업경제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한 첫 회의에서 담당부처 장관이 4차 산업혁명 대응방안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발표 내용도 사전에 공유되지 않았는데 세부적, 구체적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에게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시점에는 방향성, 전략, 원칙 등 큰 그림을 먼저 그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국민 체감형 사례가 더 중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회의가 재개돼 그렇게 마무리됐다. 당시 대통령이 적어도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는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아쉬웠다. 그래서 디플정 위원장을 맡았을 때 정부 부처에서 가져오는 게 아닌 민간위원들이 중심이 돼 진짜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6개월의 시간을 허락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디플정 실현 계획'이 나왔고 '초거대 AI 경쟁력 강화방안', '데이터 혁신을 위한 국민 신뢰 확보방안' 등 핵심 추진과제들이 도출됐다. 정부 시스템을 혁신하는 과제들을 민간 위원들이 만드는 일이라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터라 이를 물어봤다. “디플정은 다른 위원회와 달리 회의를 하다 보면 간혹 큰 소리도 나고 싸움(?)도 하곤 했다. 밖에서 볼 때는 저게 무슨 위원회야, 개판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또 민간위원들이 목소리를 내면 혹시 자기 회사 이익 챙기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 그런 정보보고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극히 자유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과거 창업했을 때 기억을 회상하면서 부연했다. “창업했을 때 파트너끼리, 창업 동지들끼리 많이 싸웠다. 싸우면서 베스트 솔루션을 찾았다. 이후 회사를 대기업에 매각했는데 직원들이 안 싸우더라. 윗사람 시키는 방향성대로 가느라, 눈치를 보느라고. 다시 대표를 맡아달라는 부탁이 와 3년을 했는데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회의 시간이 길어져도 좋으니 무조건 싸워라. 안 싸우면 직무유기라고. 공무원 조직도 비슷하다. 싸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것을 불편해하고 터부시하는 측면이 있다. 앞서 민간위원들이 자기 회사 이익 대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고 했는데 싸움이 있으면 자기 회사 이익만 대변할 수 있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이런 불편함이 있어야 공적 조직의 생산성도 올라가고 혁신을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책들이 만들어졌다.” ■ “부처별 흩어진 데이터·자원 모으고, 벽은 허물고” 디플정이 계획하는 정부 시스템 혁신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정부의 데이터, 자원들을 한데 모으고 국민이 이를 편리하게 쓰도록 만들자는 게 골자다. 이 과정에서 서버나 하드웨어의 비용도 절감할 수 있고 정부부처 간 벽도 허물 수 있다는 게 고 위원장의 생각이다. 과거 한국이 만든 전자정부 시스템은 다른 국가에서 배워갈 정도로 우수함을 인정받았지만 이후 업그레이드가 늦어져 뒤쳐졌고 영국 정부가 만든 'GovUK'와 비교하면 5~6년 정도 늦었다는 게 고 위원장의 판단이다. 지난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도 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부처 간 협업을 내세웠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어떤 복안을 갖고 있을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행정분과 소속 위원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각 부처가 가진 데이터가 곧 권력인데 그걸 내놓겠느냐는 것이다. 조직적으로 불가능하고 어려워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각 부처의 업무는 각자의 법에 목적사업이 명시돼 있고 그게 각 부처의 일이다. 특히 목적사업으로 획득한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위반 시 패널티가 있어 축소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네거티브 법체계에서는 타 부처에 어떤 데이터를 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답을 못한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각 부처에서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타 부처에서 어떤 데이터를 가져오면 되는지를 물어보면 각자 필요한 정보를 얘기한다. 어떤 데이터를 가져오면 효율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데 이것을 주고받을 환경이 안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감사원과 협의를 해야 하는 이슈인데, 데이터 공유 요청을 받아 적극적으로 공유를 해준 측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가져간 측에서 잘못 사용할 경우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을 고치면 부처 간 데이터 장벽을 허무는 자세가 달라질 것으로 본다.” 향후 디플정에서는 정부기관 간 데이터 공유·활용이 확대되도록 포괄적으로 목적 외 이용금지, 비밀 유지를 규정해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는 법령을 전면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이 동의할 경우 각 기관에서 따로 발급받아야 할 문서들을 공유해 한 곳에서 행정업무를 볼 수 있다. 고 위원장은 “행정부-사법부 간 데이터 연계가 확대될 수 있다”면서 “또 AI가 다양한 데이터를 읽을 수 있도록 법령상 민원 서식 등 정부 문서를 생성 단계부터 AI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저장·공개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 “AI가 수혜성 서비스 추천하고, 한 번의 로그인으로 모든 공공서비스 이용” 디플정이 발표한 '혜택 알리미'는 부처 간 데이터 공유·활용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AI 서비스다. 국민들이 몰라서, 바빠서, 절차가 복잡해서 놓칠 수 있는 중앙부처의 1천21종에 달하는 수혜성 서비스를 AI가 개인 상황에 맞춰 미리 알려주고 추천한다. 또 그동안 국세는 '홈택스', 지방세는 '위택스', 기초연금 등 복지 신청은 '복지로'와 같이 이곳저곳에서 이용해야 했는데 하나의 아이디, 한 번의 로그인으로 편리하게 모든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디플정은 분산돼 제공되고 있는 1천500여 종의 서비스를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연계·통합시킨다는 계획이다. 국민드림 프로젝트도 이 가운데 하나다. 