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디지털 헤리티지, 신한류의 중심으로"
'디지털 헤리티지'는 문화유산과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디지털 문화유산을 연구·보존·기록·관리·전시 및 보급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세계 주요국은 일찍이 문화유산의 디지털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아울러 꾸준한 정책과 연구를 병행하며 전략적으로 문화유산의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고 또 이를 활용해 오고 있다. 아울러 세계 각국은 타 문화권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국을 넘어 해외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헤리티지 프로젝트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에서 디지털 헤리티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2000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부터다. 당시 신라왕경 전체를 VR로 복원 사업부터 진정한 의미로 한국의 디지털 헤리티지 역사가 시작됐다. 지디넷코리아는 지난 15일 한국 디지털 헤리티지의 현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에는 한국고고환경연구소 실장을 맡고 있는 안형기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박진호 고려대 AR/MR 시스템‧콘텐츠 융합연구단 연구교수, 이창근 헤리티지랩 소장이 패널로 참가했다. 사회는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이, 정리는 강한결 기자가 했다. =디지털 헤리티지라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다. 한국 디지털 헤리티지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박진호 박사: 국내 디지털헤리티지의 기원은 1991년의 미륵사 서탑 애니메이션이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약 10년 가량 휴지기(1991~1999년)를 거쳤는데, 2000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당시 신라왕경을 VR로 재현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디지털 헤리티지는 디지털 고고학과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두 부분에 대한 차이점은 무엇인가? ▲안형기 박사: 고고학은 완전한 자료를 통해 과거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가운데 결손된 부분을 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탄소 측적, 방사능 동위 등 여러 디지털적인 방법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990년 고고학자 겸 컴퓨터공학자인 미국의 폴 라일리가 고고학적 연구에 컴퓨터 기술을 적용한 가상 고고학(Virtual Archaeology)에서부터 시작된 디지털 헤리티지는 학자들을 위한 연구보다는 주로 대중들을 위한 활용에 중점을 둔 학문이다. 최근 들어 디지털 고고학에서도 활용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점차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디지털 헤리티지와 디지털 고고학 용어를 같이 겸용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 한국 디지털 헤리티지 역사가 2000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했는데, 20여년이 지난 현재 한국형 디지털헤리티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진호 박사: 2000년대 초반 디지털헤리티지가 한국으로 수입된 이래 20년이 지났다. 디지털헤리티지 기술을 적용한 문화콘텐츠 제작은 한국이 최고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유럽과 비교하면 다소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결국 어떻게 한국형 디지털헤리티지를 정착시키는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 디지털 헤리티지에는 미디어아트 유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이창근 박사: 전국의 문화재 활용 현장에서 진행되는 ICT 융합 프로그램을 디지털 헤리티지라고 볼 수 있다. 문화재와 접목한 미디어파사드, 뉴미디어 전시, 인터랙티브아트, VR/AR 프로그램이다. 각 지역의 문화재야행,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현장에서 문화재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야간콘텐츠로 제공한다. = 현재 문화유산의 디지털 고증 현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안형기 박사: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연구인력이 현저히 적다는 점이다. 한국 디지털 고고학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현재 통계, GIS, 3D 스캔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디지털 고고학에 적용하고 있지만 아직 시작 단계다. 디지털 헤리티지도 마찬가지다. 현재 관련 전공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특히 대학교나 대학원 커리큘럼이 거의 없어 외국처럼 고도화되고 세분된 디지털 고고학, 헤리티지 전공자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대학에서 디지털 고고학, 디지털 헤리티지 관련 전공 및 커리큘럼을 개설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하다. 조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디지털 고고학은 그 특성상 여러 디지털 장비를 활용해야만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과정상 고고학은 인문학에 포함되기 때문에 실습에 필요한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때 이공계에 비해서 지원이 부족하다. 제도적인 보완이 시급하다. = 그래도 현재 한국의 디지털 헤리티지가 해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박진호 박사: 업무나 관광 때문에 해외를 나가서 박물관을 가보면 선진국을 제외하고 우리나라만큼 박물관의 디지털 콘텐츠가 잘 되어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현지 연구자들에게 우리나라의 디지털 헤리티지 콘텐츠 사례에 대해 소개를 하면 많은 관심을 보인다. 튀르키예, 이집트 등 중동 지역, 동남아, 중앙아시아, 남미 등 유구한 역사와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지만 디지털 헤리티지 콘텐츠가 많이 제작되지 않은 국가랑 협업을 한다면 한류의 일종으로 K-헤리티지, K-뮤지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안형기 박사: 실제로 지난 2022년 5월부터 태국의 대표박물관인 방콕국립박물관에 태국의 대표적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아유타야 유물을 가지고 실감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오는 5월에는 방콕국립박물관 아유타야 전시실에서 해당 콘텐츠가 오픈할 예정이다. 현재 우리나라 디지털헤리티지 기술로 해외 박물관의 유물이나 유적을 대상으로 디지털화하고 이를 디지털콘텐츠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방콕국립박물관을 시작으로 올해는 더욱 다른 나라 박물관과 협업할 예정이다. = 국내의 경우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이 디지탈헤리티지로서의 성과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창근 박사: 지난해 전국 8개 지역에서 개최된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우리 문화재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문화재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고 정체성을 담아내 우리 국민에게 위로의 예술작품을 선사하기도 했다. 더불어 침체한 관광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했다. 미디어아트가 열리는 문화재 인근은 야간관광지로 발돋움했고,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주변 상권의 불빛을 밝혔다. 특히 한류 열풍과 맞물려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전하며 방한 관광의 신호탄이 됐다. = 항후 미디어아트 기반의 문화재 대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전망이 궁금하다. ▲이창근 박사: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AI),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메타버스까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를 급격하게 맞이한 가운데 최신의 첨단기술이 실감형 공연‧전시 연출과 융합해 이미 '아트&테크놀로지'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2003년 유네스코가 디지털 유산 보존에 관한 헌장을 통해 제시한 디지털헤리티지도 마찬가지다. 잘 만든 미디어아트 콘텐츠는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축물만 바라보던 방식에서 문화재가 캔버스이자 스크린이 돼, 역사의 현장을 대중과 교감하도록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