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무조건 해외 진출' 강박 떨쳐라"
“서른 살까지 한국에서 일하다 실리콘밸리로 건너왔다. 그간 굉장히 수동적으로 일해왔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국 사내 문화가 겸손하며 요구사항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실리콘밸리는 원하는 게 무엇인지, (프로젝트 등 추진 과제가) 얼마나 준비됐는지 어필하거나 능동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다.” 김혜숙 픽사 3차원(3D) 애니메이터는 11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열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2023'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혜숙 애니메이터는 최근 국내에서 700만 관객을 돌파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엘리멘탈' 제작에 참여했다. 예술과 기술을 융합해 애니메이션으로 녹여내는 데 일조했다고. 실리콘밸리 일원으로서 직원들은 어떤 혜택을 누릴까. 김혜숙 애니메이터는 “직원 자율성이 보장되고 교육비가 지원된다”며 “픽사 직원은 애플 제품이 25% 할인되고, 디즈니랜드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년, 20년 근속 시 픽사 애니메이션 캐릭터 형상의 트로피도 받는다. 30년 근속 직원에게는 '피노키오' 귀뚜라미 크리켓 트로피가 수여된다. 백원희 구글 유튜브팀 사용자경험(UX) 리서처는 “사무실에 반려동물을 데려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복지”라며 “(반려동물에게) 사원증이 발급되기도 한다”고 했다. 마이터(MITRE) 소속 권경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대학원 학비 지원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제품을 할인받는다"고 말했다. 세 사람에게는 '도전'이라는 공통분모가 엿보였다. 백원희 리서처는 뉴욕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스포티파이와 넷플릭스 등에 적을 두며 두루 경력을 쌓아왔다. 권경안 엔지니어도 보스톤, 뉴욕을 거쳐 개발자 경험을 쌓았다. 이들은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청춘들에게 “도전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투자는 설득하고 궁합 맞추는 과정…해외 진출 강박 가질 필요 없다" 이날 경기 성남 네이버1784 스카이홀에서 열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은 2014년 시작해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연례 컨퍼런스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전역에서 혁신을 만들고 있는 창업가와 실무자, 투자자들이 모여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자리다. 10년간 115명 연사들이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에 참여했다. 뇌질환 진단·치료 기업 엘비스를 창업한 이진형 스탠퍼드대학교 교수는 “비판에 귀 기울이되, 스스로 판단하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창업가들이) 투자를 받기 위한 특별한 조건은 없다”면서 “투자란 설득하고 궁합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벤처캐피털(VC)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김범수 파트너도 스타트업을 세운 경험이 있다. 당시 김범수 파트너는 “죽을힘을 다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실망과 자책을 반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진출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 파트너는 “내수 시장을 넘어, 무조건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건 착각”이라며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잃을 게 없거나 차에서 자며 일해도 해볼 만하다고 판단되면, 유학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부딪혀도 된다”면서 “한국에서 매출이 나고 20억~30억원을 날려도 상관없다면 해볼 만하다”고도 했다. 정치 플랫폼 옥소폴리틱스 유호현 대표는 문화 차이를 짚었다. 유 대표는 “미국에서는 우리가 선호하는 성격유형검사(MBTI)를 전혀 모른다”며 “타인에게 본인을 드러내는 데 무관심한 시장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빅테크가 주목하는 가상현실(VR)과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동형암호 기술 스타트업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카카오 초기 멤버인 이승준 어메이즈VR 대표는 국내외 아티스트 협업 사례를 토대로 미국 시장 진출 이야기를 공유했다. 수아랩 출신들이 모여 세운 딥블루닷 이동희 대표도 제품 개발 노하우를 소개했다. 이어 동형암호 기술로 미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크립토랩 천청희 대표가 강단에 올랐다.