부처별·지역별로 산재한 청년정책을 종합해 추천·알림·접수기능을 제공하는 '청년정책 통합플랫폼', AI가 돌봄 대상자에게 정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하고 건강 이사 유무 등을 확인하는 'AI 복지도우미' 등 26개 과제가 추진된다. 이를 위해, 디플정에서는 실증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부 전용 초거대 AI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지 검증하는 작업이다. “민간에 있는 초거대 AI에 개방된 문서, 법령, 정책자료, 보도자료 등을 얹어 정부 전용 초거대 AI를 만드는 실증사업을 할 예정이다. 이것이 성공적이라고 판단하면 정부 내부 업무망에 있는 오픈된 정보들도 훈련 시킬 예정이다. 이미 과기정통부와 행정안전부에서 관련 사업들을 추진 중이다. 예를 들어, 정부 업무 효율화에 AI도우미가 활용되면 AI가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상황 파악이나 민원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상담사에게 일을 나눠줄 수 있다. 이미 민간에서는 AI를 활용한 유사 서비스가 이용되고 있다. KT는 컨택센터에서 상담콜 내용을 정리해서 로그를 남기는 것에 활용하고 있는데 업무효율을 20~30% 향상시켰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는 독거노인의 안부를 확인하는 데 쓰인다. 향후 정부의 혜택 알리미와 같은 서비스가 시행되면 중소기업이 필요한 지원정책이 뭔지, 신청할 수 있는 복지 혜택이 뭐가 있을지 AI가 추천할 수 있다.” ■ “초거대 AI가 실사구시형 공무원 만들 것” 고진 위원장은 정부 전용 초거대 AI로 얻을 수 있는 효용성이 단지 국민이 편리해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로 아낀 시간을 아날로그적 도움 확대에 쓰면서 '실사구시형 공무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정책을 수립할 때 사실에 근거한 정책 입안을 위해 현장에 나가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업무가 많다 보니 책상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정책 배경이나 해외사례들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지자체의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도 민원 업무 신청·처리 업무가 많아 실제 주민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기 어렵다. 정부 전용 초거대 AI가 나오면 40% 정도 업무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현재 사법부에서 발급받는 PDF 기반의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데이터로 받아 전산화하는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기존에는 한자나 수기로 작성된 문서가 있다 보니 완결성을 위해 PDF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10% 미만이다. 데이터로 받으면 90%의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고 국민 불편은 줄어든다. 현재는 온라인은 온라인, 오프라인은 오프라인 방식으로만 공인되는 구조이지만 온·오프라인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처리하면 일선 공무원의 업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일정부분은 AI가 처리할 수 있다. 이렇게 줄어드는 업무량만큼 복지 사각지대 해결을 위해 발품을 팔거나 디지털 취약계층을 도울 수 있다. 디지털로 아낀 시간과 비용을 아날로그에 쓸 수 있다.” ■ “SaaS 기업 1만개 육성, AI 유니콘 5개 만들 것” 디지털플랫폼정부의 핵심은 민간의 역량을 바탕으로 정부 서비스를 혁신하는 'GovTech' 산업 육성이다. 구체적인 목표로 2026년까지 1만개의 SaaS(Software as a Service) 기업 육성, AI 유니콘 기업 5개 발굴이다. 3년여 시간 동안 가능한 목표일까. 고진 위원장은 “공격적 목표이지만 무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1만7천여 개 시스템 중에 약 1만개 정도가 민간 클라우드로 이전이 가능하다고 파악되는데 현재 2천여 개가 민간 클라우드로 옮겨졌다. 하지만 민간 클라우드로 옮긴 것이나 정부가 소유한 G클라우드 모두 클라우드의 장점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클라우드의 가장 큰 장점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적용하거나 신속하게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기능 하나를 바꾸려면 전부를 고쳐야 하는 구조다. 하지만 SaaS로 구축하면 이러한 개발이 가능해진다. 국민 편익을 위해 새로운 서비스를 덧붙이기도 편하고 최신 기술 적용도 빠르다. 때문에 단순히 민간 클라우드로 몇 개 옮겼다는 수치보다 클라우드 네이티브(클라우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고 실행하는 방식) 구축이 가능한지가 중요하다. 해외 선진국들이 클라우드로 빠르게 옮겨갈 때 한국은 이를 쫓아가지 못했다. OECD 보고서의 클라우드 전환 자료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SaaS로 넘어가는 타이밍을 잡지 못한 것인데 디플정의 정부 시스템 혁신에 맞춰 우리도 SaaS로 옮겨가려고 하는 것이다.” ■ “생산성 검증 전도사 역할 하겠다” 그는 AI 유니콘 기업 5개 육성도 달성가능한 일이라며, 동남아와 중동 등 독립언어를 갖고 있는 국가들을 공략하는 것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해외에서 IT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동남아, 중동에서는 특히 더 부러워한다. 이들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중국이나 미국의 시스템을 쓰기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정부의 데이터를 다루는 초거대 AI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들 입장에서는 제3의 솔루션을 찾아야 하는데 대안으로써 한국이 유리하다. 디플정이 정부 전용 초거대 AI를 구축하는데 속도를 내는 이유다. 또 디플정이 정부 전용 초거대 AI를 구축하고 SaaS 기반의 클라우드 네이티브를 구현해 수출한다는 것은 관련 우리 기업들과 함께 나간다는 것이다. SW 생태계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SW 산업을 키우는 일이다. 결국 디플정이 하는 일은 민간에서 공공의 데이터를 갖고 자기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이들이 경쟁력을 갖춰 해외로 나갈 수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년 중동에서 열리는 월드 거버넌스 서밋을 포함해 UN, OECD, 다보스, 월드뱅크 등에서 한국의 정부 시스템이 얼마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 '생산성 검증 전도사' 역할을 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디플정이 국민체감 사례들도 많이 만들겠지만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봐달라.” [대담=김태진 편집국장/ 정리=박수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